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어요] 돈의 새로운 용법, 어떻게 발명해낼까

인디언
2026-09-30 23:15
149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담당할 회비도 10~30만원까지 나누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씩 냈다. 우리는 함께 일리치를 공부하고 <증여론>을 읽으면서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들을 모았다. 마을작업장 월든을 만들 때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를 만들 때도 돈은 이렇게 모이고 쓰여졌다. 문탁을 떠나는 사람도 그동안 문탁에 냈던 돈을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참 개념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계산을 버리고 개념 없이 살아보기! 대신 국가나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알아서 서로 도우면서 사는 선물의 공동체! 부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쓰는 것, 쌓이게 하는 게 아니라 흐르게 하는 것. 문탁 활동을 하면서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어쩌다 보니 문탁네트워크 회계를 오랫동안 했다. 회계를 하다 보면 돈이 모자라도 신경 쓰이지만 남아도 고민이다. 돈이 쌓이면 안 되고 흘러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월 돈의 흐름을 살피고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궁즉통! 돈은 쓰면 또 생긴다. 돈을 쌓아두지 않고 흐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돈은 매년 모자라지 않고 남았다. 모으려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잔고는 늘어났다.

 

 

 

 

 

자립? 호혜성!

사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휘둘리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으로 스스로 생산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함께 나누는 ‘마을경제’라는 걸 실험하기도 했다. 국가가 발행하는 ‘돈’이 아닌 ‘마을화폐’(복)을 만들어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해보자고 했고 마을작업장을 열었다. 나는 주로 음식, 반찬을 만들며 생산에 참여했고, 가방, 쿠키, 로션, 샴푸 등을 소비했다. 물론 돈은 ‘복’을 사용했다. 당시의 화두는 자립이었지만 아주 소박하게나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자립할 수 있는 친구 3명을 만들고 싶은 우리의 목표는 꿈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복을 벌고 쓰는 활동에 함께 함으로써 친구의 자립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참여했지만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친구들의 자립을 실제로 가능하게 한 것은 오히려 무진장이었던 것 같다. 실직 등으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친구가 생겼을 때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공동의 기금을 마련하여 돈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이자 없이 돈을 대출하면 좋지 않을까? 처음에는 신협 같은, 혹은 장기 무이자 은행 같은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갚을 수 없을 수도 있지 않나? 꼭 빌려주고 갚아야 할까? 안 갚아도 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들을 주고받으면서 이 또한 사적 소유 방식을 벗어나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선물의 공동체의 공동창고 무진장! 서로 돕는 것을 넘어 서로의 삶을 돌보는 ‘상호부조’와 개인적 소유를 넘어서는 ‘재분배’를 기본으로 하는 하나의 통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회원들의 유일한 의무는 무진장에 돈이 마르지 않게 하고 잘 쓰이게 하는 것이다. 회원들의 기본 출자금을 모아 시작하면서 여유 있는 사람은 돈을 입금하고,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사람은 출금하면 되었다. 대출-상환이 아니라 입금-출금. 맞아, 내 통장이면 돈이 있으면 입금하고 필요하면 출금해서 쓰면 되지.

 

선물의 공동체라고 해도, 내 돈과 네 돈을 섞어서 함께 통장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통장처럼 돈을 찾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입금도 마찬가지였다. 입금을 얼마나 해야 하지? 월 생활비를 여기로 옮겨야 하는 걸까? 누구는 얼마나 내고 있나?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내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을 들여다보아야 했고 뭔가 불편함이 있었다. 돈을 내는 사람보다는 써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불편했다. 돈은 그런 것 이었다!

 

이런저런 논의와 시도 끝에 기본소득 같은 ‘마중물’이 생겼고 이것이 친구들의 자립을 가능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출금의 부담을 덜어주고 마중물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입금을 생각하게 했다. 자립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서로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1/N이 아니라, 소박한 생활을 전제로, 가능하다면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는 돈을 서로 모을 수 있으면 되었다. 호혜성에 기반한 재분배. 이걸로 소박하게 살면서 공부할 수 있으면 이것이 자립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무진장의 확장판? 기금의 확대판?

