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 프로젝트 6주차 후기 : 차이의 정치와 정의 8장,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모로
2023-03-3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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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차이의 정치와 정의' 책을 다 읽었다. 양생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이자 가장 두꺼운 이 책을 5주에 나누어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 들춰보았을 때는 '어라 읽을 만한데?' 싶었는데, 각 잡고 앉아서 읽어보면 자꾸만 기존의 사상을 깨부수고, 깨부수고, 아니라고 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읽으면서 제일 많이 든 생각이 ‘그래서 아이리스 메리언 영이 이 이론을 지지한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였다. 또한 이렇게 부정하면서 도대체 도달하고자 하는 결론이 뭐야? 라는 반발심도 들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1장부터 읽어가다 보니 어느 정도 영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기존의 이론을 해체하면서 담론의 장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읽혔다. 마지막 시간에 겸목쌤 말대로 유토피아가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정치 논의 상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결론이 없는데 그래서 뭐? 라는 물음은 자꾸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하는 결과론적인 태도였음이 반성 되었다. 이런 논의를 읽는 것만으로도 내 의식이 아주 조금은 바뀌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날 공부한 8장은 아이리스 메리언 영이 내놓은 책의 갈무리이자 마무리다. 영은 그동안 긍정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차이의 개념을 바꾸었다. 우리는 이렇게도 서로 다른데 그것을 이해하고 공동선을 만들어서 다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또 다른 억압이나 위계적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는 차이를 좁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공동체로 이루어진 사회보다는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는 도시에서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도시에서는 일탈자 집단이나 소수자 집단들이 배제 없이 서로 어우러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하다. 또한 새롭고 낯설고 놀라운 것들은 쾌락과 흥분을 주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는 모두에게 열려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시에서 어떻게 차이를 배제하고 가로질러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아직도 너무나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음을 느꼈다. 또한 문탁쌤은 토론 마지막에 동네 의회를 민주적 참여의 기초단위로 정하고 그들이 다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영의 주장에, 그게 풀뿌리 민주주의와 뭐가 다른가에 대해서 의문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했던 과거의 경험에서 한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투표가 아닌 방식으로 모두의 의견을 모을 수 있을지 앞으로 많이 이야기해 보아야 할 부분일 것 같다.

 

 아이리스 메리언 영과 서로 배틀 붙은 낸시 프레이저의 책도 함께 읽었는데, 사실 시간이 부족하여 많은 논의를 하지는 못했다. 영과 프레이저는 서로 격렬하게(?) 논쟁하는데 발제를 담당하신 무사쌤 말로는 결국은 둘 다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프레이저는 세상은 이미 이렇게 이분화되어있는데, 그 현실 위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영은 그런 논의 때문에 세상이 더 이분화 된다는 건데, 결국은 둘 다 분리된 세상을 결합하기 위한 이러저러한 시도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이런 논의를 읽으면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서로 주고받는 이 배틀이 재미나게 느껴졌고, 그렇게 까면서도 책 맨 앞에 아이리스 메리언 영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식으로 쓰여있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웃음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정치 구조에 관한 책이 처음이기도 하고, 굉장히 무지했기 때문에 어렵고 재미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내면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런 부류의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역시나 여기에도 이분법적인 사고^^;) 여기서 말하듯 집단의 정체성을 통해서만 개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래서 이런 집단의 구조를 공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지금 내가 하는 고민에 맞닿아서 좋았다. 세상과는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나의 개인적인 고민은  학교라는 집단 속에 억지로 적응시켜야 할지, 아니면 그 구조를 박차고 나와야할지이다. 너무나도 어렵고 복잡한 여러가지 문제가 얽혀있어서 다각도로 생각해봐야 할 측면인 것 같다. 반 년 동안 양생 프로젝트에서 차이의 정치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어떤 결론에 닿지 않을까 싶다. 

댓글 5
  • 2023-03-30 11:31

    와, 모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발제문도 좋았는데, 후기는 더 좋네요^^

  • 2023-03-30 18:56

    역시 엄살쟁이 모로. 명료한 후기 덕분에 지난 시간 복습 잘했습니다.^^

    저는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모두까는 영의 논점을 따라가며 공부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프레이저의 대놓고 까는듯하다가 유쾌하게 돌려까는 방식에도 매료돼서 얼마전에 출간된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도 사버렸습니다. 사놓으면 언젠가는 읽겠죠. 뭐ㅎㅎ

  • 2023-03-31 10:43

    지금 살고 있는 여기에서 차이의 정치는 가능할까요?
    술 먹고 의견이 달라도 토라지기 십상인뎅.
    그 많은 집단들의 차이들이 다같이 증식해나가는 방식이라는 게 너무 거대하고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새 너무 순진하게 희망적으로 생각한 건가...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자꾸 회의감에 쪼그라듭니다. ㅠ.ㅠ
    그러게 정치(운동)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도 같습니다.
    차이를 품고 나아갈 수 있는 큰 품을 가진 사람이여만 할 것 같아요.
    아놔....급 우울해지는 금욜입니다. ㅠ.ㅠ

    발제하고 후기 쓰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모로님...^^

  • 2023-03-31 20:12

    차이의 정치를 공부하는 시기, 딸에게 4세대 걸그룹의 계보를 수업 들으며 전혀 그들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저를 확인했습니다. 차이를 확인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다들 예쁘고 키 크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무엇으로 차이를 구별할 것인가?? 애정이 부족해서인지.....

  • 2023-04-01 10:00

    잘 읽었구먼유~~ 덕분에 정리가 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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