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치 약국에 놀러와_ 게릴라세미나 [병든의료] 2회차 후기

정의와미소
2023-05-20 19:40
198

'윤대통령,  간호법 거부 '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병든 의료]를 읽기 전에는  병원을 다니면서도  의료제도도  잘 몰랐고,  관심도 별로 없었습니다.  감기같은 단순한 질병에도 쉽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좋은 건강보험 제도가 있고,  지방에서 일할 의사는 3억원의 연봉을 준다고 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으며,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 1위가 의사라는  것,  노령인구 증가로  노인 질병과 요양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정도가 제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아참! 소아과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까지, 제가 아동복 디자이너 출신이라 예전부터 아이들 출생율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하여튼 이번 세미나 덕분에 처음으로 간호법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대립하고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암과 노인성 질병

 얼마 전 친하게 지냈던 옛 직장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암 수술 후 잘 지내다가 다시 재발하여 고통이 심했다고 합니다. 다정했던 언니를 기억하며 오랫동안 안부를 묻지 못한 것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면 주위에는 조기에 암을 발견한 후 적절한 진단과 수술, 항암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은 지인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이후 자신의 건강을 살피며 좋은 삶을 잘 꾸려가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미 암이라는 병은 가까이에 있지만 많은 치료 성과로 생명을 구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인 오마호니는 암이라는 병에 대한 거대 비즈니스가 작동하는 점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생존률보다 무진행 생존기간, 종양크기 감소 같은 의미없는 지표를 기대는 암 연구에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실험적인 항암제에 비용을 투입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오히려 무의미한 의료 비즈니스에 부합하는 그러한 비용 투입 대신 호스피스 돌봄이나 완화치료에 재원을 써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암 치료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인 치료를 진행하며, 예방과 조기진단 같은 암 생존율을 증가시키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하며, 의미없는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리기보다 호스피스 치료나 완화치료에 비용을 사용함으로써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증상을 줄여줘서 편안한 삶을 유지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암만큼이나 우리 사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문제는 노인 요양과 노인성 질병일 것입니다. 치매를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비용 발생은 노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체의 노화에 따른 부모의 질병에 아무리 확률이 낮더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어떤 것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당신은 생명을 돈으로 따지는가? 와 같은 질문은 잘못된 것이더라도 우리가 막상 그런 문제에 마주쳤을때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요요샘의 고민의 지점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늘 함께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숙한 문명의 보건 제도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를 설계한 사람들은 무상 보건의료서비스가 사람들을 더 건강하게 함으로써 결국 서비스의 수요를 꾸준히 감소시킬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제도는 오히려 기술의 변화와 높아진 기대 수준이 결합해 지속적인 의료비 증가를 유발했습니다. 제한된 총량을 공평하게 배분하기 위한 정책 대신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는 의료배급제는 없고, 무상서비스와 선택과 이용자 만족이라는 소비자주의 원칙을 선택함으로써 현재 보건의료는 공공 재원의 더 많은 부분을 소모하고, 주거, 교통, 교육, 예술에 쓸 재원은 점점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베번이 말한 성숙한 문명 속의 보건 제도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이 들면서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도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공공성과 보편성의 원칙아래 우리 건강보험제도가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950년 페이비니언 협회 연설에서 베번은 국가보건서비스가 새로운 책임성을 가져야 하고, 이용자들에게 책임감, 신중함, 그리고 더 큰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영국이 선택뿐 아니라 거부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진, 그래서 누가 최우선 순위이고 후순위인지 말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하지 못한다면 성숙한 문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병든의료 p.199)

변화하는 의료환경

  이미 세상은 ‘의학은 의사가 가장 잘 안다’는 시대에서 구글 검색을 통해 의학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있는 의료 소비자들이 된 사람들과 의사들이 공동의사 결정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병원을 찾더라도 질병의 증상, 처방 뿐 만 아니라 진료를 요청할 의사에 대한 정보까지 꼼꼼히 검색해보고 방문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런 추세를 바꾸긴 어려워보입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책임과 역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료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면서 개인들의 인체 정보 생산에 초점을 맞추어 ‘기전적’ 의학에서 ‘정보“의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으며 거대한 디지털 헬스 산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차고 다니는 시계에서 혈압이며 심박동수를 체크하여 데이터화하는 단순한 기술부터 게놈정보를 사고 파는 비즈니스까지 다양합니다. 이런 데이터의 수집과 판매는  연관 사업까지의 확장은 물론 소비자들을 결국 소비로 연결되게 만듭니다. 디지털 헬스가 ”감시사회’와 “데이터 독재”를 만들 것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예측은 이미 맞았으며, 예상치 못하게도 소비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이제 놀랍지도 않기도 하고 그 안에 우리는 이미 포획되어 있습니다. 

