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줌세미나 1회차 후기

겸목
2022-05-16 12:08
192

50대 남성, 20~30대 남성,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여성까지, 이번 <헝거>줌세미나에 들어온 사람들은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했다. '다이어트'에 대한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압력의 차이도 다양했다. 록산 게이의 <헝거>라는 같은 책을 읽은 소감들도 조금씩은 차이가 있었다. 록산 게이는 열두 살에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성폭력의 트라우마는 그에게 폭식과 자기혐오를 남겼고, 폭식은 다시 초고도 비만인 뚱뚱한 몸을 남겼다. 누군가는 성폭력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 아팠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에 답답했다고도 했다. 록산 게이가 기록하고 있는 '뚱뚱한 몸'을 가진 여성이 사회에서 받는 수모와 부당함에 대해 누군가는 공감했고, 뚱뚱하지 않아도 '뚱뚱해질까봐' 두려워 다이어트를 해봤던 많은 여성들이 여성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에 대해 토로했다. 여성의 몸은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보는 시선에 의해 마르고 매력적인 몸매와 뚱뚱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몸매로 위계화되고, 뚱뚱한 몸에 대해서는 '관리되지 않은 게으름'이 비난되고 수정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들은 넘쳐난다. 성공한 아이돌의 모습, tv광고, 컨설팅프로그램 모두 뚱뚱하면 불행이고 실패며 날씬해야 행복하고 성공이라고 주입되는 사회에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자기 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

 

세미나에서는 날씬한 몸매가 정말 '자원'이 되고 '행복'의 비결인가? 의심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말해질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본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늘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는 여성 연예인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그 의견도 일리는 있다. 자본주의세상에서 날씬한 몸은 유리하다는 프로파간다가 상품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되고 있을 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신념을 갖고 내 몸의 주체성을 지키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뚱뚱한 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날씬한 몸매에 대한 선호를 내면화하고 규율화한다. 특히 가정에서 엄마들은 딸이 뚱뚱해질까봐 감시와 통제를 가한다. 어쩌면 뚱뚱한 몸에 대한 비난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는 집일 수 있다. 가장 편한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친밀함이 '상처'주는 말을 서슴치 않게 한다. 가스라이팅이 일어나고 어떤 폭력보다 더한 강도로 자존감을 허물어뜨린다. 20대 두 딸이 있는 나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 세미나에 들어온 10대 청소년은 집에서는 전혀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지만, 학교에 가면 날씬하고 마르고 굴곡진 몸매를 가진 친구들이 인기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친구를 사귈 때마다 위축된다고 말했다. 성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은 모두가 보니까, 바로바로 평가되고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이 순간! 세미나에 들어온 어른들은 모두 10대들이 겪는 마른 몸매에 대한 강박이 얼마나 심한가 실감할 수 있었다. '통통해도 괜찮아' '건강하기만 해' '자신감을 가져' '너 그대로 예뻐' 이런 응원과 지지의 말들이 실제로 10대 청소년들에게 가닿지 않는다. TV만 켜면, 핸드폰만 켜면, SNS 속에서 '뼈말라' 몸매들이 매력발산하는 세상에서 자기 만족은 너무 어려운 미션이다!! 그래서 우리 세미나도 속 시원한 이야기들이 오가지는 않았다.

 

<헝거>는 허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말라도 뚱뚱해도 모두 통제되고 자기 부정을 겪어야 하는 사회는 '허기'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허기'는 자기부정과 자기혐오를 가져온다. 나는 <헝거>를 발제하며 '몸무게의 사회학'이라는 수사를 썼는데, 그보다는 '자기혐오 보고서'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헝거>는 87개의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비슷한 뚱뚱한 몸에 대한 잔인한 학대와 사회적 무신경에 대한 보고다. 록산 게이는 이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줌으로써 뚱뚱한 몸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어떻게 '자기혐오'의 가속화를 가져오는지 잘근잘근 씹어주고 있다.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자기혐오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똑똑하고 능력있고 글 잘 쓰는 여자 록산 게이가 얼마나 자주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는지 보고 있으면 나의 막발과 무신경과 비겁함이 가져오는 폭력성을 화들짝 깨닫게 해준다. 뚱뚱한 사람들이 모욕을 당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관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내면화하는 에티튜트를 갖게 됨으로써, 폭력은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록산 게이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기록해줘서, 내가 나의 범죄를 인식하게 해주었다. 몰랐다. 아니 알았다. 아니 잘 알지는 못했다.

 

<헝거>를 읽는 시간은 한 번 더 남았다. 답답함과 속상함을 공유하는 것도 세미나의 기능이 아닐까 싶다. 뾰족한 수는 없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본다는 것, 이건 아무래도 이상해, 라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 세미나는 5월 20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 ZOOM으로 진행된다. 더 이야기해보자!

 

 

 

 

댓글 4
  • 2022-05-16 12:38

    "뚱뚱한 사람들이 모욕을 당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관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내면화하는 에티튜트를 갖게 됨으로써, 폭력은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옷에 내 몸을 맞추기 보다 내 몸에 옷을 맞추겠다고 했지만 이미 나의 눈과 기준은 날씬매끈에 맞춰져 있어 넉넉한 핏이 제 성에 안 차더라고요. 몸은 미추와 건강이랑도 결합되어 있기도 해서 적정선이 애매하기도 하고요. 체지방 감소는 건강에도 도움되지만. "나는 미적인 게 아니라 건강 때문에 빼는 거야." 혹은 "너는 건강 때문에 좀 빼야 돼." 라면서. 건강 넘어 강박이나 압박이 되기도 하고요.

    책을 읽으면서도. 토론하면서도 불편한 지점을 들여다보면 내면화된 외모지상주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뜨끔하면서도 복잡했어요. 남은 부분 책 읽으면서 그 불편한 지점을 더 들여다 봐야겠어요. 한편 헝거 책 곳곳 희망적인 부분도 발견하고 있으니 이 부분도 정리. 

    사놓고서는 선뜻 펼치지 않던 책이었는데 세미나 덕분에 읽고 돌아볼 수 있네요. 

  • 2022-05-16 12:47

    '뚱뚱한 몸' 에 대한 세상의 부당한 대우에 응하는 재미있는 반격, 신나는 저항, 의미있는 도전... 뭐 이런 희망의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요~~

    뜨끔과 무기력을 넘어서서요^^

  • 2022-05-16 13:35

    자기부정이 강요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헝거>를 읽으면서 어디서부터 나의 자기 부정이 기인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의외로 생각나는 게 여럿 있더라구요. 이렇게 들추어 보는 것이 자기 부정뿐 아니라 자기 기만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2022-05-16 21:32

    세미나 밖에서 읽고 있는 1인입니다.

    '나는 내 몸을 싫어한다. 나는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을 싫어한다. 내 몸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감정을 싫어한다. 내 몸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감정을 싫어한다....(중략)... 하지만 나는 나를 좋아하기도 한다. 나의 인격, 나의 특이함, 나의 유머 감각, 거칠면서도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내가 좋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과 내가 글 쓰는 방식이 좋고 친절함과 까칠함이 공존하는 내 성격과 말투가 좋다.'(173)

    저는 록산 게이가 자기를 혐오하는 만큼 또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다행이었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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