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세미나]- <반려종선언> 후기-소중한 타자성과 훈련된 자발성에 대하여

기린
2023-01-17 15:54
285

이번에 생태공방에서 하는 인류학 세미나로 해러웨이를 읽으면서 <반려종 선언>을 다시 읽었다. 2021년에 양생프로젝트에서 읽었을 때, 읽히지 않던 것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동거와 공진화 그리고 종의 경계를 넘어 구현된 사회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금의 선언문은 적당히 꿰맞춘 두 형상-사이보그와 반려종-중 어느 쪽이 현대의 생활세계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정치와 존재론에 더 생산적으로 관여하는지 묻는다.”(119)

 

“동물들과 함께 살고, 그들/우리의 이야기에 거주하면서 관계의 진실을 말하려 애쓰는 것, 진행 중인 역사 속에서 공존하는 것, 이게 바로 반려종의 일이며 반려종에게 분석의 최소 단위는 ‘관계’다.” (140)

 

“메타플라즘은 실수나 헛디딤, 실체적 차이를 만드는 수사를 뜻할 수 있다. 또는 근친 계보 사이의 교배를 줄이는 대신 이종교배를 더 많이 하는 것과 같은 개 육종가들의 새로운 실천 양식은 개체군이나 다양성과 같은 말들이 의미 변화를 겪은 결과로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의미의 전도, 소통의 실체를 치환하기, 개형, 개조, 진실을 말하는 방향 선회. 나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만 말한다.” (142)

 

“비키 헌이 말한 의미에서의 훈련 같은 애정 행위는, 연쇄를 이루며 창발한 다른 세계들을 배려하는 애정 어린 행위를 낳는다. 이것이 내 반려종 선언의 핵심이다. 나는 어질리티를 그 자체로 특정한 선(善)이자 더 세속적일 수 있는 방편의 하나로 경험한다. 즉 좀 더 살만한 세계를 만드는, 모든 규모에 속한 소중한 타자성이 요구하는 바에 더 민감해지는 것이다.”

 

“나의 논점은 이 개들을 알아가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 가능성의 조건 전체, 즉 이 존재들과의 연결을 현실로 만드는 모든 것, 반려종을 이루는 모든 포착을 상속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세속적으로 되는 것이고 소중한 타자성 및 타자를 의미화는 것에, 다양한 규모로 지역적인 것과 전 지구적인 것의 층위 속에, 점점 더 뻗어나가는 그물을 통해 연결된다는 것을 뜻한다.”(215)

 

해러웨이는 “개와 인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대하는 일을 통해 소중한 타자성을 확산시키는데 보탬이 될 윤리와 정치를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고 질문한다. 실제로 어질리티를 통해 자신의 반려견과 “연쇄를 이루며 창발한 다른 세계들을 배려하는 애정 어린 행위”를 경험한 해러웨이의 질문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충분히 유의미한 지점이 있었다. 어떻게 행위 해야 진지함이 형성되고 그것을 통해 소중한 타자성이 확보되는지는, 매순간 마주치는 관계에서 우리에게도 질문되기 때문이다.

 

세미나 시간에는 ‘소중한 타자성’ 이라는 해러웨이의 개념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미리 구성된 주체나 객체 없이, 관계 속에서 포착된 것들을 통해 구성된 것들을 연결하고 상속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결들은 세속적이고 냄새 나는 흔적을 남기는 등의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해러웨이가 자신의 반려견과 서슴없이 입맞춤을 하는 행위도 그런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반려종에게 분석의 최소 단위는 ‘관계’다.

 

훈련된 자발성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개 훈련과 관련 수전 개릿의 ‘긍정 훈련법’ 과 비키 헌의 훈련법을 소개한 ‘혹독한 아름다움’ 편에서 서로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떻게 훈련 되어야 하는지 두 사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훈련 법이 지향하는 것은 모든 종에 대해 소중한 타자성이 요구하는 바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그 결과

 

“훈련된 자발성이라는 모순 어법을 목표로 개와 조련사 모두가 활동을 주도하는 법과 상대를 따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일관성 없는 세계에서 일관성을 충분히 지님으로써 육신 속에, 경주 속에, 코스 위에, 존중과 응답을 빚어내는 공동 존재의 춤에 참여하는 것이 과제다. 그리고 모든 척도에서, 모든 파트너와 함께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기억하는 것.”

 

공동 존재의 춤에 참여하기 위한 훈련된 자발성이 좀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능력이라는 말로 읽혔다. 그래서 <반려종 선언>은 종을 너머 모두가 반려가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행위에 나서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댓글 1
  • 2023-01-20 12:44

    어떤 별의 사막에서 어린왕자와 여우처럼 서로 길들여지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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