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132호 특집은 이란-미국·이스라엘 전쟁에 관한 기사이다. 지난 2월 28일에 시작된 전쟁은 도대체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종전을 위한 협상을 하고는 있는지, 다시 공격을 한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양치기 소년 같은 트럼프 때문에 이젠 별 관심도 없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읽은 기사들은 중동에 관해, 전쟁에 관해 다시 한 번 환기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중동은 유가의 변동으로 인한 물가상승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지만 정작 그 지역의 역사나 정치와 외교의 역학 관계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전쟁이 일어나면 내가 실제 겪게 될 경제문제로 그 사건을 치환해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기사를 읽는 내내 가지고 있는 얕은 배경지식이 좀 아쉬웠다. 중동에 대한 역사책이라도 제대로 한 번쯤은 읽어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특집은 4편의 글과 하나의 대담으로 이루어져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의 물음 아래 이 전쟁을 여러 시각에서 다양한 분석틀로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 <군사주의 전쟁기계 앞에서; 전쟁국가 이스라엘과 사라진 팔레스타인> 글과 대담이 인상적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후 세계의 관심이 유가와 증시에 쏠리며 팔레스타인을 향해 벌어지고 있는 제노사이드는 조용히 파묻히고 있다.
가자지구는 현재 제노사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구호를 중단시키고 의도적으로 굶겨 죽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구호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는 수인성 질병이 늘어나고 있고, 만성질환자가 약 35만 명에 이르지만 치료에 심각한 차질이 있고, 구호품을 운반하던 운전기사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제노사이드라는 비판을 가장 싫어하지만,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행위는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단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유엔의 제재나 ICC 기소 절차는 미국의 반대 등으로 제약을 받아 이스라엘을 실제 처벌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국제법과 규범을 무시하고 살상을 저지르는 나라를 향한 ‘손가락질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고 말한다.
“규범이 무너지는 시대라 해도, 규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가 있다 해서 형법 자체가 없어지거나 무의미해지지는 않는 것처럼. 국제법과 국제 규범도 마찬가지다. 안 지키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킨다. 손가락질이 무서워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했다. 이스라엘이 중요한 교역대상국도 아니고 우리가 굳이 이스라엘을 향해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더군다나 지난번 가자지구 구호 활동을 목적으로 국제 구호선단에 탑승한 해초 활동가를 이스라엘이 구금한 사건도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에 행해지는 제노사이드를 멈추도록 손가락질을 해야 한다.
가자지구 뿐만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마을에도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을 지어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이번 『황해문화』의 포토에세이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고통 받고 있는 서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정착민들은 무장을 하고 팔레스타인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폭행하고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를 끊어버린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주기적으로 집, 우물, 학교 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시설을 부순다. 땅을 뺏긴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땅을 떠나지 않으면 올리브나무를 불사르거나 그들의 양을 죽이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의 농업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목숨 걸고 밭일을 나가고 땅을 지킨다. 포토에세이의 사진을 보며 많이 먹먹했다.
매일 전쟁을 치르는 팔레스타인, 그렇지만 점점 잊히고 있는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신은 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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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겸 | 2026.07.02 | 107 |

제노사이드를 겪은 민족이 이렇게 또 잔인할수 있다는건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이해관계란 참 무서운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이제껏 중동도 그런 나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이번 황해문화 특집도 역시 넘 좋았습니다. 글써주시고, 책만들어주신 분들께 새삼 감사를...
깔끔한 후기 올려주신 토용샘께도!
가자지구의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굶겨 죽이는 이스라엘. 그런 그들에게 손가락질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인듯 하기도.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순 없으니. 손가락질 당하는 삶은 어떤 국가도 원하지 않을듯. 국가의 존재론적 뭐시기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테크노 퓨달리즘> 중에서 '철의 이중성'
"기계의 생산과 결실의 힘은 (또한) 쇠약과 과잉노동을 품고 있었고, 부의 원천은 궁핍의 원천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노동을 단축시키고 그것이 더 많은 결실을 낼 수도 있도록 해주는 놀라운 힘을 부여받은 기계, 그 기꼐가 인간 노동을 쇠약하게 하고 과잉노동으로 만드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부의 새로운 원천들은 시기하고 불가사의한 어떤 주문에 의해서 궁핍의 원천들로 바뀌고 맙니다." 1856 마르크스 연설
=>컴퓨터 역시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고 노예로 만들수도 있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다. 둘중 어느 쪽이 지배적인 힘이 될지를 결정할 힘은 우리, 집단으로서의 우리의 손에 있다. 그러니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인이 주로 하는 걸까? 투표를 잘하는 것? 아니다!
