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12주차 (버틀러, <집회 수행성 이론 노트> 5,6장)- 발제/메모 올려주세요

문탁
2023-05-09 10:24
332

1.한 주를 쉬니 버틀러가 아득합니다.

 

한 문단이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글을 읽자니, 음,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ㅋㅋㅋ

미리미리 읽으십시요. 로딩 시간이 좀 걸립니다.

 

전, 이번엔, 서론에 이어 또 나오는 "우리 인민들 we the people"에 대해,  갑자기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왜 갑자기 '인민'이지?  '인민'의 재정의가 왜 그렇게 다시 중요해진걸까?

좀 찾아보다가, 버틀러 책에도 언급된 발리바르의 <우리, 유럽 시민들?>이라는 책과, 이번의 버틀러 논문이 수록된 <인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두 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두 권 모두 2013년 출판이더군요. 그렇다면 버틀러의 '인민' 논문은 <Qu’est-ce qu’un peuple ?>에 먼저 실렸다가 2015년에 지금 우리가 읽는 책에 재수록된 건가봐요. 

어쨌든 이 책 두 권 번역본의  출판사 책 소개가 아주 흡사합니다.  알라딘에 나온 걸 옮겨볼게요.

 

먼저 <인민이란 무엇인가?>

컨템포러리 총서 2권.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주디스 버틀러 등 현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 ‘인민(people)’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쓴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인민적(대중적)’이라는 말의 쓰임이 담고 있는 의미와 권력관계, 집회의 자유, 감각적으로 재현되는 인민의 이미지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포퓰리즘 등에 관한 논의에서 독자들은 이제까지 생각하지 않아왔거나 감춰졌던 ‘인민’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인민’을 통해 겨누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모호한 기표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상당히 모호한 정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 민주주의는 언제나 배제를 전제하는 민주주의이고, 권력분산의 원칙이 압도적인 힘 관계를 통해 무너져버린 민주주의이다. 부르디외의 글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민주주의라는 절대적인 기표에 균열을 내는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실행 주체가 사라진 명목상의 민주주의에서 인민이 제자리를 찾는 험난한 여정에 관한 고민이 담긴 이 책은 정치적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한편으로 많은 변이들을 낳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인민을 구해내는 데에도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다음 <우리, 유럽의 시민들?>

프랑스 정치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저작.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민주주의는 크게 약화되거나 후퇴하고 있다.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체 구성의 실험이 진행 중인 유럽을 배경으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역설의 근본 이유를 파헤치고 그러한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내용 중에는 저자는 민주주의는 그 성격상 계속해서 재발명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끊임없는 탈민주주의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다음 국민사회국가의 모순을 지적하는데 국민사회국가는 사회권을 시민권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각각의 개인이 물질적으로 자립하고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는 조건을 제도적으로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보편적 시민권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권리를 국민에게만 한정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고 본다.

 

감 오시죠? 2001년 911 이후의 전 세계의 폭력적 반동과 신자유주의 심화.  관타나모 수용소 고문과 방리유사건(2005),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그리고, 2010년부터의 아랍의 봄과 오큐파이 운동.....

이것을 목격하면서 현대의 가장 핫한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에 대한 이론적 재구작업을 하고 있는 거지요, 열나게!!

 

우리는 '돌봄' 문제를 다루려고 했는데....어쩌다보니 이런 민주주의와 인민주권 논의를 접하고 있네요. ㅎㅎㅎ

하지만 구체적 정책논의가 아니라면, 어짜피 개념과 이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겠죠. 돌봄의 공백이 사람들이 갑자기 못되져서 생기는 문제는 아닐테니까유...^^

 

그리고 우리는 이미 첫 책 <돌봄선언>에서 대충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아, 돌봄?  이건 정치,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걸 공부하라는 이야기구나...ㅋㅋㅋㅋ

어쨌든 , 열심히 읽어봅시다. 

