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랭스로 되돌아 가다 1-2부

코투
2022-04-05 20:57
219

단짠 글쓰기/ <랭스로 되돌아가다> 1~2부/ 후기/2022.4.5. 코투

 

노동계급의 삶,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마구 말하게 하는 책.

 

지난 일요일 아침, 문탁으로 가는 길엔 천변의 물소리도 힘찼고, 연초록 새잎이 무척이나 싱그러웠다. 진우 님은 다른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는데... 혹시 봄놀이 가신 건 아닌지? 혼자 의심해보았다ㅎ. 다른 분들은 모두 참석. ^^

 

디디에 에리봉의 책 <랭스로 되돌아가다> 1,2부를 읽고 느낀 우리들의 공통점은, ‘쉽게 읽혔다. 그러나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니다’ 였다. ‘개인의 4대에 걸친 가족사를 사회학적 이론과 연결지어 계급이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건 우리가 따라하긴 어렵겠다’는 것이 그 첫째고, ‘작가가 자신의 가족사를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내다니, 특히 저자의 외할머니 이야기, 자신의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독일 군인을 따라 독일로 간 것이랄지, 그뒤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서는 부역자로 광장에서 머리카락을 잘리는 벌을 받았다는 것 등의 내용은 아주 부끄럽고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였을텐데... 이런 이야기를 할 용기가 우리에게도 있을까?’가 두 번째 이유였다. 겸목 샘 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자기기술방식의 글쓰기는 198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유행을 했는데, 그 첫 시도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였다고 한다. 또한 자기기술지는 인류학과 사회학에선 상당히 오래된 전통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아직 이런 수준의 사회학책은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묘선주 님의 메모에서 충격받은 곳은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이들의 꿈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이란 내용이었다. 겸목 샘과 내가 주로 질문했고, 묘선주 님과 먼불빛 님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우리사회 최하위계층의 사람들이다. 정부에서는 그들의 재기를 바라며 일정 기간 주거와 생활비 의료비 등을 100% 지급해주는데, 그 집안 아이들의 꿈이 자기 부모처럼 100% 정부 지원을 받는 삶이라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아이들이 그런 환경을 벗어나긴 정말 어렵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그들은 자기의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니 아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가난의 대물림과 복지정책의 맹점에 대해 논의했다. 설마 정부는 이같은 복지정책만으로 우리사회 차별과 가난의 대물림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단순한 전시행정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먼불빛 님의 글을 사회학 레포트 같았다. 2020년 미셸 푸코의 ‘지식/권력’ 혹은 ‘자기기술로서의 주체화’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있어서인지, 글이 간결하고, 힘있고, 세련돼 보였다. ‘서로 다른 세계 내부의 지배담론은 무엇이 되고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상상하고 규정하도록 규정한다. 그리하여 그것으로부터 재생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온갖 법칙과 메커니즘이 그를 규정해놓은 것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먼불빛 님 글에서 내가 밑줄 그은 부분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아닐까 싶다.

한편, 먼불빛 님은 디디에 에리봉이 푸주한이 된 형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오래 머물렀다. 먼불빛 님 역시, 자신과는 다른 계급으로 건너간 오빠가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계급적 탈주를 꿈꾸었다. 그 과정에서 오빠와 아버지 사이, 또 오빠와 나, 아버지와 나 사이에 많은 갈등과 상처가 있었다. 먼불빛 님은 가족사를 글로 풀어내며 가족으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계급을 무엇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 그것부터 불명확하다고, 그래서 글쓰기가 쉽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글쓰기에서 디디에 에리봉처럼 어디서도 얘기해보지 않은 나의 내밀한 가족이야기를 하나 풀었다. 그것은 한편으론 ‘남들은 타인의 삶에 그닥 관심없어’라는 충고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랭스> 301쪽에 나온 니체의 자유에 대한 표현(‘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는 무엇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직업을 노출시키고, 가난한 집안에서 유독 싸움이 많은 이유, 그리고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나의 17살의 욕망을 표현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비록 지금 내 삶의 모습이 내 어릴 때와 청소년기의 그때와는 상당히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형성된 나의 계급적 아비투스는 여전히 남아있어, 소위 고급진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옷을 입고 점잖빼며 와인잔을 천천히 기울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심히 어색하고 불편한 반면, 시장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지지고볶는 사람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심증적으로 동조하고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발표를 마치자, 겸목 샘도 자신의 이복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답례로 꺼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들의 은밀한 가족사를 하나둘 꺼내놓았다. 만약, 시간이 밤이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계속되었을 것이다. <랭스로 돌아가다>는 그렇게 여러 장면에서 우리의 과거를 불러내고 있었다. (끝)

댓글 3
  • 2022-04-05 21:50

    후기 쓰기 싫다 하셨는데 너무 자세히 써주셔서 놀랐어요....이것도 디디에 에리봉의 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와 화해하기 위해, 나를 발명하는 길이라 여기며 가볼랍니다~뒷부분 궁금해지네요!

  • 2022-04-06 06:06

    "그러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계급을 무엇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 그것부터 불명확하다.." ==>디디에 에리봉도 성소수자로서, 노동계급 출신으로서, 혹은 그 이후 지식인, 부르조아 계급으로서 분열된 아비투스를 가지고 있었듯, 저 역시도 다양하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 책은 뭔가 재발견하면서, 재발명하는 여정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코투샘은 독특한 가족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왠지, 멜랑콜리는 없을 것 같은? 그 '밝음과 긍정'이 저와 대비되서, 좋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차이 때문에 더 재미있어 지는것 같아요~.

  • 2022-04-06 15:09

      출근길 문득 차 창밖을 보다 꽃이 피어있는걸 보고 ‘벌써’라고 느끼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코투샘! 저도 봄나들이 가고 절기도 느끼며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ㅎㅎ 후기를 보니 지난 시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1,2부를 읽으며, 저의 할머니 고모들의 6.25 전쟁때 피난가면서 있었던 형제들 간의 이야기, 영화 기생충, 서울로 올라와 사투리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했던 저의 마음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추억 등이 책을 읽는 내내 제 오래된 기억들을 불러냈습니다. 저도 뒷부분이 점점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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