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영화인문학 시즌2> 2주차 : 내.신.평.가 #2 소리도 없이

수수
2022-09-25 23:04
299

 

<영화인문학 시즌 2>의 두 번째 영화는 ‘소리도 없이(홍의정 감독)’이다. 호면, 유, 노을, 태승, 원기, 참, 수수, 띠우, 청량리 이렇게 아홉 명이 모여 영화를 감상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흥미진진한 분위기는 역시 밤 12시를 넘기고 말았다.

 

 

내가 고른 장면은 환한 달빛 아래 태인과 초희가 뛰어다니다가 서로 만나서 함께 돌아가는 장면이다. (캡처가 되지 않아 글로 설명해 본다)

 

초희는 유괴된 아이이다. 태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유괴’라는 범죄에 가담한 가해자이다. 달이 밝은데 둘은 계속 뛰어다닌다. 초희는 도망가고 태인은 초희를 찾아 뛰어다닌다. 그러다 서로 마주한 둘,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 초희를 바라보는 태인의 눈빛은 도망자를 쫓는 잔인함이 아니라 걱정과 원망, 섭섭함으로 가득하다. 초희가 다치지 않았는지 불을 비춰 보고, 무사함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 멈춘다. 움직이지 않는 태인의 옷을 늘어지도록 끌고, 오히려 초희가 태인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간다. 둘 사이엔 이미 많은 것이 ‘소리도 없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분명 불편함을 준다. 맘껏 웃으며 즐기기엔 소재가 너무 무겁고, 그렇다고 계속 인상을 쓰기엔 인물들이 너무 허술하고 짠하다. 영화를 볼수록 선악의 가치가 모호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독특한 상황 설정을 한 감독의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진 영화였다.

댓글 7
  • 2022-09-26 15:47

      이 영화에서는 모든 익숙한 관계들이 흔들린다.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의 뒷수습을 해주는 (역시 이것도 범죄다) 창복과 태인은  자신의 '노동'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성실한 노동의 댓가는 유괴된 아이를 억지로 떠맡는 것으로 돌아온다.  '돌아가신 분'만 다루는 창복을 대신해 살아 있는 존재를 돌보는 몫은 '태인'에게 맡겨 진다.  영화의 후반부 태인을 찾아온 건달들도 '저게 집 맞아?' 라고 물을 정도로 태인은 집 같지 않은 집에 살고 있고,  여동생과는 가족같지 않는 가족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초희마저, 유괴된 아이들은 응당 겁에 질려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상과는 어긋나는 행동을 보인다.  아이는 침착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비록 유괴 당했지만 유괴당한 것 같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흔들리는 모든 관계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통념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들은 통념이 아닌 그들이  만나는 상황에만  충실하게 적응해 나가는 인물들이다.  언어는  중립적인 것 같지만  그 안의 모종의 통념과 그에 따른 기대를 품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통념, 집이라고 불리는 것의 통념, 유괴된 아이에 대한 통념등.  그러한 통념은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뒤엎는 상황이 오면 으레 불편해 지는 건, 통념적 언어가 만들어내는 익숙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익숙함을 집요하게 비튼다. 그리고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한 불편함 견디는 방법은  소리도 없이, 통념적 언어는 잠시 접어두고, 영화속 인물들과 함께 그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방울방울 떨어진 피는 살인의 흔적에 지나지 않지만 옆에 꽃잎 몇장만 그려주면 꽃이되는 그 순간을 말이다. 

  • 2022-09-26 22:47

    쳇바퀴 도는 극빈층의 일상과 노동이 아름다운 하늘과 풍경에 중첩된다. 중간중간 적절한 포인트에 이뤄지는 인물의 희화화가 긴장을  템포 늦추고 결말도 있어 보인다.

    태인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길들여지지않은 순수함과 (소리)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사람이 주는 행동의 섬세함( 그것이 말을 하지 않는 캐릭터상의 섬세함인지 그런 캐릭터를 재현하기 위해 부과되는 다른 지각적인 섬세함인지는 모르겠다) 다루는 표현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람이 느끼는 모두 말로 표현 할수 없다 ^^하는 영화 <거울> 대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영화가 끝난후 줄곧.

    글을 쓰기 전까지도 계속 머리속을 떠도는 생각은

    내가 영화에 불편함을 느낀 <이유>였다.

    극의 소재나 잔인한 장면이 나와서는 분명 아니다.

    나는 꽤나 그런 영화 취향이니까….