사실 무진장이 얼마나 지속될지 몰랐다. 그런데 벌써 10년이 되었다. 사람들은 무진장 이야기를 하면 ‘도대체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그게 가능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는 동안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시작할 때는 문탁 사람들 대부분이 무진장 회원이었는데 이제는 회원 아닌 사람이 더 많다. 회원 아닌 사람도 마중물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급하게 생활비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거기다 무진장의 잔고도 알게 모르게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데… 무진장 회원을 더 늘릴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될까?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지금 돈의 용법과 관련하여 새로운 벽에 부딪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마을화폐 복도 한 해에 1억복까지 발행하며 성장하다가 서서히 줄어들어 근근이 명을 이어가는 중이고, 무진장도 서서히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풀기 위해 올해 봄부터 범문탁 차원에서 공공공(공생공락을 위한 공통의 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커먼즈 은행 빈고, 사회적 상속, 기본소득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커먼즈 은행 빈고’는 이자를 사양하는 대신 자신이 낸 원금은 보장되는 방식이다.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는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용법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상속은 또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이는 주로 세대 간 재분배를 다룬다. 청년 기초자산제도가 핵심이라 우리가 하려는 것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이 역시 돈을 모으는 방법의 하나로 생각해 볼 만 하긴 하다. 기본소득은 공유, 공생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맥락을 같이 하지만 재원 마련 방법은 여전히 숙제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본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은 공동체, 호혜성, 인문학, 소박한 삶…, 이런 것들이 아닐까?

 

무진장의 한계에서 시작된 고민은 문탁 공동체 내의 전체적인 돈의 용법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청년들의 삶과 공부를 지원하는 길위기금의 운영위원을 하면서 돈을 쓰는 문제는 참 미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할 때는 20대였던 ‘청년’이라는 대상도 시간이 지나면서 문탁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나이를 먹어가자 몇 살까지를 청년으로 볼 것인지 애매해졌다. 나이 제한 없이 우리가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는 반값학비 등을 지원했지만, 기금의 성격이 있으니 나이 제한을 안 할 수도 없어서 2년 전부터는 일단 35세로 제한해보기로 했다. 그러자니 오랫동안 문탁에서 공부해온 청년이 36살이 되고 상황이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 기본소득을 얼마나 주어야 할까? 누구에게까지 줄 수 있을까? 공부, 활동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계속되는 질문, 질문들…

 

무진장의 마중물도 청년 기본소득도 나름의 내부 원칙은 있다. 원칙이라고 해서 특별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부 사람들이다 보니 백퍼센트 신뢰가 있고 사정을 잘 아니까 이심전심의 기준이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무원칙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논의를 진행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무진장과 기금 중에서 무진장의 확장판을 할 것인지, 기금의 확대판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돈의 순환, 그 순환의 확장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커먼즈 은행 빈고가 무척 앞서가는 것인 줄 알았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보니 이미 우리가 고민하고 넘어간 수준(?)이었다. 무진장이 훨씬 급진적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공공공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문탁샘은 5억쯤 모아서 장학재단 같은 걸 해볼까? 이런 말을 했다. 우린 모두 헉! 했지만 사회적 상속 방식을 활용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얼마 전 회의에서 요요샘은 좀 더 소박했다. 이것저것 모으고 추가로 출연해서 1억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일단 시작해보면 되지 않을까? 늘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밖에 없겠지만, 내 생각도 왔다 갔다 한다.

 

장학재단은 생각보다 재미없는 방식이다. 상당한 수준의 목돈을 모아서 재단을 만들면 그 목돈은 건드릴 수 없다. 그 돈을 운영해서 얻은 수익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긴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좋은 점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는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내가 관여하는 장학회가 하나 있는데 여기는 거의 우리 길위기금과 비슷하다. 지방 고등학교 출신 동문들이 운영하는 재경장학회인데 동문들이 장학금을 기부하고 수도권으로 진학하는 후배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8년째인데 잔고는 2년 전부터 1억 정도를 유지하고 있고 한 해에 5천만원 정도를 쓴다. 장학재단에 대한 검토도 있었지만 그냥 이런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기부금 영수증을 써줄 수 없다는 난점이 있기는 하다.