우리가 모여 이런(!) 책과 잡지를 읽는 것, 서로 토론하며 좋은 삶에 대해 논하는 것, 그리고 AI에 종속된 인간이 아니라 도구적으로 잘 활용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심지어 걸어서 갈지, 차타고 갈지를 정하는 것까지도 정치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정치적인 일상을 꾸려가기 위해 더 듣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토론해야 겠다.
1. 지난 시간에 읽었던 사파리교수(서울대)도 사람들은 이란을 하나의 균질한 집단으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문제: 800년 동안의 환상과 공포』 책 출간을 맞아 좌담에 나온 홍호펑교수(존스홉킨스대) 역시 지난 800년간 서구 중국 담론이 중국을 이상화하거나 악마화했던 것은 동전의 양면이라면서, 중국을 고정된 본질을 가진 하나의 문명으로 환원하지 말라고 한다. 교과서적 지식 정도에다 지금은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로 엄청나게 성장한 무시할 수 없는 경제대국 정도로 중국을 느껴온 나에게 좌담은 현재의 중국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사였고, 앞으로의 세계 정세(무시무시한 미국과 더 무시무시한 중국)가 더 걱정스럽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중국의 엘리트층은 바로 이런 서구적 편견(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또 한편으로 민주적 반체제인사들조차도 서구 전통에 대한 폄하를 무기로 삼아 완전한 서구화와 중국 문화 말살을 통한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235~236)”
“미국을 변호사의 사회, 중국을 엔지니어의 국가라 칭하며 기술 독재 국가로서의 중국을 긍정하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중국처럼 휴식 없이 더 일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합니다. 서구 엘리트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중국의 현실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해 중국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을 또 다시 소비하고 있는 것이지요.(239~241)”
“현재 국유 기업 역시 과저 마오쩌뚱 시기처럼 복지를 제공하는 사회적 단위가 아니라 철저히 주식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주체입니다. 토지의 국가 소유도 사회주의적 평등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지방 정부와 관료들에게 막대한 권력과 부를 부여했습니다.(243)”
“과거 미소냉전은 체제 사이에서 생존을 건 투쟁이었지만 현재 미중냉전은 어느 국가와 비즈니스를 할 것인가인 ‘자본 경쟁’일 뿐입니다. 즉, 현재 미중관계는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이 세력권과 글로벌 시장을 두고 벌인 경쟁과 유사한 제국 간 경쟁과 유사합니다.(244~245)”
“중국은 자신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변화시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계금융 시스템에 통합되기를 원했기에 홍콩을 정치경제적 자율적 공간으로 남겨두었지만 미중관계가 악화되면서 홍콩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한다. 홍콩에서 벌어지는 홍콩인들의 운동은 단순히 친미 반미로 오해하지 말라. 모든 가치의 탈식민화라는 성찰과 실천을 봐야한다.(246~249)”
“통화가 완전히 자유태환이 되어야만 주요 무역통화가 될 수 있지만 통화를 완전히 개방하면 자국 자본의 유출과 외환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도전자인 중국의 내부 문제(자본통제)로 인해 달러 패권의 치명적 위기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55~256)”
*브레턴우즈체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새경 경제를 안정화 시키기 위해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주 에서 열린 회의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각국의 통화가치를 고정한다
-35달러당 금1온스. 미국이 보유한 금으로 바꿔준다
-베트남 전쟁, 미국 수출적자 커짐 등으로 미국이 금 보유량이 충분치 못하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위기를 맞음
-1971 닉슨이 달러-금 태환을 중단시키고, 변동활율제 선포로 끝이 남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에도 달러의 위상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높았던 이유
-여전히 미국은 세계최강국이었고, 변동환율제 이후 미국 월가 금융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복잡해졌다.
