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 5장 후기

기린
2022-04-06 21:16
418

사랑은 왜 아픈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에바 일루즈의 주장을 좇아 삼 주를 보내는 동안 우리의 세미나는 현재 우리가 보고 느끼는  사랑의 맥락에 대해 끊임없이 난상토의가 이어졌다. 그 안에서 현대 사랑에 대한 문화모델로서의 영화, 드라마, 예능, 소설까지 쉴 새 없이 도마에 올랐다. <나는 솔로>에 공들인 시간으로 리얼리티 예능 안에서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는 희귀한 인물을 만났다는 겸목 튜터의 분석도 있었고, 브로맨스의 시기를 지나 워맨스 분위기를 유독 강조하는 요즘 드라마 경향을 침 튀기며 썰을 푼 나도 있었다. 그 사이 온갖 대중문화를 검색하며 사랑에 관한 현대인의 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나래님, 젊은 친구들에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연신 안타까워하던 언희님, 드라마를 거의 안 봐서 모른다며 우리를 신기하게 봐준 정미님, 에바 일루즈의 주장에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더라는 지연님, 너무 설득력이 높아 밑줄 좍좍이 흘러넘치더라는 스스륵님까지. 이 책을 떠올리면 시간을 넘기며 온갖 사랑을 긁어모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세미나 분위기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래서, 일루즈는 사랑은 왜 아프다고 했는가? 일루즈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비롯 19세기 소설 등을 분석하면서 사랑은 어떤 면에서 대부분 아픔을 동반했다고 본다. 현대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아픔을 동반하는데 이 때의 사랑의 아픔은 그것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 착목하여 현대의 사랑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나갔다. 사랑의 감정은 열정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로 인해 아픔도 동반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사랑은 이 열정을 식게 만드는 온갖 것들이 작동된다. 경제 논리에 사로잡힌 결혼시장, 남녀 사이에서 인정에 대한 주도권이 남성에게 치우쳐 있는 구조, 불확실성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연애 관계, 합리에 묶여 어떤 선택이 가장 이득인가 계산에만 골몰하는 현대인들, 온갖 미디어를 통해 상상력마저 상품화된 감정생활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일루즈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열정과 같은 밀도 높은 감장의 상실이 문화적으로 아주 심각한 손실이며, 감정이 식어버린 탓에 우리가 상처를 입을지는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격정적으로 맺어지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그녀는 아픔 없는 열정적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른  작가의 주장에 흔쾌히 동의했다.

 

<한번쯤 겪어야만 될 사랑의 고통이라면 그대로 따르겠어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라는 것도 없어요 모두 다 주고 싶어요 소중한 것은 사랑뿐 그밖에 뭐가 있나요

 

그러나 사랑은 나에게 고통을 안겨줬어요 진실을 감추며 외면한 말없이 돌아선 이별

사랑은 약한 마음에 상처만 가득 남기고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진실을 알게 했어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마음은 둘 곳을 모르고 너무나 슬픈 생각뿐

얻고 싶었던 사랑을 끝내는 잃어버린 채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진실을 알게 했어요>

 

구창모의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를 따라 부르면서 자란 세대인 내가 오십 하고도 다섯이 된 지금, 현대에는 더 이상 이런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회학적 분석을 끝내면서, 다시 이 노래가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아플 수 있는 능력이 퇴화해 가는 만큼 미성숙한 채로 삶의 진실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댓글 3
  • 2022-04-07 08:40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나 과몰입했던 저는 혹실드 읽으면서 감정노동으로 훅 갈아탔어요!! 원래의 문제의식인 감정의 맥도널드화로 순항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행이다~

  • 2022-04-07 09:03

    일루즈의 결론대로 열정 같은 밀도 높은 감정도 중요하지만 우정 같은 지속 가능한 감정에 기반한 혈연 외의 '다정하고 느슨한 다양한 관계'가 현대인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 노동해야 하는 관계 외의 관계가 빈곤하면 배타적 독점적 사랑이라는 낭만적 유토피아에 홀릭하고 현실과는 또 차이가 나버리고 자아는 더 소외되는 거 아닌가 하고요.

     

    저도 감정 노동으로 재빨리 환승했는데 일루즈 책초반에 느낀  감탄은 없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감정노동' '감정관리'에 대해 정리할 수 있겠어요.

  • 2022-04-08 11:23

    저는 기린샘의 워맨스 포착이 가장 인상적이었아요- 그 뒤로 모든 드라마에서 워맨스를 찾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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