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수치심> 5장 후기

김지연
2022-09-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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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와 수치심> 5장에서 너스바움은 수치심 처벌이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다양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설명했다. 특히 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를 판단한 후에 죄책감을 유도하는 처벌과 (사안에 따라) 수치심을 주는 처벌을 혼용하는 현대 사법 체제에서 수치심 처벌은 더욱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했다. 현대 사법 체제에서 감옥에 있는 제소자 다수는 아직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되지 않았거나, 제 3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특히 소수의 파렴치한들을 처벌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규제는 정작 자극해야 할 죄책감은 자극하지도 못하고, 엄하게 일반인을 억압하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수치심 처벌은 쉽게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겸목샘은 수치심 처벌의 부작용(?)을 느꼈던 경험을 얘기해 주셨다. 학창 시절 준비물 등을 챙기지 않아 학급 친구들 앞에서 벌을 서야 했던 일, 작은 교통사고로 인해 받은 억울한(?) 벌점을 감하기 위한 경찰서 교육에서 다수의 음주 운전자들과 함께 교통 법규를 지키겠다고 외치며 걸어야 했던 일 등. 나도 유사한 경험을 떠올리니 불필요한 수치심 처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쓰레기와 같은 성폭행범이나 살인자의 존엄성까지 존중해야 하는지는 계속해서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수치심 처벌이 필요하다'는 우리의 생각은, 죄 자체에 대한 처벌의 강도가 낮은 우리 나라 국민에게 쌓인 법 감정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범죄 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 강화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국민들은 수치심을 주어서라도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죄에 대한 처벌의 객관성이 떨어지고 처벌 강도가 약해지니, 죄책감은 느낄 여유도 없이 반성문과 같은 처벌마저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수치심 처벌이 법제화 되면 정작 그것이 필요한 범죄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에게 악용될 여지가 있기에 우리는 수치심 처벌이 아닌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이 샘은 사건 해결의 당사자인 가해자와 검사 중심의 응보적 정의보다, 일어난 사건의 당사자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면하여 죄책감과 책임을 느끼고 용서와 회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회복적 정의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과연 피해자의 용서가 가능할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희 샘은 그래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 시킨 채 사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감정을 다루기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면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과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이 의견에 크게 공감했다. 삶은 어차피 계속되는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경험만 남는 것은 삶을 더욱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언희 샘이 의도한 의미 있는 경험의 창조를 위해서는, 정의와 미소샘의 말대로 처벌 자체보다 사건의 전말과 범죄의 이유 즉, 진실을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수치심 처벌은 당사자 및 그와 연결된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낙인을 남기기 때문에 (너스바움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음주운전 낙인 때문에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낙인 그림자의 공포를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이런 대안을 발굴하는 일은 더욱 중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수치심 처벌이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이유는, 정상/비정상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인데 수치심 처벌이 비정상 집단을 공략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동성애자와 동성애 기반 결혼 가족들은 이성애 기반 결혼 가족들이 품고 있는 나르시시즘적 공포로 인해 과거에는 수치심 처벌을 받기도 했고, 오늘날에도 수치심의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다. 실제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대상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인데, 집단화/소속감을 기반으로 타집단을 열등화하여 우월감을 느끼려는 인간의 본능은 결혼이라는 본질을 벗어나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있다. 특히 동성애 문제는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개의 수치심은 혐오감을 동반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정상 집단 귀속 본능을 알아채고, 단순히 정상 집단에 속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기만 하기보다는 정상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는 것, 정상/비정상 집단이 모여 살 때 필요한 환경과 인프라가 무엇인지 파악하여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러나 언희 샘의 생각대로 당장 답을 찾는 것보다, 최소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성급하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이성애/동성애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작 결혼의 의미에 대한 고민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만 낳을 것이다. 언희 샘 말대로 <혐오와 수치심>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인 것 같다.

p.s. 우리의 세미나에서 하현샘의 마무리 발언은 완전히 정례화 되었다. ^^ 하현샘은 조용히 그렇지만 의미 있는 발언과 함께 늘 좋은 책을 제안해 주신다. 동성애 이야기와 연계해 제안해 주신 이번 주의 책은 <언니, 우리 결혼할래요?>다. 

댓글 3
  • 2022-09-27 17:51

    하현샘이 추천한 책과 함께 이반지하의 책과 <여성의 수치심>이란 책 주문했는데 아직 안왔네요. 도착하면 인증샷 올리지요~

  • 2022-09-29 13:55

    저는 이번 책 읽고 토론하면서 정상/비정상, 인간의 기본권에 대해 생각하고 수치심에 의한 처벌은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극악범죄자에 대해서는 예외로 수치심이든 뭐든 강력하게 처벌을 해야 하지 않나하며 모순을 겪고 있네요.

    마지막 5-6부분 읽고 쓰며 혼란과 모순을 정리할 수 있기를요.

    젼님 후기 읽으며 덕분에 관련 내용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고맙습니다! 

     

  • 2022-09-29 20:37

    법 준칙이 너무 과해서 억울한 사람이 많은 것같은 미국과 기본 응보적 처벌도 간절한 울나라 사이의 간극이 자꾸 느껴졌어요. 그러나 어쨋건 최고로 이성적이어야 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감정까지 고려해야하는 법은 ᆢ 역시 넘 어려워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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