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하마
2022-07-29 08:04
227

여행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꽤 많은 여행을 했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건강상의 이유로 거의 다니지 못했기에 여행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하자니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 적지 않는 시간을 들여 생각을 끌어내어야 했다.

 젊은 날을 돌아보면 혼자 여행을 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다녔던 것 같다. 혼자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해진 것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였다.  나이도 들었고 결혼도 해 아이도 있다 보니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었던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슴이 답답해 오면 여지없이 짐을 꾸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과 다양한 스트레스들로 인해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선 길이였기에 국내보다는 국외로 나갔던 것 같다. 한국말이 들리는 곳은 아무리 좋은 풍경이 있어도 싫었다.

 오롯이 아들과 나만이 존재하는 곳. 하지만 안전해야 하는 곳. 다행으로 일본에 있는 이모 덕분에 언제라도 가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가면 몇 달씩 뭉기적 거리며 아이랑 집 주변을 배회하며 소일거리를 찾았다. 그나마 숨통을 틔우고 버틸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생활도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서 누릴 수 없게 되었고 일본에서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가 망하게 되면서 빚을 지게 되어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는 더욱 그런 호사는 누리기 어려워졌다. 

 직장을 매일 출근하다 보니 필요한 자격들이 생겨나 그러한 자격들을 갖추려니 일을 하며 틈틈이 공부도 해야 해 정신이 없이 지냈고 그러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빈도수는 줄었다. 꽤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내다 보니 어느새 다시 찾아오는 체기 같은 답답함으로 인해 어디라도 떠나야 했다. 특히 꽃 피는 5월이면 미칠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차를 빌려 혼자 한적한 교외로 빠져나가 숙소를 잡고 진탕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좀 가라앉는 체기로 한 숨을 돌리고 여행 간 근처의 친구들 찾아 밥 한 끼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 몇 달은 혹은 한 해는 버틸 수 있었다.

 체기가 올라오면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다 가는 도중에 숙소를 잡고 눈에 띄는 마트에서 술을 사고 방 안에서 TV를 틀어 놓고 꼼짝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시다가 술이 떨어져 잠이 들면 하루가 가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 있다 보면 체기는 점차 내려가고 슬슬 외로움이 올라온다. 보고 싶은 친구가 생각이 나면 연락하고 만나러 가 밥 한 끼 먹으며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위로받게 된다. 그럼 다시 살아갈 힘이 올라오고 현실로 돌아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꽤 여러 해를 그렇게 잠시 잠깐의 이탈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며 살아내다가 동료라는 것이 생기면서 여행의 패턴도 변화를 가져왔다. 체기는 여전히 올라왔고 그럴 때가 되면 희한하게 옆에 동료도 비슷한 답답함을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떠나자라고 결론이 나면 그냥 일정이 잡히고 여행지가 결정이 된다.

 그렇게 국내 여기저기를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러다 직장 내 등산동아리가 생기면서 산행을 핑계로 정기적인 여행을 꾸준하게 디니며 한동안 체기는 느끼지 못했고 참 신나는 경험이었다. 며칠간을 여행에서 동료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며 타인에 대한 이해도 생겼다.

 점차적으로 국내 여행은 일상으로 와 있었고 좀 더 멀리 가보고 싶은 생각에 동료들과 국외 여행도 계획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탈리아 남부와 오키나와로 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어와 일본어가 가능한 동료 덕분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그 나라의 매력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오키나와는 팀에 일본어 전공자가 있어 같이 일하는 팀원과 전문위원분들 해서 6명이 떠나게 되었고 인원수가 있다 보니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어려워 승합 차량을 렌트 하게 되었다. 특히 30년 이상 직장을 다니시고 정년퇴직하신 후 프로보노 활동으로 우리 팀에 합류하신 전문위원님들을 배려한 것도 있었다.

 운전석이 우리나라와 다르게 오른쪽에 있다 보니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고 방향 지시등을 켜야 하는데 와이퍼를 켜기도 하며 작은 소란은 있었지만 다들 차분히 대응해 주신 덕분으로 일주일 간의 여행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항상 고급스러운  패키지여행에 익숙하신 분들이 지역의 작은 공원 노상에서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하도 대기 줄이 길어 근처 카페에서 계획에도 없는 차를 마시기도 하고 서로 의견을 쏟아내며 자유여행의 모든 것을 체험하시는 동안 정말 즐거워하시는 모습에서 행복감이 전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우리 팀은 참 잘 뭉쳤다. 극한 여행을 함께 한 경험이 서로 간의 이해도를 높인 것 같다. 

 나에게도 변화는 찾아왔다.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변화의 시작 점이 그 무렵 인 것 같다. 맘이 달라지는... 음... 관점이 달라지고 있었다. 스스로를 못살게 굴며 체기를 핑계로 맥락 없이 떠돌아다니며 땅에서  발이 4~50센티는 떠 있었던 내가 점차 땅 가까이 발을 내려놓으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몸만이 아니었다. 마음도 성장해야 하는 것인데  몸은 시간의 흐름에 맞게 성장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마음은 여전히 아이의 상태를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숫자에 의해 어른이 되면 당연히 부여되는 책임감에 그냥 몸을 맡겨버린 상태에서는 제대로 살 간다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오춘기를 길게 겪어 오던 중에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어른이 되기로 한 것이다.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사회의 속성이라 각자가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하게 이행해야만 세상은 좀 더 여유로워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선택에 대한 후회로 흘려버린 시간들이 처음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선택을 한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에 쏟아버린 시간, 상대를 비난하며 보내버린 무수한 시간들에 대한 미련함에 한동안 우울감이 찾아와 몸까지 아파 버렸다. 마음에 변화로 인해 몸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많이 힘들었다.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아 더 힘들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선택지에서 방황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흙탕물이 점차 가라앉는 것 처럼 주변의 일상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진짜 길고 긴 여행을 하고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는 느낌이다. 기존에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려 더 헤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갈 곳을 찾았다. 그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댓글 6
  • 2022-07-29 14:27

    예~초고 일단 완성! 오늘은 디지털 일찍 ON! 7부 프린트 해갑니다. 

  • 2022-07-29 17:38

    올려요

  • 2022-07-29 22:22

    프린트 부탁합니다.

    • 2022-07-29 23:27

      네~~

  • 2022-07-29 23:42

    늦어 죄송합니다. 

  • 2022-07-30 05:05

    프린트 제가 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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