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1~2부 후기

겸목
2022-07-18 11:41
232

작은 딸이 나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이 말의 순도는 어느 정도일까? 5~60% 정도 진실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딸에게 하는 말 가운데 딸이 듣기 싫은 소리에 대해 '편견'이라고 몰아붙임으로써, 엄마 말을 듣지 않겠다는 보이콧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뎌 읽게 된 <편견>을 펼쳐보니, 아마도 내 말이나 생각이 8~90%는 편견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쩜 딸의 말이 맞을 수도. 그간 내가 나이가 많다고, 경험이 많다고, 세상을 좀 더 안다고, 딸의 의견을 묵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든 올포트의 <편견>은 우선, '편견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한다. 편견은 "사실에 대한 합당한 검토나 숙고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형성된 미숙하거나 성급한 판단을 의미한다. 우호적이건 비우호적이건 다른 사람 혹은 사물에 대해서 실제 경험 이전에, 혹은 실제 경험에 근거를 두지 않은 채로 품게 되는 '좋고 싫음'의 정서적 특색을 가진다." 특히 편견은 새로운 지식을 접했는데도 수정되지 않는 예단을 말한다. 그리고 편견은 특유의 비합리적 기능을 갖는다. 많은 편견은 유력한 사회적 관습에 동조함으로써 발생한다. 딸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을, 성실히 작업할 것을 종용하는 나의 태도에도 '근면성실이 선이다'라는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 딸에게는 근면성실이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경험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정말 근면성실이 인간에게 '선'인가 물어야 한다.

 

<편견>1부에서는 우리가 왜 편견에 빠지기 쉬운가도 설명해준다. 편리하기 때문이란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주류의견에 동조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식의 기본은 '범주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습관처럼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범주화'과정을 거친다. 그가 소속된 집단의 경향성을 그 사람의 특징으로 '퉁쳐'버린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인종, 종교, 민족, 국가라는 범주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우리는 오늘날은 그것보다는 어떤 아파트에 사는가,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가,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가와 같은 범주화를 통해 누군가를 안다고 일반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것들은 대부분 '소비자정체성'이었다. 오늘날 인종, 종교, 민족, 국가라는 범주보다 소비자라는 범주가 우리에게 더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생들의 대화에서 너네 TV 몇 인치인가, 너네 차는 벤츠 무슨 클래스인가? 라는 디테일한 '차이'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고 해서 씁쓸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미니어른'인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오싹했다. 그니까 세상은 한방에 나빠진 게 아니라, 이런 많은 시간이 축적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2부에서는 편견을 정당화하는 '차이' 그 중에서도 집단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비판 받아 마땅한 '차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저자는 그러한 평판이 반박의 여지 없는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물어야 하고, 또 그 차이에 대해 왜 무관심이나 동정심이나 자애로운 관심 같은 감정이 아니라 혐오감이나 적대감을 불러일으켜야 하는지 물어야 하고 만족스러운 답변을 할 수 있을 때에만 '받아 마땅한 평판'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차이'가 범주화를 가능하게 하는데 이때 가시성은 매우 중요하다. 흑인의 피부색, 유대인들의 전래하는 의례 등은 눈에 띄는 차이들이고, 이 차이는 그들을 구분해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예단하고 관찰한다면 뭔가 분명히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눈에 불을 켜고 다른 점을 찾으려 한다면, 무엇인가를 분명히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차별을 불러오는 확고부동한 증거가 되는 비합리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가시성은 그 집단에 대한 온갖 종류의 생각과 감정을 응결하는 요술지팡이 역할을 한다. 여성혐오담론이 이슈가 될 때, 남성과 다른 여성의 특징들은 쉽게 '표적'이 된다. 머리길이, 옷차림, 귀가시간 등. 이번에 일어난 인하대 여학생 강간피살사건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신상털이에 이어 곧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시작되었는데, 옷차림이 이상하지 않았나?라는 의심부터 발동되었다. 옷차림이 야한 여성은 범죄의 대상이 되어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여기에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저런 의심은 확산된다. 

