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4주차- 버틀러 발제/메모 + 에세이개요(200자) 올려주세요

문탁
2023-05-29 14:24
308

짧게 공지하겠습니다.

 

 

1. 먼저 에세이 관련

 

6월3일(토) 1학기 마지막 세미나. 이후부터는 에세이 주간입니다. 에세이 발표가 7월1일(토)이니 근 한달간 에세이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 주제, 개요 발표 (6월3일)

2단계 - 에세이개요(2쪽) 워크숍 (6월10일~11일)

3단계 - 초안검토 (6월17일(토) /조별) 

4단계- 수정안 검토(6월24일(토) / 조별)

필요하면 추가 피드백(줌 혹은 오프라인)을 합니다. 

 

이번주 금욜 저녁 6시까지 전원 200자 정도(a4 기준  3~4줄)의 개요(어떤 텍스트인지, 어떤 씨앗문장인지, 어떤 문제의식인지 등) 를 작성해 댓글로 달아주세요

 

 

2. 세미나

 

마지막 세미나입니다. 버틀러 <비폭력의 힘>의 3장, 4장, 후기를 읽어오면 됩니다.

 

역시 여러 사상가가 등장합니다. 파농, 푸코, 벤야민, 프로이드 등 말입니다. 가능하신 분은 벤야민의 <폭력비판에 대하여> (얇아요)나 이것에 대해 데리다가 해체적 독해를 시도한  <법의 힘>을 읽어오시면 좋습니다.  벤야민의 저 논문은 아래 두 권의 책 모두에 실려있습니다.

 

 

 

 

물론 프란츠파농의 <검은피부, 하얀가면>도 읽어오시면 좋겠죠. 나아가 프로이트의 <문명속의 불만>도. 하지만 분량이 하하하...대신 제가 예전에 썼던, 역시 서울신문의 파농 글을 링크 걸게요.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6021001

 

제가 가지고 있는 구판의 표지들. 요즘 이런 것들은 다 절판. 모두 개정판 나왔시유^^

 

 

여러가지 생각거리가 많습니다. 버틀러의 푸코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파농과 벤야민을 불러오는 맥락은 무엇인지, 그리고 후기의 "취약성과 배려를 정치학의 토대로 삼을 수 없다"고 한다는 것은 뭔 말인지 (겸목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겠죠?) 등등....  에세이를 통해 단 하나라도 쫀쫀하게 붙들고 늘어지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144쪽의 '규율권력'이라고 번역된 것은 이렇게 쓰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감시와 처벌>에서 다룬 것은 disciplinary power이고 보통 규율권력(훈육권력)이라고 번역되는데요 <성의역사>1권 마지막 장에서 나오는 생명권력은 regulatory power이고 조절권력이나 규범권력(이 번역도 좀 문제가 있습니다)이라고 번역됩니다. 여기서는 후자입니다. 저희는 '조절권력'으로 바꿉시다. 

 

 

3. 이번주 발제는 루틴과 모로 (맞나요?) 메모는 A조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린대로 제가 대전에 가야해서 9시반에 시작합니다

 

댓글 16
  • 2023-05-30 11:12

    메모
    버틀러는 갈등 관계를 동반하거나 경유하면서도 폭력적 결론에 이르지 않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사유할 방법을 발터 벤야민의 끝이 열려 있는 갈등 해결방안(시민사회의 합의도출 기술)개념이 알려다고 하면서, 벤야민이 폭력과 비폭력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달 가능성을 심화시키는 번역의 힘을 강조함으로써 번역이 소통에서의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벤야민의 번역론에서 “상위의 언어”-교착과 불통과 접속 불가능성을 극복하는 언어-를 언급하고 있다.

    언어가 갈등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갈등을 심화하기도 하고 언어폭력도 존재하는 현실에서 바상위의 언어가 실제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을지요?

  • 2023-05-30 11:44

    에세이 개요
    그동안 커리큐럼에 제시된 책들을 읽으며 생각해보지 못한 개념들을 접하고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쁨이 있었어요.
    하지만 여러가지 역량의 부족으로 프로그램이 나에게 많이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과제는 따라가 보아야 그만둘때 아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부담감을 덜고자 빨리 올립니다.

    • 2023-05-30 13:36

      샘, 너무너무 훌륭하십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이 가면 뭔가 되어있을 겁니다. 잇츠 매직!!

