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프랑수아 줄리앙

여울아
2022-10-07 18:37
346

반갑다 프랑수아 줄리앙. 오늘도 여전히 낯설구나!

이토록 얇은 책을 세 번에 나눠 읽겠다고 하니 토용이 얼마나 씹어 읽으려고 그러냐는 타박을 들었는데요. 

 

<장자, 삶의 도를 묻다>라는 책입니다. 

 

제가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에서 입니다.

10년 전에 읽은 책이니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고, transcendental 같은 개념으로 맹자의 도덕성을 설명하는게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이해를 했던 건 아니고 한 단어로 표현하는데 적확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칸트에서 이 단어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ㅎㅎ

 

이외에도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은 없다> <사물의 성향, 세> 같은 책들은 쉽게 쓰여져서 또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제 취향 저격은 세 였어요^^)

 

말이 길어진 이유... 그러나 도통 <삶의 도를 묻다>를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은 기억하고 책꽂이에도 꽂혀있고 하지만

도통 본 기억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세미나에서 그의 악명 높음을 미리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책은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세미나 전날까지 책을 독해하고들 있더군요.

전하려는 내용 보다는 우리말 독해가 어렵더라구요. 

 

  1. 정신과 신체의 분리 문제

장자의 양생은 정신과 신체의 구분이 없이, 삶의 양육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보살피는가. 

저자는 서양철학의 역사에서 이러한 분리가 일어난 원흉을 찾아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세 가지로 나누고, 등급을 매깁니다. 여기서 1단계는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을 포함하는 영양을 섭취하는 영혼입니다. 가장 높은 3단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유하는 영혼이지요^^ 

그는 인간이라면 동식물과 다른 더 위대한 활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결과적으로 영양섭취와 같은 몸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해지고 지성의 활동을 유기체의 생명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저자는 평합니다. 

그렇다면 장자의 양생술은 어떠한가? 신체의 단련은 어떻게 정신을 양육하는가? 

그는 아무래도 호흡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1장에서는 다만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적 존재의 배후-근원-로 거슬러 올라가 전적으로 다른 신체 기관, 즉 등의 중심에서 우리의 중추처럼 밑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올라가는 바로 이러한 주 동맥(이 동맥을 통해 호흡의 숨결은 미묘하게 지나가고, 또한 이것은 에너지를 지배하는 맥관으로서 사용된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비어 있는 내관을 통해 유입되는 에너지를 아래에서 정수리까지 그 어느 한편에서도 벗어나지 않고 순환시키도록 만드는 이 동맥은 생명선으로서 이해되어야만 하고, 더 나아가 행위의 "규칙"과 "규범"으로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이런 초점의 이동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이동은 인식에 의한 사유를 소산시켜 우리를 생명적 중심축-이 축을 통해, 유기적 조절 작용은 각자 속에서 매 순간에 이루어진다-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39p)

 

빛내님한테 요가를 배울 때 정수리까지 호흡을 닿게 하라는 얘길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이러한 에너지의 순환이 나의 팔다리 뿐 아니라 나의 생각과 윤리까지도 만들어낸다는 줄리앙의 해석 아니겠습니까. ㅎㅎ 

호흡은 너무 익숙하고 일상적이라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을 살지우는 지 디테일하게 적시하고 있습니다. 반갑다 줄리앙~ 이럴 줄 알았어!

 

2. 어떻게 수양할 것인가? 

1장의 수많은 독해할 거리들을 "단념" "포기"하고, 우리 세미나에서 설왕설래했던 줄리앙이 소개하는 정련(수양)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는 어쨌든 물질과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인지 이 둘 사이를 잇는 매개물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그것이 또한 낯섭니다. 

 

나는 이러한 매개와 받침점을, 중국적 사유가 그토록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바로 저 섬세함의 전이 단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섬세함은 물리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영역을 언제나 떠나지 않으면서도(신앙 차원의 호소가 아닌 방식으로), 동시에 구체적인 것의 둔중함과 한계 그리고 불투명성으로부터는 이미 벗어나 있다. 사실 중국인은 인식을 위한 순수한 목적에서 그리스인과 달리, "존재"의 서로 전혀 다른 차원들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지 않았었다. 그들은 실제로 최대한의 효력을 도출해내기 위해 더 유연하고 덜 고착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더 "생생한" 바로 이 "얽매이지 않고" "명정한" 단계에 대해 열정적으로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52~53p)

 

아뿔사! 물질과 정신을 잇는 경험적인 매개물로서 그는 섬세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섬세함이란 뭘까요? 어디에도 함몰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유연하고 극도로 정교하게 "정련화"와 "명정화"의 단계로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로써 자신의 내적인 힘으로 세상사의 고착 상태로부터 단숨에 벗어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때 추동력이 섬세함이라고 하네요. 

섬세하게 자기 삶을 보살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세상 섬세해본적이 없어서... 섬세함이 이렇게 대단한 건 줄 몰랐습니다. 누구 섬세함의 위대성에 대해서 좀더 생동감 있게 알려주세요. 

섬세함이 예민하지만 고집하지는 않고  치밀하지만 집착하지는 않는 태도일 것 같긴 한데, 왜 이렇게 섬세함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추상적으로 느껴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이런 섬세함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줄리앙에게 수양(정련)이란 섬세함을 극단으로 밀어붙여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섬세함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는 건 뭘까요? 극도로 예민해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럼 자기 자신이 엄청 피곤해지는 것 아닌가요? 

그럼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이렇게 집중해서 귀기울일 수 있다면 줄리앙의 말처럼 자신을 좀먹는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자기 삶을 변화-자극시키면서 펼치게 만들 수 있겠지요^^

프랑수아 줄리앙이 말하는 수양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다음 주는 

5. 무심지경 - 가마솥

6. 우리는 과연 신체를 소유하고 있는가 - 자작나무

7. 자신의 호흡(에너지에 대한 양생) - 여울아

8. 양생의 과정들 - 토용

 

한 편씩 꼼꼼하게 볼 필요가 있는 텍스트 입니다.

대략적으로 요약하기 보다는 자작나무님처럼 (좀 헷갈리더라도^^) 주요 부분이나 어려운 부분을 탐구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오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의견주세요~

댓글 4
  • 2022-10-08 11:27

    혹시 영어본이 있으면 도움이 될까요?

    영어본 pdf파일 올려드립니다

    (아, 물론 저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Nourrir Sa Vie A L'Ecart Du Bonheur

    영어본 제목은 Vital Nourishment: Departing from Happiness이에요^^

    • 2022-10-08 21:12

      감사합니다~~♥♥

  • 2022-10-08 15:40

    장자읽기가 즐거워 윤슬님과 강신주씨가 쓴 책들을 읽고 있는데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도 읽어봐야겠네요. 말씀대로 쉬워야 할텐데 ㅎㅎ

    • 2022-10-08 21:14

      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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