 

하승수샘의 강의를 듣고 지역사회재단이나 지역사회협동조합에 관심이 갔다. 아직 법인에 대해 잘 몰라서 어디까지 가능한지 더 살펴봐야 하지만, 문탁네트워크를 지역사회재단 같은 단체로 만들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장학사업 같은 걸 더하면 되지 않을까? 소박하게 생각해보면 무진장과 길위기금을 통합하고 새로운 기금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가장 큰 차이는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인문학공동체라는 전제하에, 문탁을 넘어서 지역사회까지? 아니면 문탁과 친구 공동체까지? 그것도 아니면 어떻게든 문탁과 연결된 경우에 한해서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공동체는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공공성을 갖는 것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가치가 있는가? 생각하다 보니 자꾸 물음표만 늘어간다. 새로운 돈의 용법을 발명해내려면 어쩌면 계속 질문에 질문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공공공 프로젝트팀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을 준비하고 있다. 기대하시라! 오는 10월 12일 저녁 7시 30분, 우리들의 새로운 발명을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디언 : 문탁회계를 17년간 하고 토용에게 넘겨주었다. 무진장 회원이자 길위기금운영위원이며 공공공프로젝트 팀원이다. 문탁에서 불교공부를 하고 있다. 수행을 통해 갈애에서 벗어나겠다는 희망을 품고.

 

 

 

