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영화인문학시즌1] 4주차 : 내.신.평.가.#3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청량리
2022-05-27 06:24
503

내.신.평.가. #3 (내가 고른 이 장면을 말하다)

 

<게임의 규칙>(1957)  

Elevator to the Gallows, Ascenseur pour l'échafaud |  프랑스 |루이 말 감독 | 88분

 

 

멈춰선 엘리베이터 아래로 밧줄에 매달린 남자가 있다. 혹시 이번 영화는 미션 임파서블? 그러나 이 남자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 여자와의 사랑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 사랑으로 감추고 있는 남자의 욕망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고 완벽한 알리바이까지 만들었으나 뒤늦게 남자는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고 다시 건물로 되돌아 뛰어간다. 그러나 감독은 남자를 엘리베이터에 가둬버리고 그가 도망갔다고 오해한 여자는 거리를 헤매게 한다.

 

이번에 꼽은 내신평가 장면은 삭제될 뻔 했던, 아니 삭제될 뻔 한 장면을 의도적으로 넣은, 그러나 뻔하지 않은 멋진 장면이다. 카메라는 아래에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고, 그때 야간순찰원의 실수로 우연히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에 매달린 남자의 발이 카메라를 향해 내러온다.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시퀀스. 그리고 암전.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반전없이 남자는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아까처럼 꽁초를 태우며 시간을 보낸다. 아니, 도대체 이 장면은 왜 넣은 거야?

 

사실 이 장면은 삭제 되어도 스토리 전개에 전혀 문제가 없다. 어쩌면 이 영화 전체는 그렇게 삭제되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장면들로 이뤄져 있다. 스토리 전개로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러한 다소 실험적인(?), 생뚱맞은(?), 무의미한(?) 장면들과 전개로 동시대 누벨바그 감독들 사이에 루이 말 감독의 영화들이 끼워져 있다.

 

그러나 루이 말 감독은 누벨바그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누벨바그라는 단어는 저널리스트인 프랑수와 지루가 만든거죠.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그룹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죠. 저는 평론을 쓰는 것보다는 영화를 찍는 게 차라리 쉬워요. 저는 그들이 평론을 쓰기 전부터 영화적 문법을 배웠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들과 가깝고 친하게 지냈지만 출발선이 달랐어요." 정성일 감독이 오히려 누벨바그를 계승하는 셈이다. 게다가 68혁명 이후, 누벨바그는 여러갈래로 흩어진다.

보다 강하게 정치색을 띤 고다르, 정반대로 아예 정치적 입장을 버린 트뤼포, 실험적 다큐멘터리 쪽으로 나아간 바르다, 인간의 모순적인 욕망과 관계를 표현한 루이 말 등 애초부터 누벨바그라는 동시대그룹으로 묶기 어려웠던 다양성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누벨바그를 점프컷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무엇이 될지 알고 있는 창작자는 신 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창작자는 실험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도 없다. 다만 신에게 없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연성이다. 우연성은 인과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다. 때문에 신의 양태인 우리에게 우연은 필연적인 산물이다. 따라서 실험과 우연성은 모든 창작에 있어서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니 창작자들에게 경계해야 할 것은 여러 번의 우연적 경험을 하나의 규칙 혹은 경향으로 인식하려는 태도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시대적 사조가 아니라 누벨바그의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한다. (청량리)

 

 

 

댓글 4
  • 2022-05-27 16:37

    세 번째 영화는 루이 말 감독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내가 고른 이  장면>

    만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밤새 줄리앙을 찾아 다니는 잔 모로의 얼굴과

    그 얼굴 위로 음악처럼 떠다니는 윈도우, 소멸을 반복하는 불빛들.

    잔 모로의 발걸음과 그 녀 사이를 오고 가는 자동차들의 교차이미지는

    그녀가 직면한 죽음충동과 삶충동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즉흥연주.

    예정된 불길함처럼 몇 번인가 멀리서 번개 소리가 들렸다 사라진다.

    결국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녀의 우아하고 잃을 것 없어 보이는 담담함에 빗줄기가 내려 앉는다.

     

    영화의 원작에서는 잔 모로가 연기 한 플로랑스라는 역할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 안쪽에서도 줄리앙과 플로랑스는 실제로 만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그녀가 줄리앙과 찍었다는 추억의 사진을 보는 장면,

    나는 순간이지만 그녀의 공허한 눈빛에서 줄리앙의 실재를 처음 보았다고 의심했다.

    매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욕망의 여러 얼굴이 있다.

    욕망은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배회한다.

    그녀는 유령일까?

  • 2022-05-27 19:28

    ?src=http%3A%2F%2Fimage.nmv.naver.net%2Fblogucc28%2F2013%2F10%2F29%2F1994%2F005efe2a4980264929e38ccfaecb09c91827_onlinestudio_270P_01_16x9_logo.jpg&type=sc960_832

    거리를 헤메는 플로랑스와 그 옆서 지나가는 사람들. 

    거리에 서 있던 남자들은 그녀를 곁눈질하고, 가게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있다. 

    그러나 마치 아무말 없이 지나가버리는 카메라의 시선처럼, 줄리앙을 찾고 있는 플로랑스에게는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말그대로 '지나가는 것'의 일부일 뿐이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아닌, 옆에서 그녀의 걸어가는 모습을 찍을 때, 영화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닌, 관객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구도가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렇게 화면이 '흘러가는' 동안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의 화면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게된다(그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동시에 플로랑스에게도 줄리앙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뵈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플로랑스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닌, 오히려 같은 의미를 띠며 겹치게 되는 것 아닐까? 

     

  • 2022-05-31 09:11

    흑백영화를 보는 즐거움~
    빛을 이용해 인물과 배경만으로 상황을 충분히 보여준다

    줄리앙은 상황파악을 전혀 못 한채 모든 상황 한 복판에 서 있는 셈ㅋ

  • 2022-06-01 11:31

    기억에서 많이 지워진 영화에 대해 생각한다.

     

    남녀 주인공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영화라니. 감독이 너무한 거 아닌가. 서로의 사랑을 전화로 속삭이지만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여자는 거리를 떠돈다.
    밤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린다. 여자는 배신감과 그리움에 휩싸여 비를 맞으며 방황하고, 남자는 다음 날 신문 1면에 살인자로 대서특필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행복한 장면은 마지막 사진 속 뿐이다. 여자는 남자와 찍은 사진을 보며 둘의 사랑을 기억한다. 남자가 감옥에 가도, 만나지 못해도, 자신들의 사랑은 영원하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

     

    가끔, 오랜 시간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누군가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기며 살아야 하나.
    봉인된 행복들, 봉인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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