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후기> ‘차이의 정치와 정의’ 서문과 1장

경덕
2023-02-26 19:18
231
 
안녕하세요, 1년 프로그램이 처음인 경덕입니다.
 
오래 전부터 1년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여해오셨다는 기린샘과는 달리, 장기 프로그램이 처음인 저는 조금 낯선 시간 단위를 체감하고 있어요. 제가 그동안 참여한 세미나는 보통 길어도 10주 내외였거든요. 1년을 내다보며 참여하는 세미나의 한 주 한 주는 저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앵, 이제 2월인데 12월까지 한다고?, 오늘 만난 샘들과 1년동안 매 주 본다고?, 아직 추운데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추워질 때까지? 저는 약간은 다른 소속감과 안정감으로, 약간은 설레고 이상한 기분으로 올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첫 시간 소개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다른 장기 프로그램도 같이 신청해서 몇 몇 샘들의 응원과 우려를 동시에 받기도 했는데요, 올 한 해의 저를 응원하고자 아이패드를 구매하였습니다. 첫 시간에 저와 저의 아이패드를 소개한 후에 전자펜슬을 꺼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더라고요. 저는 조용히 종이와 연필을 다시 꺼내야 했습니다.
 
양생프로젝트 두 번째 시간에는 아이리스 메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 서문과 1장을 읽고 만났습니다 . 겸목샘이 서문을, 제가 1장을 발제하였어요. 첫 발제를 맡아 텍스트를 좀 더 꼼꼼히 읽은 덕분에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당시(1990년대, 미국)에 퍼져 있던 ‘분배 패러다임’의 편향된 시각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페미니스트 정치학자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아주 작정하고 써내려간 비판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 모든 것의 정의는 ‘분배’로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출한 학자들을 한 명 한 명 언급하며 비판하고, 분배 패러다임으로 인해 가려지는 ‘사회 구조’와 ‘제도적 맥락’을 보여주고, 비물질적/관계적/과정적 가치들까지 분배할 수 있다고 하는 분배적 정의 이론을 문제 삼습니다. 영은 자신의 비판 작업이 ‘비판 이론’의 규범적 상상력을 옹호하며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서 시작하는 작업이지,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인 보편적이고 초월론적 이론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문탁 샘은 이런 태도의 글쓰기가 무척 인상깊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이는 어떤 문제를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 때의 ‘말과 글’이 어떤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나오는 것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텍스트가 “잘 읽히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문탁샘) 이유는 저자가 사용하는 개념들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 중간 중간 맥락을 짚어주시는 문탁샘과 겸목샘의 미니 강의 덕분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영이 언급한 비판이론은 아도르노-마르쿠제-하버마스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론인데, 그 이론은 또 로크-맑스-프랑크푸르트-후기구조주의(푸코, 들뢰즈 등)의 맥락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이 비판하는 존 롤스는 공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분배 정의론’을 주장했고, 롤스의 정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로버트 노직이 ‘소유권리론’을 주장했어요. 하지만 영은 노직의 ‘분배 정형 비판’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결과론적인 분배 정형은 정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분배 정형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기 때문이죠. 또 합당한 소유와 권리에 주목하느라 개인의 행동이 모여 만들어지는 구조적 효과는 간과한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영은 ‘정의’라는 용어와 개념을 집요하게 붙들고 옹호합니다. 저한테 ‘정의’라는 단어는 그냥 말하거나 속삭이면 안되고 부르짖거나 외쳐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어색한 말입니다.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거나 무언가를 부르짖은 경험이 거의 없는 저에게 ‘정의’는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 지식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진부한 말, 마이클 샌댈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있던 시절 서점이나 출판계로부터 들려오던 말이었어요. 근데 어느 시기부터 인류세와 ‘기후정의’라는 이슈로, 작년 동물권 행진과 기후정의 행진에서, 그리고 얼마 전 전장연 이동권 투쟁 집회에 참여하며 ‘정의’를 다른 맥락과 분위기 속에서 만나고 있어요. ‘정의’는 저에게 있어 다시 재발견되고 있고 재발견해야 하는 말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정의를 부르짖은 적은 없지만 어떤 사회 이슈를 접하고 내적으로 부글부글 끓을 때가 종종 있고, 그 내적인 무언가를 어떻게 발화하거나 실천하면 좋을지 모르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영으로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만나게 될 ‘정치’와 ‘정의’의 언어들이 내 상황과 경험 속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책 내용에 집중한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한 분 한 분 샘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윤경 샘의 지역활동과 자신의 오지랖에 대한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찰, 루틴샘이 쏘아올린 연봉협상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들(노동 분업, 서로 서로 평가하는 제도들, 구조를 볼 수 없게 만드는 환경들), 묘선주 샘과 먼불빛 샘의 사뭇 다른 사회복지 현장 이야기와 정의관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이어졌고, 한국 사회에서 과정으로서의 공정,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다음 소희>에서 중산층 가정, 인문계 학생 밖의 이야기를 볼 수 있고)를 나눴어요.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영이 ‘정의’를 왜 그렇게 옹호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뭔가 철 지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읽혀온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는 기대감으로 남은 챕터를 읽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지적이고 사려깊은 많은 여성 선배들 틈에 껴있다는 생각도 들면서(13분의 세미나 샘들, 아이리스 영, 버틀러, 해러웨이…….), 올 해를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기대가 되고, 발제와 리뷰도 첫 순서로 했으니 당분간 한 숨 돌리면서 재밌게 참여하겠습니다ㅎㅎ
댓글 6
  • 2023-02-26 20:03