  • 2023-06-02 12:28

    [3장 질문]
    3장에서 벤야민의 법해석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버틀러는 감옥 수감자의 애도가치에 대해 언급합니다.
    “수감자는 애도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의 한 예이고, 수감자에 대한 불공정∙불평등 처우에는 애도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법률상 사람들에게는 감옥에서, 국경에서, 해상에서 생명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 죽게 내버려지지 않을 권리, 생명유지에 필요한 치료와 물품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잖은가?’”(p.171)

    버틀러의 이의에 일부 동의하지만, 감옥에 수감된 수감자의 죄질이 만약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나 나와 관계된 사람을 해친 살인자라면, 버틀러의 이의에 과연 내가 동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버틀러가 말하는 애도가치를 정말 구분없이 경계없이 ‘모두의 생명’에 둘 수 있을지....., 저는 자꾸 머릿속에 그려지는 저의 경계선을 지울수가 없네요.

  • 2023-06-02 18:12

    저도 금요일 퇴근 전 고민을 마무리하고자 일단 올립니다.

    저는 '노년의 애도가치'를 주제로 삼아볼까 합니다.
    제가 나이듦과 노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애증의 돌봄이 그 시작입니다.

    목차까지는 아직 생각을 못했어요. ㅠㅠ

  • 2023-06-02 18:12

    에세이 개요 : 윤리학-정치학 잇기를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있을까? 버틀러가 말하는 개인차원이 아닌 정치 실천은 뭘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요즘 정치(진보 정당이건 보수 정당이건)에 환멸을 느끼고 있고 출구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좀 갑갑한 것 같습니다. 무기력하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두 권의 버틀러의 책에서 용기(?) 또는 의욕(?)을 내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정치의 가능성을 ‘박탈’을 키워드로 삼아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2023-06-02 18:46

    에세이 개요 :
    저는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에서 3장 : 불안정한 삶과 공거의 윤리, 6장 : 그릇된 삶에서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를 참고로 에세이를 쓸 예정입니다. 버틀러를 읽으면서 나의 ‘취약함’을 알아챘기 때문에 ‘어떤 불평등이 나의 취약함을 만드는가’를 살펴보고... 그 다음에 이런 취약한 사람 3명 (나, 남편, 아이)이 어떻게 ‘다른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함께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습니다. 에세이 개요를 생각하면서 나에 대한 확장이 일어났는데, 남들과 다른 아이도, 이해할 수 없는 남편도 나의 신체의 확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속에 있는 어찌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 2023-06-02 20:23

    에세이 씨앗문장:
    비폭력의 윤리학-정치학은 각각의 자기가 상대를 지탱할 수 있는 것에 못지 않게 상대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여러 관계에 얽매여 있는 서로의 삶 속에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자기를 보존하거나 부정한다는 말의 의미 중 하나는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정의하는 확장된 사회적 끈들을 보존하거나 부정한다는 말이다. (....) 요컨대 관계성이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이어져 있다는 표시도 아니며 파괴라는 반테제에 맞세워야 할 윤리적 당위도 아니다. 오히려 관계성이란 어떤 곤란하고 양가적인 역장이니, 윤리적 의무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관계성의 항시적 구성요소로서의 잠재적 파괴성을 고려해야 한다.(<비폭력의 힘> 22-23쪽)
    -상호의존성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에세이 주제로 삼을 때, 위의 씨앗 문장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을 통해 에세이의 구조를 잡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양가감정이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들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도 그렇고 "지탱할 수도 망가뜨릴 수도 있는" 방식으로 맞물려 있는 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면 상호의존성과 관련하여 "제도에 맞서는 에토스-실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2023-06-02 20:39

    4장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충동들"과 초자아, 극기, 열광..

    (215쪽) '비현실적" 형태의 저항 연대들을 이해할 수 있는 모종의 암호를 열광이 제공해 준다고 하는데,
    217-218쪽 해설을 영 이해가 안됩니다.
    (215쪽) 열광은 억제되지 않을 경우 초자아의 자살적 살인적 목표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힘이고 그 힘으로 독재자를 거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또 (218쪽)열광이 그대로 정치가 된다면 위험한 형태의 파괴로 전락한다고 합니다.
    열광도 충동들 중 하나인 것 같은데......휴

    에세이 개요 : 징글징글하게 물고 늘어져 보렵니다. 잘 될까요?? 벌써 겁이 나네요. ㅎㅎㅎㅎㅎ

  • 2023-06-02 21:06

    <에세이 개요>

    에세이를 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 직업적 고민과 실천을 조금씩 풀어내고 있는데요. 버틀러의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비폭력의 힘>을 참고하여 더 다듬어보겠습니다.
    1. '합법적' 무력 국가장치(군사제도)에서 법폭력(사법제도)의 종사자로 근무한 경험과 계급적 위계를 통과하며 체현된(되었을) '폭력', 2. 조직 내 소수자(여성), 젠더 폭력의 피해자 '집단'으로 가시화되는 위치성과 '취약성'에서 (비판작업으로) 선택한 나름의 '비폭력' 실천, 3. 그 '비폭력' 실천이 단순히 '여성이 남성보다 덜 폭력적이다.'라거나 이상화된 여성성같은 '본질주의'를 깨뜨리는 방식으로 (1과 2가) 경합하는 장소로서의 신체 등

