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아이리스 매리언 영 4,5장) 발제문 및 질문 올려주세요

문탁
2023-03-09 11:35
322

1.

지난 주 세미나가 끝나고 묘선주 샘이 공부방에서 책을 좀 더 읽다가 가셨습니다.

몇마디 나누게 되었는데, 묘샘은 지난주 3장, 복지국가/관료제/지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판에서는 "복지국가를 향해!!!"가 슬로건인데,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그 복지국가의 비대화가 관료적 지배의 심화를 낳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묘샘은 동료들과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셨지만, 과연 이 책을 같이 읽어보자고 나설 친구들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눈치셨어요. 

 

전, '집단'이라는 개념이 젤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개인 이전에 어떤 집단에 '내던져' 있구

정체성은 다른 집단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인데

억압은 이 차이를 불변의 속성으로 간주하면서(이렇게 되면 '집단'도 실체화됩니다)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전, 이 접근이 쫌 새로웠습니다.  하지만 '집단'이 엄밀한 사회학적 분석단위가 될 수 있는 건가? 더 엄밀한 '정의'가 필요한 건 아닐까, 라는 맘도 쪼끔 따라왔습니다. ㅎㅎ

 

 

 

2.

4장에서 6장까지는 , 3장의 억압 중에서 '문화제국주의'에 관한 부분을 더 상론하고 있는 장들입니다.

 

"4장에서 6장까지 문화제국주의가 사회정의의 이론과 현실 정책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상론하고자 한다.

4장에서는 부분적으로는 문화제국주의가 자신들의 관점과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또는 중립적인 것으로 강력하게 내세울 수 있는 지배집단의 능력을 통해 수행된다는 주장을 자세히 다루겠다. 정치공동체의 영역에서는 보편성에 대한 주장은 다른 존재로 이해된 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5장에서는 19세기의과학이 일부의 신체들을 표준에서 벗어난 것으로 또는 퇴행적인 것으로 분류하던 방식에 문화제국주의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일부 집단들의 신체를 저평가하는 것을 담론 차원의 인식에서는 몰아내는 데 비교적 성공했는데도, 그러한 신체 평가가 어떻게 집단 간의 일상적 상호작용에서는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문화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이 스스로에 관해 정의내리는 것을 받아들여서 집단 간 차이에 관한 긍정적인 의식을 강력하게 옹호하기 위해 벌인 이들의 최근 투쟁에 관하여 다루겠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집단 간 차이를 위한 정치적 공간을 만들라는 것이 정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임을 주장하겠다." (145~146)

 

 

3.

4,5장을 읽으려니 하버마스, 푸코, 기든스, 크리스떼바 등을 알아야 해서 좀 난감하시죠? 

올해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책이 비슷한 곤혹스러움을 줄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우리가 영의 이 책을 통해 하버마스, 푸코, 기든스, 크리스떼바의 핵심적 주장들 몇개를 파악할 수 있는 거죠. 그럼, 남는 장사입니다. ㅎㅎ (그러니까 어쨌든 좋은 쪽으로)

 

 

 

많은 분들이 젤 낯설어하실 크리스떼바의 자료를 드릴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그냥 우리 책만 여러번 읽어봅시다.

소위 페미니즘 제3의 물결은 차이의 페미니즘이라고도 부르고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이라고도 부르고 프렌치 페미니즘이라고도 부르는데, 90년대 활발한 담론생산이 이루졌습니다. 이리가레이, 버틀러, 식수, 크리스떼바 등이 다 여기에 속하죠. 영의 이 책 자체가 페미니즘 제3의 물결의 연장선 상에서 쓰여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앗, 그리고 5장 처음에 파농이 등장하잖아요? 제가 예전에 파농에 대해 서울신문에 쓴 글이 있어요.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봤더니 금방 검색에 걸리더라구요. 그건 링크 걸어놓을게요^^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60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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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제는 윤경샘과 호정샘이고,  질문은 B조 입니다.

