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의 일과 나날] 3화 - 하이-바이, 공동체 활동가!

현진
2026-09-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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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교육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문화 기획자, 청소년 교육자, 공간 운영자로 매니저 일을 하며 지역의 공동체 활동에 깊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다올랩이 아니라 지역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써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나는 알바생인가, 매니저인가

우주소년 매니저가 되기 전의 나는 책방에 자주 드나드는 편도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바쁜 일상에 한 꼭지를 챙길 만큼 우선순위에 두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동네 책방 매니저로 자원한 것은 청소년 교육프로그램과 지역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책방과 카페 업무라는 일을 새롭게 배워야 했지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두 가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걱정되고 두려워도 다른 일들은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주소년 첫 출근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나는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었다. 워낙 손으로 하는 일들은 자신 없어 피해 다녔는데, 우주소년에서의 일은 손글씨로 꾸미고, 커피를 내리는 손작업 일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청소년 프로그램도 하나 기획해보고, 책도 골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책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내가 갑자기 ‘우주소년다운’ 책을 고르고,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게 될 리가 없었다.

 

정말 막막했다. 그 누구도 ‘우주소년다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는 차라리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면 잘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알려준다고 다 이해하고 맞출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우주소년의 감각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나의 사수는 스스로 찾아가기를 기다리신 것이 아닐지 추측해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설거지하다 창밖을 보며 ‘나는 뭘 하려고 여기 있나?’ 허탈하기만 했다. 신입인 나는 여전히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많았고, 어떤 것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청소년을 만나고,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카페와 책방 업무 배우기에 급급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마을에서의 첫 사회생활. 이곳에는 직급과 직위라는 것이 없었지만, 여타 다른 직장과 다를 바 없이 인턴으로 첫해를 보냈다. 또래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어도, 삶의 연륜을 쌓는 것에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어렸고,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다. 혹시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라는 인물을 아는가. 상사가 반복되는 일만 시키고, 프로젝트도 안 준다며 동기들에게 투정 부리고, 냅다 상사에게 기획서를 제출하는 장면이 있다. 그 당시 드라마 볼 때 ‘왜 저렇게 나대?’라고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카페 일은 나의 본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투덜댔던 시간과 함께, 지금 보면 정말 볼품없고 조직과도 어울리지도 않는 기획서를 쓰고 있는 나였다.

 

 

 

 

 

진짜 매니저가 되다

새내기에게도 짬이 차는 시기가 온다. 절대 익숙해지지 못할 줄 알았던 일을 누군가에게 가르칠 만큼 여유를 가진 2년 차 매니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일이 익숙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져지고 묵혀지는 시간 동안, 공동체에서 나의 쓰임과 존재 이유를 찾아갔다. 공들이고 가꾼 만큼, 그리고 많이 부딪히고 생각해 본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일상적인 일과 함께,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도 본격적으로 맡게 되었다. 나는 청소년 인턴십과 문화제를 통해 10대 청소년을 만났고, 성인을 위한 ‘함께 만들 우주’, 북토크를 준비했다. 또한 여러 단체와 연대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나의 일상은 집과 우주소년을 반복하는 것이 다였지만 내 손길이 하나라도 더 닿아서 나아질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청소년과 함께 활동하면서, 직업으로서 청소년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부모도, 학교 선생님도 아닌 제3의 어른으로 어디까지 역할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동네 언니와 선생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을 어떻게 조절할지, 내가 혼자서 하면 금방 처리할 일이지만 가르치고 알려주어야 하니 꽤 오래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진심으로 기다려줄지. 늘 답이 없는 질문 속에서 고민이 많았다. 직업은 진심과 최선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지식과 전문성도 필요했고, 에너지를 오래 쓸 수 있는 적당한 선을 찾아야 하기도 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연대 활동은 또 다른 세계였다. 청소년 프로그램과 달리, 이 분야는 직함 혹은 명함을 내밀 일이 많다. 대학 재학 당시에는 나를 소개하는 것에서 그쳤지만, 이제는 책임과 역할을 맡게 된 매니저이자 공동체의 이름에 먹을 칠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책임감의 정도와 내용이 매우 달라졌다. 이와 동시에 내 언어로 우주소년을 소개하고, 질문에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사실 나는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우주소년 작명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지금껏 손님들에게 어설픈 설명을 했다는 사실에 혼자서 큰 반성을 하기도 했다. 강한 충격은 배움의 동력이 되어, 지금은 그 누구보다 우주소년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올랩 창업가와 공동체 속 간사는 차원이 달랐다. 창업에서는 매출이 가장 중요했지만, 공동체에서는 함께 생각하고, 움직여야만 했다. 일의 첫 시작도 마찬가지였다. ‘뭐 할래?’를 결정하기보다 ‘이곳의 24시간은 어떻게 굴러가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먼저였다. 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은 모두의 많은 공이 들어가고 있었다. 일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눈에 잘 보이지는 않는 활동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유의미한지도 알게 되었다. 내 주장은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서만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이 조직에서 해야만 하는 일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을 함께 고민하는 매니저가 되어 갔다.

