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는 반전주의자인가?

여울아
2023-05-2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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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문탁에서 몇 번 <묵자>가 회자되긴 했지만, 막상 읽을 기회가 닿지 않았습니다 . 오래 전 문탁샘이 우쌤께 이문서당에서 묵자를 읽어보자고 제안했다가 까였던 게 생각납니다. "걔네 문장이 별볼일 없어."하고 우쌤이 말씀하셨죠. 올해초는 방학맞이 고전강의로 묵자를 기획했다가 신청자가 저조할 것 같아서 <사기>로 방향을 틀었던 것도 생각납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자백가세미나>에서 묵자를 처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묵자에 대해 사전에 아는 정보라곤, 이들이 강대국에게 공격받을 위험에 처한 약소국이라면 어디든 우루루(집단적으로) 달려가 도왔다는 것뿐입니다. 

 

천웨이런의 <묵자가 필요한 시간>에서 저자는 묵자 <비공非攻>편을 반전선언문으로 읽습니다. 일반적으로 <손자병법>은 주로 공격 책략으로, <묵자>는 방어 측면에서 군대 편제, 무기 및 장비, 건축공사 등을 연구하여, 각각 수비, 공격의 중국 고대 군사학 쌍벽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이들의 군사 사상은 침략과 약탈의 불의한 전쟁에 반대하는 비공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정벌 방어의 정의로운 전쟁을 지지하는 구수(救守)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쟁은 반대하지만 방어를 위한 전쟁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방어책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방어무기

연노거(연발식화살장치수레), 자거(일종의 투석기), 연정(타격용 도리깨) 등. 농기구, 수렵 도구, 수공업 도구 등을 전쟁 무기로 개조했다고 합니다. 땅굴을 파고 공격해오는 적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제자 금골리가 묻자 묵자가 답합니다. 

 

"땅굴 공격에 대비하려면 성 안에 높은 누대를 만들어 적의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한다... 평소와 달리 담을 쌓고 흙을 모으거나 탁한 물이 흐르면, 이는 땅굴을 파고 있다는 징후이다. 급히 성 안에서도 적진 방향으로 구덩이를 파고 땅굴을 뚫어 맞서야 한다. 적의 땅굴 방향을 판단키 어려울 때는 성안에 5보마다 우물 하나를 파는데 성벽 근처까지 이르도록 한다. 지세가 높은 곳은 5척까지 파고, 낮은 곳은 물이 나오는 곳에서 3척 정도 더 판다. 도공에게 큰 항아리를 만들도록 하는데 용량은 40두 이상이어야 한다. 그 항아리를 얇은 가죽으로 단단히 싼 뒤 우물 안에 넣어두고 귀가 밝은 자에게 항아리에 들어가 소리를 듣게 하면 적이 파는 땅굴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때 이쪽에서 반대편으로 땅굴을 파 들어간다..."<비성문>

 

와우~ 이들의 수성기술은 묵자 뒷편에 군사학자료로 묶여 있는데, 정말 자세합니다. 세미나에서는 이 부분을 읽지 않으려 했는데, 저는 왜 이런 부분들이 재밌을까요? ㅎㅎ 토용도 나중에라도 읽겠다고 할 정도로 흥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무판을 합쳐 만든 연판은 땅굴의 높이와 넓이를 꼼꼼히 따져서 만든다. 땅굴 안에서 병사들이... 전진한다. 연판에 긴 창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구멍을 뚫되, 그 밀도는 적이 독을 파괴하는 걸 막을 정도면 된다. 적과 마주치면 연판으로 막고 창으로 독을 보호한다... 굴이 막히면 연판을 가지고 물러난다. 일단 와두가 막히면 와두를 뚫어서 연기를 통하게 하고, 연기가 통하면 급히 풀무질을 해서 연기를 내야 한다. 굴 안에 있을 때 굴의 좌우에서 소리가 들리면 급히 전진을 멈추고 나아가지 않도록 한다. 만일 아군이 적의 굴에 모여 있다면... 땅굴로 공격하는 것은 실패할 것이다."(같은 편)

 

묵자가 독가스를 살포했다는 자극적인 문구가 웹사이트들에 돌아다니던데, 실제 원문은 담백한 편입니다. 땅굴 공격의 기원이 이토록 오래됐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합니다. 성왕의 도를 언급하는 문장들보다 훨씬 자세하고 현장감 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봤을 때 저는 이들을 군사전문가 집단이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 방어전술