내일 저녁 6시까지 올라오면 참 좋을텐데 말입니다. 그래야 질문들을 한번 읽고 오죠.

그럼 낼, 모레 봬요

댓글 10
  • 2023-03-10 08:05

    우와 저 사진의 여성분이 크리스테바라는 분이예요? 참 멋지게 생기셨네요. 이지적이고 옳곧게 생겼어요. 딱 제스탈이네요.
    푸코의 사진을 처음 보고 반했던 것처럼 크리스테바 이 언니도 반할 것 같은...쿄쿄...책을 읽어봐야겠어요. ㅅㅇㅅ
    여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줄이려고 노력해봐도 4쪽이 넘었습니다. 휴...읽으시기도 힘들고 저도 내일 목을 좀 써야겠어요.
    ㅎㅎㅎㅎ 내일뵈요~~ 룰루 랄라 양생프로젝트가 있는 즐건 토욜~~

  • 2023-03-10 16:35

    저도 낼 목 좀 아플 예정입니다. 바라건대 2쪽, 최대 3쪽을 넘지 않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네요.

  • 2023-03-10 17:42

    발제문을 이렇게나 빨리들 올리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아직 뒷부분을 더 읽어야하지만 우선 질문을 올려보려합니다.

    p237, 개별특수성이 편입된 불편부당성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가정을 설정합니다.
    "내가 개별특수적인 관점과 개별특수적인 역사 및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더라도, 나와는 다른 위치와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타인들의 관점과 감정에 내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은 주체들 간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위치에 차이가 생겨날 때, 어떤 한 주체가 자신과 상이한 사회적 위치의 타인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면서 그녀의 관점을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질문1. 읽는 내내 공감력이 개별특수성을 가진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읽고있었는데, 이런 내용이 나와서 적잖게 당황했습니다. 보통 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과 타협에 이룰때는 상대의 관점에서 공감력이 발휘될 때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감력도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영은 말합니다. 공감력도 하나로 만들려는 시도이니 안된다라는 뜻일까요?

    p261, 하버마스 의사소통 행위이론에 대한 내용입니다(겸목샘이 올려주신 책이 궁금하지만, 아직 영의 책도 못읽은지라..^^;;)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안적 방식이 필요하다고 영이 말합니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필요 및 욕구를 표현할 때 평등한 발언권을 가진다는 조건하에서 규범적 주장normative claim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칸트적 보편주의가 남아있다고 지적합니다. 하버마스는 이성대 감정의 이분법을 나누고 감정에 대한 논의와 규범을 명확히 나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모델은 상호 논증discursive argumentation의 패러다임에 의존하고 있어서 비유적, 수사적 발언들을 경시한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일반화된 타자’의 관점을 취한다고 합니다. 또한 대화에 참여하는 당사들은 암묵적으로 합의를 목표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시민공중의 이상적 통일성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합니다.

    질문2. 상호 논증discursive argumentation의 패러다임란? gpt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의견 교환, 논쟁, 협상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이라고 나오던데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질문3. 여전히 합의를 목표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결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또는 이런 생각 자체가 이상적 통일성을 암묵적으로 담지했다는 말인가요?

    질문4. 이어서, 스스로 개별특수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해준다면 자연스럽게 해결점이 생긴다는 의견일까요? 여전히 합의점을 만들어내야한다는데 집중된 질문일까요?

    여전히 헷갈리는 군요.

    • 2023-03-11 00:47

      이제야.. 다 읽어가는군요...