    공부한 내용이 잘 정리된 후기네요. 나눴던 얘기 포함해서요. 덕분에 복습 잘 했습니다! ^^
    전 이번 셈나하고 분배패러다임 너머 좀 더 확장된 정의를 말하는 영의 맥락을 우선은 잘 따라가보자 마음 먹었어요. 가만보면 정의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것도 같구요. 저의 저번 질문은 좀 이른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부 속에서 더 벼려서 나중에 함께 얘기하고 싶네요~~

  • 2023-02-26 20:15

    오! 좋은 후기!! 분량 많은 1장 발제와 후기까지 경덕이게 밑기고 나니, 난 다음 발지와 후기의 후폭풍이 두렵네^^ 담엔 내가 독박 쓰겠소! 이런 생각도 분배 정형인가 싶기도 하네!

  • 2023-02-26 20:33

    저는 정치를.. 사회학을 거의 접해보지 못해서 ㅜ
    아주 낯선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첫 시간, 다른 선생님들 덕분에 어떤 점에 촛점을 두고 읽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어요.
    경덕님 후기 덕분에 정리가 쏙쏙 되네요. 감사합니다~

  • 2023-02-27 09:00

    경덕샘 첫 발제와 후기를 쓰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지난 세미나 시간 복기를 잘 했습니다. ㅆㅇㅆ
    저는 첫 세미나를 하고 나니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좋아질라 해요.
    문탁샘이 올려주신 사진에서 본 영의 외모에도 친근감이 느껴지고요. ^^
    영은 분배 패러다임 뒤에 감춰진 사회적, 제도적 맥락을 보자고 말합니다. 정형 자체보다 누가 이 분배의 정형을 결정하는지, 왜 그들이 그런 자유와 권위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자고요.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의사결정 구조는 분배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또 그로 인한 부당한 속박을 재생산 해내니까요.
    저는 <다음소희> 영화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되는데요. 상담사(소희)와 고객(우리들)을 싸우게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왜 우리는 시스템에 분노하지 않고 우리끼리 서로를 헐뜯고 괴롭히게 됐을까? 아마 이런 지점을 이번 책을 읽으면서 계속 짚으며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좀 이른 결론 같지만 "정의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91쪽)라고 말한 영의 생각에 저도 100퍼 공감합니다. 결국 이 사회를 어디로 향할지 결정하는 제도나 규칙은 정치로 정해지는 것일 테니까요. 서론에서 정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짚어봅니다.
    한나 피트킨은 정치란 "비교적 지속적인 상당 규모의 사람의 집단들이 공동으로 무엇을 할 지를 결정하고, 어떻게 함께 살지를 정하고, 미래를 결정하고, 어느 정도로 그런 결정이 자신들의 힘 아래에 놓일지를 결정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39쪽)
    로베르토 웅거는 정치를 " '어떻게 행동할지와 관련해서 우리 인간이 열정적인 관계를 맺을 때 그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자원들 및 제도들을 둘러싼 투쟁으로 규정하면서 '그런 제도들 중 최고의 것이 사회적 삶의 제도적 맥락과 상상적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39쪽)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제도상의 조직, 공적 행동, 사회적 실천과 습속, 문화적 의미의 모든 면에 연관되어 있다." (39쪽)
    나는 정의로운가? 내가 정의로워 지려면 어떤 행동을 하며 사회적 실천을 해나가야 할까? 저는 일단 그 답이 정치라고 생각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정치적인 행동들을 고민하며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남은 챕터들에서 영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가 되네요..^^ 분량이 꽤 되지만 저는 어제부터 서론,1장 복습하고 오늘 2장을 읽어 나가려고요. 복습 개념으로 지난 세미나 부분을 다시 읽기 했더니 또 맥락이 다르게 읽히더라고요.
    토욜 뵈요~~

    • 2023-02-27 09:48

      와우 👍

  • 2023-02-27 10:15

    1.노직과 영의 정의관에 관한 비교 강의를 듣고,
    어디까지를 정형적 요소로 볼 것인가? 과정을 고려한 평가 역시 반복 수행되면 정형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차이를 고려한, 사회적 맥락에 따라 정의관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인데, ‘기준의 유연성’이 낳는 부정적인 측면은 없을까? 등의 의문이 생겼습니다.

    2.추가로 2강 ‘사회집단과 정체성’ 부분을 예습하다보니 드는 생각은,
    (생물학적 여성인 것은 같지만) 그렇다고 제가(혹은 우리가) ‘여성’ 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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