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차 후기> 차이의 정치와 정의 - 4장과 5장

호정
2023-03-12 19:23
260

어쩌다 후기

 

(의외로) 엉덩이가 가벼운 윤경샘이 당연히 후기를 쓰겠지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쓰고 있네요. 후기의 생명은 따끈따끈함이죠. ‘식기 전에 후다닥 올립니다.’ 라고 썼으나, 이거슨 어제의 이야기. 쓰기 싫고, 안 써져서 몸부림을 치며, 쓰지도 않고 놀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더는 후기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영은 분배적 정의 패러다임이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구조적 억압과 지배의 문제가 사회정의의 핵심 주제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자들에 의하면 영의 정의론은 ‘인간 존재들의 위계화, 서열화를 철폐하려는 정의론’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각자가 고유성을 가진 개별자로서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 결코 그 소속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라는 이상이 영의 출발점이자 목표입니다. 그렇기에 영은 동질성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그 모든 정치철학에 비판적입니다.

 

1. 동일성의 원리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하나도 똑같은 것은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독특한 개체로서의 개별성과 유니크함을 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른 존재가 나와 같기를 원합니다. 모두 다르기만 하다면 나는 온통 다른 것들 속에서 위협과 공포를 느끼며 안전하지 못 한 세상을 경계하며 살 것 같습니다. 같지 않은 존재들이 완전히 하나로 포개지기를 원하는 동일성에 대한 욕구는 차이를 타자화시킵니다. 유사하지만 동일하지는 않고, 다르지만 완전한 타자는 아닌 차이를 부정하거나 억압합니다.

 

공감과 의사소통적 상호작용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공감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잔 오킨에 의하면 서로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가진 주체들의 관점과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는 가정은 주체들 간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다. 너에 대해 더 많이 알면 너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는 바람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정부분 겹쳐질 수는 있지만, 동일하게 포개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좀 더 좁힐 수는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하버마스가 주장한 의사소통 윤리학의 ‘일반화 가능한 이익’과 관련하여 제기된 대안적 해석(영? 벤하비브?)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을 원한다’는 표현을 ‘나는 ~할 권리/자격이 있다’는 표현으로 전환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토의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모두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필요를 표출할 때에도 그들의 주장이 일반화될 수 있고 규범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장애인들의 ‘나는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표현을 ‘당신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하철을 탈 권리가 있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타자성의 승인’은 이루어지고 이것이 공감의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의 입장이라면’의 역지사지의 자세는 결국은 모든 것을 ‘나’로 빨아들이는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것은 결국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것, 즉 내편이 아닌 것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이어질 것입니다.

 

2. 공사의 전통적 구분을 재개념화

다양하게 분화된 사회에서 공적 삶의 재정치화는 공동선과 같은 하나로 융합된 무엇이기보다는 각각 표출되는 ‘공적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공적’인 것은 공개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공중은 배제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영은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이 배제하는 것으로 정의내리기보다는 누구든지 타인을 배제할 권리가 생기는 삶과 활동의 측면으로 정의 내리자고 제안합니다. 나라는 존재, 나의 행동, 나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사적인 것으로 정의 내려져 공적인 장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공적인 시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택한 것이 사적인 것입니다. 공사 구분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치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것으로 범주화됐을 때 그것을 공론의 장에서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공사의 구분은 지배집단에 의해 정의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 공중이 공적인 토론의 장에서 공사의 경계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며, 이는 공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는 슬로건은 그 어떤 사회적 실천이나 행동도 공적인 논의와 표현, 공동 선택에 적합한 주제가 아니라고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리를 표명합니다.