높은 성곽을 오기 위한 공격용 사닥다리(운제), 땅굴 공격 및 기습을 대비하는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전국민의 민심을 얻어서 이들 모두의 전쟁 참여(참전)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묵자는 이러한 전국민의 병사화는 방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략이라고 강조합니다. <춘추공양전>에는 이들의 뛰어난 방어술을 묵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이 땅굴로 공격해온다고 하자. 10만 대군이라도 기껏해야 4개 굴을 넘지 않는다. 땅굴의 넓이가 가장 넓은 곳은 500보이고, 중간은 300보, 좁은 곳은 50보이다. 150보가 되지 않는 땅굴은 수비하는 쪽이 유리하고 적은 불리하다. 넓이 500보 땅굴은 장부 1000명, 정녀2000명(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노인과 아이 1000명 등 총 4000명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이것이 땅굴 공격 대비에 필요한 사람의 숫자이다. 노인과 아이를 동원하지 않는 것은 성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같은 편)

 

3. 비공이냐 반전이냐

이들의 비공논리는 가령, 어떤 사람이 과수원의 과일을 훔쳐도 그 사람을 잡아 처벌하는데, 하물며 남의 목숨을 해한 사람들을 그냥 두는 것은 불의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공격)하는 것을 비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이들의 승리를 기리고 도리어 의롭다고 유세하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묵자는 이들 강대국에게 당당히 불의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비공이 곧 반전일까요? 

 

묵자는 전쟁이 나려하면 제자들을 약소국으로 미리 보내 방어에 임하게 하고 자신은 강대국으로 달려가서 담판을 지었습니다. 묵자가 송나라를 공격하려던 초나라를 설득해서 사전에 전쟁을 막은 일은 가장 유명한 사례입니다. 먼저 묵자는 초나라의 운제(사닥다리)를 개발한 전쟁무기 개발자 "공수반"을 찾아가 "나의 제자 300명이 우수한 방어 무기를 가지고 지키기 때문에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공수반과 묵자는 각자의 무기에 성능을 입증하기 위해 모의 전쟁을 치룹니다. 이 겨루기에서 공수반은 아홉 번 공격했으나 묵자가 모두 막아냅니다. 끝내 그는 묵자에게 굴복을 선언합니다.   

 

비공이란 침략받는 나라를 방어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전에 전쟁을 막지 못하면 전쟁은 벌어지고 이들은 기꺼이 약자 편에 서서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위에서 나온 예시처럼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전국민이 참전하게 됩니다. 전쟁을 막기 위한 군비 경쟁 또한 오늘날과 다를 바 없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전쟁전문가(용병)300명과 뛰어난 방어무기 등으로 약소국이 힘의 균형을 맞추는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반전 운동이라면 이것이 곧 평화를 의미할까 의문이 듭니다. 

 

"목숨을 바쳐 죽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다음 공훈이고, 부상을 입고 병신이 되는 것은 하급 공훈이다"<비공하>

 

다음 주부터는 <묵경>이라고 불리는 경/경설 상하, 대취, 소취를 5번에 나눠 읽습니다. 묵자의 논리학이라고 불리는 묵경. 이런 용병들에게 웬 논리학?? 의문이었는데, 이번에 읽은 <비명>편 상에서 이와 관련해서 짐작해볼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묵자가 말했다.... 나라는 가난하고 인민은 줄어들며 형벌은 어지러워져 원하는 것을 잃고 원치 않는 것을 얻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묵자가 말했다. 그것은 운명론으로 사람들을 물들였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위로는 왕공대인들을 설복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일할 의욕을 저하시키다. 그러므로 운명론자는 어질지 못한 것이다... 묵자는 이것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에는 반드시 판단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묵자는 논리적으로 운명론을 거부하는 "이성주의자"들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귀신의 상벌을 믿었던 "신비주의자"들이다. 이것을 모순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너무 길다... (토용님이 해줘요^^)

댓글 2
  • 2023-05-29 00:57

    이렇게 길게 쓴김에 좀 더 쓰시지 그랬어요. ㅋㅋ
    전 묵자가 '이성주의자'인지 '신비주의자'인지는 잘 모르겠구요, 아니 하늘과 귀신의 상벌을 믿으면 다 신비주의자인가요? 그렇다면 제자백가는 대부분 신비주의자 아닐까요? ㅋㅋ
    어쨌든 지난번 제가 후기에 모순인 것 같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모순이라고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묵자의 기본 사상인 겸애를 바탕으로 하면 비공도 절용도 상현도 비명도 설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비공이 침략받는 나라를 방어해준다는 의미였어요? 비공은 말 그대로 다른 나라에 대한 침공을 반대한다는 뜻 아닌가요?
    겸애가 바탕이 되면 당연히 비공을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거고, 방어전은 침공에 어쩔 수 없이 대응하는 거라 다른 맥락에서 봐야할 것 같은데요.

  • 2023-05-30 17:35

    비공 정의는 천웨이런 저자에게서 따온 말이구요. 묵자가 침략전쟁은 반대하지만 방어전쟁에는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저도 그 풀이에 동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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