 

 

 

 

나의 업을 내 언어로 쓰는 시간 ‘졸업논문’

2년 차가 무르익어 갈 즈음, 본격적으로 졸업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주제는 ‘지역 내 복합문화공간의 기능과 운영자의 역할’이었다. 나는 우주소년에서 동네 사랑방의 친근한 언니이자 누나였고, 지역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기획자였다.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며 연결하는 매개자였고, 지역 공동체 실천가이기도 했다. 단순 연구보고서로는 보여줄 수 없는, 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논문 작성이라는 좋은 기회를 바탕삼아 다른 지역 사례와 복합문화공간 개념과 특성에 관한 다른 연구자의 연구 내용을 살펴보았다.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개념이 최근에 등장한 것에 비해, 이미 지역에서는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공간이 운영되고 있었다. 공간 크기와 상관없이, 대표 혹은 공동체가 이곳을 어떻게 만들고자 하는지에 따라 언제든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공부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운영자에 관한 실증연구는 정말 막막했다. 그것은 나의 역할을 분해해서 분석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일한 시간이 많거나 다독을 한다고 아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두고 돌아보며 내 것으로 소화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그제야 왜 논문을 쓰라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차라리 에세이나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면 이건 재밌었고, 배웠고, 저건 너무 어려웠다고 썼을 텐데 말이다. 논리 구조를 갖추어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것을, ‘나의 주장을 정확하게 전달할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2년 내내 뒹굴었으니 지역에서 운영자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고, 하는 일은 이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어려웠다. 정말 내가 연구한 다른 복합문화공간의 운영자만큼 해내고 있나, 이 성과는 나 혼자서 한 것도 아닌데 쓸 수 있나 싶기도 했다. 논문은 통과가 되었지만, 내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익숙함과 매너리즘 사이

나는 이제 3년 차 매니저가 되었다. 사실 3년이나 할 줄 몰랐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다른 경험을 해서인지 졸업논문을 쓰고 나면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떠나지 않은 이유는 졸업논문에 속 시원하게 쓰지 못한 ‘운영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찾기 위해 학생 신분을 끝내고 사회인으로서 다시 시작했다.

 

2026년 우주소년은 청소년 프로젝트, 지역 문화 프로젝트, 매장 운영 등 여러 사업이 확장되었다. 또 산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큰 맥락 안에서 운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전년도 사업을 조금 더 내실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크게 달라지는 내용도 없고, 늘 하던 것을 더 잘하면 되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일보다 익숙해진 일이 더 많았다.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척하면 척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유가 꿈꾸고 즐기는 것으로 치환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 잃지 않고 적당히 평안한 상태를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공동체에서 관성대로 움직이면 그길로 망해!’라는 기존의 가치관과 ‘이제는 좀 편안하게 일하고 싶다’라는 새로운 마음의 부딪힘 말이다.

 

공동체의 일은 복잡하고 표본이 없고, 섬세하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이치나 작동원리가 공동체와 딱 들어맞지 않기에 새로운 방법을 매번 찾아서 도전해야 했다. 매번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성공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은 한동안은 동력이 되었지만 이제는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요인이었다. 힘드니 적당히 하려 하는 내 모습에 ‘그러면 안 돼!’라고 해도,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뾰족한 묘수가 있지는 않았다. 개개인이 잘 존재해야만 공동체도 유지할 수 있다고 지난 창업 내내 배웠지만, 이번에도 완급조절을 잘하지는 못했다.

 

만약 이러한 고민을 또래와 나눌 수 있었다면 또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유일한 또래 동료는 학업으로 인해 작년 상반기에 그만두었다. 솔직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버틸 수 있는 최대치가 있었다. 직장에서 고민을 나누고 함께할 또래는 꼭 필요했다. (참고로 나 다음으로 젊은 분이 40대 초반이다) 우주소년 선생님들도 참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20대와 4050세대의 경험과 고민은 차원이 다르다. 이쁨받는 막내딸보다 동료이자 친구로서 함께할 공간이 필요했다.

 

적당한 어딘가에 기준을 두고 일해도 큰 문제가 없이 굴러갈 것이다. 익숙함을 즐기며 하던 일을 잘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나아가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렇다면 새로운 도전을 통해 환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

그렇게 나는 <현진의 일과 나날> 마지막 원고가 게시되는 10월 1일. 우주소년 매니저직을 그만둔다. (정확하게는 월급 받는 간사직을 그만두기로 했다) 심각한 취업난 시대에 ‘쉬었음청년’ 대열에 합류한다. 3화를 쓰는 동안에도 직장인 마의 구간 ‘3·6·9’연차를 못 버티고 떠나는 건 아닐까 고민을 하고 있지만, 공동체와 직업 사이에서 나의 가치관을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 직업, 생업, 노동자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편 공동체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삶 자체에 몰입해보는 경험과 시간은 감사하고 소중했다. 만약 내가 동천동이라는 동네를 만나지 못했다면, 혹은 이 공간에서도 배우고 존경할 만한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삶이었을지 종종 생각하곤 한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상상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세상에 쓸모없는 배움이 없다는 것을,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고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배짱이 생겨서 새로운 출발을 결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균형있게 살아가는 나의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앞둔 또 다른 의미의 신입이 되었다.