-무역거래에서 여전히 달러 사용
-미국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 뒷받침(황해문화 중국편에서도 나옴)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산유국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 수익을 국제금융시장에 투자하면서 달러중심의 금융체제 강화
-위기가 닥칠때 오히려 달러를 더 찾는 현상(2008년 금융위기)
-<테크노 퓨달리즘>에서는 이 현상을 '미국으로 향하는 엄청난 자본의 쓰나미'라고 표현하고 있음
-하지만 결국 글로벌 플랜(안정적인 브레턴우즈체제, 테크노스트럭처 방식)을 허물어뜨린 건 히피좌파도 자유사상주의 우파도 아니었어요. 테크노스트럭처의 뜻에 따라 잘 움직여온 요소들의 작동이 글로벌 플랜을 망가뜨렸습니다, 폴보커는 "세계 졍제 체제의 질서정연한 해체는 응당 추구해야할 1980년대의 목표입니다"라고 발언.-즐 글로벌 미노타우로스가 돌아다니는 길을 스스로 뚫어준것..
-이때를 기해 신자유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금융에 대한 규제를 철회할 것을 요구,
-또 이즈음 컴푸터가 금융에 도입되면서 복잡한 파생상품들이 마구 생겨나고 버블은 무한히 커지고,,,
-반면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권리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인터넷의 보급은 새로운 형태의 자본을 길러낸다...(To be continued)
=>브레턴우즈체제 그리고 그 이후 변동환율제에 대해 너무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브레턴우즈체제에 대해 진화과정의 한 단계로, 좀 구식이라고 여겼는데, 이것이 나름 세계경제를 안정화 시키고, 또한 뉴딜정책에 기반을 두었으며 금융을 규제하는 방식이었음을 확인하였다.
"빛이 두 개의 모순된 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듯이 자연의 모든 것에는 서로 대립하는 양면이 깃들어 있다. 강화된 철과 증기기관, 서로 연결된 컴퓨터 역시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고 노예로 만들 수도 있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지배적인 힘이 될지를 결정할 힘은 우리, 집단으로서의 우리의 손에 있다. 그러니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단축시키기는 커녕 인간 노동을 쇠약하게 하고 과잉 노동으로 만든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말이 AI에도 들어맞게 될까? AI 에이전트, 피지컬 AI가 과연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줄까? 어떤 사람은 AI 에이전트에 일을 시켰는데 너무 잘하는데다가 쉬지않고 하는 바람에 본인도 거기에 맞춰 일을 시키느라 더 바빴졌다고 한다. 업무량이 줄어들지 않고 더 늘어난 셈이다. 산업현장이나 돌봄의 영역에서 피지컬 AI는 얼마나 인간을 대체할까? 빅테크의 농노가 된 인간과 AI의 상관관계는? 앞으로의 책 내용이 궁금해졌다.
황해문화) 366 - 포퓰리즘이 기존 질서에서 배제된 이들을 정치 주체로 불러내면서도 해방의 기획이 되기에 부족한 까닭은, 배제적이고 억압적인 기획 역시 포퓰리즘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극우 포퓰리즘'이 이에 해당한다.
- 기획 기사에 소개된 라클라우의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이 생겨났지만 이미 기사에서 반론이 될만한 부분까지 함께 다루고 있었기에 따로 내 의견을 덧붙이진 않겠다. 좌파 포퓰리즘은 반성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좌파 포퓰리즘이 제대로 실행된 적 없다고 이야기 했는데.. 요새 가장 포퓰리스트 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테크노 퓨달리즘 ) 저자가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노동의 가치평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일에 지칠 때면 속으로 '받은만큼 일하자'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 '받은만큼'이 얼마 만큼의 노동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정작 일하는 사람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시급 얼마 정도로는 평가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쏟는 노력에 대한 가치는 그 시급으로는 도무지 측정 할 수 없는 것이고 이 측정 할 수 없는 부분이 결국 생산력이 된다는 점. 애초에 자본주의 체제 안에선 받은만큼 일한다는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황해문화』 「환상과 공포를 넘어」
240p.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은 중국의 노동환경과 생산성을 이방적으로 찬양하기도 합니다. 독일 정치인들은 주 4일제와 워라밸을 요구하는 자국 노동자들에게 ‘중국처럼 휴식 없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합니다. … (중략) … 중국 경제 내부의 민간 부문 분위기는 매우 악화되어 있습니다. 청년층은 일자리 부족,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과잉생산과 과소소비는 중국 당국조차 인정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242p. “중국 당국은 자국의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국유 부문의 주도권과 토지의 국가 소유 및 집체 소유를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중국은 삶의 모든 분야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화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250p. “홍콩은 중국 기업들이 중국 자체의 금융 시스템을 개방하지 않고도 홍콩의 법치와 자유로운 금융 시스템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공해 왔습니다.”
