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식이와 노자(4회차 후기)

여울아
2022-04-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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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자작나무의 후기에서 말했듯이 노자 세미나는 이번 주 4회를 하기까지 한 번도 모두 모이지 못했다. 

잔인한 4월이라고... 오미크론이 쉽게 떠나지 않는 한 분은 세미나를 그만두시기까지... 

이번 주는 바람처럼님이 결석하셨는데, 2주 전 이미 오미크론을 앓으셨으니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세미나 초반 나 역시 오미크론으로 결석을 하고 세미나를 신경쓰지 못한 탓인가 싶어서 마음의 부담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ㅠㅠ

 

그럼에도 우리는 이 번주 노자를 37장까지 필사하고 왕필주와 오강남의 책을 읽으며 그 뜻을 헤아려보고, 

또 2주째 "극고명이도중용"을 외치며 우리의 발목을 잡는 풍우란을 따라 위진현학까지 훓어봤다. 

 

28장. 대제불할(大制不割)

왕필은 큰 제도와 정치는 자르지 않는다고 간단한 주석을 달았을 뿐이다. 자르지 않는다? 

오강남은 이분법과 대립의 세계관에서 해방되어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해석했다. 

토용은 무위지치가 아니겠냐고 했고, 그렇다면 자르지 않는 것은 작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렇다면 바로 위 문장의 박산이위기(樸散而爲器)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32장에서도 박(樸)이 나온다. 통나무 박은 노자에서 주로 질박하다고 많이 해석된다. 

통나무를 도끼질로 잘게 쪼개서 그릇을 만드는 것은 대제불할과 어떻게 다른가? 

통나무를 쪼개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어진 문장에서 성인은 그저 사용할 뿐 자르지 않는다... ㅎㅎ 귀신이 곡할 노릇. 

이 통나무는 도끼질로 잘린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작위해서, 즉 누군가 일부러 쪼갠 것이 아닌 것 같다. 

(29장에는 천하의 신묘한 기물(器)은 작위할 수 없다(不可爲也)는 문장이 있다.)

왕필은 여기서 박을 진실함으로 보았다.  대제는 진실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 

그에게 진실한 마음은 하늘로부터 (품수)받은 것이며, 이것으로 그릇을 만든 것이다. 성인은 이것으로 제도를 만들지만, 그의 정치와 제도는 통나무의 질박함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여기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린아이, 무극의 세계, 소박한 마음이다.  이것이 불할하지 않는 성인의 대제이리라... 

 

참, 28장 시작때 토용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백과 흑, 영욕 등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사이에 수많은 다양성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얘길 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때 우리가 자칫 빠지는 함정은 여전히 동전의 양면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이다. 그런데, 남성성과 여성성 그 사이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이런 오류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30장. 물장즉노 시위부도 부도조이.(物壯則老 是爲不道 不道早已)

물장즉노, 물이 장성하고 나면 노쇠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왜 부도이지? 

30장과 31장은 전쟁을 다루고 있다. 30장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강함(强)이다. 

왕필은 강압하고 강포해져서는 안되는데, 무력으로 사납게 일어난 것은 도에 맞지 않으니 일찍 그친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장(壯)과 노(老)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것이다. 

따라서 부도이고 부도는 도에 맞지 않으니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다음 장 31장은 가병(佳兵), 아름다운 군사, 좋은 병기에 관한 것으로 시작된다. 

부득이한 전쟁을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들과 결이 다른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36장. 국지리기 불가이시인(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나라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된다? 여기서의 器는 뭘까? 

왕필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물의 그 마땅한 바라고 말한다. 나라의 기강을 利器에 맞긴다는 것인데, 그의 설명은 道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다. 

이와 정반대의 경우는 한비자의  상벌제도가 아닐까 싶다. 왕필은 형벌에 맡기면 국가경영에 실패한다고 보았고, 특히 형벌을 앞세우는 사람들에게 나라의 利器를 보여주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한다. 

