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문학 다섯번째 시간 후기- 노매드랜드, 자기만의 '집'

micales
2021-11-04 12:29
297

 

 요즘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다들 백신 접종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여기 영화인문학에서는 다른 백신을 맞느라 고생이다. 코로나 백신을 맞을 때는 열이 나거나 머리가 아파서 고생이라던데, 여기 백신은 맞는 내내 힘들어서 큰일 날 뻔했다. 아마 이 백신이 더 힘들거라고 (감히)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토리노의 말>. 두말할 것도 없이 영화계의 백신이다. 지루한 영화용 '생'백신. 그 긴긴 시간 동안 하품을 하고 졸고, 깨고....그 일주일 만큼이나 길게 느껴졌었던 지난주 영화에 대한 기억이 주마등처럼(아니, 마치 여기저기 끊긴 필름처럼) 흘러간다.(어디가서 안 볼 영화(욕 아닙니다)만 골라서 보는 영화인문학에서는 적격이었던 토리노산 백신!)

 

 그래서 그랬을까. 이번주에 봤던 영화 <노매드랜드>는 너무, 정말 너어어어어무~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찌나 '흥미진진' 하던지. 아직까지도 이 영화가 그렇게나 재미있었던 이유가 <토리노의 말>과 비교해서 그 차이가 느껴졌었던 것인지, 아니면 영화자체가 나에게 감정적으로 와닿았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태에서(결국에는 둘 다인 것 같다) 후기를 써보겠다.

 

 <노매드랜드>는 한 창고에서 물건들을 밴에 담고 있는 주인공 '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펀은 그의 물건들 보이는 것들을 떠나보내고, 밴에 올라타 어딘가로 향한다. 그녀는 석고공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다가 석고공장이 경제적 이유로 패쇄되고, 남편마저도 잃었다.

 펀은 차 안에서 살며 미국을 돌아다닌다. 그래서 그럴까. 영화 내에서는 펀의 모습과 함께 미국사회의 모습이 계속해서 비춰진다. 사실 펀의 처지 자체가 미국에서의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어느 일이든 찾으려는 그녀의 태도에서, 우리는 그녀가 쫓겨 나왔다는 것을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감히 추측컨대)알 수 있다. 사회 속에서의 시스템에서 그녀는 '비자발적'으로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동시에, 그녀는 그녀에게 보내는 손길들을 거절하고 스스로 살기를 결심한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는 'house-less'이지, 'home-less'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속에서 그녀는 주변에서 물질적이고 고정된 '집'을 (이중적인, 즉 물질과 심적 의미로서 동시에)'home'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걱정의 눈초리를 받는다. 린다 메이를 만나 찾게된 노매드들이 모인 곳에서 그 곳의 리더(?) 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꺼이 달러 횡포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평생 그 힘으로 살아갑니다(...)우리 일하는 말들은 함께 모여 서로를 돌봐야 합니다"  어쩌면 그녀가 스스로 밴의 삶을 시작한 것도, 주변의 도움을 마다하는 것도 이러한 시스템에서 나오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렇게 '일하는 말'처럼 쓸모가 없어지면 떨어어져 나오게되는 구조로부터 그녀는 탈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노매드들과 헤어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펀은 노매드 집단에서 만났던 데이브를 다시 만난다. 무언가 그녀에게 감정이 있어보이는 데이브. 그러나 펀은 친구이상으로 크게 감정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그 둘은 (처음에는 삐걱거리지만)서로 점점 가까워져 가지만 어느날 데이브의 아들이 찾아오고, 곧 태어날 손자를 위해 데이브는 종종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의 집으로 간다. 얼마 뒤, 그의 집으로 간 펀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계속해서 그 안에서 무언가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가족들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밴 때문이다. 데이브에게 그의 밴이 펑크가 났다며 다시 떠나지 않을 거냐고 묻던 펀은 어느 날 밤 침대에서 자지 못하고 그녀의 밴 안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후 더 있다가도 된다는 데이브의 말을 거절한 채로 다시 밴고 함께 떠난다. 그 집에서, 환대받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를 머물지 못하게 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길 위에서 익숙한 삶도 삶이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 남아있었던 무언가가 움직인 것 아닐까.

펀은 밥과 다시 만나고 밥은 펀에게 자신이 떠나보낸 아들을 노매드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듯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매일하루를 이렇게 살아간다고, 말이다. 펀 또한 떠나보낸 남편이 있기에, 밥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표정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펀이 데이브의 집에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떠나간 남편 때문이지 않았을까. 길 위에서 살기를 택하는 노매드들에게는 각자의 상처들이 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이 길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로부터 딛고 일어서, 그 이후의, 자신만의 (정신적인)'home'을 찾으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치 밥이 자신의 아들을 다시 만나리라 생각하며 다니듯, 스왱키가 죽기 전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듯 말이다. 밥을 만난 후 그녀는 다시 공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안으 둘러본 뒤,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어쩌면 (처음에)그녀는 도망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가 살던 집을 둘러보고 문을 열고, 밴을 타고 출발하는, 영화의 시작과 겹쳐보이는 듯한 그 뒷모습에서는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처음과는 다르게,  그녀는 이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영화는 처음에 그녀가 어떻게 해서 그 집을 나왔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녀가 실업에 이은 가난으로 쫓겨나왔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펀의 길지만, 한편으로는 짧았던 이 여행이 그녀에게는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다시 차를 몰고, 같은 길을 떠난다. 이번에는, 그녀가 원해서 말이다.

댓글 4
  • 2021-11-04 13:06

    ㅎㅎㅎ토리노 백신!.!

    흠~ 디스인듯 하지만, 디스는 절대 아닌..

    재하 의견대로 펀이 데이브집에서 견딜수(머무를 수) 없었던건 죽은 남편 때문이었을까? 

    난 잘 모르겄네.....ㅎㅎ

  • 2021-11-04 14:36

    ‘영화의 시작과 겹쳐보이는 듯한 그 뒷모습’

    요즘은 뒷모습에 꽂히는~~ 꼭 확인하고 싶네요~

    보고 싶게 만드는 후기 잘 읽었어요🌿

     

  • 2021-11-05 07:23

    아직 이 글에서 재하가 무엇에 끌렸는지 정확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 우리에게 어떠한 선택이란 무엇인가? 

    - <재하만사성> 중 p.759

     

  • 2021-11-05 07:55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토리노의 말을 보지 않았는데 재하 후기가 날 토리노의 말로 끌어당기네.

     

    노매드랜드는...음...난...기대만큼은 아니었었수...난 넘나....미국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쥐~~ (그래서 또 신기하기도...왜 중국출신 젊은 여성이 이렇게도 미국적 영화를 만들지? 뭐 이런 질문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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