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리뷰2]오래 오래 행복하게 먹었으면 합니다

2022-05-1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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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먹어버렸습니다>(김윤아, 다른, 2021년)

 

지난 어린이날, 닥터 스트레이지2를 보기 위해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기다렸던 영화였건만, 거리두기의 해제로 극장 안의 물리적 밀도는 내 불안의 밀도를 높였고. 게다가 광고가 주는 불쾌감. 잊고 있었다. tv가 없어 그나마 광고와 적당히 떨어져 살고 있는 나에게 극장에서의 광고는 자주 불쾌감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였다. 예전보다 훨씬 노골적인 365ㅇㅇ지방흡입병원의 광고. 부러질 듯한 허리와 터질 듯한 궁댕이를 그 큰 화면으로 클로즈업하는 장면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영화가 끝난 후에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첫째는 몸의 일부분을 크게 확대하는 장면을 불편해 했고, 둘째는 광고모델의 몸매를 강조하기 위한 자세를 두고 방구가 마렵나 싶었단다!!!

 

나의 이 불쾌함과 불안은 뭘까?

 

-소설 <다이어트랜드>의 베레나는 합병증의 위험을 무릎쓰고 장기를 다시 배치하는 비만 수술을 결심한 플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플럼, 그러지 마요. 자기 몸을 그렇게 도축하지 마요.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도축’이라는 단어가 거북하게 들리나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키, 몸무게, 학벌, 나이, 외모, 재력 등을 ‘스펙’이라고 부르며 마치 물건의 조건을 따지듯 사람의 등급을 매기고 서로를 비교합니다. “쟤는 나랑 비슷한 급이야”, “쟤는 나보다 훨씬 못하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죠. 등급을 높이기 위해 장기를 잘라내는 행위를 도축에 비유한 건 ,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거예요.-

 

엄마는 에어로빅 강사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나이 때문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줄곧. 적극적인 사회 참여 운동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배우 제인폰다가 내놓은 에어로빅 비디오가 대박을 쳤던 시절이었다. 스물한 살에 엄마가 되고,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에어로빅 산업에 뛰어든 나의 엄마에게는 자기 관리=몸매 관리였고, 나에게도 늘 그것을 강조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공부였고 그 후로는 주로 외모였다. 나는 나의 겉모습(얼굴, 체형, 입고 다니는 옷, 직장 등)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지독하게 내면화된 상태였고, 그래서 그런 평가에서는 대체로 부끄러운 딸이었다. 줄곧 나를 증명하거나 나를 포기하거나의 역방향의 줄다리기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갔다고 보면 된다. 첫아이가 돌이 되던 무렵에도, 엄마는 임신으로 불어난 몸을 줄이라면서 없는 돈에 비싼 한의원을 예약해주었다. 내 몸은 맘 편할, 아니 몸 편할 날 없이 그렇게 늘상 대상화되고, 몸과 마음 모두 ‘도축’되어 왔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의 엄마들도 한편으로는 비교하고 평가하는 사회의 피해자라고. 엄마와 나의 지난한 감정적 반목, 그 시작이 어디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제 우린 서로를 서로에게 떼어내고,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직도 엄마는 3년 내내 미용실 한번 가지 않고, 변변한 외출용 가방 하나 없는 나를 신기해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이어트 업체들과 미디어는 살만 빼면 인생이 확 핀다며, 체중 감량은 자신을 위한 거라며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제발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마세요. 여러분의 다이어트에 인생을 걸지 말아 주세요.

