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차 후기 : 양생, 쉽지 않아!

토용
2022-10-15 02:16
300

희한하게도, 제자백가에 대한 책을 읽을 때 중국인이나 일본인 학자가 쓴 책은 서양인 학자가 쓴 책에 비해 잘 읽히는 편이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해도 서양인이 쓴 글은 한참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언어구조가 달라서인지 사유구조가 달라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양학자의 책은 별로 반갑지가 않다.

이번에 읽고 있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나는 책도 잘못 알아서(요즘 정신이 반쯤 나간 듯) 첫 시간에는 읽지도 못한 채 세미나를 했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읽느라, 거기다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해서 대충 읽고 세미나를 했다.

그런데 후기를 써야 한단다. 할 수 없이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읽으면서 뜬금없이 들뢰즈가 고마웠다. 얼마나 『차이와 반복』에 시달렸는지 줄리앙의 책은 그에 비하면 한결 읽을 만했다. 프랑스 학자 책 읽기 연습 시켜준 들뢰즈 땡큐! 역시 세미나를 하면 뭐 하나는 건진다. ㅋㅋ

그리고 또 하나. 서양학자의 해석 덕분에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는 누구의 책이든 겸손하게 잘 읽기로 했다.

 

이 책은 줄리앙이 장자의 사유 중에서도 ‘양생’에 대해서 쓴 것이다. 양생을 나의 삶을 가꾸는 것이라고 할 때, 내 삶에는 신체와 정신이 함께 공존한다. 우리한테는 이러한 사유가 자연스럽다. 오히려 영혼과 신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서구의 사유가 더 낯설다. 영혼불멸이 아니라 신체를 통해 영위되는 삶의 지속이 있을 뿐이다. 장자적 세계에서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만이 존재한다. 신체와 정신을 매개하는 섬세함(精)을 길러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중요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서구에서 신체라고 부르는 용어는 중국어로 형形, 신身, 체體가 있다. 줄리앙은 이것을 현실화한 형상(形), 인격적 실체 또는 개별적 자아(身), 구성된 존재(體)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른 용어들과 짝을 지어 서로 보완한다. 예를 들면 인격적 실체 신身은 그것을 지배하는 도덕적 의식의 기능과 마음心과 쌍을 이룬다. 구성된 존재 체體는 숨-에너지(氣)를 짝으로 갖는데, 기는 응축/응고를 통해 신체 속에서 물질화한다.

현실화한 형상 形은 응결(음의 요인에 의한)과 활생(양의 요인에 의한)을 통해 일어나는 물질화이다. 형은 나를 구성하고 나의 정체성을 형성시켜주지만, 현실화 단계 이전과 이후에는 해체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가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혼돈 안에 있는 변화에 의해 호흡-에너지가, 이 호흡-에너지로부터 현실화한 형상이 그리고 이 형상으로부터 생명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또 한 번의 변화에 의해, 생명은 죽음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형상 안에는 초월적이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정신의 차원을 간직하게 되는데, 이 정신은 본연의 에너지로부터 나온 것이다. 에너지의 흐름이 나와 특수하게 응집되어 나를 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나를 구성하는 현실화한 형상은 바로 나의 전 생명적 존재이지 물질적 존재로서의 나의 신체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정신적인 측면을 도덕적인 것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나 자신을 하나의 영혼과 신체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총괄적 관점에서 유기적이고 기능적인 창발적 실현 또는 형성으로 보게 되는바, 이러한 창발적 실현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맑게 정제됨과 투명하게 됨에 비례해 활기를 띠게 되고 또한 전개된다.” 여전히 애매모호 아리송하다.

줄리앙은 자신의 호흡-에너지를 맑게 하고 정제함을 통해 하늘의 창발성과 재결합하게 되고, 이러한 에너지가 인격적 발달의 기본 요소가 된다고 말한다. 양생은 신체적 차원에 있으면서 동시에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

 

줄리앙이 7장까지 신체와 정신에 대해, 마음과 호흡에 대해 기나긴 설명을 한 이유는 바로 8장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드디어 포정해우의 내용을 예로 들면서 앞서 자신이 말한 내용을 증명한다.

포정이 습득한 기술은 도이며, 그 도를 얻게 되는 과정이 바로 양생의 과정이다. 양생을 “자신의 신체를 정화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북돋우고 동시에 날카로움을 첨예화하면서 심신의 가장 훌륭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바로 포정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켜 궁극의 경지에 이르게 한 과정이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호흡 에너지가 잘 흐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섬세한 이해와 명정한 정신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을 정련시키는 것이다.

댓글 3
  • 2022-10-15 11:46

    토용님 돌아왔네요^^ 단번에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당구나 골프, 혹은 격렬한 편인 농구를 좋아했을 때 느꼈던 그 잠깐의 멈춤시간에서 줄리앙이 말하는 평화와 안정, 그리고 순간적으로 명징해지는 나 자신과 주변 공기의 흐름... 잠깐씩 저를 스쳐가서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당구를 배우려니 제 동선과는 안겹치고 골프를 배우자니 비거리엔 관심도 없고... 농구는 호흡이 딸려서 더 이상 남자들 사이에서 같이할 수 없고... 

     

    아.. 그럼 무슨 재미로 사나.. 책 읽을 때 이런 평화가 찾아오나?? 깊이 생각 안 해봤는데... 몰입의 순간이 있잖아요.. 이런 순간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는 게 양생이겠죠^^

     

  • 2022-10-15 11:49

    앗 자전거를 탈때 추가요. 

    이번에 자전거 사고 때문에 많이 놀라지 않길 바래요. 한번 무서워지면... 나처럼 못타게 돼요. 

  • 2022-10-18 23:33

    양생, 쉽지 않아ㅠ  맞아!!

    근데 양생을 설명하는 줄리앙의 글도 쉽지 않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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