 

 

2. 6월10일~11일 함백으로 에세이 개요를 들고 엠티를 갑니다

 

네, 맞아요. 노는 엠티 아니구요. 하루종일 앉아서 에세이를 궁리하는 엠티입니다.  몇 번 말씀드렸드시 1학기에는 리뷰-쓰기입니다. 해당 도서는 이론서 4권 (영/폴브레/버틀러2권)입니다. 6월8일 정도까지는 홈페이지에 제목, 문제의식(개요), 목차가 담긴 개요를 올리셔야 하구요 하구요... 당일(6월10일)에는 목차 중 두 개 정도 (서론과 1장?/ 2쪽 정도)는 초안을 써 오셔야 합니다. 

 

구체적인 일정 및 준비물, 차편 등 실무적인 것은 기린반장님께서 조만간 다시 공지를 드릴 겁니다.

이제 슬슬 준비하셔야 합니다. 

 

 

 

 

3.  이번 발제는  윤경, 호정 샘이고, 메모는 A조입니다.

댓글 6
  • 2023-05-12 08:43

    휴 해보려고 했지만 4쪽 이내로 하는 것은 역쉬 무리였습니다. 5쪽이 되었어요.
    그래도 몇 번을 읽으면서 쳐내려 했는데, 더 이상 쳐내는 건 제 능력 밖이라 그냥 올립니다.
    오늘 '치유의 숲' 프로그램을 신청해놔서 일찍 나가야 하거든요...ㅋㅋㅋㅋ
    끝나고 또 산책하고 아마도 늦게 돌아올 것 같아 미리미리 올리니...
    다른 분들 부담느끼시지 마세요...(호정샘이 제가 일찍 올리면 부담스럽다고 하셔서.ㅋㅋㅋ)
    저는 새벽형인간이라 저녁8시부터 잘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 그러해요...
    그럼 내일 보아용..2주만에..

  • 2023-05-12 18:29

    저는 좀 엉뚱하지만 책을 읽다가 '박탈'이라는 단어에 빠져서 관련 질문을 올려봅니다.

    6장 '그릇된 삶에서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에서
    버틀러는, 상호의존성 개념을 통해서만 살만한 삶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정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정치적 세계를 사유해 낼 수 있다고 제안(298쪽)하는데요.

    이때 4장에서도 언급되었던 제이 번스타인의 주장이 다시 인용됩니다.
    ‘취약성은 반드시 상처받을 가능성하고만 관련되지는 않는다.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응성은, 그것이 아직 말해지지 않았던 역사를 기입하는 것에 대한 개방성이건, 혹은 심지어 또다른 신체가 사라지고 없을 때에도 그 신체가 겪고 있거나 겪어왔던 것에 대한 수용성이건 간에 모두 취약성의 기능이자 효과이다. 내가 앞서 제안했듯이 신체들은 항상 어떤 의미에서 자기 바깥에 있고 자신의 환경을 탐색하거나 돌아다니고 있고, 감각을 통해 확장되며 심지어 가끔은 박탈되기도 한다. 만일 우리가 서로에게로 넘어가 상실될 수 있다면 혹은 만일 우리의 촉감 능력, 운동 능력, 촉각 능력, 시각 능력, 후각 능력, 혹은 청각 능력이 우리를 우리 자신 너머로 행동하게 한다면, 이는 신체가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자, 이런 종류의 박탈이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신체적 감각을 특징 짓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성 안에서 박탈당하는 것이 산다는 것과 존속한다는 것의 의미를 구성하는 기능이라고 여겨질 때, 그렇다면 그것이 정치라는 관념 자체에 대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299쪽)

    그리고 301쪽에서는
    ‘나 자신의 삶은 내 것이 아닌 삶, 단지 타자의 삶이 아닌 사회적 경제적 삶의 조직에 의존한다, 따라서 나 자신의 삶, 나의 생존은 더 넓은 의미의 삶에, 즉 유기체, 살아서 존속하는 환경들, 상호의존성을 긍정하고 지지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들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삶에 의존한다. 그것들을 본연의 나를 구성한다. 이 말인즉, 나는 살기 위해 인간이기 위해 나의 변별적으로 인간적인 삶의 일부를 양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사회성안에서 박탈당하는(dispossessed) 것’과 ‘인간적인 삶의 일부를 양도(cede)한다’는 연결된 의미로 봐도 될까요?
    ‘박탈’이라는 단어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4장에서 처음 읽었을 때 감각이 박탈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와닿지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6장에서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다시 읽고 나니 박탈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왔어요.
    나의 신체적 감각을 박탈(나에게서 분리하여)하여 일부는 내것이 아닌 상태로 공유(타자들과 맺고 있는 관계들 속에서)할 수 있어야 ‘취약성이나 상호의존성이 살 만한 것이 되는 조건들’(307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그리고 혹시 이것은 5장 239쪽에 나오는 ‘인민의 다공성(多孔性)’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 2023-05-12 22:16