댓글 0
이미지 선택
이미지 선택
줌 인&아웃
    에어컨 논쟁 올여름 서유럽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暴炎)으로 ‘에어컨 논쟁’이 벌어졌다. 에어컨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2024년 파리 올림픽 당시에 에어컨이 없는 선수촌이 문제가 되었었다. 그때 프랑스는 파리의 평균 기온이 26.5도라는 것, 선수촌 아파트가 지열 에너지를 이용해 실내 기온을 떨어뜨리는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며 에어컨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안을 식히기 위해 밖을 덥히는’ 에어컨의 사악함을 문제 삼았다. 에어컨 사용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최고 40도가 넘는 폭염이 6월 말부터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선풍기와 에어컨의 판매가 급증했는데, 그러자 에어컨 설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 프랑스는 1971년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설립한 나라로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에어컨 설치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다. 여기에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 실제로 에어컨의 설치가 어렵다. 하지만 폭염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에어컨 도입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학교나 병원 등의 에어컨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 이념 공방으로 발전했으며 내년에 치러지는 대선에 ‘에어컨 규제 해제’가 주요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에어컨이 필수 가전제품인 듯하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도 에어컨은 좀 사는 집에서나 사용하는 가전제품이었다. 내 기억에 15년 전만 해도 아주 더운 날이 일주일 정도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 굳이 에어컨이 필요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남편이...
    에어컨 논쟁 올여름 서유럽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暴炎)으로 ‘에어컨 논쟁’이 벌어졌다. 에어컨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2024년 파리 올림픽 당시에 에어컨이 없는 선수촌이 문제가 되었었다. 그때 프랑스는 파리의 평균 기온이 26.5도라는 것, 선수촌 아파트가 지열 에너지를 이용해 실내 기온을 떨어뜨리는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며 에어컨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안을 식히기 위해 밖을 덥히는’ 에어컨의 사악함을 문제 삼았다. 에어컨 사용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최고 40도가 넘는 폭염이 6월 말부터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선풍기와 에어컨의 판매가 급증했는데, 그러자 에어컨 설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 프랑스는 1971년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설립한 나라로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에어컨 설치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다. 여기에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 실제로 에어컨의 설치가 어렵다. 하지만 폭염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에어컨 도입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학교나 병원 등의 에어컨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 이념 공방으로 발전했으며 내년에 치러지는 대선에 ‘에어컨 규제 해제’가 주요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에어컨이 필수 가전제품인 듯하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도 에어컨은 좀 사는 집에서나 사용하는 가전제품이었다. 내 기억에 15년 전만 해도 아주 더운 날이 일주일 정도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 굳이 에어컨이 필요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남편이...
진달래
2026.08.31 | 조회 289
줌 인&아웃
      불타는 지구를 실감하는 8월이 되면 곧바로 9월의 ‘기후대행진’을 떠올린다. 지구의 기후위기를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외치며 행진하는 아스팔트 위를 문탁의 친구들은 매년 함께 걸었다. 그리고 그 한 달여 전부터 참여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파지사유 친구들이 잘한다. 2026년 올해에는 무얼 할까? 정부에서는 야심차게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이미 AI가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는지 의아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공부를 같이 해보자. AI에 대해, 파운데이션 모델이 어떻다는 기술적 측면, 반도체와 주가, 인간 정서나 지능에 미치는 영향, 일자리 대체의 두려움 등,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생태적인 측면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았다. 따라서 한 권의 책 『AI와 기후의 미래』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었다. 디지털전환과 생태전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4회차에 걸친 세미나를 스케치해 본다.     OTT와의 이별은 어려워       “디지털 과소비에서 디지털 절제로… 전용기도 없고 채식을 지향하면서도 ott 중독은 끊기가 어렵다. 화질을 낮추고 봐야 할까?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라는데(111), 도대체 ‘개인’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으면서, 숨겨두었던 내 안의 ‘기후냉소주의’가 꿈틀하는 게 느껴진다. ㅠㅠ”   이 메모는 세미나에 참여한 참이 쓴 것으로, 『AI와 기후의 미래』 111쪽에서 디지털 과소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한 데 대한 짧은 소회이다. ‘기후냉소주의’ 운운하지만, 사실 참은 누구보다 생태적 실천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참뿐만 아니라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기후위기를 살피며 동물권, 플라스틱, 에너지 문제에 큰 관심을...
      불타는 지구를 실감하는 8월이 되면 곧바로 9월의 ‘기후대행진’을 떠올린다. 지구의 기후위기를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외치며 행진하는 아스팔트 위를 문탁의 친구들은 매년 함께 걸었다. 그리고 그 한 달여 전부터 참여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파지사유 친구들이 잘한다. 2026년 올해에는 무얼 할까? 정부에서는 야심차게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이미 AI가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는지 의아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공부를 같이 해보자. AI에 대해, 파운데이션 모델이 어떻다는 기술적 측면, 반도체와 주가, 인간 정서나 지능에 미치는 영향, 일자리 대체의 두려움 등,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생태적인 측면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았다. 따라서 한 권의 책 『AI와 기후의 미래』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었다. 디지털전환과 생태전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4회차에 걸친 세미나를 스케치해 본다.     OTT와의 이별은 어려워       “디지털 과소비에서 디지털 절제로… 전용기도 없고 채식을 지향하면서도 ott 중독은 끊기가 어렵다. 화질을 낮추고 봐야 할까?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라는데(111), 도대체 ‘개인’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으면서, 숨겨두었던 내 안의 ‘기후냉소주의’가 꿈틀하는 게 느껴진다. ㅠㅠ”   이 메모는 세미나에 참여한 참이 쓴 것으로, 『AI와 기후의 미래』 111쪽에서 디지털 과소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한 데 대한 짧은 소회이다. ‘기후냉소주의’ 운운하지만, 사실 참은 누구보다 생태적 실천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참뿐만 아니라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기후위기를 살피며 동물권, 플라스틱, 에너지 문제에 큰 관심을...
자누리
2026.08.31 | 조회 253
방과후 고전중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가마솥
2026.09.30 | 조회 90
짧은생각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소이
2026.09.30 | 조회 137
할 말 있어요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인디언
