<공동체가 양생이다> 6회 굶지 않겠어!

기린
2021-02-22 21:18
477
  1. 날씬함이 정상이라고?

 

 신문에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라는 칼럼의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제목 참 절묘하다싶었다. 뚱뚱한 몸의 삶을 정말 리얼하게 대변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뚱뚱한 몸으로 습관처럼 저렇게 다짐하고 매번 어기고 마는 익숙함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굶지 않는’ 다이어트라는 제목을 보면 일단 클릭해본다. 굶고 자야한다는 다짐과 굶고 싶지 않은 욕망이 충돌하는 일상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딸은 둘만 되어도 천대받는다고 생각했다는 어머니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고 만족하셨다고 한다. 단 하나뿐인 딸을 곱게 키울 자신이 있었는데 점점 뚱뚱해지는 걸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고등학교를 간다는데 옷집에서 맞는 사이즈가 없는 곤란이 계속되자, 예쁘고 자시고 일단 큰 사이즈가 눈에 띄면 사게 되었다. 그래서 식욕이 왕성한 나를 보면 그만 먹으라는 잔소리를 일삼아 하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눈초리를 피해 급하게 많이 먹어치우는 데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먹는데도 나의 위장은 거뜬하게 소화해 주었고 그만큼 정직하게 뚱뚱해졌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당시만 해도 ‘비만’이 그리 흔치 않던 시대였다. 그래서 대놓고 놀림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지만, 뚱뚱한 여자라는 외모는 비호감이라는 눈치는 챌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한’ 걸로 인정받기로 했다. 하지만 공부는 내 바람대로 잘 되지 않았고 식욕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상식’이 통용되고 뚱뚱한 몸은 정상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날씬한 몸이 정상이라고? 나에게 공부를 잘해서 똑똑해지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비정상이라는 몸만 남았다. 다이어트를 해서라도 이 살들을 빼고 싶었다.

 

                                                                   <나의 변천사 1 -2011년>

 

 2. 단식으로 경험한 변화들

 

 첫 다이어트로 매일 강냉이와 물만 먹으며 격렬한 에어로빅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눈을 떠보니, 집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어서 이러다 죽는 건가 덜컥 겁이 났다. 당장 저녁밥부터 챙겨 먹었다. 저렇게 많이 먹으니 당연히 뚱뚱하지라는 시선을 의식하느라 남들 앞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하다보니, 혼자 있으면 억눌렀던 식욕이 폭발 했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활동가그룹에서 뚱뚱한 몸도 당당하게 드러내자며 미모 선발대회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스크랩 해놓고 도전해볼까 망설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뚱뚱한 몸을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케이블 채널에서 뚱뚱한 여성들을 모집해서 ‘기적’에 가깝게 날씬한 몸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두가 뚱뚱한 여자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뚱뚱함에 대한 그런 해석이 좀 억울했고, 또 한편으로는 무절제한 나를 계속 자책하는 모순에 휩싸여 애꿎은 식욕만 탓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변천사 2- 2014년>

 

  공동체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읽게 된 텍스트에는 이런 나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가령 남송 유학자인 주희는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은 천리(天理)이고, 맛이 있어서 먹는 것은 사욕(私欲)”이라고 했다. 마치 주희가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내리치는 죽비처럼 읽혔다. 자기 몸의 변화에 고민이 많은 친구들과 함께 단식을 해 보기로 했다. 사과와 청국장, 감잎차로 세 끼를 해결하는 해독 단식과 보식까지 한 달 정도 걸리는 단식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매일 점심에 모여서 단식을 하면서 느끼는 몸의 변화를 공유했다. 무엇보다 먹는 것이 거의 없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게 신기했다. 그러자 맛있다는 감각을 좇아 시도 때도 없이 먹었던 습관이 보였다.

 

 한 달의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연이어 백일 동안 금주를 하고 밀가루 음식까지 끊었다. 점점 턱 선이 살아났다. 예전에는 앉은뱅이책상에서 뱃살은 눌리고 다리는 저려서 세미나를 하는 시간 내내 몸을 뒤척였었다. 손발 저림도 점점 심해졌고 뒷골까지 욱신거려서 난생 처음 두통약까지 복용했었다. 단식 후 백일이 지났을 즈음엔 이런 증상들이 다 사라졌다. 이문서당 수업 중에 우샘께서 나의 몸놀림이 날렵해졌다고 놀라워하셨다.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중고품 가게에서 몸에 맞는 옷을 골라 입고 친구들 앞에 서면 예쁘다고 했다. 거울에 비친 그 차림이 내 눈에도 마음에 들었다. 단식에서 유지했던 식이요법을 일 년 쯤 지속했을 때, 내 몸은 단식 전보다 삼십 키로의 살이 빠졌다. 어머니는 당신 생전에 살 안 뺄 거다 포기했었다며 변한 나를 보고 감격하셨다. 주변의 이런 반응으로 뚱뚱한 몸 때문에 바닥을 쳤던 자존감도 회복되는, 그래서 몸을 둘러싼 억압의 시선에서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이제 다시는 단식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의 변천사 3- 2016년>

