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어요] 돈의 새로운 용법, 어떻게 발명해낼까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담당할 회비도 10~30만원까지 나누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씩 냈다. 우리는 함께 일리치를 공부하고 <증여론>을 읽으면서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들을 모았다. 마을작업장 월든을 만들 때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를 만들 때도 돈은 이렇게 모이고 쓰여졌다. 문탁을 떠나는 사람도 그동안 문탁에 냈던 돈을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참 개념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계산을 버리고 개념 없이 살아보기! 대신 국가나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알아서 서로 도우면서 사는 선물의 공동체! 부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쓰는 것, 쌓이게 하는 게 아니라 흐르게 하는 것. 문탁 활동을 하면서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어쩌다 보니 문탁네트워크 회계를 오랫동안 했다. 회계를 하다 보면 돈이 모자라도 신경 쓰이지만 남아도 고민이다. 돈이 쌓이면 안 되고 흘러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월 돈의 흐름을 살피고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궁즉통! 돈은 쓰면 또 생긴다. 돈을 쌓아두지 않고 흐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돈은 매년 모자라지 않고 남았다. 모으려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잔고는 늘어났다.

자립? 호혜성!
사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휘둘리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으로 스스로 생산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함께 나누는 ‘마을경제’라는 걸 실험하기도 했다. 국가가 발행하는 ‘돈’이 아닌 ‘마을화폐’(복)을 만들어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해보자고 했고 마을작업장을 열었다. 나는 주로 음식, 반찬을 만들며 생산에 참여했고, 가방, 쿠키, 로션, 샴푸 등을 소비했다. 물론 돈은 ‘복’을 사용했다. 당시의 화두는 자립이었지만 아주 소박하게나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자립할 수 있는 친구 3명을 만들고 싶은 우리의 목표는 꿈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복을 벌고 쓰는 활동에 함께 함으로써 친구의 자립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참여했지만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친구들의 자립을 실제로 가능하게 한 것은 오히려 무진장이었던 것 같다. 실직 등으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친구가 생겼을 때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공동의 기금을 마련하여 돈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이자 없이 돈을 대출하면 좋지 않을까? 처음에는 신협 같은, 혹은 장기 무이자 은행 같은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갚을 수 없을 수도 있지 않나? 꼭 빌려주고 갚아야 할까? 안 갚아도 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들을 주고받으면서 이 또한 사적 소유 방식을 벗어나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선물의 공동체의 공동창고 무진장! 서로 돕는 것을 넘어 서로의 삶을 돌보는 ‘상호부조’와 개인적 소유를 넘어서는 ‘재분배’를 기본으로 하는 하나의 통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회원들의 유일한 의무는 무진장에 돈이 마르지 않게 하고 잘 쓰이게 하는 것이다. 회원들의 기본 출자금을 모아 시작하면서 여유 있는 사람은 돈을 입금하고,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사람은 출금하면 되었다. 대출-상환이 아니라 입금-출금. 맞아, 내 통장이면 돈이 있으면 입금하고 필요하면 출금해서 쓰면 되지.
선물의 공동체라고 해도, 내 돈과 네 돈을 섞어서 함께 통장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통장처럼 돈을 찾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입금도 마찬가지였다. 입금을 얼마나 해야 하지? 월 생활비를 여기로 옮겨야 하는 걸까? 누구는 얼마나 내고 있나?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내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을 들여다보아야 했고 뭔가 불편함이 있었다. 돈을 내는 사람보다는 써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불편했다. 돈은 그런 것 이었다!
이런저런 논의와 시도 끝에 기본소득 같은 ‘마중물’이 생겼고 이것이 친구들의 자립을 가능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출금의 부담을 덜어주고 마중물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입금을 생각하게 했다. 자립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서로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1/N이 아니라, 소박한 생활을 전제로, 가능하다면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는 돈을 서로 모을 수 있으면 되었다. 호혜성에 기반한 재분배. 이걸로 소박하게 살면서 공부할 수 있으면 이것이 자립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무진장의 확장판? 기금의 확대판?
