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시즌3 아니에르노 진정한 장소 발제

밭향
2022-10-30 01:17
151

2022.10.30. 단짠단짠글쓰기 시즌3 아니 에르노 《진정한 장소》 발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결단

밭향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 《부끄러움》, 《세월》을 읽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훔쳐보기만 했다. 단짠잔짠 글쓰기 시즌3 아니 에르노의 마지막 작품 《진정한 장소》를 읽으면서 초조함이 다소 해소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이야기가 다시 쓰고 싶어지면서 ‘겸목쌤한테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실 이것도 내 발제 차례가 아니었다면 마지막까지 성남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르지에 머물렀다가 사라지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의 첫 번째 고민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 대부분의 글이 탄생한 세르지는 금방 그 분위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 올해 6월 프랑스 알자스 지방을 여행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500년 된 역사를 가진 3층 현지 가정집에서 민박하며 지낸 기억이 세르지 아니 에르노의 집을 쉽게 연상하게 했다. 획일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사랑하고 싶은 장소여야 한다. ‘기억 속으로의 하강과 글 속으로의 침수를 허락’한 곳은 아파트가 아닌 세르지 같은 곳이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노벨 문학상 수상이 어려운 이유는 아파트가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아파트 삶의 이야기는 노벨 문학상감인가? 아파트는 이래저래 문제가 있다. 진정한 장소가 될 곳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정착이 목표가 아니라 나의 세르지를 찾아 나서기 위한 희망이 생겼다. 이제는 학군에서도 자유롭고 투기목적으로는 무지하니까 더욱 자유롭다. 문탁 같은 학습공동체 주변, 남한산성 초등학교 옆 순교성지 근처, 북한산 자락의 연립주택, 서촌 통인 시장 옆 한옥... 단짠 3시즌이 끝나면 엄청 거리를 배회할 예정이다. 진정한 장소를 찾아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거룩한 오지라퍼가 되기로 작정한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왔지만 현실은 ‘너나 잘해’라고 나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며 위축된 존재이다. 그럼에도 손주 둘을 보면서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면서도 문탁 주변을 어스렁거리고 쓰려고 하는 이유는 꺼지지 않는 거룩한 오지라퍼의 천성이다. ‘지식의 획득은 항상 말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어떤 취향, 사회적 질서의 차별과 늘 함께해요(30p)’ 말하고 행동하고 결국 함께 잘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말은 하고 나면 제대로 해야 할 말이 떠오르고 행동은 하고 나면 꼭 후회만 남는다. 제대로 말하려고 하면 눈물이 우선한다. 할 말은 못하고 눈만 퉁퉁 붓는다. 결국, 나는 아직 한참 수준 미달이라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서 사회의 관계 속에서 더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나 그 체험들이 당신의 것에서나 머무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 돼요.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죠. 기꺼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다르게 살게 하며, 또한 행복하게 해주죠 문학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135p)’ 함께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아져가는 거룩한 오지라퍼를 자처한다.

 

어떤 엄마를 살아야 하나?

 

아니 에르노는 ‘집을 잃어봐야, 집이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어서 더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죠(17p)’라고 공간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딱 엄마의 이미지다. 엄마의 의미는 엄마의 부재를 느껴야 엄마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위로하며 엄마 신분을 겨우 버텨나간다. 멋진 엄마가 되리라 꿈을 꾼 적은 없지만 이렇게 형편없는 친정 엄마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엄마를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죠. 전혀 말씀이 없으셨어요. 저도 어머니께 묻지 않았고요. 어머니는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 가깝게, 보복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태도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저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태도요 (51p) 말하지 않는 것은 말이 비극을 유발하기 때문이예요. 비밀은 평온의 형태예요. 좋은 삶의 방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발설하는 것 역시 많은 경우에 매우 파괴적이기도 하죠(54p)’ 내가 요즘 선택한 엄마의 정체성이었다. 아니 에르노가 다시 말해주니 이제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생긴다. 딸들과 비밀을 가지면서 평온을 유지하는 것. 어른의 모습을 흉내낸다. 진정한 어른은 입은 닫고 지갑은 연다는데 나는 입은 닫고만 실천할밖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 할수록 글을 써야 하는 《진정한 장소》에 도달한다.

 

존재하는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이런 빠른 변화 때문에 사라지게 될 것들, 그 얼굴들, 그 순간들을 기록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사실상 무엇인가에 대해 쓰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20p)’ 존재하는 것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온 세월을 이제는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 ‘몇 년도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티브이 방송의 기억이 아닌, 역사와 구별되지 않는 학습된 기억이 아닌, 완전히 느낄 수 있는 기억이요(32p)’ 결국 존재하는 것을 완전히 실감하며 체감하기 위해선 글을 써야만 한다.

 

요즘 할머니 육아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실감나는 미운 세 살과 활동량이 부쩍 많아진 두 살과 싸우지 않고 하루를 보내려면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새로운 구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니 에르노가 할머니 육아에 답을 준다. ‘글쓰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행위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고해가 아니다. 고해와는 전혀 상관없다. 고해도 아니고 회개도 아닌, 구상이며 구성이다(113p)’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특별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에게 소리 질러야 할 상태가 되면 나만의 《진정한 장소》를 찾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상태이다. 의식의 상태, 이전처럼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특별한 상태(116p)’

댓글 1
  • 2022-10-30 01:40

    올립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61
N [평비글] 3차시 후기 (3)
먼불빛 | 2024.03.29 | 조회 29
먼불빛 2024.03.29 29
160
[평비글] 3차시 후기 (4)
이든 | 2024.03.27 | 조회 56
이든 2024.03.27 56
159
[평비글]4차시 3월 31일 <나는 왜 쓰는가> 공지
겸목 | 2024.03.25 | 조회 55
겸목 2024.03.25 55
158
[평비글] 3차시 3월 24일 공지
겸목 | 2024.03.20 | 조회 65
겸목 2024.03.20 65
157
[평비글] 2차시 후기 (3)
유유 | 2024.03.20 | 조회 68
유유 2024.03.20 68
156
<평비글> 2차시 후기(3월17일) (5)
꿈틀이 | 2024.03.19 | 조회 82
꿈틀이 2024.03.19 82
155
[평비글] 2차시 3월 17일 <오웰의 장미> 후반부 공지 (7)
겸목 | 2024.03.13 | 조회 124
겸목 2024.03.13 124
154
[2024년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시즌1]오웰의장미1_단풍후기 (5)
단풍 | 2024.03.11 | 조회 89
단풍 2024.03.11 89
153
[평비글] 시즌1 첫시간(3/10) 후기 (4)
수영 | 2024.03.11 | 조회 105
수영 2024.03.11 105
152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시즌1 3월 10일(일) 개강 공지 (1)
겸목 | 2024.02.28 | 조회 161
겸목 2024.02.28 161
151
9차시 11월 11~12일 워크숍 공지 (13)
겸목 | 2023.11.06 | 조회 257
겸목 2023.11.06 257
150
8차시 11월 5일 세미나 공지 (3)
겸목 | 2023.10.30 | 조회 276
겸목 2023.10.30 276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