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영화인문학시즌1] 8주차 : 내.신.평.가.#7 <로마>

청량리
2022-06-26 09:07
286

내.신.평.가. #6 (내가 고른 이 장면을 말하다)

 

<로마>(2018)  | 알폰소 쿠아론 감독 | 얄리차 아파리시오(클레오), 마리나 데 타비라(소피아) | 134분

 

 

산부인과에 다녀온 클레오가 자신의 방에서 멍하게 밖을 바라보고 있다. 클레오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 같았다.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강렬했던 SF영화 <그래비티>(2013)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로마>(2018)는, 주인공 클레오의 서사를 따라가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공간, 시대, 환경, 느낌들 역시 놓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비어 있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그래비티>에서는 의도적으로 소리를 지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로마>에서는

마치 멕시코시티의 거리(‘로마’는 멕시코시티의 거리 이름이다)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카메라는 고정되어도 음향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지만 누구고 신경쓰지 않는 그런 허드렛일.

감독은 누군가의 삶에 배경이 되는 인물, 클레오를 따라 카메라를 움직인다.

그래서 패닝과 틸트장면의 대부분은 클레오를 중심으로 한다.

반면 다른 등장인물들은 화면 밖에 있거나 미장센 안에서만 혹은 그 안으로 이동한다.

삶의 주인공은 '나'일수밖에 없지만, 나는 배경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 산다.

 

파지사유에서도 다양한 세미나 혹은 행사가 이뤄진다. 그 중간중간 뜬금없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윗층에서 배수구로 흘려보내는 물이 파이프를 타고 흐르는 소리다. 천장이 노출되어 더 깔끔하게 들린다.

예를 들어 그런 배수구 소리가 우리의 이야기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도 있다.

 

제작 예정인 영화 <달 꼬리표 moon-tag>(2023)는 이렇게 시작한다.

 

"느닷없이 위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는 순간 우리들을 달빛 아래 바닷가로 이끌었고,

반짝이는 파도 앞에 서 있는 느낌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주방이나 화장실에서 들려온다는 사실이 생각날 때면

다시 화들짝 놀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리의 활동 속에는 언제나 물소리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다."

 

 

 

 

 

 

 

 

 

 

댓글 1
  • 2022-06-26 22:53

    # 이 한 걸음...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 이런 순간은 언제였지?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이 이후 잔잔하기만 하던 클레어의 얼굴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는 게 병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나는 예상치 못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인생사를 살다보면

    가끔은 이 두 문장이 떠오르곤 한다.

    클레어의 얼굴에 빛이 들어오는데도 그 그늘이 더욱 짙어지는 것은 아닌가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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