이 장 맨 앞에서는 줄이려면 먼저 펴주고 약하면 먼저 강하게 해주고 쓰러뜨리려면 먼저 일으켜주고 장차 빼앗으려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일러 은미한 밝음(微明)이라 한다. 

왕필은 위와 같은 4가지는 강압과 혼란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4가지 방법을 사용한다면 굳이 형벌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

그는 형벌이 사물의 본성을 해치는 것이니 경계하라고 말한다. 따라서 마지막 문장에서도 利器를 형벌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이외에도 이 장을 적극적으로 병법으로 해석하고, 위 4가지 방법을 자연의 이치를 따를 때 가장 좋은 병법/통치 방식이라고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利器는 나라의 보검으로 함부로 보이지 말라고 해석한다.

이와 좀 결이 다른 해석은 부드럽고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긴다는 문장과 더불어 여기서 利器는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숨기라는 메시지로도 읽는다. 

이제 후기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제목 보고 들어온 분들이 욕하겠다. 

도대체 이 내용이 명식이와 무슨 상관이냐구! 

오늘 후기의 대부분은 명식가 질문하거나 문제제기한 내용이다. 

내가 처음 노자를 시작할 때 명식이가 <노자>를 읽은 것이 고등학생 때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그는 학생회 일과 관련하여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자>를 수없이 많이 읽었다고 했다. 

사유와 쓰임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자의 쓰임새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고민했다니, 처음엔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침 우리가 읽는 2차 텍스트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에서 저자는 극고명이도중용(極高明而道中庸), 즉 어느 학파가 道를 형이상학적 철학적으로 사유하면서 동시에 일상에도 적용하였는가에 대한 풍우란의 표준 혹은 잣대를 끊임없이 들이대고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런 잣대가 과연 도를 이해하는데 혹은 각 학파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 

그런데 우리 세미나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알~짝 이와 관련한 <노자>를 읽는 두 가지 태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연과 나는 주로 노자의 말이 좀 뜬구름 잡는 것 같다는 견해이고 지난 주까지 바람처럼님의 경우는 문장 하나 하나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해석해오시는 편이다. 그러니까 좋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들어있는 것. 이제 이 편에 명식이를 포함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고등학생에게 노자의 말이 구체적으로 쓰일 일이 뭐가 있을까? 드디어 오늘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건 표현해라 당당해라 이런 것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회를 꾸려나가는데 이런 태도만으로는 잘 운영할 수 없었다고. 특히 시발점이 되었던 사건은 학생회의 자치법과 관련한 것이었다. 

자신은 학생회에서 법관련 담당자(법부장??)였는데, 학생 자치라는 이름으로 학생이 학생에게 법을 집행해야 했다고 한다. 

판사는 법을 집행한 후에 피의자와 함께 살 필요가 없지만, 자신들은 한 교실에 머무는 학생들이었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명식은 학생회의 자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법집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결국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노자의 가르침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와 같이 자세한 내용들은 남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명식이와의 노자 공부가 재미있다.. ㅎㅎ 

댓글 2
  • 2022-04-29 23:12

    사물의 본성에 따른다. 작위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사물이 각각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얻는다. 이것이 나라의 利器이다. 

    자연의 본성에 따라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의 리듬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노자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예일듯 해요. 

    그런데 인간 사회제도 측면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본성대로, 억지로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의 한계/경계는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요? 

    좀더 다같이 잘 살 수 있도록 규칙, 법령을 만드는 것은 본성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만드는 것 아닐까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는 세상은 너무나 당연한데 왜 우리는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률을 억지로 만들어야할까요?

    이럴 경우 작위를 해야할까요? 아니면 작위할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떠들기만 해야 할까요? 

  • 2022-04-30 11:25

    저도 학생회 이야기를 해놓고 나니 이걸 좀 더 발전시켜서 에세이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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