“여성 여러분, 다이어트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더 예뻐져야 하고, 더 날씬해져야 합니다. 살찌는 음식으로 몸을 더럽히지 마세요. 인내하고 복종하세요. 약간의 자기혐오도 도움이 되겠죠. 여러분의 목표는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니까요.”(<<다이어트랜드>>)-

 

2018년 대한민국 만 20~59세 성인 1,6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61.9%가 다이어트 경험이 있거나 현재 다이어트 중이며, 2016년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다이어트 시장의 총액은 약 7조 6,000억 원, 그중에 4분의 1인 1조 9,000억원을 차지하는 것이 다이어트 의료 항목(체중 감량 수술, 치료약)이라고 한다. 여전히,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라면 언제든지, 누가 살이 쪘다는 둥, 누구의 다이어트가 성공했다는 식의 평가가 들리며, 이런 평가들이 쌓이면서 다이어트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압력이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뚱뚱한 여성 캐릭터는 희화화되기 일쑤고, 몸에 대한 걱정을 빙자한 타자의비난과 조롱이 일상이 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노골적인 광고로 무장한 미디어, 욕망을 빨아들이는 SNS에 노출된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떨까?

 

-청소년은 특히 미디어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이미지를 와르르 쏟아내면, 청소년들은 소속감을 얻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이를 따라 해요. 그러다 보면 프로아나(찬성을 뜻하는 ‘프로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애너렉시아 anorexia'의 줄임말), 개말라(엄청나게 마른 체형)를 찬양하는 경악할만한 모습이 나타나곤 합니다.[중략] 그러나 분명히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빛난다면 모두가 빛날거야. 난 원래 이렇게 태어났어. 노력해서 얻은 게 아냐” 라고 외치는 가수 리조Lizzo처럼 자신의 몸이 어떻든 당당하게 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중3이 된 첫째는 갑자기 밥이 많다며 내게 버럭 짜증을 내기도 하고, 저녁엔 맛있는 걸 하지 말라고, 저녁밥을 많이 먹었다며 늦은 밤 갑자기 매트리스를 펴놓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어제는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당분간 6시 이후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아이와 이른 저녁을 먹고 저녁 산책-가벼운 산책만으로도 뇌의 시스템이 바뀌어 음식에 대한 집착이 줄어든다고 한다-을 나갔다. 식사가 맘에 들었는지, 이러쿵저러쿵 오늘 먹은 학교급식과 비교하는 뽀얗고 통실한 얼굴에 홍조가 돈다. 당장 내일 아침은 뭐냐고 묻는, 먹는 것을 즐기고 베이킹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도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분위기라는 게 존재 할 텐데. 그럼에도 나는 아이가 우리에게 만연한 온갖 비교와 평가 앞에서도 의연해 지길 바라는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젓가락이 빨라진 아이가 무안하게 천천히 먹으라고 잔소리를 퍼붓기도 한다. 결국, 다이어트 강박을 파는 사회 안에서의 불안은 아이와 나를, 우리 둘의 관계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불안의 감정은 다시 통제할 대상을 찾게 되고, 나는 별안간 집청소에 몰두하거나 할 일들이 빼곡한 스케쥴표를 만든다. 그러다 또 밤이 되면 부시럭 거릴 간식들을 뒤적거리고.

 

작가는 다이어트의 시도 자체가 음식에 대한 집착과 갈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어쩌면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다이어트라고. 그리고 거식증이나 폭식증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몸의 자연스러운 신호, 즉 배고픔과 포만감을 되찾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음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의 <<맛의 생리학>>에 따르면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은 부부관계의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데, 이것은 부부를 포함한 가족, 그리고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것은 자아와 문화의 충돌, 여성의 힘에 대한 여전히 양가적인 세계, 식욕을 돋으려고 하는 동시에 식욕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는 세계에서 촉발된 여성적 욕망에 관한 것이다.[...]여성은 정신적으로는 확장되지만, 신체적으로는 점점 작아지라는 말을 듣는다.-

 

<여성과 광기>에서 인용한 캐럴라인 냅의 말은 사회적 요구에 대한 여성의 자기 파괴적 현실을 놀랍도록 명쾌하게 보여준다.

 

식이장애를 겪었던 식이장애 전문상담사인 작가는 우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낸다.

 

-여태까지 받았던 무수한 시선과 평가가 사실은 터무니없고 틀린 것이며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이제 완벽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지적과 평가에 맞춘 다이어트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중략)제가 식이장애와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이유는 살이 빠져서도 쪄서도 아닙니다.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는 곳에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이예요. 여러분은 어떤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있나요? 그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인가요?-

 

 

댓글 11
  • 2022-05-12 08:59

    저는 예전엔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었던 것 같아요.