 

   3. 살만 빠지면 뭐하나 자기배려도 못하면서

 

  단식이후에도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아예 안 먹었다. 그러다보니 탄수화물에서 섭취했던 당분이 줄어든 탓인지 초코렛, 아이스크림 같은 단맛이 계속 당겼다. 친구들은 밀가루는 끊었다면서 초코렛만 보면 반색을 하는 나를 대놓고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초코렛으로 가는 손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단식을 하느라 현저하게 줄였던 음식의 양도 차츰차츰 늘어났다.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대는 습관으로 되돌아가면 당연히 몸무게가 늘어났고 다시 단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몸의 건강을 개선하는 만족감이 컸던 단식은 점점 살을 빼는데 만족하는 쪽으로 치우쳤다. 그렇게 해마다 한번 씩 단식으로 몸무게를 줄였다가 다시 늘렸다가가 반복되었다.

 

 푸코가 쓴 『성의 역사』에 의하면 디오게네스는 육체(몸)와 영혼(인식)을 동시에 훈련시켜야 진정한 자기배려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식으로 몸이 건강해짐과 식욕이 조절되는 인식이 동시에 작동하는 데도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읽혔다. 단식을 할 때도 배가 고픈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먹는 일상이 사라진 허전함 때문인지 자꾸만 음식이 떠올랐다. 그러면 온갖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먹방에 눈이 갔다. ‘맛있는 녀석들’의 김준현이 쉬지 않고 음식을 ‘순삭’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맛이 다셔 졌다. 몸은 먹지 않으면서 인식은 먹고 있었다. 단식을 하면서 단식을 하고 있지 않는 분열이 일어났다. 몸과 인식이 분열되는 모순에서는 변화를 감당하는 힘을 축적할 수 없었다. 그러니 몸이 예전의 식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단식 이후 아침에 한 시간씩 걸어서 공동체로 출근하면서 꾸준히 걷는 습관을 들였다. 올해 초에 여섯 번째 단식을 하면서도 걸었다. 단식 삼일 차엔가 삼십 분이 넘어가자 걸음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단식 중에도 걷는 데는 별다른 지장을 느낀 적이 없었다. 체력은 점점 예전 같지 않은데 단 기간에 살을 빼겠다는 욕망으로 그 체력을 더 떨어뜨린 것이다. 살만 빼면 뭐하나. 나는 여전히 날씬한 몸이 정상이라고 강요하는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몸무게가 몇 키로만 늘어나도 전전긍긍 불안해졌다. 건강을 위한 단식이라고 내 자신까지 속이면서 살빼기에 집착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4. 나의 몸과 화해하는 힘이 필요해

 

 이러한 자각으로 요즘 내가 어떻게 먹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공동체 밥상을 차리는 일도 중지되었다. 집에서 혼자 먹은 밥상이 점점 늘어났다. 허기가 진다 싶으면 가장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음식을 찾았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음식이나 과일, 혹은 밖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차려놓고 넷플릭스 등을 보면서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위가 더부룩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면 매실 효소까지 한 잔 타 먹으면서 소화를 시켰다. 건강 회복은커녕 있는 건강도 못 챙기게 생겼다. 이럴 수는 없다!

 

 일단 천천히 먹는 훈련부터 다시 시작했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스톱위치를 켜놓고 먹는 시간을 기록했다. 아무 소리도 없는 게 어색하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먹는다. 친구들과 함께 먹을 때는 의식적으로 씹는 횟수를 헤아리며 천천히 먹는데 집중했다. 조리해야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사려고 애썼다. 며칠 전에는 샐러리를 사다가 유튜브를 보고 따라서 볶음을 해 보았다. 날 것으로 먹을 때와는 다르게 올리브기름이 밴 쌉쌀한 맛이 제법 훌륭했다. 공동체 밥상을 차리면서 음식을 만드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었다는 기억이 다시 환기되었다. 그 재미가 혼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활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맛있게 천천히 먹는 또 하루의 식욕 훈련을 마쳤다.