    <질문>

    버틀러는 '누구'의 생명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애도가치의 '위계'를 문제삼고 있습니다. 버틀러는 벤야민의 논문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신적' 폭력, '신적' 언어, '상위의' 언어라는 표현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보충하고 있는데요. '신적'의 의미가 명확히는 아니지만, (169쪽) "법폭력을 그런 식으로 "잠시 중단" 시킨다는 것이 바로 신적 폭력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에서 조금 이해되기도 합니다. 다만, '신적'이라는 표현이 좀 뜬금없기도 하고(^^) 좀 위계적이기도 해서 매끄럽게 읽히지 않습니다.

  • 2023-06-02 21:11

    올립니다.

  • 2023-06-02 22:35

    에세이 개요

    1. 1990년 <젠더트러블>에서의 젠더 수행성 이론은 어떻게 2015년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에서의 집회 수행성 이론으로 확장되었을까? 수행성 이론으로 신체를 사유하는 버틀러와 다른 사상가들의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2. 강제적 젠더 규범으로 인해 불안정성이 차별적으로 할당된 사회에서 시스 젠더 헤테로 남성은 어떤 방식으로 대항적 젠더 수행을 실천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이 여성 집단과 어울릴 때의 곤란함, 남페미 서사의 한계. "그러므로 끊임없이 페미니즘을 여성의 문제로 국한하여 조신한 남페미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서서 더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말할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함께 성별이원제의 젠더 매트릭스를 깨자는적극적인 연대에 대한 요청이다. 그 과정에서 ‘남성 작가’들이 무엇을 기꺼이 ‘포기’할지는 각 저자의 몫일 것이다" - 손희정의 '어디로 갈 것인가, 형제여'
    (들뢰즈의 '여성-되기', 폴 프레시아도의 '대항성 선언' 참고)
    3. 복수의 신체들이 모여 다양한 종류의 체현된 행동을 수행할 때, 인민은 어떤 형태로 구성될 수 있을까? (기후정의행진, 밀양 농활, 전장연 집회, 경계를 뛰어넘는 동물들 대담회)

  • 2023-06-02 22:50

    내가 올바른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그 삶이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낸 삶, 그들이 없다면 어떤 삶도 아닌 삶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인 바의 이 나를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구건 간에 나는 내가 타자들과 맺고 있는 관계들에 의해 변화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이에 대한 나의 의존성, 그리고 나의 의존 가능성은 사는 데, 그리고 잘 사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307)

    저는 ‘살 만한 삶’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이것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삶이라는 게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한 이용자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요구하면서 제가 일하는 도서관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습니다. 뭉뚱그려 이용자로만 존재하던 사람들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제게 다가왔습니다. 취약성과 상호의존이 일터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취약성이 살만한 삶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 2023-06-02 23:03

    비폭력의 힘 4장과 후기 발제 올립니다.

  • 2023-06-03 02:50

    에세이에 대한 생각

    양생주제로 돌봄세미나를 들으면 내 주변사람에게 더 다정하게 대할 수 있을꺼라 예상하고 들었던거 같다. 늘상하던 세미나에서는 공동체적 차원에서 나를 돌아보게한거 같다. 내용이 그랬다기보다는 그렇게 에세이를 썼던거 같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는 어마어마한 뚜껑을 뒤집어 연듯하다. 내 삶의 크게 비중을 차지하지 않던 인종, 퀴어, 이주자, 장애인 등에 대한 언급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쏟아진다. 평소에 잘 생각하지않던 정치문제이다. 나는 정치 사회뉴스를 거의 잘 보지않는다. 정치혐오라기보다는 무관심이다. 나에게 양생이란, 나를 벗어나서 나와 관계맺는 사람들과의 관계성 정도였다. 버틀러가 경계하는 공동체주의적이다. 내가 생각했던 돌봄의 범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싶다.

    또한 집회참여에 대한 마음은 있지만 나의 스케줄들 중 항상 뒤로 밀린다. 평소에는 무관심한데 뭔가 의무감이 살짝 얹어진, 하지만 실행하지 않는 그런 상태이다. 자기 보존이 다른 사람의 삶을 지켜내는 일과 연결된다면 연대하는 마음은 필수적인 행위아닐까?

    아직 구체화된게 없네요. 연결될 수 있는 책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 2023-06-03 08:55

    3장 발제 다시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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