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이 되는 후기를 쓰겠소~오~

여울아
2022-09-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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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내편의 마지막은 응제왕편입이다.

왕보는 제왕을 노자의 제왕술이 아니라 각자 자기 삶의 제왕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왕이 되는법 혹은 제왕이 따르는 법칙은 무엇인가에 방점을 두고 이 편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결이 왕예에게 4번 물었으나 모른다고 답한 것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는 장면에서 유추되는 제왕의 태도는 부지입니다. 

"나는 모른다..." 이것이 장자가 생각하는 제왕의 모습입니다. 왕보는 이것을 누구의 스승도 되길 거부하는 제왕의 태도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당대 유학자 순자가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특이점 중 하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인데, 

이것은 유가에만 국한된 흐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때를 후세들이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부르는데는 너도 나도 직간접적으로 스승을 받들면서 기꺼이 제자의 자리에 서려했던 수많은 식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응제왕편은 그런 식자들을 향한 장자의 나즈막한 읊조림이겠지요. 

그렇다면 제왕이 따라야 할 것이 지식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연(천)의 순리입니다. 장자는 인간이 따라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온전하게 하는 바라고 말합니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 선의로 칠규, 구멍 일곱개를 뚫어줍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혼돈은 7일째 죽고 맙니다. 

후쿠나가는 이를 생명 없는 질서의 시작이라고 풀이했는데, 어쩌면 우주의 시작에 대한 힌트가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목구비 7개의 구멍으로부터 인간의 욕망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늘이 준 것 아닌가요? 장자는 이들 구멍이 오히려 하늘의 온전함을 해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자는 자기 삶의 제왕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감각기관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이 아니라 하늘을 따라야 함을 마지막 내편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가마솥님은 응제왕편은 정치철학으로 보기 어렵지 않은가 문제를 제기하며, 여기서 제기하는 도는 차라리 인간의 정신세계 완성을 위한 것이라고 평가하셨는데요. 칠규, 일곱 구멍에 대해서는 인류의 문화가 뚫어놓은 구멍이라는 후쿠나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장자가 기존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노자처럼 외부적인 다스림이 아니라 내면의 다스림(마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력의 재편과 같은 것은 그의 관심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작나무님은 응제왕편이 '부지'에서 시작해 지식의 문제를 계속 다루고 있으며, 열자가 집으로 돌아간 것은 자신의 지식 수집욕을 비워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겠냐고 해석했습니다. 제게 인상적인 것은 설결과 왕예의 대화에서 생략된 이들의 질문과 답변에 관한 해석입니다. 무엇을 물었을까? 아마도 왕이되는 방법을 물었겠지. 당대 최대 관심은 누가 천하를 통일하는가였으니. 그런데, 그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함으로써 아예 질문의 지반 자체가 무력화됨을 잘 포착하셨어요. 

 

잎사귀님은 내편 해설서 중에서 가장 찬밥 신세였던 앨린슨의 책으로부터 인용해오셨습니다. 

"최고의 이해는 초월이라는 전체 기획이 하나의 커다란 농담임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커다란 농담인 이유는 엄밀하게 말해서 초월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327p)"

제가 마지막 응제왕편을 읽고났을 때 느꼈던 감정이 무엇일까? 8주간 몰입했던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다 급기야 땅바닥으로 내동댕이 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아프고 처절하기 보다는 옷자락을 툭툭 털고 일어나며 헛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기분??? 아무튼 저는 마지막 장을 그렇게 덮었습니다. 

 

윤슬님은 "열자의 삶이 응제왕이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제왕이 될 수 있다." "장자의 도는 지금 여기서, 소박하게"와 같이 간결한 명문장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내편 하나하나를 꼼꼼히 훑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장자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 -그의 철학은 너무 크다. 그래서 실효성이 부족하다. 
  • -하늘(자연)에 가려 인간을 보지 못했다.(순자)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장자 외/잡편을 통해 우리는 이런 장자 비판에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장자 시즌2는 더이상 메모가 없습니다. 이제 돌아가면서 두 사람씩 2차 텍스트 발제를 맡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열심히 재미있게 공부해오신 잎사귀님은 건강상의 문제로 내편까지만 함께해주시기로했습니다.

우리 또 만나서 같이 공부해요, 잎사귀님~

고민 중이신 윤슬님, 힘내서 같이 해요~~~

내편 함께 해주셨던 모든 분들, 장자가 전하는 자기 삶의 제왕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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