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묵자 사상의 키워드 兼

토용
2023-04-27 00:36
212

묵자 사상의 기본 키워드는 ‘겸(兼)’이다. 묵자를 대표하는 구호 ‘겸상애(兼相愛) 교상리(交相利)’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겸이다. 겸은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겸의 반대는 별(別)이다. 별은 남을 미워하고 해치는 것이다. 천하의 해로움은 당연히 이 ‘별’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인인(仁人)이 해야 하는 일은 천하의 이(利)를 일으키고 해를 물리치는 것이 된다.

 

묵자는 겸으로써 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비판은 당연하다. 겸이 좋기는 한데 실제 가능한가? 묵자는 만약 내가 전쟁터에 나가거나 멀리 사신으로 갈 때, 내 부모와 처자식을 누구에게 부탁할지를 묻는다. 자신의 부모를 위하듯 내 부모를 위해주는 친구일지 아니면 자신의 부모만을 위하고 남의 부모는 모른척하는 친구일지. 당연히 평소 내 몸, 내 부모, 내 가족만 생각하는, 별을 주장하던 사람이라도 자신이 아쉬운 처지에 놓이면 겸을 실천하고 있는 친구에게 부탁할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묵자는 겸을 인(仁)과 의(義)라고 말하며, 이미 옛날 4명의 성왕(우,탕,문,무)이 실천했다고 말한다. 실현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왕이 겸으로 정치를 했을 때 세상은 잘 다스려졌으니, 겸은 성왕의 길이고 만인이 이로운 것이다.

 

묵자의 겸애는 존비, 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유가에서 주장하듯 친소와 후박의 구별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가의 인애는 나로부터 시작해서 동심원으로 퍼져간다. 그러나 묵자의 겸애는 빈천, 원근이 없다.

겸애는 내가 먼저 내 부모를 사랑하듯 남의 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면 남도 내 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할 것이라는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겸상애’를 이론적 기반으로 ‘교상리’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겸애는 “늙어서 처자가 없는 자도 부양을 받아 그 수명을 다할 수 있고, 어려서 고아가 되어 부모 없는 자도 의지할 데가 생겨 그 몸을 키울 수 있다”는 보편적 복지로 확대된다.

 

이런 묵자의 겸애는 차별애를 주장하는 유가의 호된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유가도 “내 집안의 윗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남의 윗사람을 공경하고,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의 아이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것이 겸애와 뭐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그렇게 아버지도 없냐면서 비난했는지 모르겠다. 유가는 친소의 구분이 있으니 내 부모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부모에게까지 확장시키라는 것이고, 묵가는 내가 먼저 남의 부모를 내 부모 사랑하듯이 하라는 것인데, 방법은 달라도 결국 목적은 같은 것 아닌가? 솔직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소리 같다. 남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 속에는 이미 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유가의 비판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묵자>를 다 읽지는 않았지만 주장하는 바가 간단명료한 것 같다. 어려운 말, 애매모호한 말이 많지 않다. 먼저 유가를 배웠다고 해서 그런지 유가의 주장과 비슷한 것도 많다. 유가에서 떠받드는 고대 성왕들의 정치를 흠모하는 것도 똑같다. 유가가 요순에 치중한다면 묵가는 우임금이 롤모델이다.

전쟁의 시대에 서로 사랑하여 이롭게 해주고, 검소하게 살고, 전쟁하지 말자는 구호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기 쉬웠을 것 같다. 문제는 이 간단하게 보이는 말도 결코 실행하기 어려웠다는 것이고, 그래서 묵가의 이상사회도 이상으로 끝나버렸다는 데 있지만.

댓글 1
  • 2023-05-03 14:12

    전쟁시 출정을 해야한다면 누구에게 자신의 처자식을 맡길 수 있겠는가? 이렇게 질문하고 보니, 왜 당시 묵가가 천하에 유행하였는지 수긍이 가더군요.
    저자는 겸애를 근본으로 나머지 사상들을 겸애의 실천 일환이라고 분류해주는 것도 <묵자> 전체 구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정치 보장체계는 현인정치(상현편), 군사상 보장체계는 강국이 약소국을 침범하지 않는 평화(비공편), 경제는 절약을 중시(절장/비악/절용편), 심리상 보장체계는 자신의 운명에 저항(비명편), 사상관념으로는 하늘과 귀신의 제약(천지/명귀편) 등. 근데 나중에 묵경 부분은 이 구성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런지... 아리송해지면서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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