 

3. 억압의 재생산

차이를 가진 몸들을 서열화하고, 그 위계 구조를 일상생활과 문화에서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담론들을 그 근본에서부터 비판하는 영은 서구 근대 윤리학의 불편부당성 및 도덕적 주체성의 관념에 비판을 가합니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진 행동에 대해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하지만, 의도 없는 무의식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영은 혐오와 차별의 발언과 행동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묵인 구조를 해부하고 그 원인을 밝혀냅니다. 혐오는 타자와 구별되는 존재로서 유지되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지배집단의 정체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피지배집단과의 차별화가 재생산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담론적, 비담론적 차원(실행적, 기본적인 안정체계)에서 모두 일어납니다. 일상의 상호작용에서 행해지는 침묵과 발언, 시선, 몸짓, 관행에서부터 정치·경제·사회구조에 이르기까지 억압과 지배의 작동 기제를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반복해서 정리해주는 영의 책을 우리도 차근차근 반복해서 읽으며 영의 목소리를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책의 절반을 넘었네요.

 

칸트, 롤스, 수전 오킨, 레비나스, 하버마스, 벤하비브. 헉헉. 숨차다. 이번에 읽은 분량에서 언급되는 학자들만 해도 그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전과 같은 책이라는 문탁샘의 말처럼 이론은 낯설지만 우리가 이름만이라도 들어본 학자들, 이론도 이름도 모두 낯선 학자들과 낯을 익혀야 하는 일이 자주 있긴 하지만, 문탁샘이 짚어주는 이론의 맥락을 따라, 그리고 같이 공부하는 샘들의 질문을 통해 다시 보는 내용들이 공부를 더 재밌게 해주네요. 결혼해서 애도 낳았건만 여전히 남자들이 불편하다는 어떤 선생님의 자기고백은 얼결에 불편함을 선사하게 된 남자선생님의 또 다른 자기고백을 이끌어냈습니다. 주로 여초집단과 어울리다보니 자신도 남자들이 불편하다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정체성은 신체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신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죠. 그런데 그 불편하다는 감각, 그것을 어떻게 언어화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자신의 프레임이 드러나는 것이겠죠. 남성에 대한 혐오인지 남성에 대한 두려움, 무력감 또는 분노인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품위와 관련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는데요, 아무리 우락부락한 흑인이라도 스타벅스 라떼 컵을 들고 다니면 전문직 남성처럼 보인다는 흑인들의 웃픈 자조 개그였죠.

 

마지막으로, 영은 의도적이지 않은 무의식적 행위가 어떤 집단에 대한 억압을 재생산한다면 그것들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행위자가 자신의 습관적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애쓸 것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억지로 인정하고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중압감이 있었는데, 의도를 가진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서는 앞으로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껏 비난하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도덕적 행위’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판단할 ‘보편적 토대’라는 것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나와 같은 정의관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불의한 정의관을 가진 자들로 쉽게 판단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 아마 앞의 선생님도 마찬가지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의도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억압을 재생산하는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추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제도 이전에 개인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비난하고 단죄하면 당장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과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하는 건데, 그가 변한다면 그도 좋고, 나도 좋은 것일 테니까요. 그런데 법적인 제재 없이, 경제적 불이익 없이 촉구와 눈총만으로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요?

댓글 7
  • 2023-03-12 22:16

    호정선생님 후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가족들에게 개그를 다큐로 받는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재미없는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 유머를 기르고 싶지만 잘 안되네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리듬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드는 일이 쉽지 않고, 이렇게 뒷북 이야기를 남기게 되는 것 같아요.
    이야기의 리듬을 타고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보아야 겠습니다.

