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발제

밭향
2022-10-08 21:18
263

단짠단짠 시즌3/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 발제

  1. 10. 09

밭향

〈부끄러움〉은 la honte! 가 원제목이다. 아니 에르노는 무엇을 ‘la honte, 얼라리꼴라리, 망신거리’라고 이야기하는가를 질문하며 처음부터 읽어 내려갔다. 작품평론가 신수정은 작품소개에서 아니 에르노가 글쓰기의 절대조건으로 ‘부끄러움’을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도 발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확인이야말로 부끄러움에 관한 최선의 발화라는 사실을. 부끄러움은 우리에게 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글쓰기가 끝까지 추적해야 할 최후의 진실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라고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을 해석한다.

 

아니 에르노는 ‘부끄러움’은 ‘일기에서조차 이렇게 쓰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마치 징벌을 야기하는 금지된 행위처럼, 어떤 글이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금기.’이다. ‘이 장면은 여전히 언어도 영상도 없는 듯한 이미지로 가슴속에 간직되기 때문에, 이를 묘사하려고 사용한 단어들이 낯설고 무례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남들을 위한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이렇게 ‘부끄러움’은 아니 에르노에게 생명력을 부여한다. ‘수년 전부터 고정된 이 장면, 나는 이것을 꿈틀거리게 만들어서 이 장면으로부터 신성한 징후를 박탈하고자 했던 것이다.’ 뇌리에 박혀 여전히 고통스러운 ‘부끄러움’의 씨를 말려 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떠오른 “불행을 벌다”라는 표현만이 그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추상적 단어들은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건 천로역정의 과정이다.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고 ‘불행을 버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나 주변 세계를 생각할 때 사용했던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정상적인 것과 용납될 수 없는 것,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제한되었던 단어들을 찾아내면 다시 소녀를, 잃어버렸던 시간을 그리고 오늘의 나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면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했다.’ 말한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조자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6월 일요일이 ‘부끄러움’의 인식으로 그날이 되면서 아니 에르노는 글쓰기를 굳혀간다.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 ‘부끄러움’이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글감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끄러움’은 차원이 달랐다. ‘몇몇 작가들이 “부끄러움에 목이 멘다”라고 신문에 썼다. 그들에게 부끄러움이란 하루아침에 새겼다가 그다음 날이면 떨쳐버릴 수 있고 어떤 상황에는 적용되지만 다른 상황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개념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부끄러움’이다. 노벨문학상을 만들어 낸 세계적인 ‘부끄러움’이다. ‘어린아이였던 내 존재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 회상도 하나의 체험이다.” 나의 정체성과 내 존재의 항구성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 오르가슴을 나는 그로부터 이 년 뒤에나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은 가장 들어내고 싶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서 자유로운 날개를 달게 된다.

 

우리 아버지는 대대로 이어 내려온 교육자 가문의 대를 박차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업의 길로 접어든다. 망하고 또 망하고 술로 달래고 엄마와 싸우고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아니 에르노처럼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그날이 아니라 그날들의 연속이었다. 결코 드러내지 않았던 ‘부끄러움’을 말하라면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은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나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잊혀지고 부끄럽지 않은 과거만을 가진 나름 괜찮은 사람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자질은 매사에 긍정적인 최고의 인성을 가진 성품으로 승화된다. 겸손하게 보이려고 조금씩 드러내는 아픈 과거는 동정을 요구하는 목적이었다. 가장 치욕스러운 부끄러움은 남편도, 자녀들에게도 여전히 비밀로 남겨두고 있다. 굳이 드러낼 마음이 없다.

 

글 쓰는 고역을 애써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주변에는 없다. 더구나 밥벌이도 안되는 글쓰기 노역은. 당연히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거기에 ‘불행을 버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드러내는 작가를 읽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왜 글쓰기 수업을 매번 서성거리는가? 나는 왜 굳이 쓰고 싶어하는가? 쓰고 싶다는 것은 사실인가? 유행에 휩쓸림인가?

 

애써 쓰려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다. 다음 숨이 느껴지도록. 나이 값하려는 것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노후대책, 잘 죽기 위한, 그래서 남은 삶을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댓글 2
  • 2022-10-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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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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