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로 되돌아가다>2회 후기

겸목
2022-04-12 12:24
181

작년에 단짠글쓰기를 하며 내게 남은 아쉬움은 '나는 글을 못썼다'는 것이다. 각자의 글쓰기에 대해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들에 대해 고심해보고, 힘들게 고쳐쓰는 과정을 보며, '나도 저렇게 써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올해 단짠글쓰기는 회원모집에 실패했다. 4명이 신청했고, 소수정예글쓰기를 해보자고 결의를 모았는데, 그러다보니 나도 격주로 돌아가며 발제를 하게 되었다. 소원이 너무 빨리 이루어졌다.(다음에는 로또당첨 소원을 빌어봐야겠다!!)

 

나 포함 다섯 사람이 하는 세미나의 장점은 무엇보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히 주어진다. 그러다보면 서로의 개인사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도 많아진다. 의도하지 않게 우리는 '친해지고' 있다. 이 '친밀함'이 걱정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는 친소관계와 그에 따른 거리감이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만나 2시간 동안 같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남다른 관계인데, 서로에 대한 정보도 많아지면서 '엄청' 가까운 사이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우린 얼마나 친한 사이일까? 빠른 속도로 친해지고 있고, 어른들에게는 이 속도감이 두렵기도 하다. 청년이었으면 엄청 기뻐했을 텐데.

 

이렇게 우리를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게 한 데는 이번주에 마친 디디에 에레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라는 책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적나라하게 자신이 느낀 수치심에 대해서 진지하고 성실하게 토로하는 책을 읽으니 우리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명령을 받는 느낌이다. 물론 이건 디디에 에리봉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그는 멋진 작가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다. 그도 글을 잘 쓴다. 그러나 그의 글은 '잘 쓴다'는 표현을 넘어서는 지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건 글이 아니라 태도일 것이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노동자계급출신 성소수자'라는 조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는지, 자기 해석에 이르기까지 그가 거쳐간 과정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성공신화로 축약해버릴 수 없는 지점을 보여준다.  성소수자 지식인이라는 그의 입지는 그랑제콜 출신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의 입시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엘리트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작년에 양생프로젝트에서 <성의 역사> 1~4권을 함께 공부했던 먼불빛, 코투, 겸목은 이제야 푸코의 자기배려가 무엇인지 이해하겠어라고 입을 모았다. 자기변형과 그것의 수행으로서의 글쓰기를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이론이 아닌 실전편으로 보여준다. 작년에 푸코를 공부하기 전에 입문서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나누었다. 앞으로 푸코를 공부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디디에 에리봉의 <푸코평전>과 함께 그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도 함께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가지고서 우리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라는 장 주네의 말을 발제를 한 나와 진우샘 모두 발제지에 옮겨왔다. 디디에 에리봉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사회학적 분석과 함께 기술함으로써 개인적이라는 것도 얼마나 사회적인 주조를 거쳐서 나오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간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에 대해서 투덜거렸던 것 같다. 왜 나를 차별하는가? 모욕하는가? 수모를 주는가? 디디에 에리봉은 그것이 왜 수치인지 질문한다. 성소수자는 왜 수치스러워야 하는가?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를 왜 하는가? 우리가 질문하지 않는 전제를 질문함으로써 그는 자기 해석의 기반을 마련하고, 그것이 자긍심으로 전환되는 주체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세미나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한 이야기도, 그간 왜 해석하는 인간이 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우리는 왜 해석하지 않고, 또는 질문하지 않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에 다녔을까?

 

나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왜 글을 못쓰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런 과정을 스킵해버렸기 때문에, 글을 쓸 때마다 막막하고, 뭘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랭스로 되돌아오다>를 읽고 감동도 받고 부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따가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과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오다>, 두 권 모두 묵직하다. 가볍게 읽을 줄 알았는데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글쓰기에 대한 두 사람이 가치가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았지만.....버겁기도 했다. 다음책은 김혼비의 <다정소감>이다. <다정소감>은 좀 가볍게 글쓰기에 대해서 알려줬으면 좋겠다. 농담을 가장한 진심을 킥킥거리며 읽어보고 싶다. 다음주 발제는 코투, 먼불빛, 묘선주님이시다. 다음주에 진우샘과 나는 토요일에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다음주에는 <다정소감> 다 읽어요. 그리고 그 다음주에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1번에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어버이날을 맞아 한 주 휴일도 있어요!! 모두들 다음주 일욜에 봬요. 이날 우리 점심 같이 먹기로 한 것도 기억해주세요~ 다음주까지 벚꽃이 남아 있을라나?

 

댓글 2
  • 2022-04-12 13:44

    저는 겸목샘이 이번 시즌에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과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선정한 탁월한 안목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ㅎㅎ

    '이렇게 써야한다'라는 한 문장의 가르침도 없는데 글쓰는 이유와 방법 그리고 태도에 대해서 너무나 명확하게 알려주었던 책이였습니다. 

    다음책 김혼비 작가의 글은 유머와 위트속에 작은 바느들이 있는 글이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다른 샘들은 어떻게 평가? 하실지 궁금해집니다.   

  • 2022-04-12 16:03

    저도요... ㅎ 겸목샘이 리드를 잘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현상에 대한 자기해석이 있어야, 글을 쓸수 있다'는 말에 100% 공감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뭘써야 할지 모른다고 했는데, 그것은 글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해석할 안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제 글이 일기수준에 머물러 있을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쓰기를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한 것이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저는 지난 세미나에서,  특히,  민중 계급이 왜 자기계급에 반하는 극우에게 표를 던질까... 이 부분이 정말 궁금했거든요. <랭스> 3부를 보니까, 프랑스도 우리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고, 같은  고민이 있는 거 같아서 새삼 놀랬어요. 그리고  그 이유도 프랑스나 우리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집에 돌아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 김누리>을 보고, 우리나라 불평등지수가 세계 1위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예를 들어, 부동산의 경우, 상위 1%가 갖고 있는 부동산이 면적으로 떠지면 전체의 55%라고 해요. 또 10%가  97.6%를 가지고있다는 글을 읽고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이건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프랑스혁명기의 불평등 수준을 능가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의  민주당이나 국힘당이나 모두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사실, 민주당을 진보당이라 부르는 것도 잘못이라고 하네요. 

    제게는 글쓰기보다 우선 제 인식을 넓히는 일이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함께하는 샘들도 넘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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