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세미나] <타자들의 생태학> 후반부 후기

명식
2023-03-02 10:22
83

 

필리프 데스콜라의 타자들의 생태학, 그 후반부인 3장과 4장을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후반부에서 데스콜라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무래도 이원론을 넘어선 일원론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연과 문화, 비인간과 인간이라는 이분법에 기인한 이원론. 그 과정에서 데스콜라는 인간이 타자, 특히 비인간과 관계를 맺는 근본적인 방식이자 인간이 존재에 부여하는 다양한 특성의 체계를 존재론이라고 명명하면서 근대의 자연주의 존재론이 가져온 특권적 지위를 비판합니다. 자연주의 존재론은 자연과 문화를 엄격히 구분하고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자연을 탐구하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 신체성을 갖지만 오직 인간만이 내면성을 갖는’ 체계이지요.

 

“근대사회의 분석가는 자신이 연구하는 근대인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가 똑같은 시공간을 공유한다고 하는 자연주의 우주론에 침전되어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을 낯설게 만들며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고 또 세계 속 자신이 차지한 지위의 기반을 더욱 강력하게 질문하게 만드는 탈중심적 사고를 힘 있게 밀어붙이지 못한다.” (뚜벅이샘 발제문에서 재인용, 본서 89p)

 

바로 이런 점에서 인류학은 자신의 역할을 찾아냅니다.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비근대사회’를 경험함으로써 자연주의의 보편적 이분법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통한 사회생활의 일반적 지식으로 이해되는 인류학”(118)은 다양한 접근법을 한데 엮는데서 강점을 보이며 자연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과학의 문을 두드립니다.
인류학은 사람됨의 본성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감에 있어 과학과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며. 자연적 대상과 사회적 존재의 관계성을 다루는 개념적 도구(새로운 일원론을 위한)는 광범위하게 다시 사고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본서에서 데스콜라가 말하려는 바이며, 또한 그는 이 새로운 ‘개념적 도구’가 어떠한 형태가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이 도구는 “사회적인 것과 물질적인 세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험을 즐겨 묘사”하고 “주어진 세계를 친숙한 환경으로 즉각 받아들이는”, 말하자면 거대한 보편체계에서 벗어나 세부적 디테일들을 살필 수 있는 현상학의 접근법을 참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접근법이 국지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강점에 비해 지구적 수준의 복잡성, 존재들 간의 다중적인 형태에 대한 이해에서는 약점을 보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이 도구는 대칭성 인류학의 접근법을 참조해야 합니다. 브루노 라투르 등 과학사회학자들이 구축한 이 방법론은 자연과 문화의 두 극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고 두 극이 서로를 번역하며 그 혼종의 조합을 창출하는 실천적 연결망을 형성코자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칭성 인류학의 접근법은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분류하는가, 다양한 집합체들을 어떻게 비교하며 구별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등 분류적 측면에서의 디테일을 설명하는 일반 이론이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데스콜라는 현상학적 접근법과 대칭성 인류학적 접근법의 강점과 한계를 차례로 짚으면서 기존의 인간 주체와 대상적 세계 사이의 이원론을 제거하기 위한 어떤 ‘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그의 일원론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일원은 하나의 특정한 지배적 체계, 우위를 갖는 지배적 체계로서의 일원이 아니라, 보다 단순하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 관여적 사고와 행동의 틀”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의 일원론입니다. (그는 다양한 존재론들 사이에는 어떤 우위가 없음을 명확히 합니다.)
그는 그 틀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을 ‘월딩(worlding)'이라고 부릅니다. 현대 인류학의 과제는 바로 이 월딩입니다.

 

“인류학이란 특정 유기체가 세계에 서식하며 세계 속에서 용도에 맞는 이런저런 속성을 식별하고 세계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또 그들 사이에서 매우 다양하지만 유한한 자연과의 지속적이거나 간헐적인 유대를 통해 변환에 이바지하는 각양각색의 방법을 가장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방식으로 기술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111)

 

