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의 일과 나날] 3화 - 하이-바이, 공동체 활동가!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교육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문화 기획자, 청소년 교육자, 공간 운영자로 매니저 일을 하며 지역의 공동체 활동에 깊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다올랩이 아니라 지역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써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나는 알바생인가, 매니저인가
우주소년 매니저가 되기 전의 나는 책방에 자주 드나드는 편도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바쁜 일상에 한 꼭지를 챙길 만큼 우선순위에 두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동네 책방 매니저로 자원한 것은 청소년 교육프로그램과 지역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책방과 카페 업무라는 일을 새롭게 배워야 했지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두 가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걱정되고 두려워도 다른 일들은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주소년 첫 출근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나는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었다. 워낙 손으로 하는 일들은 자신 없어 피해 다녔는데, 우주소년에서의 일은 손글씨로 꾸미고, 커피를 내리는 손작업 일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청소년 프로그램도 하나 기획해보고, 책도 골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책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내가 갑자기 ‘우주소년다운’ 책을 고르고,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게 될 리가 없었다.
정말 막막했다. 그 누구도 ‘우주소년다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는 차라리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면 잘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알려준다고 다 이해하고 맞출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우주소년의 감각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나의 사수는 스스로 찾아가기를 기다리신 것이 아닐지 추측해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설거지하다 창밖을 보며 ‘나는 뭘 하려고 여기 있나?’ 허탈하기만 했다. 신입인 나는 여전히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많았고, 어떤 것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청소년을 만나고,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카페와 책방 업무 배우기에 급급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마을에서의 첫 사회생활. 이곳에는 직급과 직위라는 것이 없었지만, 여타 다른 직장과 다를 바 없이 인턴으로 첫해를 보냈다. 또래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어도, 삶의 연륜을 쌓는 것에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어렸고,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다. 혹시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라는 인물을 아는가. 상사가 반복되는 일만 시키고, 프로젝트도 안 준다며 동기들에게 투정 부리고, 냅다 상사에게 기획서를 제출하는 장면이 있다. 그 당시 드라마 볼 때 ‘왜 저렇게 나대?’라고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카페 일은 나의 본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투덜댔던 시간과 함께, 지금 보면 정말 볼품없고 조직과도 어울리지도 않는 기획서를 쓰고 있는 나였다.

진짜 매니저가 되다
새내기에게도 짬이 차는 시기가 온다. 절대 익숙해지지 못할 줄 알았던 일을 누군가에게 가르칠 만큼 여유를 가진 2년 차 매니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일이 익숙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져지고 묵혀지는 시간 동안, 공동체에서 나의 쓰임과 존재 이유를 찾아갔다. 공들이고 가꾼 만큼, 그리고 많이 부딪히고 생각해 본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일상적인 일과 함께,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도 본격적으로 맡게 되었다. 나는 청소년 인턴십과 문화제를 통해 10대 청소년을 만났고, 성인을 위한 ‘함께 만들 우주’, 북토크를 준비했다. 또한 여러 단체와 연대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나의 일상은 집과 우주소년을 반복하는 것이 다였지만 내 손길이 하나라도 더 닿아서 나아질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청소년과 함께 활동하면서, 직업으로서 청소년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부모도, 학교 선생님도 아닌 제3의 어른으로 어디까지 역할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동네 언니와 선생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을 어떻게 조절할지, 내가 혼자서 하면 금방 처리할 일이지만 가르치고 알려주어야 하니 꽤 오래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진심으로 기다려줄지. 늘 답이 없는 질문 속에서 고민이 많았다. 직업은 진심과 최선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지식과 전문성도 필요했고, 에너지를 오래 쓸 수 있는 적당한 선을 찾아야 하기도 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연대 활동은 또 다른 세계였다. 청소년 프로그램과 달리, 이 분야는 직함 혹은 명함을 내밀 일이 많다. 대학 재학 당시에는 나를 소개하는 것에서 그쳤지만, 이제는 책임과 역할을 맡게 된 매니저이자 공동체의 이름에 먹을 칠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책임감의 정도와 내용이 매우 달라졌다. 이와 동시에 내 언어로 우주소년을 소개하고, 질문에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사실 나는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우주소년 작명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지금껏 손님들에게 어설픈 설명을 했다는 사실에 혼자서 큰 반성을 하기도 했다. 강한 충격은 배움의 동력이 되어, 지금은 그 누구보다 우주소년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올랩 창업가와 공동체 속 간사는 차원이 달랐다. 창업에서는 매출이 가장 중요했지만, 공동체에서는 함께 생각하고, 움직여야만 했다. 일의 첫 시작도 마찬가지였다. ‘뭐 할래?’를 결정하기보다 ‘이곳의 24시간은 어떻게 굴러가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먼저였다. 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은 모두의 많은 공이 들어가고 있었다. 일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눈에 잘 보이지는 않는 활동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유의미한지도 알게 되었다. 내 주장은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서만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이 조직에서 해야만 하는 일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을 함께 고민하는 매니저가 되어 갔다.

