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 시즌3 『얼어붙은 여자』 2부 후기

먼불빛
2022-09-28 07:11
254

지난 시간에 이어 『얼어붙은 여자』 후반부는 어른 여자로서의 ‘나’가 지난한 역할 수련의 과정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욕망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버린 ‘얼어붙은 여자’가 되어 간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현재 우리 모두가 겪어왔거나 겪어가고 있는 과정들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때론 공감하면서, 때로는 시대적 격차를 다소 느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중에 가장 젊은 연령대인 유상샘의 글에서는 남편이 요리도 잘하고, 가사일을 많이 도와 주어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있지만 왜 자신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남편의 배려’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지, 결국 ‘미안함과 고마움’ 속에 들어있는 자신 안의 모순들-골칫덩이(이 책 182p)가 되고 싶지 않은–에 대해 솔직히 드러낸 글이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유상샘 글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 반면 저는 남녀의 역할차에 대해 끊임없이 내가 옳으니, 니가 나쁘니 같은 대책없는 이분법 논쟁에 빠져 보냈던 지난한 과거를 다시 회상하게 되어 책을 읽는 내내 아주 불편하였습니다. ‘피했다’고 겨우 생각했는데, 다시 마주치게 된 것은....음...제게 글쓰기가 결국 뭐니?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결과적으로 보자면..그렇다고 해둘랍니다.

 

요즘은 남녀 성역할에서 다양한 롤모델을 주변에서 제법 볼 수 있다는 것, 묘선주샘이 사례로 든(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남편이 요리와 가사일을 전담하게 되었다는... 어찌보면 모든 가정사를 다 들여다 보면 역할차란 그리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나누어지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 모든 가정들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관념과 통념은 여전히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겸목샘이 참고글로 제시해준 매실샘의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 에세이 ‘자기만의 진실을 드러낸 여성의 글쓰기’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읽어야 하는지, 여성의 글쓰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는 글쓰기, 세상의 부조리에 자신이 일방적으로 희생되었다는 피해자적 글쓰기가 아닌 자신 안에 이중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식, “분노,저항,체념,타협,순응이 공존하는 삶의 복잡성’을 솔직히 드러내는 글은 ‘나’ 뿐 아니라 읽는 이도 섬뜩하게 발가 벗기게 된다”는 글이 가슴에 콕 와닿습니다. 혹시라도 제 안에 피해자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모습은 없었나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특히 아니 에르노가 『얼어붙은 여자』를 쓰고 난 이후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 우리 모두의 관심을 끌었는데, 우리가 앞으로 읽을 『진정한 장소』에서는 이혼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는 인터뷰 내용이 있다고 하니 사실 조금 의외였습니다. 어떻게 이혼을 하게 되었느냐는 호기심 어린 접근 보다는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자기가 가진 경계를 넘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겸목샘의 말씀도 앞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새겨야 할 이야기 같습니다.

자기 고백적 서사가 아닌, 자신과 사회와 남편과 적당한 타협으로 보기 좋게 포장한 자기 검열적 글쓰기가 아닌, 자신의 조건과 처한 현실, 상황과 그 속에서 혼돈으로 분열된 자기의 진실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글쓰기! 그러한 글쓰기가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하니, 과연 우리는 그런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검열하지 말고, 어려워하지 말고,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써라~! 라는 겸목샘 말에 따라 후기를 쓰고자 했습니다...끝.

댓글 2
  • 2022-09-28 10:40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세미나할 때 "글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라는 문장이 있었고, 정말 글은 레베카 솔닛을 남극으로 아이슬란드로 프랑케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의 시대로 데려갔는데,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녀가 처한 조건과 입장을 벗어나는 곳(?), 장소(?)로 데려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글쓰기에서 희망을 걸고 있는 부분이 이 때문일 거란 생각도 드네요. 어디로 가고 싶어요~

  • 2022-10-02 15:37

    일주일이나 지나서 후기를 남깁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골칫덩이'에 대한 말을 곱씹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골칫덩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나만 참으면 되지' 하며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해서요.  -남편과의 가사일 분담에 대해서도  '고마움, 미안함' 을 느끼면서도  '이만하면 문제가 없는거야' 하며 애매모호하게 지나가고 있지는 않는가?하는...   '고마움'은 느낄 수 있지만  '미안함'까지는 아니지 않을까?하고 의문을 제기해주신 선주샘의 말에 뜨끔했더랬습니다.  아니 에르노가  <얼어붙은 여자>를 쓰고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솔직해지려면 나의 가족 (남편을 포함한 나의 부모님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나는 어느 정도 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 내가 쓴 글을 나의 가족들에게 과감히 오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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