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의례>1~3장 후기

겸목
2022-10-27 16:50
226

어빙 고프먼의 이름을 알게 된 건 김형경의 <사람, 장소, 환대>을 읽으면서였다. '연극적 자아' '무대' '분장소품' 등 사회생활을 연극의 메타포를 통해 설명하는 고프먼의 이론이 새롭고 궁금했다. 올해 양생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감정사회학과 함께 고프먼의 사회학을 공부해보기로 작정했다. 감정과 고프먼이 연관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사회학'이란 어디에 갖다붙여도 말이 되는 부분이 있어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래서 드뎌 고프먼의 책을 읽게 되었다!! '성덕'이라고 할까?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세미나커리에 넣어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튜터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일단 고프먼의 책은 낯설었다. 우리는 흔히 '체면 차리기'라고 하는 것에 대해 갖고 있는 껄끄러움이나 불편함을 느끼는데, 고프먼에게 인생과 사회는 상호작용의례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에게 아침인사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마주쳤을 때, 회사 복도에서 상사와 부딪쳤을 때, 동창회에서 으시대는 선배를 만났을 때, 경조사 자리에서 먼 친척을 만났을 때 등등 우리가 귀찮아하고 회피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고프먼은 이 상투적인 관행의 레퍼토리들을 잘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개인은 없다. 어디에나 '사회'가 있다. 두 사람이 잠시 눈인사를 하는 짧은 순간부터, 이웃과의 주차분쟁, 상사와의 언쟁 등등 매순간에 사회는 만들어지고 그 상황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적당한 처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좀 나은 조건에 있다면 스스로를 비하하는 방식으로 서로간의 위계감을 수평으로 맞출 수도 있다. 또 누군가 나에게 모욕을 주었다면 나는 그에게 사과할 것을 요청해야 하고,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빈다면 그에게 용서를 해주는 아량을 배풀어야 한다. 이 역할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가족들에게는 성질을 버럭 내며 큰 소리 치고 나왔을 수도 있지만, 커피전문점에 들러서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고객에게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경조사행사에서는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채플린의 영화처럼 무성영화로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화내고-친철하고-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으스대기도 하는 코미디 영화 한편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고프먼은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를 작은 단위로 쪼개서 고찰하고 그것의 원리를 뽑아낸다. 그래서 그의 사회학은 미시사회학과 거시사회학이 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천재들의 장기란 아무도 뒤섞을 생각을 못하는 것을 과감히 결합해버리는 과감함에 있는 것 같다.

 

고프먼의 사회학이 새롭다는 점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무엇인가? 무수한 작은 상호작용 속에 우리의 자아는 그때그때 주어진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고정된 자아는 불가능하고 우리는 복수의 자아를 가지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자아를 연출하며 살아간다. 이런 직관이 나에게는 '숨통'을 틔여주는 시원한 맛이 있었다. 배우처럼 혹은 게임선수처럼 정해진 배역을 혹은 게임의 룰에 따라 주어진 '패'에 연연해하지 않고 상황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말이다. 그간 내게 주어진 '패'가 마음에 안들거나 결정적이라고 좌절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고프먼의 이론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주어진 역할에 따라, 주어진 패에 따라,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지, 내가 용서를 해줘야 하는지 파악하고 판단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졌는냐에 있지,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백설공주>연극을 했다. 그때 놀랐던 건 백설공주 배역을 맡은 아이들이 대여섯은 되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에 백설공주1,2,3,4....로 배역을 나눠서 해야 했다. 그러면 연극 자체는 우스꽝스러워진다.

 

상호작용 의례의 참가자들은 '손발이 척척 맞는 연기'를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해내야 한다. 그러려면 관행의 레포토리와 코드를 잘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세미나에서는 요즘 등장한 AI가 이것을 잘해낼 수 있을지, 오히려 인간보다 더 빨리 패턴을 인지하고 해석해서 낫지 않겠는가 하는 예측이 있었다. 혹은 해러웨이의 제안대로 '인간+AI'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사회가 어떤 상황을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아무튼 상호작용 의례에 잘 반응하기 위해서는 눈치가 있어야 하고, 혹은 눈치껏 못본 척 하는 연기도 필요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눈치 보지 말고 살아라'가 모토였던 대학 학부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무례'의 폭격을 퍼붓는 생활을 했다. "이게 시냐?" "너는 글을 쓰지 마라!" 이런 막말을 주고받고 주먹다짐까지 오고갔다. 그때는 그게 의례라고 생각했다. "이게 시냐?"라고 부딪쳐올 때, "미안해. 내가 좀 미흡했지."라고 인정하는 겸손한 모습이 아니라, "이건 왜 시가 아닌가?" 대들고 고집부리는 것이 맞는 의례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 시절에는 그게 의례였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뒷부분을 읽어보니 도박을 게임뿐 아니라 인생으로 비유하며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판돈은 얼마이고, 나는 무엇을 걸고 있는가, 위험한 경기에 도전하려 하는가? 투우사의 경기와 도박사의 게임 그리고 우리의 생활도 다르지 않고 거기에 '행동'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고찰하는 고프먼의 시도가 흥미있다. 나만 흥미 있으면 안 될 텐데......내가 눈치 없이 나만 재미있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감수성을 키우기 어렵군^^ 이번주 토요일에는 <상호작용의례> 끝까지 세미나 합니다. 다들 그때 봅시다~~

 

 

댓글 2
  • 2022-10-27 18:48

    아.. 쌤- 뒷부분에서 도박과 행동과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아하하! 😅😅😅

  • 2022-10-27 21:38

    의례는 정말 거창하고 대단하고 신성한 것들을 위해 준비된 어떤 규칙인줄 알았는데, 고프먼 덕분에 우리가 늘하면서도 쪼금은 불편했던 일상의 의례적 사교적 행동들이 실은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동시에 우리는 각자와 상대를 신성한 요소로 대하고 있고 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참 신선했어요~

    음ᆢ그런데 인간의 '행동이 있는 곳' 엔 너무 많은 일(?)이 있더군요 ㅜ 지연샘 언희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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