나의 업을 내 언어로 쓰는 시간 ‘졸업논문’
2년 차가 무르익어 갈 즈음, 본격적으로 졸업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주제는 ‘지역 내 복합문화공간의 기능과 운영자의 역할’이었다. 나는 우주소년에서 동네 사랑방의 친근한 언니이자 누나였고, 지역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기획자였다.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며 연결하는 매개자였고, 지역 공동체 실천가이기도 했다. 단순 연구보고서로는 보여줄 수 없는, 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논문 작성이라는 좋은 기회를 바탕삼아 다른 지역 사례와 복합문화공간 개념과 특성에 관한 다른 연구자의 연구 내용을 살펴보았다.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개념이 최근에 등장한 것에 비해, 이미 지역에서는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공간이 운영되고 있었다. 공간 크기와 상관없이, 대표 혹은 공동체가 이곳을 어떻게 만들고자 하는지에 따라 언제든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공부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운영자에 관한 실증연구는 정말 막막했다. 그것은 나의 역할을 분해해서 분석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일한 시간이 많거나 다독을 한다고 아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두고 돌아보며 내 것으로 소화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그제야 왜 논문을 쓰라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차라리 에세이나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면 이건 재밌었고, 배웠고, 저건 너무 어려웠다고 썼을 텐데 말이다. 논리 구조를 갖추어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것을, ‘나의 주장을 정확하게 전달할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2년 내내 뒹굴었으니 지역에서 운영자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고, 하는 일은 이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어려웠다. 정말 내가 연구한 다른 복합문화공간의 운영자만큼 해내고 있나, 이 성과는 나 혼자서 한 것도 아닌데 쓸 수 있나 싶기도 했다. 논문은 통과가 되었지만, 내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익숙함과 매너리즘 사이
나는 이제 3년 차 매니저가 되었다. 사실 3년이나 할 줄 몰랐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다른 경험을 해서인지 졸업논문을 쓰고 나면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떠나지 않은 이유는 졸업논문에 속 시원하게 쓰지 못한 ‘운영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찾기 위해 학생 신분을 끝내고 사회인으로서 다시 시작했다.
2026년 우주소년은 청소년 프로젝트, 지역 문화 프로젝트, 매장 운영 등 여러 사업이 확장되었다. 또 산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큰 맥락 안에서 운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전년도 사업을 조금 더 내실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크게 달라지는 내용도 없고, 늘 하던 것을 더 잘하면 되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일보다 익숙해진 일이 더 많았다.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척하면 척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유가 꿈꾸고 즐기는 것으로 치환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 잃지 않고 적당히 평안한 상태를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공동체에서 관성대로 움직이면 그길로 망해!’라는 기존의 가치관과 ‘이제는 좀 편안하게 일하고 싶다’라는 새로운 마음의 부딪힘 말이다.
공동체의 일은 복잡하고 표본이 없고, 섬세하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이치나 작동원리가 공동체와 딱 들어맞지 않기에 새로운 방법을 매번 찾아서 도전해야 했다. 매번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성공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은 한동안은 동력이 되었지만 이제는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요인이었다. 힘드니 적당히 하려 하는 내 모습에 ‘그러면 안 돼!’라고 해도,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뾰족한 묘수가 있지는 않았다. 개개인이 잘 존재해야만 공동체도 유지할 수 있다고 지난 창업 내내 배웠지만, 이번에도 완급조절을 잘하지는 못했다.
만약 이러한 고민을 또래와 나눌 수 있었다면 또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유일한 또래 동료는 학업으로 인해 작년 상반기에 그만두었다. 솔직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버틸 수 있는 최대치가 있었다. 직장에서 고민을 나누고 함께할 또래는 꼭 필요했다. (참고로 나 다음으로 젊은 분이 40대 초반이다) 우주소년 선생님들도 참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20대와 4050세대의 경험과 고민은 차원이 다르다. 이쁨받는 막내딸보다 동료이자 친구로서 함께할 공간이 필요했다.
적당한 어딘가에 기준을 두고 일해도 큰 문제가 없이 굴러갈 것이다. 익숙함을 즐기며 하던 일을 잘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나아가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렇다면 새로운 도전을 통해 환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
그렇게 나는 <현진의 일과 나날> 마지막 원고가 게시되는 10월 1일. 우주소년 매니저직을 그만둔다. (정확하게는 월급 받는 간사직을 그만두기로 했다) 심각한 취업난 시대에 ‘쉬었음청년’ 대열에 합류한다. 3화를 쓰는 동안에도 직장인 마의 구간 ‘3·6·9’연차를 못 버티고 떠나는 건 아닐까 고민을 하고 있지만, 공동체와 직업 사이에서 나의 가치관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 직업, 생업, 노동자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편 공동체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삶 자체에 몰입해보는 경험과 시간은 감사하고 소중했다. 만약 내가 동천동이라는 동네를 만나지 못했다면, 혹은 이 공간에서도 배우고 존경할 만한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삶이었을지 종종 생각하곤 한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상상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세상에 쓸모없는 배움이 없다는 것을,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고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배짱이 생겨서 새로운 출발을 결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균형있게 살아가는 나의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앞둔 또 다른 의미의 신입이 되었다.
좌충우돌 어른 인생 5년 차. 대학, 팀 창업, 공동체 활동가로서의 일과 나날을 마친다.

현진
몬드라곤 대학교에 입학하여 현장에서 경영학을 배웠고 지금은 지역책방이자 카페인 우주소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번 눈으로만 살펴보다 2026년 문탁에서 첫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행동하는 삶만큼 글로 배우는 삶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도 이직 퇴직 모두 369법칙에 걸렸었는데, 369는 무시무시한 법칙이네요 ㅋㅋ
하이-바이-하이가 될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곳에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언제 어디서나 현진의 앞날이 계속 펼쳐지기를 ~ 가능하면 가까이서 응원할게요 :)
창업도 공동체 활동도 하던대로 하는게 아닌, 매번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일.
용기있게 또 시작하는 현진님의 그 무엇을 응원합니다!
일과 나날 그동안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