“이 도구에는 첫째, 메를로퐁티의 공식이 포함된다. 인간은 수많은 ‘연관체’의 존재에 직면하여 한정된 사회적 공식에 따라 이러한 지속적인 관계를 조직하려 시도해왔다는 것이다. 이 시도들에는 애니미즘, 토테미즘, 유추주의, 자연주의 등등이 해당한다.
둘째, 이 도구에는 인간이거나 비인간인 ‘타자’와의 실천적 관계를 지향하는 상이한 가치체계들과 그 가치체계가 각 사회에 부여하는 독특한 스타일이 포함된다. 호혜성에 대한 기대, 약탈적 전용, 무심한 증여, 보호, 생산 등이 해당한다.
마지막 셋째, 이 도구에는 세계의 요소들을 광범위한 명명법으로 나누기 위한 분류화의 장치를 포함한다. 이 분류화를 위한 인류의 모든 스키마(과거의 반응이나 경험에 의해 생성된 생물체의 지식 또는 반응체계로서 환경에 대해 적응하고 대처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는 정신 구조의 형태로 존재하며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여과되고 분류되고 조합된 결과물이다.
이 요소들의 성질을 명시하고 그 구성의 규칙을 해명하고 그 배열의 유형학을 작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류학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과제이다.” (122)

 

전반적인 감상은 데스콜라의 문제의식과 목표로 삼고 있는 바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돋보이는 파트였다는 것입니다. 다만, 앞선 책들에 비해 구체적인 사례가 다소 부족해 개념들의 이해에 대해 어려움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 중 나온 이야기로는 데스콜라가 이 책 이전에 앞서 써낸 책들에 그 내용들이 들어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책들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깁니다.

아무튼 흥미로우면서도 개인적으로 과제가 많이 남는 세미나였습니다. 후기가 늦어진 데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께 다시금 사과드리며, 언젠가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나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2
  • 2023-03-03 09:29

    역시 깔끔한 정리~ 고맙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일원적인 세계를 "보다 단순하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 관여적 사고와 행동의 틀”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의 일원론"으로 요약해 주었네요. 세미나 끝난 뒤로 계속 머리속을 지배하는 게 일원론이 뭘까입니다... 책은 완전히 소화되지 않고 계속 걸려있습니다(다른 책은 대체로 소화가 안 된 상태로 배출되는데 이 책은 걸려있네요).
    촘촘함과 신중함으로 쓰여진 텍스트 덕분에 그동안 쉽게 해왔던 말, 자연과 인간의 이원론을 넘어서자는 말을 정면에 놓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미나 시간엔 이런 인류학적 탐구가 에콜로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냐는 이야기도 나왔죠. 책 제목이 "The Ecology of Others"입니다. 저자는 1,2장에서 이원론적 사고에 대해 문제제기한 뒤 3장에서 참된 존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어서 서구의 자연주의를 다른 존재론들과 같은 평면으로 내려놓습니다. 그런데 해러웨이의 강력한 레토릭에 의해 이원론이 무참히 짓밟히고 난 뒤에 읽는 텍스트라서 그런지 근대자연주의가 같은 수준으로 올라온 느낌이 들어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월딩은 인류학자의 일만이 아니라 세계 안의 존재로서 관점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인식 속에서 나를 둘러싼 세계를 보는 것이 자연의 인류학이고 타자들의 생태학인가 보다 더듬더듬 따라가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화욜반과 목욜반 주2회 두번 같은 내용으로 세미나를 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는데 나누는 쟁점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마치 부족마다 다른 존재론을 기반으로 세상과 관계하듯이, 어떤 세계 어떤 존재들에 둘러싸여 있는가에 따라 정말 다를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울 때마다 명쾌하게 핵심을 잡아준 여러 쌤들 덕분에 어려운 책을 포기하지 않고 읽어냈네요.
    함께 세미나를 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담에 또 같이 공부해요~~ 꼬옥!

  • 2023-03-03 21:54

    일에서 삶에서도 '연결'은 인생 테마인데요...
    계란으로 바위치기겠지만.. 다양한 이분법을 허물고 그러기 위해 삶에서 연결지점을 발견하고 연결을 만드는 것을 높은 목표로...
    너무 커서 보이지 않았던 자연 대 문화라는 이분법을 거리두고 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대담에서.. 콘이 '보호할 자연이 사라지고 나면 어떤 환경주의가 가능할까요?'라고 물어보는데 (실제 자연이 아니라.. 이원론 속 분리된 자연....이것도 좀 이상한 말같지만..)
    데스콜라가 "우리가 비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대할지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아직도 비인간을 물건이나 자원으로서 착취하고 있는 이 방식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가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던 구절..
    그리고 .. 자신이 '상대적 보편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윤리의 한 형식'일 수 있고 생태-중심적 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던 부분이 이 저한테는 월딩의 한 켜로 다가옵니다.

    저도 소화는 시키지 못하고 어떻게든 눌러 담은것 같습니다. 그나마 샘들 덕분에 물리적으로 다 읽은 정도네요. 그래도 여기저기서 비슷한 문제가 떠오르니 풀어보려는 노력을 해봅니다. 같이 읽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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