    잠정적으로 내가 다다른 <이유>는.

    그들의 삶이 본질적으로 나와 다르지 않고 ,

    아무리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가 없이 전하기 때문인거 같다.

    내가 삶의 어둠에서 맛보는 일상의 반복이나 대물림,

    계급적 한계 처럼.

    그렇다면 나는 ,

    영화가 이렇게 지독한 현실을 다룰때면 어떻든지 다른 쳇바퀴라도 옮겨 타길 바라는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굴따리를 통과하는 장면을 고른건,

    그런 공간을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의 삶으로 건너가는 통과의례처럼 느끼고 싶어하는 내 속마음이다. 그런 내 감정 의지에 의해 태인의 표정에서 나는 악해질거야 라기 보단 달라질거야를  읽고 싶다. 

  • 2022-09-27 23:14

    내씬평가를 위해서 naver 이미지를 찾아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어 올려봅니다.

    제가 고른 장면은 창복과 태인이 유괴범들을 만나 협상하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불편함을 느꼈었고 저 역시 비슷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왜 그런 불편함을 느꼈을까요?

    예상되는 반전, 일어날 것 같은 상황들의 스토리 전개가 저에게는 어떤 느낌을 주기보다는 답답함을 느끼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선택한 이유는

    창복과 태인이의 무능력한 선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답답함을 대표해서 보여줄 장면으로 이장면을 선택합니다.

  • 2022-09-28 09:27

     

    3-4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옷갈아입는 태인과 창복 뒤로 ‘성실’이라는 단어. 그들의 직업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일에 선, 악, 어떤 가치를 크게 두지 않고 ‘성실히 노동’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불편함과 의문?! 아마 어떤 언어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대한 감독의 표현? 저항? 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즈음, 태인이 초희를 데려다주고 바뀌는 표정. 많은 감정의 교차라고 생각되네요. 기대? 안도? 두려움? 배신???은 있을까요?? 이 감정들을 읽어내는 것 또한 영화에 대한 해석같기도하고….말못하는 태인이기에 더욱 언어로의 표현이 아닌 화면, 사건, 사회와 야성?, 으로 보는 이들이 직관적으로 더욱 느끼게되는듯싶어요.

    근데 세련되게느껴진 영화여서 

    재미있었습니다. 여운이 남네요. 

  • 2022-09-29 10:35

     

    내가 선택한 장면은 결말에서 초희의 손을 놓친 미친듯이 뛰어가는 태인과 마침내 가족을 만나게 초희의 모습이다. 다가오는 가족을 향해입을 살짝 다물며 가면을 쓰는 초희.. 다소곳하게 인사하며 엷은 미소를 뒤집어쓴다. 이어서 태인을 마주보며 찍는 카메라.. 미세한 이들의 표정변화가 클로즈업되어 들어온다.

    문득 초희는 어떤 식으로든 살기 위한 가면을 선택하지만 태인은 선택조차 없다는생각이 든다. 결국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옳고 그름의 문제는 나뉘겠지만 , 왜들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 2022-09-30 19:53

    마지막 장면 부모님 앞에서 태연한 초희의 모습은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영화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성적으로 잘 살피고 대처해 나갔다.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에서조차도 아이답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초희가 안쓰럽다. 이 가족은 어떤 사연이 있는걸까.  

     

    창복의 어이없는 죽음과 태식이 유괴범으로 몰려 도망가는 모습. 창복과 태식의 분별없는 선택의 결과인걸까.  두 사람의 선택은 분명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먹고 살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처럼 포장되고 있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던 영화였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참 좋았다.

    태식이 도망가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던지는 장면. 지금까지의 삶을 벗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022-10-09 11:47

    내신평가#2  <소리도 없이>

    창복의 사고로 연락이 닿지 않자, 태인은 초희를 데리고 '브로커'에게 간다.

    사실 태인 역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초희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다며 아주머니는 태인에게 요구르트 하나를 건넨다.

    말 없이 요구르트를 먹고 있는 태인을 바라보는 초희.

     

    그러나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초희는 브로커들에게 팔려 갈 것이고, 태인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걸.

     

    초희의 눈빛은 소리도 없이 태인에게 묻는다.

    "아빠한테 데려다 준다면서요?"

    원망과 배신감, 자신의 무력함과 상대에 대한 화가 교차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초코파이 말고도 많다.

    어쩌면 초희의 눈빛을 외면했던 태인과는 반대로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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