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자유의 삶

토용
2022-10-30 00:02
253

지난 시즌 장자 내편을 읽을 때 후쿠나가 미츠지의 내편 해설서를 같이 읽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친근하게 장자에 대해 알려주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번 시즌에 그의 또 다른 책인 『장자, 고대 중국의 실존주의』를 읽게 되었다. 반쯤 읽고 나서 든 느낌은 ‘이런 신박한 철학책이라니!’ 마치 1인칭 시점에서 쓴 소설 내지는 에세이를 읽는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 장자를 처음 읽고 있다. 지난 시즌 첫 세미나 시간에 소요유편을 읽고 막연히 장자가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의 실존 철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장자는 정치, 도덕을 말하는 철학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엄밀한 정의를 내리기 곤란하다고 말한다. 다만 실존주의는 자기 자신의 현존재에 관심을 두는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며, 객관적・대상적인 혹은 체계적・추상적인 진리에 대하여, 인간의 개별적・구체적・주체적인 진리를 문제 삼는 입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 유럽의 실존주의 철학이 이런 성격을 가진다면 장자 철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장자 철학은 허무주의, 염세주의, 도피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장자 철학도 유럽의 실존주의 철학처럼 인간의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장자 철학이 실존 철학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

 

저자가 이렇듯 실존에 대해, 인간의 자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유년기부터 인간의 죽음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중국 대륙의 전쟁터에서 공포 속에 지냈다고 했다. 인간 사회의 복잡함과 인간의 저주와 원한 등을 겪으면서 『장자』를 읽었고, 그러한 현실 상황에서 장자를 이해하고 해석했다고 한다. 2천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장자와 저자는 같은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하고 인간의 존재를 사유한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나 인간은 결정적으로 부자유하다. 왜냐하면 탄생과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 태어나는지 모른 채 태어나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알지 못한다. 인간은 탄생과 죽음에 얽매여 있는 부자유스러운 존재이다. 현실에서 부자유스럽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장자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부자유한 현실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장자 철학은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 찬 현재의 시간, 극한 상황을 어떻게 사느냐 에서 출발한다. 처음부터 신을 갖지 않는 인간의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의 존재를 전우주적 규모로 파악한다. 본래 모든 것이 전부 하나(一)라는 맥락에서 자기와 세계를 파악한다.

 

* 이번 시즌에 유독 후기를 2차 텍스트 위주로 쓰다 보니 『장자』 외,잡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안 하게 된다. 외,잡편이 재미는 있으나 내편만큼 강렬하지도 않고 또 내편의 부연설명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계속 반복하다보니 내편을 좀 더 잘 이해하는 장점도 있다. 어쨌든 잘 읽고 있다는 얘기^^

댓글 3
  • 2022-10-30 13:13

    삶과 죽음의 문제... 이태원 대참사 다음 날이어서인지. 장자 또한 나라가 책임지지 않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어찌 사유했을까요?

  • 2022-10-30 22:01

    토용님의 말씀으로 실존주의가 뭔지 더욱 감이 잡히네요. 예전에 가마솥님이 being이라고 알려주셨었는데 저는 한 조각씩 맞춰져야 개념이 잘 잡히는 편이라. 감사한 글 잘 읽었습니다. 장자 고대 중국의 실존주의가 도서관에 한 권도 없네요. 아쉽구만요.

  • 2022-11-01 22:33

    장자는 정말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천갈래 만갈래로 이해될 수 있음을 이번 책에 또 한번 느낍니다.
    그 놈의 들뢰즈를 읽고 나서 장자를 다시 보면 또 다르게 이해될라나? 그런데, 들뢰즈가 이해가 되어야 말이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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