    하루에 한 갑 이상이 되었을 때, 이러다간 죽겠구나, 싶어서 담배를 끊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먹더라구요, 주로 초코렛을.....ㅋㅋㅋㅋㅋㅋㅋ 

    음식 단 건 딱 질색인데, 글 마감 앞두고는 초코렛 쟁여놔요. 담배피듯 초코렛 먹나봐요.

     

    어떤 때는 안되겠다. 이러다가 당뇨오겠다,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초코렛 끊으려면 글 안 쓰면 되는 거 아냐? 이런 꼼수가 생각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뭐 매일 초코렛을 끼고 사는 거 아닌데, 초코렛 끊어야한다를 너무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 싶기도 하고 그래요.

     

    음, 어쩌지? ㅎ

  • 2022-05-12 19:02

    최근 어머니와 목욕을 갔더랬습니다~

    내 등을 밀고 난후 가라사대 

    -니 단식했을 때 보다 살 쪘다! 한 5키로? 맞재?

    살찐다고 밥숟가락 뺐던 어머니와 나 사이의 식욕전쟁~~~ 팔순  노모와 오십 딸의 살 전쟁은 계속된다~~ ㅋㅋㅋ

  • 2022-05-12 20:11

    출산한 딸에게 다이어트 강권하는 엄마들 꽤 있나봐요T.T 최근에 비슷한 얘기 들었어요......

    • 2022-05-12 22:23

      저한테 들었을 걸요? ㅎㅎㅎ

  • 2022-05-12 21:16

    제 눈엔 디즈니 공주들 보다, 슈렉의 피오나 공주가 매력 있어 보여요 

    늘씬한 몸 말고, 건강한 몸이 중하다는걸 나이들수록 깨닫고 있어요. 참샘은 건강해 보여서 좋아요.

  • 2022-05-12 22:26

    맛 있을 때 양껏 먹읍시다. 

    곧 먹고 싶어도 소화 안 돼서 못 먹는 날이 옵니다~
    이빨 아파 못 먹는 사람도 있고요... 저요? ㅎㅎ

    • 2022-05-13 09:27

    • 2022-05-13 11:22

      아.. 이거 좀 공감인데요.  저는 소화기가 안 좋아져서 (한때 육아 스트레스로 밤마다 맥주를 2년 이상 마셨더니 ㅠㅠ) 이제 과식하고 싶어도 못해요. 많이 먹으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합니다. 잘 먹을 수 있을 때 (?) 즐기세요...(?) 

  • 2022-05-13 09:02

    참님의 나지막하지만 강단있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귓가에 머물러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22-05-13 11:33

    3년간 미용실을 안갔다면,  참님은 자연 곱슬이신 거에요 ?  아니면 그건 예전이야기 ?  헤어스탈 넘 이쁜데...

     

    저는 오히려, 출산 후 반대였네요.

    매끼 한대접의 국을 다 먹으라고 떠주시면 (물론  모유수유기간이었지만) 저는 버럭 화를 냈고,  그리곤 그걸 게눈 감추듯

    다 먹고는 무안해하고... 그걸 반복했네요... 워낙 자식들이 다 '잘아서' 평생을 "잘 먹으라 잘 먹으라"(먹으라는 먹어라의 방언 같네요 ㅋ)

    챙기셔야만 하신 .......

    다 커서 엄마가 딸에게 다이어트 하라신단 얘길 듣고 첨엔 이건 또 무슨 이야기 ? 했더랬습니다. 

  • 2022-05-13 18:23

    몸을 믿고 배고픔을 존중하면 자신에게 맞는 체중이 유지될 수 있다는데

    몸에 대한 부정이 사회에 만연하다 보니 몸을 믿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딩 중딩들도 다 다이어트 하는 세상이잖아요.

    우선은 자기 몸에 대한 긍정이 시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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