사실 무진장이 얼마나 지속될지 몰랐다. 그런데 벌써 10년이 되었다. 사람들은 무진장 이야기를 하면 ‘도대체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그게 가능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는 동안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시작할 때는 문탁 사람들 대부분이 무진장 회원이었는데 이제는 회원 아닌 사람이 더 많다. 회원 아닌 사람도 마중물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급하게 생활비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거기다 무진장의 잔고도 알게 모르게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데… 무진장 회원을 더 늘릴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될까?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지금 돈의 용법과 관련하여 새로운 벽에 부딪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마을화폐 복도 한 해에 1억복까지 발행하며 성장하다가 서서히 줄어들어 근근이 명을 이어가는 중이고, 무진장도 서서히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풀기 위해 올해 봄부터 범문탁 차원에서 공공공(공생공락을 위한 공통의 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커먼즈 은행 빈고, 사회적 상속, 기본소득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커먼즈 은행 빈고’는 이자를 사양하는 대신 자신이 낸 원금은 보장되는 방식이다.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는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용법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상속은 또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이는 주로 세대 간 재분배를 다룬다. 청년 기초자산제도가 핵심이라 우리가 하려는 것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이 역시 돈을 모으는 방법의 하나로 생각해 볼 만 하긴 하다. 기본소득은 공유, 공생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맥락을 같이 하지만 재원 마련 방법은 여전히 숙제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본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은 공동체, 호혜성, 인문학, 소박한 삶…, 이런 것들이 아닐까?
무진장의 한계에서 시작된 고민은 문탁 공동체 내의 전체적인 돈의 용법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청년들의 삶과 공부를 지원하는 길위기금의 운영위원을 하면서 돈을 쓰는 문제는 참 미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할 때는 20대였던 ‘청년’이라는 대상도 시간이 지나면서 문탁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나이를 먹어가자 몇 살까지를 청년으로 볼 것인지 애매해졌다. 나이 제한 없이 우리가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는 반값학비 등을 지원했지만, 기금의 성격이 있으니 나이 제한을 안 할 수도 없어서 2년 전부터는 일단 35세로 제한해보기로 했다. 그러자니 오랫동안 문탁에서 공부해온 청년이 36살이 되고 상황이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 기본소득을 얼마나 주어야 할까? 누구에게까지 줄 수 있을까? 공부, 활동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계속되는 질문, 질문들…
무진장의 마중물도 청년 기본소득도 나름의 내부 원칙은 있다. 원칙이라고 해서 특별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부 사람들이다 보니 백퍼센트 신뢰가 있고 사정을 잘 아니까 이심전심의 기준이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무원칙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논의를 진행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무진장과 기금 중에서 무진장의 확장판을 할 것인지, 기금의 확대판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돈의 순환, 그 순환의 확장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커먼즈 은행 빈고가 무척 앞서가는 것인 줄 알았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보니 이미 우리가 고민하고 넘어간 수준(?)이었다. 무진장이 훨씬 급진적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공공공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문탁샘은 5억쯤 모아서 장학재단 같은 걸 해볼까? 이런 말을 했다. 우린 모두 헉! 했지만 사회적 상속 방식을 활용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얼마 전 회의에서 요요샘은 좀 더 소박했다. 이것저것 모으고 추가로 출연해서 1억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일단 시작해보면 되지 않을까? 늘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밖에 없겠지만, 내 생각도 왔다 갔다 한다.
장학재단은 생각보다 재미없는 방식이다. 상당한 수준의 목돈을 모아서 재단을 만들면 그 목돈은 건드릴 수 없다. 그 돈을 운영해서 얻은 수익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좋은 점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는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내가 관여하는 장학회가 하나 있는데 여기는 거의 우리 길위기금과 비슷하다. 지방 고등학교 출신 동문들이 운영하는 재경장학회인데 동문들이 장학금을 기부하고 수도권으로 진학하는 후배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8년째인데 잔고는 2년 전부터 1억 정도를 유지하고 있고 한 해에 5천만원 정도를 쓴다. 장학재단에 대한 검토도 있었지만 그냥 이런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기부금 영수증을 써줄 수 없다는 난점이 있기는 하다.
하승수샘의 강의를 듣고 지역사회재단이나 지역사회협동조합에 관심이 갔다. 아직 법인에 대해 잘 몰라서 어디까지 가능한지 더 살펴봐야 하지만, 문탁네트워크를 지역사회재단 같은 단체로 만들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장학사업 같은 걸 더하면 되지 않을까? 소박하게 생각해보면 무진장과 길위기금을 통합하고 새로운 기금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가장 큰 차이는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인문학공동체라는 전제하에, 문탁을 넘어서 지역사회까지? 아니면 문탁과 친구 공동체까지? 그것도 아니면 어떻게든 문탁과 연결된 경우에 한해서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공동체는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공공성을 갖는 것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가치가 있는가? 생각하다 보니 자꾸 물음표만 늘어간다. 새로운 돈의 용법을 발명해내려면 어쩌면 계속 질문에 질문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공공공 프로젝트팀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을 준비하고 있다. 기대하시라! 오는 10월 12일 저녁 7시 30분, 우리들의 새로운 발명을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디언 : 문탁회계를 17년간 하고 토용에게 넘겨주었다. 무진장 회원이자 길위기금운영위원이며 공공공프로젝트 팀원이다. 문탁에서 불교공부를 하고 있다. 수행을 통해 갈애에서 벗어나겠다는 희망을 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