2026.09.30 | 조회 149
요요와 불교산책
      나의 명상 입문 30대 후반이었다. 직장일과 육아에 쫓기며 마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기계의 부속품 같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자기 착취로 인한 번아웃이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계속 약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 혼자 108배를 시작했다. 처음 엎드려 절을 하던 날, 왈칵 눈물이 났다. 구원을 간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그 무엇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근대적 자아관에 균열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뒤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고 인연이 닿아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게 되었다. 지도법사는 태국에서 출가하여 남방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스님이었다. 위빠사나는 단전에 집중하는 단전호흡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들숨 날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법이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몸에서 문제가 생겼다. 몸 여기저기에서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 가려움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한 번 긁고 잊어버리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반응하지 말고 일어나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고 하니 가려움은 더 참기 힘들었다. 가려움이 지나가면 다리가 저려왔다. 몸을 지켜보면서 알았다. 잠깐 사이에도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몸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마음은 또 어떤가?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하고, 땀이 나면 닦고 싶어하고, 저려오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간...
      나의 명상 입문 30대 후반이었다. 직장일과 육아에 쫓기며 마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기계의 부속품 같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자기 착취로 인한 번아웃이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계속 약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 혼자 108배를 시작했다. 처음 엎드려 절을 하던 날, 왈칵 눈물이 났다. 구원을 간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그 무엇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근대적 자아관에 균열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뒤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고 인연이 닿아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게 되었다. 지도법사는 태국에서 출가하여 남방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스님이었다. 위빠사나는 단전에 집중하는 단전호흡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들숨 날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법이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몸에서 문제가 생겼다. 몸 여기저기에서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 가려움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한 번 긁고 잊어버리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반응하지 말고 일어나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고 하니 가려움은 더 참기 힘들었다. 가려움이 지나가면 다리가 저려왔다. 몸을 지켜보면서 알았다. 잠깐 사이에도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몸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마음은 또 어떤가?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하고, 땀이 나면 닦고 싶어하고, 저려오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간...
요요
2026.09.30 | 조회 64
유물;멍때리기
      <월산대군 태항아리>, 높이 36.3 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도자기다. 15세기 중엽 세종과 세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 대표작으로 위의 <월산대군 태항아리>를 꼽는 데 이론異論이 없을 정도라고. 표면을 촘촘히 도장 찍듯 메운 국화 무늬와 연꽃무늬, 풍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곡선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아기의 장수와 안녕을 빌며, 정성껏 씻은 태를 항아리에 담아 길지吉地에 묻었던 일이 있다. 위 사진은 조선 월산대군의 태를 담은 항아리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맏손자다. 세조는 자손의 안녕과 왕조의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을 당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분청사기 속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달리 월산대군의 운명은 불우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한명회의 사위였던 동생(성종)이 왕위를 이었고,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야심 가득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정치를 등져야 했고, 예술적 재능과 풍류로 삶을 달래야 했던 월산대군. 1937년 그의 태실은 도굴되어 태항아리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끝내 일본 땅 어느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갇혔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태항아리에는 기구하고 애틋한 월산대군의 삶이 담겨 있다.         누룽지 :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풍경화와 산수화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언젠가 중국의 미술사를 공부 해보고 싶어졌다. 소원을 이루고 있는 지금, 그림을 넘어 점점 술잔과 식기, 조리도구에 눈길이 간다.
      <월산대군 태항아리>, 높이 36.3 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도자기다. 15세기 중엽 세종과 세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 대표작으로 위의 <월산대군 태항아리>를 꼽는 데 이론異論이 없을 정도라고. 표면을 촘촘히 도장 찍듯 메운 국화 무늬와 연꽃무늬, 풍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곡선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아기의 장수와 안녕을 빌며, 정성껏 씻은 태를 항아리에 담아 길지吉地에 묻었던 일이 있다. 위 사진은 조선 월산대군의 태를 담은 항아리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맏손자다. 세조는 자손의 안녕과 왕조의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을 당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분청사기 속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달리 월산대군의 운명은 불우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한명회의 사위였던 동생(성종)이 왕위를 이었고,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야심 가득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정치를 등져야 했고, 예술적 재능과 풍류로 삶을 달래야 했던 월산대군. 1937년 그의 태실은 도굴되어 태항아리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끝내 일본 땅 어느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갇혔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태항아리에는 기구하고 애틋한 월산대군의 삶이 담겨 있다.         누룽지 :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풍경화와 산수화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언젠가 중국의 미술사를 공부 해보고 싶어졌다. 소원을 이루고 있는 지금, 그림을 넘어 점점 술잔과 식기, 조리도구에 눈길이 간다.
누룽지
2026.09.30 | 조회 79
일과 나날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현진
2026.09.30 | 조회 189
유물;멍때리기
자작나무
2026.08.31 | 조회 99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현민
2026.08.31 | 조회 17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