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차 후기 : 건강과 장생은 달라~

자작나무
2022-10-25 11:55
178

 

신선까지 될 생각은 없지만 대개 '오래 산다'는 말은 건강과 의학의 범주일 거라고 두루뭉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장자, 삶의 도를 묻다>에서 줄리앙은, 이 둘은 완전 다른 범주라고 본다. 서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들에게 건강이란, 서구의 담론에서 보자면 완전성과 관련이 있다. 즉 건강상태가 100이라면 그래서 그것이 이상적이라면 거기서 10이나 20 등등으로 에너지가 축나는 것이 병이라는 것이다.  장생이란 노화를 피하는 것으로 지속성이란 단어와 관련이 된다. 이렇게 완전성과 지속성은 서로 충돌하는데, 이를 하나로 이어서 사고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근대 사회의 도래가 있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야망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과 과학 및 방법론을 통한 합리적 실험 등으로 생명연장에 관한 담론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줄리앙에 따르면 생명 연장의 야망은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데카르트도 그렇고 칸트도 그렇고, 이들은 도덕적이고 의지적인 차원으로 귀결되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패스하고, 왜 이들은 추상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일까. 내가 생각키로, 인간 혹은 인체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앞서 서구는 건강과 장생을 두 차원으로 나눠서 볼 것을 주장했지만, 중국은 그것을 동일한 운동에 속한다고 봤다. 건강을 병이 없는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 또는 삶의 흐름을 하늘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번갈아 나타남과 보상받음 속에서 유지 내지 보전시키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렇기에 이는 절대적 규칙의 원리가 아니라 조절 작용의 원리"(197)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세계/환경과 음양의 조화를 맞춰 살아가는 존재이다. 바깥 환경에 의하거나 내적 원인으로 인체의 음양의 조화가 깨어지지는 것, 그것을 병이 들었다고 중국에서는 말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에서는 '건강학'이라는 말 자체가 없고, 평상시의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삶, 삶의 기술 이런 것을 일러 양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양생이 장생과 관련을 맺으면서 깊이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선이라거나 불사라고 하는 것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생명의 지속성에 대해서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줄리앙은 양생과 장생을 논하면서 혜강의 <양생론>을 다루고 있다. 장자는 인간 존재를, '기'를 가지고 생명을 논하면서 지인이나 진인처럼 장생불사하는 존재를 상정하는데, 일견 이상적 롤모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에서 지인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는 그다지 섬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는 말은 장자의 논점은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보는 시선이나 위태로운 현실에서 무엇이 더 중한지를 바라볼 수 있게끔 사고의 전환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비유나 잠언같은 형태로 그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ㅠ 그런데 줄리앙은 장자를 논한 다음에 혜강을 이어서 다룬다.  둘 사이의 어떤 긴밀함을 봤을 수도 있고, 중국의 양생 사유의 발전 측면으로 혜강을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줄리앙에 따르면, 혜강이 건강하게 장생할 수 있는 방법을 이렇게 밝힌다.  "자신 안에 에너지 너머치는 호흡을 끌어들이고 그 기로 자신을 보양한다면, 생명의 논리에 부합 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해 각자에게 부여된 생명력의 몫을 온전히 펼칠 수 있다."(188) 장자의 텍스트에서 논의된 다양한 논점 중 하나를 혜강이 이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혜강의 논점은 농사에 대한 비유로 그려진다. 즉 한 뼘의 1만큼의 수확물을 얻던 논에서 10으로 증가시킬 수 있듯이, "생명력을 다른 형태의 자산처럼 운영"하는 것이 바로 양생이라는 것이다.  

 

줄리앙의 복잡하고 복잡한 논의를 3번에 걸쳐서 검토해왔다. 어떤 곳은 비교적 스무스하게 또 어떤 곳은 멘붕인 상태로 헤쳐왔다. 그런데 다른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가령 장자 텍스트를 해석하고 자신의 논지를 끌고 가는 부분은 우리도 <장자>를 읽으니까 넘어갈 수는 있었다. 그런데 뒤의 결론부분에서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지가 잘 모르겠다. 서구와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져오자, 그런데 중국식 사유방식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가령 존재론?)도 있으니까, 서로의 논점에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을 상호대조등으로 보충하자 뭐 이런 식인 것 같다. 아마도 양생담론에서 보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사고는, 서구의 '주체'라는 것과는 완전히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고, 거기서 파생되는 인간 도덕의 문제는 분명 서구가 상상치도 못한 다른 식의 대안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보는 듯도 하다.  어렵지만 줄리앙의 이런 저런 책을 다 읽어본다면 그만이 가진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답으로 우리의 공부가 한 마디라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후기에 장자는 어디 가고, 줄리앙만 남았는지 모르겠다.ㅜㅜ

*가마솥 샘이 이번 셈나 시간에 불참하셔서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는ㅠㅠ; 우리 오손도손 잘해보아요~~

 

댓글 1
  • 2022-10-25 15:53

    철학학교 칠판에도 적혀있고 (결석생 가O솥), 제자백가에서도 적혀있고 (불참자 가마O) ㅠㅠㅠ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여기 저기 들판으로 뛰어다니다 보니......ㅎㅎㅎ

    근데, 줄리앙이 장생과 건강, 나아가서 양생을 구분하는 부분에서 저는 나름 '옳거니!'하였답니다.

    메뚜기처럼 뛰어다닐 기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잔디 위에서 실감하고 있으니까요.......흐흐흐

    다음 번엔 '떠든 사람 가마솥!'으로 적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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