 

 왕성한 식욕은 타고난 위장이 큰 탓이라고 애꿎게 몸을 탓하기도 하고, 뚱뚱한 것이 무슨 죄냐고 어깃장을 놓으며 내 몸과 오랫동안 불화했다. 내 몸과 화해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라서 좌충우돌했다. 공동체에 살면서 내 일상을 돌아보고 친구들과 함께 했던 단식 등으로 내 몸을 인정할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을 지속하고 싶어서 오늘 밤은 굶어야지 다짐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식욕은 굶어서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먹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그 식욕을 내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야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생긴 그대로의 나의 몸을 인정하는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 질 것이다. 나의 몸과 화해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지금은 잘 먹을 수 있는 몸을 만드는 훈련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굶지 말고!

 

                                                                 <나의 변천사 4- 2021년>

 

댓글 9
  • 2021-02-22 22:43

    하필 고른 사진이 요요샘과 투샷이라니!

    • 2021-02-23 06:04

      극적인 대비! ㅎ

  • 2021-02-23 06:04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찌다!

  • 2021-02-23 09:55

    내 몸과 화해하는 과정! 감동이 있네^^

  • 2021-02-23 10:07

    멋진 글입니다.
    글을 쓰면서 기린샘의 사고가 깊어지는 걸 곁에서 느낍니다.
    공생 글쓰기 홧팅!!

  • 2021-02-23 10:46

    '그보다는 먹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그 식욕을 내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훈련이 필요했다.그래야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생긴 그대로의 나의 몸을 인정하는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 질 것이다'

    식욕뿐 아리라 나의 욕망과 진정으로 화해하는 방법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린샘과 작년 세미나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 글로 읽으니 더 좋네요^^

    감사합니다^^

  • 2021-02-23 11:25

    엇? 내가 등장하는 두 장의 사진이 찍은 각도도 같아서 너무 웃겨!!
    뭘 자꾸 기린에게 주고 있는 걸까요?ㅋㅋㅋ😁🤣
    이 글을 읽으니.. 우리 기린이.. 이제 드디어 단식을 넘어가나요?
    먹는 욕망을 관찰하면서 몸과의 화해라는 경계에 선 기린이 앞으로 어떻게 변형될까, 기대됩니다.^^

  • 2021-02-24 14:25

    2011년의 저 순간이 기억납니다ㅋ
    마침 일본어하는 월요일이었거든요~
    그후 이런 저런 수행을 함께 하며 오늘까지..
    마지막 사진 귀여우시네요..하하하

  • 2021-02-26 08:05

    뒷북댓글이지만, 너무 재밌게 읽어서~^^
    내몸과 화해한 기린샘~ 아름다우십니다!!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기린 2023.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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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칠원의 관리, 장자   들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모이 한 번 쪼고 백 걸음 걸어야 물 한 모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새장에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이야 없겠지만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澤雉十步一啄,百步一飮,不蘄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양생주」 『낭송장자』 100쪽     『사기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몽(蒙)땅 칠원(漆園)의 관리(吏)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몽 땅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칠원이 옻나무를 심어 놓은 동산이라는 것에서는 이견이 없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종이와 먹이 발명되기 전이라 대부분 죽간에 써서 기록을 남겼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액을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찍어 죽간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옻나무는 아무데서나 흔히 자라는 수종이 아닌데다, 씨앗의 발아율도 낮고 잔뿌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도 3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니 옻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옻나무 동산을 관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칠원의 관리는 중요한 직책은 아니어서 하급말단직이었을 것이라는 데도 이견은 없다.        「양생주」 3장에는 들꿩의 살이가 나온다. 꿩은 땅 위를 걷는 새로 몸이 길고 날씬하며, 발과 발가락이 발달되었으나 날개는 둥글고 짧아 멀리 날지 못한다. 먹이는 나무 열매나 풀씨 등의 식물성 먹이를 주로 섭취하는데, 작은 곤충도 먹는 잡식성이라고 한다. 먹이 대부분이 땅바닥에서 쪼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니, 사냥감으로 노출되기 쉬워 식용으로도 널리 애용된 조류이기도 하다. 옛 문헌에 의하면 늦봄 풀숲에 숨어서 피리로 장끼소리를 내면 꿩이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오르기도 하는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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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3.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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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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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3.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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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기린 2023.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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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기린 2023.04.11 |
조회 416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기린 2021.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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