  능력있는 소비자주의가 도래한 반면에 의사는 책임만 있고 권한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의사들은 자신의 치료 스타일이 있었고 뚝심이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하면서 현재는 경영진의 괴롭힘, 환자의 위협, 늘어만 가는 감독기관의 규제 등이 ‘뚝심’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는 의사로 살아가는 동안 의료팀이 해체되고, 간호직이 보완역이 아니라 경쟁자가 되고, 전문의 수련과정이 조각나고 단축되어 능력이 부족한 전문의를 배출하고, 행정직들이 경영자가 되어 병원을 장악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진짜 의사다운 의사는 위기에 봉착하고 있나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인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소비자주의의 입장에서 친절한 공감을 표하는 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의사는 불편합니다. 얼마전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던 중 '모두닥'이라는 앱을 설치했습니다. 병원의 종류와 위치, 진료비 등을 검색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정작 의사선생님에 대한 평가를 별 5개 한다는 점과 댓글에 친절해요라는 문구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불편했습니다. 그런 것들로 진료를 부탁할 의사 선생님을 찾는 것을 것이라면 의사들도 자기 이미지관리를 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저자는 공감(empathy)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연민(compassion)은 의사가 지녀야 할 도덕적인 덕목으로 봅니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공유하려는 능력이지만, 연민은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도우려는 감정으로 도덕심이 포함되어 있으며 의사라는 직업은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에 이 두가지의 차이를 구분합니다.  따라서 공감만을 강조하는 공감훈련이나 서사의학, 의료인문학보다 연민을 기반으로 하는 환자의 치유나 고통의 경감을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병을 치료하고자 할 때 만약 공감은 무척 잘해주지만 오진하는 의사와 공감은 잘 안해주지만 치료를 잘 하는 의사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이지 않을까요?  이런 면을 생각해 본다면 좋은 의사의 모습을 분명해 보입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본 우리나라 의료인들의 모습과 저를 잘 수술해주신 의사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의사의 권위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학에는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기에이아라는 두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스클레피오스 전통을 두고 ‘제발 뭐라도 해봐’ 학파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학파가 오늘날 의학에 지배적이며, 질병의 개별 병인에 집중하며 의학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반면 히기에이아 전통에서는 자신과 주변 환경이 조화를 이룬 상태를 건강이라고 보고 올바른 생활과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책임지라고 권고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문탁의 양생와 비슷합니다. 두가지 전통 중  한쪽만 맞다고가 아니라 두가지를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의학은 잘 모르는 분야이지만  "모든 인간의 삶의 조건을 어디에서나 좀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사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오마호니가 말해주려고 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댓글 2
  • 2023-05-21 09:57

    의사에게만 뚝심이 필요한 게 아니라 환자/보호자에게도 뚝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의사의 뚝심은 전문성과 연민(자비)에서 나오는 것인만큼 다만 태도의 문제만은 아닐 터이고, 또 나만 옳다는 고집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나는 뚝심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로병사에 대한 올바른인식과 자비심에 더하여 용기를 길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2023-05-22 11:21

    정의와 미소님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의학의 한 학파였던 히기에이아 전통이 많이 그리운 현실인 것 같습니다. 노인이 되어갈수록 고립과 단절에서 오는 마음의 자잘한 병들이 몸의 병으로 나타나며 병원신세를 지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요. 자신과 주변환경이 조화를 이룬 상태를 올바른 건강으로 보았던 사상이 다시 되살아나기를 꿈꿔봅니다. 제 자신또한 지금 이순간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그것에 가닿기위해 한걸음씩 내딛는 삶을 살아가야 할듯요~ 샘들과 함께 <병든 의료> 읽고 토론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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