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차 후기>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들어가며~2장 후기

기린
2023-04-26 17:40
192

  재작년 세미나에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은 후 어렵다는 인상밖에 안 남아서;; 이번 주 세미나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로 다시 버틀러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게다가 발제 차례까지 와서 맡은 부분을 거듭 읽으면서 버틀러의 사유를 파악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전체적으로 사유가 밀도가 높아서 소제목도 없는 단락들의 논증들을 맥락적으로 읽자니 집중력이 좇아가지 못해서 애를 좀 먹었다. 세미나에 가니 어려운 책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늘 밝히는 모로님이, 어려움에도 멋진 말이 많아서 사랑이 느껴지는 책이라는 소감을 듣자니 일면 동의도 되었다. 예를 들자면 내게는 이런 문장이 그런 소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란 언제나 사회적 삶으로서, 각자의 관점과 처지를 바탕으로 한 일인칭적 성질을 넘어서는 보다 큰 사회 경제 인프라의 세계로 우리를 매개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윤리적 질문들이 반드시 사회적·경제적 질문들에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바다. 즉,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기본적인 윤리적·정치적 질문을 할 때 우리는 그 행동을 가능케 하는 세계의 환경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 혹은 불안정성이 만연한 상태에서 더욱더 그러하듯이 행동의 조건들을 약화시키는 세계의 환경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조건들이 파괴되고 와해되었을 때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강압의 상태에 놓여 있는 신체들에 의해 실행되는 집회, 혹은 강압의 이름으로 실행되는 집회, 그 집회 그 자체가 이미 끈기 있는 근성과 저항을 의미하는 어떤 사회적 연대의 조건이 될 수 있기도 하다.”(38쪽)

 

 

  윤리적 질문들이 내가 처해있는 사회적·경제적 환경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해 있다는 버틀러의 주장은, 양생을 ‘좋은 삶’이라고 정의할 때 좋음에 대한 감각 자체가 내 위치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다른 환경에 대한 “부지불식간의 배제”를 발생시키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배제가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어떤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일상화된 상태”에서 부르짖을 ‘좋은 삶’을 생각하니 좀 뜨끔해졌다. 그런 면에서 버틀러가 주장한 위의 글귀들은 많은 생각거리를 촉발했다.

 

  이번 세미나 시간에는 애초에 계획했던 들어가며~3장까지는 무리였기 때문에, 2장까지 겨우 토론하게 되었다. <들어가며>는 버틀러가 2010년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인민 봉기 이후 공공집회의 형식과 효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는 배경 설명을 시작으로, 대중시위와 관련해 민주주의라든가 인민이라든가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들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 공공집회의 성격이 단결된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신체적 행동 및 표현의 자유 형식들과 중요하게 관계된 불안정성이란 개념을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방식들이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 불안정성은 “어떤 인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적 경제적 지원체계 탓에 남들보다 더 많이 고통 받으며 상해, 폭력, 그리고 죽음에 더 많이 노출되는, 정치적인 문제로 초래된 어떤 상태를 의미” 한다. 이 부분에서는 이 책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소개의 성격도 있어서 내용 확인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1장 <젠더 정치와 출현할 권리>에서는 어떻게 젠더 수행성 이론으로부터 불안정한 삶에 대한 고려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버틀러는 “수행성”과 “불안정성”이라는 용어로 축약된 두 가지 이론 영역을 탐구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 중에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의존성과 비행위의 영역으로서의 사적 영역, 그리고 독립적인 행위의 영역으로서의 공적 영역을 매우 단호하게 구분”한 것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배고프고, 분노하고, 자유로우면서도 분별력 있게 사고할 가능성은 없을까?” 라는 부분과 관련해서 정리해보는 내용들을 다루었다. 아렌트의 저작을 읽지 않은 상태라는 불리한 조건이긴 했지만, 버틀러의 문제의식 즉, 경제적 필요의 영역(굶주림 등을 야기하는 식량 분배상의 불평등)과 정치 영역을 구분시키지 않으면서 “오늘날 예속 상태에 있는 인민들과 불안정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삶을 특징짓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차별적 노출’을 둘러싸고 모든 제도적 자원에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이 열려야 한다는 의미 등을 정리해 보았다. 튜터님이 불안정성과 관련한 다른 사상가들의 다양한 개념들(호모 사케르, 헐벗은 생명, 내던져진...)을 알려주셨는데, 나에게는 미처 소화되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다.

 

  2장은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였다. 이 장의 일부에 논의된 미디어 부분과 관련한 토론이 있었다. “미디어는 단순히 인민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혹은 그 정의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자기-구성의 재료이자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헤게모니 투쟁의 현장”이 된다는 버틀러의 주장과 관련, 2010년에서 십년의 시간이 더 지난 현재, 미디어의 역할은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버틀러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는 튜터님의 의견 개진이 있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개인 미디어 장비가 시위를 보도하는 중에 여러 검열 형태를 극복하는 바로 그 순간 그것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것이 된다는 점, 그렇게 그 개인 미디어는 시위 자체의 일부가 된다.(137)”는 버틀러의 주장은 여전히 유의미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현재 유투브 환경 등에서 개인 미디어가 검열을 통과해서 저항을 담은 시위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 또한 너무 많은 시대로 접어든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했다.

 

  여튼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유들은 너무 방대한데다 밀도까지 겸비해서 좇아가기도 급급한 터라 결국은 세미나 시간을 넘겼고, 다음 주에는 읽을 내용은 줄이고 1장부터 다시 읽어서 4장까지 세미나를 하자는 제안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돌봄 경제학과 관련 경제학자가 진단하는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돌봄과, 철학자가 돌봄과 관련해서 논증하고 있는 사유의 차이가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경제학자는 제도로 대안을 제시한다면, 철학자는 사유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고 느껴졌다. 인식의 전환과 함께 해야 실현가능한 제도를 창안할 수 있겠다는 의미에서도 버틀러의 사유가 가진 힘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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