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③]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나래
2023-05-17 10:49
345

 

 

 

무심하고 무감한 소비자이자 도시민을 일깨워주는 사려 깊은 책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정은정, 한티재, 2021년)

 

 

소비자 물가 품목에는 농수축산물과 식음료, 그리고 공공요금과 각종 서비스 요금이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 농산물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토록 낮다며 ‘동네 바보' 취급하다가 왜 명절 때만 되면 17대 1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일진'이 되어 있을까? 아무리 올라 봐라. 배춧값이 무섭나? 애들 학원비가 무섭지. 돼지고기 값이 무섭나? 2년 만에 오른 전세비 6천만 원이 나는 제일 무섭다.(168쪽)

 

 

한 살림은 올 3월부터 주 3회 배송에서 매일 배송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2주에 1번 정도는 어플로 주문한 채소와 과일이 집 앞으로 배달된다. 물가가 올랐어도 공공요금, 전세, 집값 오른 것에 비하면, 채소와 과일은 아무리 올라도 배달 1번 먹을 비용이면 두 식구가 일주일 넘게 먹을 양을 살 수 있다. 농산물은 건강에도 좋고 비교적 저렴하다고 느끼는 소비자이자 도시민의 정체성이 큰 나는 소외된 타인의 밥상, 자영업자, 농촌, 농업에 대해 아우르며 일깨워주는 책을 만났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의 부제는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밥과 노동, 우리 시대에 관한 에세이’다. 저자는 ‘도마도집 딸’로 농촌에서 토마토 농사를 해보며 자랐고, 농촌사회학자로 글과 말로 쌀과 반찬을 구하고, 일하는 엄마로 아이들의 매끼 챙기는 일의 괴로움을 안다. 그래서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고 세심하고 예리하다. 특히 그의 문제의식은 무심하고 무감한 소비자이자 도시민에게 더욱 따끔했다.

 

 

5천원 안짝으로 열량을 좇느라 허기진 결식아동의 밥상. 삼각김밥, 컵라면의 편의점 식사와 가끔 치킨이나 무한 리필 고깃집에서 해결하는 20대의 밥상. 믹스커피 한 봉으로 끼니를 떼우는 폐지 줍는 노인의 밥상. 도시보다 농촌의 노인 밥상은 외롭고 부실하다. 책에 소개된 농촌 마을 공동급식 지원사업은 농촌 노인들이 고립된 식사를 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사회의 역량이 돋보이는 제도이다. 저자는 채식급식선택제까지 이른 학교 급식에 대해 예찬하면서도 학교급식 조리 노동자들의 더딘 처우 개선과 인력 충원이나 관련 지원 필요성도 함께 짚고 넘어간다.

 

 

자영업의 상징이 된 외식 자영업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다. 자영업이 비대해진 산업의 구도를 바꾸기보다는, 자영업의 영세성과 비전문성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내리고 프랜차이즈 산업을 육성해 온 후과이다. 골목식당 주인에게 기술 수련을 하라며 호통을 치는 유명 외식 사업가가, 기술이 없이도 식당을 차릴 수 있다며 부추기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오너인 세상이다. 골목에서 성실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척에 동일 업종의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오는 일은 얼마나 황당한 분열인가. 자신과 가족들의 몸을 갉아 생의 구멍을 메우는 자영업자의 고통을 당장 덜어낼 비책은 없다. 다만, 장사도 힘든데 넘쳐 나는 식당 솔루션 예능을 보면서 자기 탓까지 하며 기운을 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게으르지 않았다.(68쪽)

 

 

식당 솔루션 예능을 보면서 유명 외식 사업가가 골목식당 주인에게 해결해야할 문제를 콕찝어주는 대목에서 오히려 명쾌함과 시원함을 느꼈던 시청자로서, 이 부분에서 뜨끔했다. OECD국가 중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1/4로 가장 높은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들의 풍경은 혹독하고 고통스럽다. 이런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영세하고 비전문적인 자영업자 탓하기 보다 도덕적 결함이 있는 기업을 향해 장기적 불매운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SPC계열,남양유업 불매 운동 외에 무엇을 해야할지는 일단 저자처럼 관심을 가지고 더 알아야겠다.

 

 

기름때 묻은 공구와 함께 발견된 구의역 김 군의 숟가락은 인간의 식사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깨끗하게 닦인 수저로, 자리에 앉아 여유 있게 먹는 밥을 인간의 식사라 한다면, 김 군은 안전문 수리를 하면서 제대로 식사를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당시 정치인들도 달려와 추모의 말을 보태며 정치적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 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의 유품에 또 컵라면이 있었다.(133쪽)

 

 

한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죽음들도 일깨운다. 이제 컵라면을 보면 떠오르는, 일터에서 죽었고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씨도 소환한다. 저자는 2020년 경기도의 채소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31세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씨의 죽음을 말하며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환경과 함께 우리의 먹거리가 그들의 노동에 기대고 있지만,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모순도 지적한다.

 

 

저자는 농약을 제일 많이 먼저 뒤집어쓰는 농민들이 우비와 마스크라도 잘 쓰고 일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소비자로 생산자들에게 싸고, 안전하고, 맛있게 만들어 내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우리에게 살처분 현장에서 가장 고통 받는 농촌 주민과 현관 앞 새벽 배송을 위해 밤을 새워 달려온 이들의 안부를 살피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편리하게 차려 먹는 밥상을 위해 무게를 더 많이 지는 이들이 있음을 느꼈다. ‘아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내가 더 할 수 있을까?’ 질문도 생긴다. 이 책에는 사회적 관계, 농업, 외식 자영업자, 학교급식 노동의 문제까지 밥에 얽힌 무겁고 복잡하며 귀한 이야기들이 잔뜩 담겨 있다. 소비자이자 도시민으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편리하게 시켜 먹는 농산물이 내 집 앞에 오기까지 기여했을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댓글 5
  • 2023-05-17 11:30

    신문 칼럼에서 정은정의 글을 읽고 주목해야 할 필자라 생각한 적이 있다. 나래님의 리뷰를 읽으니, 택배노동자, 급식노동자, 자영업자, 농부, 컵라면을 상비하는 비정규직, 타인의 밥상은 어찌 차려지고 있는지 무심히, 무감각하게 살고 있구나! 다시 한 번 느껴본다. 불감증이 심해지고 있다.

  • 2023-05-17 13:06

    요즘 한뼘 텃밭에서 '동네바보'와 '일진'을 가꾸며 마치 천석꾼의 부지런함을 어필하고 있는 저로서는 너무 와닿는 글이네요. 간단한 밥상이란 말, 넘 화나요

  • 2023-05-18 11:10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과 삶, 시간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책이 있어요. 그런데 정은정샘의 책도 무지하게 좋은 책 같군요. 언젠가 읽어보고 싶어요. (하지만 <새농>의 새벽배송을 엄청 욕하던 저도, 요즘엔 즐겨 이용을 하니.. 어쩌면 좋을까요? ㅠㅠㅠ)

  • 2023-05-19 21:06

    최근에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정말 마음이 착찹했던 기억이 다시 나네요 ㅠ
    학교 급식이 전면 실시되면서 도시락을 따로 준비하지 않게 된 편리 뒤에 급식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위험에 노출된 생명들...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지 암담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 리뷰를 읽자니요.

  • 2023-05-21 11:47

    나래쌤 질문대로 아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각자의 자리에서는 정말 아무도 게으르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꼬여있는 느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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