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용>, <절장>, <비악>을 중심으로 

여울아
2023-05-03 15:40
330

 

지난 시간 저자는 <겸애>의 경제적 실천 방식으로 <절용>, <절장>, <비악>을  분류했다. 

겸애는 사랑을 나의 경계선 안쪽으로 가두지 않는 인류애다. 이런 인류애는 글쎄 교육받으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묵가는 인간 정신(본성)의 하나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러하기에 이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과 함께사는 세상으로 향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특히 이들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사회문화적인 풍습을 평가하고, 유가의 형식에 치우친 예가 민간에조차 파고드는 데 문제를 제기한다. 

 

묵가의 절용(절약)사상은 이들이 주로 "수공업자였다"라는 현실로부터 나온다. 농민, 공인, 상인들과 가까이 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유가의 유(柔)로써 부드럽게가 아니라 강(強)하게 현실을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유가의 예(禮)가 아니라  노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로 상례를 돕던 유자 계층이 점차 육체노동에서 벗어나면서 묵가와 대립했고, 이들이 육체노동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지를 놀리지 않고 오곡을 구별하지 못하는' 신체가 되었다고 묵가는 한탄한다. 묵가들의 입장에서는 예법이란 복잡하고 화려한 상례로 먹고 사는 유자 계층의 밥그릇 지키기일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회남자> 요략편을 근거로 "묵자도 처음엔 유자의 업을 배우고 공자의 학술을 수용했지만 그 예가 지나치게 번거롭고, 후장으로 낭비하고 구상(3년상)으로 생업을 해친다고 여겨 유가의 학설을 버렸다"는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이 "세 치 두께의 관과 세 벌의 수의와 금침"이라는 상례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사마담, 한비자, 순자 등의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토록 절장에 엄격한 것은 또한 이들이 "죄수" 신분이었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순자> 예론편에 의하면, 죄인들에게 "세 치 두께의 관과 세 벌의 수의와 금침"을 제공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절용과 절장이 겸애와 관련이 있을까? 묵자에게는 이러한 경제적 태도는 효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모상에서 곡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후장과 구상을 불필요하다고 여겼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형식이 아니라 상례의 근본은 애도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묵가가 절장을 주장하는 근거는 이러한 겉치레가 결코 성왕의 도가 아니라는 것. 장자도 절장을 주장했던 것을 보면, 춘추 전국시대 전란으로 대부분 먹고 살기도 빠듯하고 힘든 데 누군가는 호위호식하며 다른 이들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이러한 예를 치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내 부모를 아끼고 사랑하듯이 남의 부모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결코 남의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장자의 노동력을 쉽사리 착취하지는 못했으리라는 것이 겸애의 논리라고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저자는 "극기복례"가 왜 서민의 삶과 맞지 않는지를 말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예는 다섯가지 오례라고 한다. 고대부터 길례(제례), 가례(관혼례), 빈례, 군례, 흉례(상장례)의 오례가 있었는데, 극기복례를 주장하는 공자의 입장에서 어찌 오례를 소홀히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막연히 묵가가 극기복례를 비난한다고 생각했는데, 좀더 그 의미를 알게 되니 수긍하게 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진시황릉을 비롯한 각종 묘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수장품들을 보자면 이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직접 노동했던 묵가들에게는 얼마나 허영과 불평등으로 다가왔을 것인가... 이들의 주장 대부분은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용과 나는 <비악>에 대해서만은 묵가의 주장이 치우친 면이 있다고 한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음악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맹자>에는 맹자와 제선왕이 음악을 즐기는 것이 어떻게 왕도정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답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을런지 구체적으로 헤아려 본적이 있던가, 묵자는 묻고 있다. 첫째, 악기제조. 전국시대 증나라 왕의 묘에서만도 편종 64점을 비롯 무게 5000여 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둘째, 연주에 소모되는 노동력. 제선왕이 피리불 때 300명 악단으로 구성되었다는 <한비자>의 기록이 있다. 셋째, 감상을 위해 동원되는 사람들. 왕이 혼자 음악을 듣지 않고 서인이나 군자들을 불러들였다는데, 이들조차 음악에 빠져서 자신의 생업을 내팽개쳤다는 것이다. 걸주와 같은 폭군들만이 음주가무에 빠진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묵자가 결코 음맹은 아니며 생황을 불정도로 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천지와 명귀 편을 읽고, 2차 텍스트는 15장~17장, 26장을 읽어옵니다.  

댓글 1
  • 2023-05-06 23:36

    묵자가 상현, 겸애, 절용 등 거의 매 편마다 성왕의 도를 예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한 뿌리(유가)에서 나온 다른 가지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극기복례를 말한 공자와 절용의 묵자의 주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점점 형식에 얽매여 부귀와 사치로 물들어가는 속유들을 비판한 것이지 유가 일반을 비판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겸애와 차별애 때문일까요? 너무 이분법적으로 간단한 구도로 몰아가는 느낌이.
    역시 일단 원전은 읽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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