“공통점은 홍콩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것은 가치관의 일치에서 비롯된 연대가 아니라 전략적 협력이었습니다.”
258p. “21세기 중국의 부상에 이르기까지 지구적 자본 축적의 뿌리는 여전히 영국 제국이 깔아 놓은 금융 인프라 위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 이를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아직 진정한 탈식민 상태에 도달한 적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뜬금없이 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여소군의 소원은 고향에 어머니의 집을 마련하고 홍콩에도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집을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는 삶도 의아하게 다가왔다.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국공당 퇴출, 공산당의 건국,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근현대사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여전히 낯설거나 혐오의 대상이다. 2019년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역시 단순히 홍콩 시민들이 자치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벌인 대정부 시위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역사를 함께해 왔고, 지금도 중국과의 관계는 한국에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반중·혐중의 논리는 너무나 초라하다. 조선족에 대한 국가의 정책(F-4 비자 등) 역시 어찌 보면 지나치게 얄팍하다.
자본의 문제와 미국과의 관계, 탈식민이라는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상당한 지식과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읽으며 내가 가진 배경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반성하기도 했다. 무지하면서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이 무엇을 가리고, 무엇을 너무 쉽게 지나치게 만드는지 고민이 되었다.
1. 황해문화 -좌담 : 환상과 공포를 넘어
1989년 천안문 항쟁의 유혈 진압 이후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서구 자본주의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정치 개혁 없이 진행된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적 개혁은 새로운 관료-자본가 계급을 탄생시켰고,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국가자본의 축적을 촉진하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국가는 특권 계층의 시장 체제에서 자본의 사적 축적을 보호하고 이에 대항하는 풀뿌리 저항을 저지하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로 변신했다. 중국은 당조직이 민간 영역 전체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당-국가자본주의 국가다. 민간기업조차 당의 통제와 국가의 목표에 따라야 한다(241~242).
서구의 기업가, 엘리트, 언론인이나 평론가들이 중국을 기술적 유토피아로 여기며 환상을 품는 모습을 보이지만, 현재 중국 경제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많은 대규모 신도시의 건축 단지와 과잉 투자는 중국 경제에 거대한 짐이 되었습니다. 청년층은 일자리 부족,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아 내수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과잉생산 및 과소소비가 구조적 문제입니다. 서구에서는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중국의 현실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중국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을 또다시 소비하고 있습니다(240~241). 그러나 중국의 권력자와 엘리트층 또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서구적 편견을 이용한다.(236)
서구의 진보, 보수 진영 모두가 단순화된 중국 모델을 모방하고 싶어 합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은 중국의 노동환경과 생산성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기도 합니다. (240)
- 홍호펑은 중국의 당-국가자본주의는 매우 독특하기에 다른 나라에 전파되거나 이식되기는 어렵다고 본다(244). 그러나 미중 사이의 전략 경쟁을 이데올로기적 차이로 비롯된 신냉전이 아니라 양국의 기업 간 관계 변화인 자본 간 경쟁으로 본다면, 이러한 현재의 세계 정세 속에서 국가 주도의 정치‧경제 체제와 같은 강력한 모델은 소구력이 크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메가프로젝트도 이와 유사한 느낌이다.
- 대담에서 홍콩운동의 탈식민적 의미에 대한 장정아 교수의 거듭된 질문에도 홍호펑은 속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좀 아쉽긴 했다. 아님, 대답했는데 내가 못 알아차린 건가?
2. 테크노 퓨달리즘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상품을 생산하고 경쟁해 이윤을 얻는다. 바루파키스는 빅테크와 같은 클라우드 자본에 의해 시장이 디지털 거래 플랫폼으로 대체되고, 자본주의의 동력인 이윤이 클라우드 지대(플랫폼 사용료, 수수료 등)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알고리즘 등을 통해 플랫폼에 대한 접근권 자체를 통제한다. 자본주의의 변형일까? 몰락일까? 뭐든간에 통제가 더 촘촘해지고, 소수에게 집중됐다는 건 확실하다. 빈부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근데 디지털 플랫폼은 손가락을 놀리기만 하면 돼서, 중독되기 쉽다. 도파민도 팍팍 터진다. 또,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간접성으로 인해 자신이 하는 행동의 영향력이나 결과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비윤리적 행동을 하기도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