    저는 4장 222쪽의 아래 문장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것들이 서로 유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결코 같음은 아니다. 유사한 점들은 오직 차이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차이는 절대적 타자의 속성absolute otherness을 가지지 않는다. 즉 비교 대상들 간에 그 어떤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호 연관성이 완벽하게 부존재한 상태나 또는 공유하는 속성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유되는 속성들이 완벽하게 부존재한 상태complete absence of relationship or shared attributes를 의미하는 절대적 타자의 속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름에 대해서 차이에 대해서 저는 지금까지 ‘그건 나와는 상관없어’라는 태도로 살아왔던 것 같은데요, 사실은 절대로 상관이 없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 둥글레선생님이 이야기하신 그런 부정의한 집단 조차도 어쩌면 내 삶과 관련이 없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호정선생님이 후기 시작 부분에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각자 고유성을 가진 개별자로서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 결코 그 소속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라는 영이 차이를 바라보는 입장에 대해 언급해 주셨는데요. 생각해보니 일상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뜻하지 않은 다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세심히 바라보기 보다는 이것이 이사람과 나와의 관계의 지속에 영향을 미칠만큼 큰 것인가 아닌가의 관점에서 바라볼 뿐, 그 차이에 집중해 본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기 보다는 동질감에 집중하면서 차이를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제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두가지 에피소드
    첫번째, 매너와 품위 관련해서, 집에서 아이가 식사중에 식기를 소리나게 다룰 때, 그러지 말아라, 식사예절을 지켜라. 이야기했었는데 아이가 저에게 물었어요. 왜 식사시간에 그런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냐. 저는 살짝 당황하면서 음.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는 데 불편함을 주면 안되니까. 라고 했으나 진짜 왜 그래야 하는 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는데 그것이 품위에 대한 행위 규범이 작동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두번째, 최근 이직한 회사에서 저보다 두 살이 많은 남자 입사 동기가 있는데, 입사 동기라는 이유로 이 분이 저를 좀 친밀하게 대하는 편인데 가끔 제 몸을 터치하는 일이 있었어요. 처음 한두번은 그냥 넘겼는데, 세번째가 되니까 이 사람이 다른 여성의 몸에 손을 대는 행동에 있어서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남자 동료를 본적이 없어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는데 정작 그 사람에게 말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난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어’라고 이야기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야하나 고민중이었어요. 책에 의하면 의도가 없었다고 했을 때 그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 불쾌함을 만들고 그를 경계하게 한 데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물을 수 있는 것이라 저또한 이 찝찝한 기분을 풀 수 있어 좋았습니다.

    • 2023-03-13 09:45

      저도 개그를 다큐로 받아유...ㅠㅠ...
      우리 둘이 따로 개그 함양 세미나를? ㅋㅋㅋ

  • 2023-03-13 00:13

    호정샘 ‘어쩌다 후기’ 당첨되셨군요ㅎㅎ 정리된 후기 덕분에 복습 잘 했습니다! 저는 ‘공론장’이란 말을 여러 맥락 안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론을 극복하려는 벤하비브와 영의 이론을 비교 분석하는 글도 있어서 흥미롭더라고요(첨부). 각 잡고 모여서 토론하는 것 이외에도 거리 시위나 보이콧도 의사소통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는 영의 이야기, 그럼에도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공적 의사소통과 입법적인 언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벤하비브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 2023-03-13 09:44

      하하...저도 이거 읽은거에요. 이건 무료로 읽을 수 있어서리^^

  • 2023-03-13 09:58

    역지사지하지 않고 너애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승인해주는 것!! 이게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해요.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장면이 이미 있자 않을까 싶기도 해서, 주변을 눈을 부라리고 살펴볼랍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3-03-13 13:10

    모든 건 고정됨이 없다를 동양철학하며 배우면서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고정된 것이라 보네요.
    저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만들어낸 합의도 고정된 규범으로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합의를 도출한다는 내용이 인상깊었습니다.
    어쨋든 합의된 질서가 필요하지 않아? 라는 질문에 막혀서 영이 말하는 차이나는 정치가 멀게 느껴졌는데, 훨씬 현실감있게 다가오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3-03-15 18:29

    아이공 엉덩이 가벼운 저 말고 호정님이 후기를 쓰셔서 아주 퀄리티가 좋으네요. 흐흐
    발제를 하니 영이 말하려는 의도를 더 잘 이해한것 같아요.
    배제없이 누구나 참여가능한 숙의민주주의..
    요새같은 시절엔 더욱 요원에 보이네요.
    전 5장 어디선가 봤는데 못찾은 '증식'이 높고도 두터운 카르텔을 뚫을 방법 같아 보여요.
    머리 아프고 귀찮을지 모르지만 공론장이 어떤지 경험이라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투표가 전부잖아요.
    투표말고 어떻게 참여를 해야하나, 공론장을 어떻게 만들어가나 끝까지 영의 길을 따라가봐야겠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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