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세미나] <트러블과 함께하기> 첫번째 시간 후기

르꾸
2023-02-01 05:40
291

이번 시간에는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 1,2장을 읽었다.

개인적 경험을 먼저 이실직고하자면,  ‘사이보그 선언’(1985)에서는 “현실적 생존을 위해 사이보그를”,  ‘반려종 선언’(2003)에서는 “빨리 달려, 꽉 물어”,  “닥치고 훈련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해러웨이가 10여년이 흐른 다음 또 어떤 것을 내세울지 자못 호기심 충만해 시작했지만 애초의 궁금증은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사라지고 급 피곤해지는 지경에 도달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을 베푼 이노무 각주는 왤캐 길며, 각주 읽다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해러웨이 스스로 누구를 인용할 것인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그녀가 사상적으로 빚진 이론가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그녀의 ‘반려인’들은 왤캐 또 많으며 그야말로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라 이름도, 이론도 생소했다.  자괴감 속에 그녀가 그 ‘반려인’들과 어떤 지점에서 소통하고, 전유하고, 탈주하는지를 세밀하게 포착하기 힘들어 대략난감으로 마무리된 용두사미적 책읽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후기지만 세미나의 기억을 떠 올려보면,  1장에서 해러웨이는 손상된 지구와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인간예외주의 혹은 개체주의적 사고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탈인간중심주의 형상으로 포스트휴먼(posthuman)이 아니라 퇴비(compost)를 내세운다. 퇴비는 삶과 죽음의 계속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퇴비가 되자”, 세상에 퇴비라니ㅋㅋ.  이런 순환 속에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을 그려보면 지구의 인간, 비인간 존재들은 모두 크리터들(critters)로 동등한 권리를 지니며 크리터들이 거주하는 지구는 테라폴리스(terra/땅)+polis/정치체)가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이야기는 복수종의 반려종들과 어떻게 관계를 잘 맺을 것인가인데, 이를 해러웨이는 ‘실뜨기’(SF)로 은유화하고 있다.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원성을 눈치챈 듯 해러웨이는 다양한 형태의 비둘기를 통해 ‘반려종과 실뜨기’하는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이는 결국 비둘기와 ‘함께-되기’를 통해 세계를 만드는 과정(worlding)이며, 이것은 결코 즐겁고 유익한 것들로만 채워지지 않는데,  이를 해러웨이는 ‘트러블과 함께하기’라 명명하며 테라폴리스에서 잘 살고 잘 죽기 위해서는 트러블과 함께할 수 밖에 없음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함을 끈질지게 설파한다.

 

‘실뜨기’는 공-산적(共-産, sympoietic)인데, 해러웨이는 이를 ‘촉수 사유(tentacular thought)’에 기반한다.  테라폴리스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인간, 비인간을 상상할 때 이들의 얽힘을 형상화하기 위해 땅속의 거미(cthulhu)에서 이끌어낸 촉수 사유는 개체주의(individualism)의 대안으로 등장한다.  “촉수성은 공-지하적이고, 무서운 붙잡기와 싸움과 엮임으로 휘감기고, 살기와 죽기를 만드는 생성적 반복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해 릴레이를 한다”(62쪽).  이러한 감각으로 해러웨이는 지금의 시대를 인류세,  자본세보다는 쑬루세(chthulucene)로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촉수 사유’에 영감을 준 반려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독립된 유기체들의 ‘자율생산’ 시스템(자기규정적인 공간적/시간적 경계 속에서 작동)보다는 자기-규정적인 공간적 혹은 시간적 경계가 없는 집합적 산출 시스템을 칭하는 ‘공-산’의 아이디어를 들려준 케이티 킹(Katie King),  개별자들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현상 속에서 얽혀 있는 성분들의 ‘내부-작용’의 중요성을 얘기한 캐런 배러드(Karen Bard),  가타리(Guattari)를 경유한 이자벨 스탕제르의 ‘함께-되기’,  ‘어떤 생각들이 생각들을 생각하는지’를 질문할 것을 강조한 ‘사유 실천(thinking practices)’의 메릴린 스트래선,  ‘사유 결여’를 중요하게 지적한 한나 아렌트,  폐허가 된 땅에서도 성장한 송이버섯을 추적하며 손상된 지구에서 공-산을 실천하는 애나 칭,  멸종 직전의 조류종과 함께하며 애도하기와 응답-능력의 중요성을 설파한 반 두렌,  가이아에 대한 유물론적 사유에서 공명하면서도 ‘전쟁’을 통한 해결과 가이아에 대한 사고에서 차이를 보이는 브뤼노 라투르....

 

인류세는 결국 인간종에게 과도한 역할과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위대한 남근숭배의 인간화와 근대화 이야기를 반복한다.  모든 종류의 인간과 비인간 노동자들을 쓸어버리는 노동혁신,  크리터들과 사물들의 재배치·재구성과 함께 설탕과 귀금속,  플랜테이션,  원주민 집단 학살,  노예제의 네트워크들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즉 자본세 이야기가 중요하다.  하지만 해러웨이는 자본 역시 새로운 세계만들기에 얽힌 관계들에서 단지 하나의 플레이어일 뿐임을 강조한다.  ‘자본’ 이전에도 사람과 식물과 동물의 재배치, 거대한 숲 파괴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본세가 마르크스주의에 기대고 있는 한 결정론과 목적론,  거대담론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 주목하며 해러웨이는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  진보와 근대화에서 빠져나올 것을 요구한다. 역사적으로 구체적 상황에 처한 관계성의 세계만들기는 세속의 신같은 인간이나 역사의 법칙, 기계 자체 혹은 근대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92쪽).  자본세는 관계성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그녀는 강조한다.

 

해러웨이는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Eduardo Viveiros de Castro)와 데보라 다노스키(Déborah Danowski)의 ‘수천의 이름을 가진 가이아’  콘퍼런스를 인용해 가이아가 고대 그리스나 뒤이은 유럽 문화에 국한되어 있다는 관념을 비판한다.  그녀는 쑬루세의 아이콘으로 포트니아 테론,  포트니아 멜리사,  산호초 등을 가져오면서 지구의 생물다양성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 쑬루세의 공-산적인 일이자 놀이임을 강조한다.  그녀는 인간(Anthropos)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공-산의 크리터들 중 하나로 테라폴리스의 구성원이 될 때,  우리는 어떤 생각들이 생각들을 생각하는지를 질문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에서 ‘반려종 선언’으로 다시 ‘쑬루세’ 호명으로 넘어가면서 던지는 화두를 우리 삶과 연결시켜 본다면 어떤 얘기들을 할 수 있을까를 놓고 여러 얘기가 오고갔는데 그중  팬데믹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식들이 지금과는 달랐을거란 얘기가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우린 여전히 해러웨이의 사유방식과 통찰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다. (진화/분자 등의 온갖) 생물학, 과학사, 인류학, 철학, 동물학, 심리학, 미술, 문학, 페미니즘 등을 넘나들며 자신의 촉수 사유를 실뜨기하며 관계성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언제쯤이면 우리도 해러웨이 식 ‘촉수 사유’가 가능할까?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촉수 사유도 여튼 ‘트러블과 함께 하는’ 중이다^^

댓글 1
  • 2023-02-03 08:58

    술술 읽히는 후기 감사합니다^^
    세번째 책으로 넘어오니 조금은 해러웨이 선생님의 개념과 사유가 와 닿을 듯 합니다.
    촉수가 그리로 가 닿는 거 겠지요?
    어떤 사유를 가지고 어떤 관계를 엮어가야 할지 생각해보기!
    후기 읽으면서 한 번 더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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