    1. '비폭력은 잠재적으로 혹은 실제로 대립이 일어나는 어떤 공간에서 자기 스스로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견디고 절제하며 처신하는 방식이다.'(270) 이 부분을 읽으면서 2008년 국군의 날에 있었던 강의석씨의 알몸시위가 떠올랐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군대 폐지를 주장하며 알몸으로 행진을 막아섰던 강씨의 퍼포먼스는 비폭력 시위일까요? 버틀러는 살 만한 것이 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기 위한 젠더, 인종, 계급, 세대적 소수자들의 시위와 연대에서 차이의 문제는 잠시 나중으로 미뤄두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요? 버틀러는 그 차이라는 것도 사실 불안정 상태의 차별적 할당에 따른 것인만큼 불안정성, 취약성, 상호의존성이라는 공통감각을 바탕으로한 비폭력적 수행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강씨의 사례처럼 신체의 상연 목적과 방식(또는 효과) 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괴리, 그로 인한 의도치 않은(이를테면 차이에서 오는) 폭력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2. '나는 어째서 그릇된 삶에서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299) '어째서'라는 번역은 '어떻게'의 오역인가요?

    3. '그것들은 본연의 나를 구성한다.'(301)에서 '본연의 나'라는 표현이 버틀러가 비판해 온 '본질적 존재로서의 주체'로 읽힐 우려는 없을까요? 상호의존성을 통해 구성되는 나라는 맥락적 의미는 알겠는데, '본연'이라는 번역이 이해를 조금 방해합니다. 원문을 보니 They consti­tute who I am로 나와 있습니다.

    4. '저항이 항의로 환원될 수 있을까?'(303) 이 부분에서 버틀러는 저항과 항의를 각각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나요?
    원문을 보니 Can resistance be reduced to protest? 로 나와 있습니다.
    * resist : to fight against (something), to try to stop or prevent (something)
    * protest : to show or express strong disagreement with or disapproval of something

  • 2023-05-12 22:45

    6장 발제문 아주 초큼 수정해서 올립니다.

  • 2023-05-12 23:24

    질문 1) p236, "이런 식으로 나는 "구성적 순간들"에 대한 제이슨 프랭크의 중요한 정식, 즉 인민의 상연이 인민의 재현을 초과하는 구성적 순간들에 대한 정식에 의지하려고 한다. 프랭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민은 재현되어야 하지만 어떤 상연도 그들을 재현하는데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상연과 재현의 부조화는 프랭크가 보기에 민주적 집회의 핵심적 역설임이 밝혀진다."

    여기서 인민의 상연(performance)와 인민의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해 구분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보여지는 것을 넘어서는 표현되는 '구성적 순간들'. 상연과 재현의 부조화는 민주적 집회의 필연적인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맞나요? 조금 더 부연 설명 부탁드립니다.

    질문 2) p256. "기본적인 신체적 필요"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요, "이런 연유로 신체적 필요가 완전히 몰역사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체적 필요가 역사적으로 특수한 담론의 순수 효과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번 더 말하지만, 신체와 담론의 관계는 교차배열적인데, 이는 신체는 재현되어야만하고 신체는 그 재현에 의해 결코 완전히 소진되진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푸코가 바라본 신체는 담론적,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보았다면 버틀러는 생물학적 신체와 권력으로 구성된 신체가 함께 교차배열되었다고 보는 건가요?

    그리고 "우리는 맑스가 검토했고 아그네스 헬러가 이론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었던 필요의 생산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이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버틀러는 이들의 필요의 생산을 지지하는 건가요?

  • 2023-05-1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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