 

지난 시간은 2학기의 첫 날이었고, 이번에 새로 합류한 당최, 하현, 이이님과 함께 했다. 함께 공부할 동료가 늘어난다는 건 늘 기쁜 일이지만, 아직은 좀 어색하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 알아갈 때 그 기쁨이 실감될 것 같다. 그래야 서로가 주고받는 말에도 밀도가 달라질 수 있고, 이해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세미나에서 주책스럽게 드라마에 대해 수다를 떠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드라마라는 또 다른 텍스트를 통해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론을 좀더 점검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는 것을 새로 오신 분들이 납득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지난 주에는 매일 한두 개씩 기사가 올라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스르륵샘이 말씀하신 우영우의 로펌 동기 가운데 최수연과 권민우, 두 사람 가운데 누가 편견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로스쿨 동기로 늘 우영우를 배려하며 동시에 업무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최수연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 없이 경재상대로만 보는 권민우, 누가 편견이 있는 사람일까? 우리는 어느 쪽일까? 이번주도 드라마는 방영되니, 요점을 주목하면서 시청해야겠다.

 

7월 23일에는 <편견> 3~4부 세미나합니다. 발제는 스르륵샘과 정의와미소샘입니다. 일주일 잘 보내시고, 토요일에 봬요~ 지연샘의 승진턱도 달달하게 잘 먹었습니다. 부장에서 위원이 되신 지연샘의 직장생활도 우리 셈나팀의 이슈다. 그녀의 직장생활은 어떤 드라마를 그려나갈까? 우리팀의 비타민 나래님이 결석해서 이날 특히 허전했습니다. 나래님 이번주에는 꼭 봅시다~

 

 

 

 

댓글 4
  • 2022-07-18 12:13

    소비자정체성에 이어 MBTI도 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네요. <환승연애>시즌2 1.2편 보는데 MBTI로 일단 규정짓고 시작하네요. 처음이니 그렇고 자신의 편견 자체 알아채고 참고만 하고 오래 만나며 그 사람 자체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어요. 저는 짝꿍 이렇지라며 규정짓는 일이 점점 잦아지는데 이 점 돌아보려고요.

     

    우영우는 저도 요즘 눈시울 붉혀가며 몰입하며 시청하는 따뜻하고 착한 잘 만든 드라마! 요즘 장애인들에게 "너 우영우지?"라는 말로 비하하며 규정짓는 말로 남용된다는 소식은 슬프지만. 저도 누가 더 편견에 입각한 행동인지 질문하며 열혈 시청할게요. .

     

    저는 편견 책 읽다가 급 종이 신문 구독했어요. 다양한 작가들 글 구독도 신청해 두었고요. 그간 SNS로 익숙하고 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해서 지금부터 조금 달리 사회. 이야기 소식 접해보고 싶어서요ㅋㅋ

     

    저는 지난 주말 휴식 잘 하고 충전 만땅했습니다. 주말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요ㅋㅋ 이번주에 더 반갑게 활기차게 참여할 수 있을 듯요! 뉴페분들까지 모두 이번주 토날 뵈어요 : D

  • 2022-07-20 14:54

    우영우로 편견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겠네요~~~~

  • 2022-07-20 15:30

    후기 잘 읽었습니당- ^^ 겸목 샘 후기를 읽다가 작년에 본 영화가 생각났어요. "프라미싱 영 우먼" 강간 복수극인데, 생각해보니 잘 나가는 남학생과 잘 나가는 여학생에 대한 편견에 대한 영화였네요. 주말부터 간간히 다시 보기 시작한 "스포트라이트"도 성직자와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나오고 있구요. 편견을 다룬 미디어 텍스트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 같네요- 새로 오신 분들과도 더 깊은 얘기 더 많이 나눌 수 있길 바래요. ^^

    • 2022-07-21 08:10

      두 편도 봐봐야겠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스토리가 편견을 깨거나 편견을 일깨워주는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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