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_1,2장 후기

김언희
2022-03-22 00:15
249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현대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19세기의 사랑과 결혼은 공적 감정의 차원에서 설명된다. 19세기의 사랑은 의례화한 질서 속에서 빚어지는 결과로, 이를 감정 수행성 체제라고 부른다. 반면, 현대는 감정 진정성 체제로, 주관에게 감정의 본성과 그 진짜의 근거를 묻는 자기검증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대목에서 이제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자기 검증, 성찰의 과정을 통해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타인에게 입증해야 한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더 이상 집안이나 도덕으로 서로의 가치를 입증하지 않는 대신,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성적매력을 극대화해서 이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선택의 기회가 이전보다 더 많아진(남성들은 약화된 남성위 권위를 자유로운 섹스관계로의 확장과 종족 번식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선택기회가 확대) 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기회비용이 줄어들었다(여성은 여전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규범과 생물학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관계상의 구조적 불합리와 사회적 지위 확보에 있어 여전히 동등하거나 상위 계층의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 등등)고 한다.

그럼에도 남성이나 여성 모두 사랑과 결혼에 있어 더 신중해 지고,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한쪽은 넘쳐나는 대상으로 인해, 한쪽은 희소가치로 인해 경제와 감정의 문제가 마구 뒤섞이면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너무도 많아졌다. 이러한 감정의 과잉 상태에서 남녀 모두 관계로부터 물러나, 사랑의 결합이라는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감정이라는 비합리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수많은 정보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되었다.

도덕과 의례가 물러난 자리에 개인의 무한한 선택의 자유가 이제 올가미가 되어, 오히려 모든 것을 하지 못하는 결정장애의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진실성이라든가 진정성이라는 말로 의미있는 관계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진정성을 묻지 않고, 나의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대상과 영역으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나에게 진정성을 묻지 않는 관계, 그렇지만 적절히 나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이 새로운 관계맺기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쟁취하고자 했던 자유는 무엇이며, 우리라는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또한, 나에게 진정성을 묻지 않는 상호성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인간은 언제나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해왔다. 그것이 인간 대 인간이든, 인간 대 자연이든, 혹은 우주 속의 점과 같은 존재로서든... 관계는 언제나 나(개인)의 존재 방식을 설명해 준다. 여기에 나를 규정하고 설명하는 또 다른 관계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소비하고 욕망하게 만드는 대상과 나의 관계.

 

댓글 3
  • 2022-03-22 07:36

    진정성이 약속 이행의 의무와 관련하여 "진정성과 성찰과 감정에 기반을 둔 약속과 결합은 '진정한 감정'을 자기 검증한 결과"(196)이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일은 자아에게 부담으로 작동하는데,  이 때의 자아는  자아실현의 운동에 순응해야 하는데

    "자아 실현은 자기계발의 운동과 변화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자아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기 어렵"(197)고

    그 결과 약속은 현대에 들어 자아에게 지워진 짐이자 상당히 퇴행성을 보이게 되었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아요~

  • 2022-03-22 08:11

    엄청 정리가 잘됐네요. 비합리의 영역이 줄어드는 일, 직관의 능력이 상실되고 있는 측면, 그리고 데이트앱과 당근마켓이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는 점 등이 기억나네요. 감빠진 느낌도요!!

  • 2022-03-22 08:33

    언희님 덕분에 복습해봅니다. 자율.자유가 극대화되며 자아가 짊어져야 할 책임도 극대화되고 관계가 넓고 얇아지게 된 점이 기억납니다. 남녀간에 에로스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관계. 자연과 동물과의 관계까지 다양하게 관계 맺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합리화가 뿌리깊게 자리한 세상에서 비합리적인 영역에 더 주목해봐야겠어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92
[3월 16일 세미나] 2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3~5장 발제와 메모 (6)
겸목 | 2024.03.13 | 조회 39
겸목 2024.03.13 39
391
1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1~2장 후기 (2)
겸목 | 2024.03.13 | 조회 58
겸목 2024.03.13 58
390
[3월9일세미나] <감정의 문화정치>1~2장 발제와 메모 (9)
겸목 | 2024.03.08 | 조회 79
겸목 2024.03.08 79
389
[3/9 개강 공지] 3월부터 '감정'을 열공해봅시다
겸목 | 2024.02.28 | 조회 92
겸목 2024.02.28 92
388
<초대> 2023 양생프로젝트 -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에세이발표 (10)
문탁 | 2023.12.02 | 조회 394
문탁 2023.12.02 394
387
<공지> 17주차- 파이널 에세이 수정안 조별 피드백 (11)
문탁 | 2023.11.27 | 조회 221
문탁 2023.11.27 221
386
<공지> 17주차- 파이널 에세이 초안 조별 피드백 (9)
문탁 | 2023.11.21 | 조회 199
문탁 2023.11.21 199
385
<공지> 16주차- 파이널 에세이 개요발표 (1박2일) 워크숍 (9)
문탁 | 2023.11.13 | 조회 184
문탁 2023.11.13 184
384
<14주차> 후기: 우리는 자기 돌봄을 하면서 타인을 돌볼 수 있을까?  (4)
김윤경 | 2023.11.12 | 조회 155
김윤경 2023.11.12 155
383
[14주차공지] In a Different Voice #2- 돌봄사회를 향하여!! (8)
문탁 | 2023.11.09 | 조회 167
문탁 2023.11.09 167
382
<13주차> 침묵에서 말하기로 1회차 후기 (2)
기린 | 2023.11.04 | 조회 181
기린 2023.11.04 181
381
[13주차공지] In a Different Voice #1 - 페미니즘 고전입니다. 필독서라는 이야기죠^^ (8)
문탁 | 2023.11.01 | 조회 214
문탁 2023.11.01 21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