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묵자의 천(天)과 귀(鬼)

토용
2023-05-22 01:21
184

묵자에게도 천(天)과 귀(鬼)의 존재는 중요했다.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은 묵자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묵자는 <천지(天志)>편에서 하늘은 숲 속이나 계곡,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이라도 분명하게 반드시 보고 있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저버리고 달아나서 숨을 곳이 없다고 말한다.

 

묵자는 하늘을 인격신으로 본다. 하늘은 의를 바라고 불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군주는 하늘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로운 정치를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이는 묵자가 주장한 상동과 맥락을 같이 한다. 상동은 천하의 어지러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두머리를 뽑아서 그 의견을 받들고 따라야 함을 뜻한다. 천하의 백성이 천자에게 상동을 하더라도 천자가 하늘에 상동하지 않으면 재앙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올바른 정치를 해서 상을 받은 사람은 우, 탕, 문왕, 무왕이다. 묵자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항상 소환하는 성인들이다. 이들이 했던 정치는 위로 하늘을 높이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정치였다. 올바른 정치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빼앗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지 않고, 귀한 자가 미천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고, 꾀 많은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겸애와 비공의 근거를 천지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묵자는 하늘의 뜻을 중요시함과 동시에 <명귀(明鬼)>편에서 귀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귀신을 공경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근거가 좀 빈약하다. 묵자는 역사책의 기록과 살아 있는 사람들이 본 것 등을 예로 들어 귀신의 존재와 귀신이 상벌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성왕이 귀신의 존재를 믿고 섬겼다고 구구절절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묵자가 필요한 시간』의 저자는 귀신과 관련된 황당한 전설과 기록을 찾아낸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천(天)으로 천자를 경계하고 초인간적인 귀신의 역할을 긍정하는 묵자사상에 내부모순이 보인다. 묵자는 운명론을 거부한다. <비명(非命)>편에서 명이 정해져 있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또 묵자는 <상현(尙賢)>편에서 출신과 상관없이 어질고 유능한 인사를 발탁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계급 뿐만 아니라 농민, 상인, 수공업자까지 포함된다. 숙명론을 거부하고 계급의 평등을 말하는 묵자가 한편으로 상제와 산천의 귀신이 도와서 이득을 준다고 말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봐야할까?

댓글 1
  • 2023-05-23 15:10

    그쵸. 그래서 저자 천웨이런이 "천"은 천자를 견제하기 위함이고, "귀신"은 정의의 집행자라고 여겼다는 점이... 뭐랄까 짠하다고 할까요?
    하늘과 귀신에 기댈 수밖에 없던 이들의 처지가 그려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천인지분과 귀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했던 순자처럼 정말 온전히 이성으로만 홀로 설 수 있을까 저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순자 읽을 때부터 제 속마음은 그랬어요..) 오히려 천지와 명신에 기대는 묵자들이 제게는 더 친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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