      보다보니 5장 5) 도덕적 책임과 고의없는 행위 이부분에 대해 살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고의없는 행위 또는 비자발적 행위에 관한 도덕적 판단'에서 의식점검이 생각났는데요, 푸코에서 배웠던 스토아학파의 고대 의식 지도 실천의 고백과 그리스도교적 고백에서의 의식점검이 떠올랐습니다. 스토아학파인 세네카는 자신의 과거와 관련해서 '자기 자신을 점검하는 관리자' 로써 자기 자신을 면밀히 시찰하고 자신이 보낸 하루하루를 점검하거나 자신의 언행과 행실을 파악하는 모습보입니다. 영은 법률적 판단이나 도덕적 책임을 묻는 행위까지 넓게 나아가고 정치화하는 과정까지 말하고 있지만, 개인적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자신 자신을 점검하는 모습이고 그 내용을 세미나와서 토론을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밑에 모로님 마지막 질문이 눈에 들어와서 그렇게 비현실적인 제안일까? 일상에서 실천할 방법은 없나? 생각해보다가 푸코까지 끄집어왔네요..ㅋㅋ

  • 2023-03-10 21:12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매리언 영이 정의한 차이의 정의가 신선했다. 차이란 구체적 사건들이 펼쳐져 가는 것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 가면서 분화하는 것(shifting differentiation)을 말한다. 의미는 이런 차이에서 나온다. 유사성도 차이가 없다면 알 수 없다. 결국 차이라는 것도 절대적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다. 차이는 나와 나 자신의 사이에서도 나와 타인의 사이에서도 늘상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이해했을 때 차이라는 것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237쪽에는 사회적 위치가 상이한 타인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나온다. (사실 이 대목에서 ‘공감’을 강조하고 ‘소통’이라든가 ’이해‘한다는 말을 내가 너무 쉽게 사용해왔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은 참여민주주의가 시민 공중이 아니라 이질적 공중heterogeneous public의 이상을 활성화시켜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질적인 공중에서는 사람들이 타인들에 의해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을지는 몰라도, 각자의 상이함이 승인받고 존중받으면서 당당히 앞에 서게 된다고 말이다. 소수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영의 말은 납득이되다가도 ‘일베’나 ‘국힘당’처럼 너무 이해가 되지 않는 집단들은 존중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여성, 장애인들,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즉 그들을 존중하면서 소수자나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가능할까?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정반대에 있다고 얘기한다면 그 권리를 어떻게 존중해줄 수 있을까? 그들과의 차이가 아주 크게 느껴진다. 영의 정의를 빌어 이 차이들이 분화하고 변해갈 거라는 희망을 가져봐야 하는 걸까? 숙의라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그 과정 속에서 가능할까? 적게 나마 있는 상호 연관성을 찾아서 그 부분의 공감을 토대로 존중을 키워가야 하는 것일까? 영이 제시한 차이와 공감이 어렵게 다가온다.

    • 2023-03-10 23:33

      5장에서 영의 논의를 읽다보니 일베나 국힘당은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부정의한 집단들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은 가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은 가해자를 비난하지 말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게 하라고 합니다. 고의적인 행동만 비난하다보면 무의식적이고 고의없는 행위에 면죄부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비난 받아 마땅하네요. 부정의한 집단을 존중할 필요는 없겠죠?

      5장에서 영은 아브젝시옹(차별, 혐오)에서 벗어나는 길은 ‘모든 주체가 스스로를 복수적이고 가변적이고 이질적인 존재임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네요. 차이에 대한 ‘공감’보다는 자기안의 타자성으로 차이를 긍정하자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2023-03-10 21:42

    영은 개별특수적인 것들을 배제하는 불편부당한 이성을 비판하며 그 대안적 기획인 의사소통 윤리학(하버마스)의 성과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대화적 이성관의 한계를 지적하며 ‘일반화 가능한 이익’을 그와는 달리 해석합니다. 토의 자리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모두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필요를 표출할 때에도 그들의 주장이 일반화 될 수 있고, 규범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자리에서는 ”‘나는 ....... 을 원한다.’는 표현을 ‘나는 ......할 권리/자격이 있다.’”(p241)는 표현으로 전환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요, 예를 든다면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와 유사한 방식의 민주적 토의를 경험하신 선생님이 계시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2023-03-10 21:56

