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죽음 6회] 죽은 자의 집 청소

모로
2022-10-19 15:55
284

 

 

 

  언제 죽음을 생각하는가. 사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어제도 시골에 있는 시가에 갔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 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 아침에 바닷가에서 보았던 텐트들을 생각했다. 혹시나 사람들이 비에 쓸려가지는 않을까. 시골집 마당의 강아지들은 괜찮을까를 걱정하면서 밤잠을 설쳤다. 나는 천재지변이 무섭고, 차 운전이 무섭고, 비행기도 무섭고 무서운 게 천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 여러 곳에서는 커다란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걸 발견할 때마다 종종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거대한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추락하는 비행기에, 거대한 해일 속에도 죽음은 있지만, 우리가 접하는 죽음은 늘 작은 우리 일상 속에 함께 있다.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 2020년)라는 책에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으로 만난 다양한 죽음을 담겨있다. 고독사로 홀로 생을 마감한 사람, 삶이 힘들어 자살한 사람, 혹은 수천 개의 페트병 속에 담긴 오줌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 쓰레기 더미 속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그려낸다. 마지막 보루로 전기요금이 끊기자 그날 자살한 사람. 전기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정말로 빈곤으로 전기가 끊길 위험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배고픔과 맞먹을 큰 문제 아닌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은 쓰레기가 극도로 쌓인 집에서는 동전과 지폐가 아무 곳에나 흩어져있다는 점이었다. 책상, 싱크대 위, 화장실 등 아무렇게나 돈이 널려있다고 한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사이에 경계가 사라지는 걸까. 그건 해탈일까 아니면 자신을 놓아버린 걸까.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중략) 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 (41p)

 

  치정에 의한 죽음, 가난에 의한 죽음, 심지어 길고양이들의 죽음까지 다양한 죽음을 그려내고 있지만, 막상 내가 기억에 남는 것은 ‘분리수거’라는 제목의 단편이었다. 작은 원룸촌에서 착화탄을 피우고 죽어간 한 여자는 자신을 실수 없이 죽이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했다. 모든 문, 창문틀, 화장실의 배수구, 환풍기 등의 모든 구멍을 청테이프로 꼼꼼하게 밀봉하였고, 죽고 나서 남아있어야 할 라이터나, 쓰레기들을 미리 분리수거했다. 죽을 때까지도 남의 수고를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싫을 소리 한 번 못하고, 그냥 자신의 생을 끊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했으리라. 그냥 이건 어떤 삶일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남았다.

 

  반대로 ‘나쁜 시키’라는 제목의 단편에서는 한 여자의 자살 신호를 알아채고 작가와 경찰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선 끝에 죽음을 막아낸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자는 자살을 결심하기 직전에 작가에게 전화해서 블로그에 착화탄으로 자살을 하면 괴롭다고 쓰여 있는데 그 말이 진짜냐고 물어본다. 아이러니하다. 어차피 죽을 건데, 고통이 궁금하다니. 그 여자가 죽기 직전에 묻고 싶은 것은 정말로 착화탄의 성능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와도 이어지고 싶은, 그렇게라도 살고 싶은 가느다란 희망이었을까. 여자는 자신의 자살이 사람들에 의해서 제지당하자 문자를 보낸다. <나쁜 시키> 작가는 그 문자를 보고 안도한다. 분리수거 여자에게도 그런 작은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살다 보면 죽고 싶은 만큼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심한 나를 되돌아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죽고 싶다는 표현일까. 더 잘살아 보고 싶다는 희망일까. 죽을 마음이 든 사람에게 지금 이 작은 실수가 뭐가 대술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다들 이 책을 읽고 그래도 한 번 다시 살아볼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안된다면 저자가 추천한 것처럼 화장실 청소를 해보자.

 

어째서인지 인간의 마음도 더러운 화장실 청소처럼 얼마간 곤욕을 치르고 나면 잠시나마 너그러워지고 밝아진다. 평소 우울감에 시달려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를 추천하고 싶다. 그 화장실이 더럽고 끔찍할수록 더 좋다. (221p)

 

 

댓글 2
  • 2022-10-19 17:40

    모로님의 글을 끝으로 3주간 진행됐던 <리뷰 오브 죽음> 연재를 마칩니다.

    먼저 책을 읽고 생각을 글로 써주신 봄날, 황재숙, 요요, 김윤경, 권경덕, 모로님 감사드려요.

    댓들로 읽은 소감을 남겨주신 분들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일리치약국에 놀러와-4회 죽음편>도 마무리단계에 들어갑니다.

    10월 25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린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의 저자 박중철샘의 특강에 많은 분들이 들어오셨으면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군요.

    그래도 함께 이야기 나눠주신 분들이 있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2022-10-21 16:08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는 여러 죽음의 모습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죽음은 항상 삶의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삶 안에, 일상 안에 있고 또 그 속에서 자주 이야기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번에 <놀러와> 죽음편은 일상에서 사라진 죽음을 더 많이 환기시키는 계기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로님~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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