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분단기세미나> 원자력시대의 철학 후기

뚜버기
2022-06-26 01:53
147

인문세종에서 주최하는 고쿠분고이치로 선생과의 북토크를 앞두고 급조직된 단기세미나.  그 첫시간은 <원자력시대의 철학>이었다.

정말 오랫만에 문탁쌤, 요요쌤과 함께 세미나를 하게 되어 반가웠다. 특히 작년 한해 하이데거 공부하신 요요선생님이 오셔서 든든했다. 문탁선생님은 탈원전담론을 이렇게 철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 놀랍다며 몹시 흥분하셨다.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요요쌤께서 하이데거 철학 개념용어 (현존재인 인간은 염려하는 존재로서 존재의 물음을 가진다. 세인의 삶을 따르는 비본래적 실존을 살 것이냐,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오직 한번뿐인 삶을 살아가려는 본래적 실존이냐 등등... ) 들을 잠시 벼락치기로 알려주셔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하이데거의 사유는 1930년대까지는 플라톤 이래로 내려오는 서구 형이상학전통에 대한 비판, 현존재가 사유의 중심에 있었으나 50년대부터는 존재 자체로 관심이 옮겨가고 기존의 철학언어를 버리는 사상적 전회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때부터 하이데거의 기술문명비판도 이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변화가 있었을까, 궁금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방하(Gelassenheit의 번역)은 우리나라 하이데거 책에서는 방념이라고도 번역했다고도 한다. 양쪽 모두 일상적인 말이 아니라서 개념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문탁샘은 내려놓음, 기다림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하 개념은 완전히 장자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장자에 나오는 '부득이' 역시 능동도 수동도 아니라는 점에서 중동태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편 방하, 기다림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능동적 개념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능동이 문제가 되는 것은 능동-수동이 대립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방하라고 할 때 그런 대립쌍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능동-수동 짝과는 차이가 있지 않나라고 정리해보았다. 능동이 의지가 아니라면 의지 없는 기다림은 무엇일까. 순응이라는 말이 적절할까? 이 부분은 ㅡ중동태의 세계를 읽으며 다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고쿠분은 하이데거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점, 나치로 흐른 사상이 원자력비판 사상과 같은 방향일 지도 모른다는 점을 계속해서 염두에 두고 따라가보자고 한다.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환세계를 초월하여 세계로 나아간다고 보는 데 고코분은 그 부분에서는 하이데거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듯 보인다.(132-133)

토착성이나, 본래성과 같은 개념은 초기 하이데거에서부터 중요했던 개념인데 자칫 본질, 고유함, 순수함이라는 선을 타게 된다면 사상적 위험성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하나의 개념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다고 해서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도래할 토착성이라는 것은 과거회귀적 개념은 아니다라는 의견도 나왔다. 하이데거의 토착성, 본래성 개념이 보수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냐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일리치의 토박이성(버내큘러)와 어떤 차이과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해보기로 했다. 

 

문득 문탁이 탈원전, 탈핵에  열심이었던 몇년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미금역사거리에서 76일반나절동안 76.5kv 송전탑 반대 1인시위 조직했던 일, 매주 한번씩 수지구청 사거리에서 탈핵시위를 했던 녹색다방, 모기장에 수놓아 매달았던 신고리원전반대현수막 등등. 탈핵장터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기대와 달리 탈원전은 지난 정권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탈핵외치기에 지쳐버렸던 것 같다. 지금은 멈췄던 핵발전소들이 다시 가동될 조짐이다. 

 

고쿠분은 하이데거의 방하라는  철학적 사유로 원자력 시대를 넘어설 것을 제안하는 것같다.

그런데 과연 방하가 그럴 만한 힘이 있을까, 라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열어밝히기를 내맡겨 기다린다"는 방하의 태도라면 "사물의 대상화"나 "자연에 대한 도발"가 아닌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부분은 또 노자적이라는 데....)

원자력 반대 캠페인을 해도 원자력이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반생태적인가 아무리 자료를 제시하고 폭로해도 호응이 뜨뜨미지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고리 원전 중지와 관련해서 공론화논의가 있던 당시 논란이 되었던 팩트체크 이슈도 떠오른다. 왜 사람들은 원자력에 매료되는가를 성찰할 때 다른 방식으로 함께 숙의하고 나아갈 수도 있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서 원자력시대, 더 나아가 기후위기시대를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기는 세미나였다.

다음시간은 중동태 1~3장까지 읽어옵니다. (발제는 문탁/달팽이/토토로)

댓글 1
  • 2022-06-26 09:44

    ㅋㅋ

    “夫乘物以遊心 託不得已以養中 至矣” !!!  (장자, <인간세>)
     
    고코분은 하이데거가 기술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로
    "사물에 대한 초연함(내맡김) /Gelassenheit"
    "비밀에 대한 개방성/Geheimnis" 를 들고 있다고 말하죠.
    이것을 통해 '도래할 토착성'를 구성할 수 있다구요.
    고쿠분은 도래할 토착성이란 자신의 신체와 연결된 구체적 자유가 실현되는 장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아요 (113쪽)
     
     
    그런데 사실 용어가 새롭지 내용이 아주 새로운 건 아니에요.
    장자의 '鄕' 이 우리에게 주는 비전!
    하이데거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일리치를 통해 우리가 구성하려고 했던 '버나큘라'한 삶의 양식!
     
    어쩌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하이데거나 노장의 개념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여전히 버나큘라한 것들을 구성하고 있는가? 도래할 토착성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일지도 몰라요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시대의 철학>이나 <철학의 자연>같은 개념을 내놓는 일본 사상계가 부러웠던 것은 사실이에요. 사실 우리도 후쿠시마 사태에 버금가는 세월호 사태가 있었지만... 그것이 사상적으로 어떤 통렬한 전기를 만들어준 것 같지는 않다는....ㅠ.. 김종철 선생님도 돌아가시고 아카데미는 맛이 간 듯하고 .....ㅠㅠㅠ...(하지만...어디선가 '침착하게'^^ 시도되고 있는 동물권담론, 장애학담론 등에 희망을 걸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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