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수치심>끝 후기-혐오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린
2022-10-04 12:25
312

 

총 5회 차에 걸쳐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 세미나가 끝났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이다. 세미나 내내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파괴 하는지 현대 사회에서 제정된 법체계와 연계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세미나였다. 마지막 시간에는 5장: 시민들에게 수치심을 주어야 하는가? 와 6장: 수치심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를 중심으로 했다.

 

수치심의 경우 너스바움은 “상호 존중과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수용”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정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 수치심이 법적 규제의 근거로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의 의미에서는 너스바움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정의된 자유에 대해 비판적 수용의 입장을 밝혔다. 남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의하지만, 밀의 주장은 대체로 다원주의적인 현대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상세한 지침을 주기에 역부족하며, 나아가 밀이 제시한 공리주의 시각은 다시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치심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 체계로는 1)빈곤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사회복지 체계의 역할 2)차별방지법과 증오와 편견에 기초한 범죄방지법 3)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법적 보호 측면 4)장애를 지닌 시민들이 수치심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률 개혁을 다루고 있다.

 

7장의 결론에서는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 관한 심리학적 주장이 밀의 위해 원칙보다 더 강력한 자유주의의 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즉 혐오와 수치심의 감정을 자신의 완벽성을 지향하는 나르시시즘,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기피, ‘정상’에 대한 불안한 집착 등 인간 사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들로 해석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정서가 개인을 여성, 유대인, 장애인 등 비정상 집단으로 ‘예속’시키며 이들에 대한 공격성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이상인 상호존중과 호혜성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나르시시즘과 혐오에 맞서 싸워야 하며,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 편으로 자유주의에서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취약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도덕 감정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위해에 대응하는 분노와 분개, 손상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 상호 존중에서 비롯된 감사와 사랑, 그리고 사회적 손실을 방지하고 교정하게끔 만드는 동정심이 그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근거로 자유주의 국가의 법칙 지침이 재고 되어야 하며, 사회적 위계를 불러오는 혐오와 수치심은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일 뿐이다.

 

결론에서 너스바움은 인간 삶에 내재된 깊은 어려움을 고찰함으로써 적어도 자유주의 사회가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발전시켜야 하는 일정한 역량을 “지배하기보다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즐길 수 있는 능력,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동물성,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촉진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공적 제도의 설계, 공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마무리 했다.

 

『혐오와 수치심』을 읽고 세미나 하는 내내 일상에 편만한 혐오와 수치심을 통한 낙인찍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신체의 불편과 관련하여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타자를 낙인찍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우리의 내면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세미나가 있었던 주말에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삼십분 이상 걸으면 힘드신 체력이라 휠체어를 타셔야 했다. 어머니는 내내 나처럼 훨체어를 타는 노인네가 없다면서 창피스럽다는 말을 연발했다. 노인네가 그 몸으로 집안에 박혀 있을 것이지 왜 나돌아다니느냐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면서. 늙음에 대한 혐오가 어머니 안에도 내면화 되어서 바깥나들이 하고 싶은 마음과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말을 자꾸 들으니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계속 살피면서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세미나가 끝날 무렵 나는 혐오와 관련해서 꼭 읽어볼만 한 책인데 표지가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친구가 책 뒤에 붙은 표지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어 주었다.

 

“영국 화가 제니 사빌은 비곗덩어리 여성 누드를 고수하여 전통적인 회화의 소재였던 아름다운 비너스상을 지향하는 기존 화단에 도전하는 한편, 왜곡된 미의식에 의해 소외되고 수치스럽게 여겨졌던 여자의 비대한 몸을 당당하게 제시함으로써 다수가 합의하는 권위와 정전에 의문을 던진다. 표제 그림제목: 「인생의 어느 시점」”

 

이렇다. 세미나 내내 우리에게 내재된 혐오를 인식하자고 읊었고 문제의식을 벼린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책표지에서 느낀 내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뚱뚱한 여자의 몸이라고 하면 할 말 많다고 입에 거품을 물기도 했던 나로서는 정말 대략난감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실제와 괴리된 현실 인식의 한계와 모순을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 책을 덮으면서 다시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혐오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댓글 3
  • 2022-10-04 15:09

    저는 이 책 읽은 덕분에 이반지하의 책을 읽게 되었고, 이렇게 멋진 필자가 있었다니 감탄하고 있어요^^편만한 편견과 혐오와 수치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은 아쉬움이 있지만, 아직 세미나가 끝난 건 아니니 남은 시간 동안 서로의 속내를 나눠봅시다~너무 들이대는 어투인가요? 그럼 슬슬 알아가봅시다^^

  • 2022-10-04 17:17

    세미나 글 읽으며 기린님이 소리내어 이야기 하는 듯 느껴진건 왜일까요? ㅋ

     

    책표지에 대해 그다지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어쩌면 아름다운 여자 누드였다면 더 신경써 관찰하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태도 저변에는 어떤 편견과 혐오가 자리하고 있었을까요? 

     

     

     

     

     

  • 2022-10-04 19:11

    저는 오히여 표지 속 모델 성별이 여자인 건 인지하지 못했지만 제목에 딱 맞는 인상적인 표지라고 느꼈어요. 법철학에 대한 내용일 줄은 몰랐지만 법에 대한 기본 원칙과 기준에 대해 무지함을 알게되고  일상 곳곳 나의 생각 면면에 깔린 혐오와 수치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저는 표지 때문에 이 책이 오히려 <여성의 수치심>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을 줄 알았어요. <여.수>도 겸목쌤이 추천해주신 김에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기린쌤의 음성이 생생히 지원되는 듯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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