    “억압의 개념에서 출발하는 정의관은 이와 같이 도덕적,정치적 판단의 대상을 담론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적이고 고의적 행동에 국한시키는 입장과 결별해야 한다. 만일 무의식적 반응,관습,고정관념 등이 어떤 집단에 대한 억압을 재생산 한다면 그런 것들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되어야 하며, 따라서 변화되어야 한다.” (327)
    “정의의 범위는 분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포함하여 억압을 지지하거나 약화시키는 모든 사회과정까지 포함한다”(329) . 습관적, 무의식적 특정 행위들이 사회정의의 문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영의 주장이 저는 왠지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정의 문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공론화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래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의 의미를 이제사 이해하고 끄덕이게 되네요…
    또 한가지는 크리스테바가 아브젝티브한 것과 아브젝시옹을 이야기했는데, 흔히 여성들에게 있을 수 있는 남성에 대한 혐오나 피해의식? 공포도 ‘기본적인 안정 체계’라는 맥락 속에서의 위협 때문일까요? 아니면 지배와 억압의 문화제국주의가 작동한 결과일까요? 이게 그거인지…아닌거 같기도 하고 헷갈리면서도 궁금하네요.

  • 2023-03-10 22:30

    물음1)
    저는 5장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4장은 잘 이해를 하지 못했습...)
    항상 왜 사람들은 다름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을까.. 나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조금 해소된 거 같습니다.
    백인 남성 중심의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형성된 억압적 사고는, 품위와 또 연결되는데요. 품위를 지키기 위해 말끔하고 전문직 다운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혐오감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유튜브에 한때 유행했던 흑인들이 스타벅스 라떼 컵을 들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생각났어요. 아무리 우락부락한 흑인들도 스타벅스 라떼컵을 들면 전문직 남성처럼 보인다는 흑인들의 자조 개그였어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아브젝시옹이 좋았습니다. 제가 무려 5개의 포비아가 있는데 (폐소, 고소, 뾰족한 거, 큰 새, 피 공포증) 이게 진짜 이유가 없는데 정말 식은땀이 나거든요. 정말 비합리적인 두려움인데 저한테는 생생합니다. 이것과 아브젝트 한 것에 대한 공포를 연결시키니까 저에게 이해가 잘 되었던 거 같아요. 특히나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심한 이유도 누구나 게이가 될 수 있고, 그러므로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비합리적인 역겨움을 가지고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아하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왜 도대체 자신과 관련도 없는 동성애자에게 혐오를 품는 것인가가 진짜 궁금했거든요.

    물음 2)
    그리고 읽다 보니 태국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트렌스젠더가 가장 많은 나라고 실제로 가보면 다양성에 대해서 굉장히 개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렌스젠더들이 일단 굉장히 많이 만날 수 있고, 치앙마이에서 자주 가던 파니니 카페 점원도 키가 엄청 큰 트렌스젠더 분이었거든요. 우리나라에선 일상적인 서빙 같은 영역에서 거의 볼 수가 없는데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왜일까 궁금해서 조금 찾아봤는데, 태국이 모계 중심 사회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여자들이 대부분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부분이 많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여장이 보편화 되었다는 주장이 있던데 사실일까요? 백인 남성 중심의 흐름에서 어느 몇몇 나라들은 좀 다르게 형성되었다는 점이 궁금해졌습니다.

    물음3)
    메타 인종차별주의의 부분에서 약간 뜨끔했습니다. 나는 당연히 인종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엘레베이터에서 건장한 흑인 남성과 단둘이 타고 있을 때, 움칫한 경험이 있습니다..

    물음4)
    327p의 물음인 과연 고의가 없는 행위는 고의적 행위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돼야 하는가? 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여기서는 습관적인, 무의식적인, 생각 없이 발화되는 말들이 억압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것까지 안 하는 것은 부처의 영역 아닌가요?

  • 2023-03-1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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