 

좌충우돌 어른 인생 5년 차. 대학, 팀 창업, 공동체 활동가로서의 일과 나날을 마친다.

 

 

 

현진

몬드라곤 대학교에 입학하여 현장에서 경영학을 배웠고 지금은 지역책방이자 카페인 우주소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번 눈으로만 살펴보다 2026년 문탁에서 첫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행동하는 삶만큼 글로 배우는 삶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습니다.

댓글 2
  • 2026-10-02 15:09

    저도 이직 퇴직 모두 369법칙에 걸렸었는데, 369는 무시무시한 법칙이네요 ㅋㅋ

    하이-바이-하이가 될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곳에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언제 어디서나 현진의 앞날이 계속 펼쳐지기를 ~ 가능하면 가까이서 응원할게요 :)

  • 2026-10-06 07:06

    창업도 공동체 활동도 하던대로 하는게 아닌, 매번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일.
    용기있게 또 시작하는 현진님의 그 무엇을 응원합니다!
    일과 나날 그동안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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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고전중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가마솥
2026.09.30 | 조회 90
짧은생각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소이
2026.09.30 | 조회 138
할 말 있어요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인디언
2026.09.30 | 조회 149
요요와 불교산책
      나의 명상 입문 30대 후반이었다. 직장일과 육아에 쫓기며 마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기계의 부속품 같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자기 착취로 인한 번아웃이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계속 약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 혼자 108배를 시작했다. 처음 엎드려 절을 하던 날, 왈칵 눈물이 났다. 구원을 간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그 무엇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근대적 자아관에 균열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뒤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고 인연이 닿아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게 되었다. 지도법사는 태국에서 출가하여 남방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스님이었다. 위빠사나는 단전에 집중하는 단전호흡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들숨 날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법이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몸에서 문제가 생겼다. 몸 여기저기에서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 가려움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한 번 긁고 잊어버리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반응하지 말고 일어나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고 하니 가려움은 더 참기 힘들었다. 가려움이 지나가면 다리가 저려왔다. 몸을 지켜보면서 알았다. 잠깐 사이에도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몸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마음은 또 어떤가?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하고, 땀이 나면 닦고 싶어하고, 저려오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간...
      나의 명상 입문 30대 후반이었다. 직장일과 육아에 쫓기며 마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기계의 부속품 같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자기 착취로 인한 번아웃이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계속 약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 혼자 108배를 시작했다. 처음 엎드려 절을 하던 날, 왈칵 눈물이 났다. 구원을 간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그 무엇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근대적 자아관에 균열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뒤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고 인연이 닿아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게 되었다. 지도법사는 태국에서 출가하여 남방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스님이었다. 위빠사나는 단전에 집중하는 단전호흡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들숨 날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법이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몸에서 문제가 생겼다. 몸 여기저기에서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 가려움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한 번 긁고 잊어버리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반응하지 말고 일어나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고 하니 가려움은 더 참기 힘들었다. 가려움이 지나가면 다리가 저려왔다. 몸을 지켜보면서 알았다. 잠깐 사이에도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몸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마음은 또 어떤가?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하고, 땀이 나면 닦고 싶어하고, 저려오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간...
요요
2026.09.30 | 조회 64
유물;멍때리기
      <월산대군 태항아리>, 높이 36.3 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도자기다. 15세기 중엽 세종과 세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 대표작으로 위의 <월산대군 태항아리>를 꼽는 데 이론異論이 없을 정도라고. 표면을 촘촘히 도장 찍듯 메운 국화 무늬와 연꽃무늬, 풍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곡선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아기의 장수와 안녕을 빌며, 정성껏 씻은 태를 항아리에 담아 길지吉地에 묻었던 일이 있다. 위 사진은 조선 월산대군의 태를 담은 항아리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맏손자다. 세조는 자손의 안녕과 왕조의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을 당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분청사기 속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달리 월산대군의 운명은 불우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한명회의 사위였던 동생(성종)이 왕위를 이었고,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야심 가득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정치를 등져야 했고, 예술적 재능과 풍류로 삶을 달래야 했던 월산대군. 1937년 그의 태실은 도굴되어 태항아리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끝내 일본 땅 어느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갇혔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태항아리에는 기구하고 애틋한 월산대군의 삶이 담겨 있다.         누룽지 :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풍경화와 산수화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언젠가 중국의 미술사를 공부 해보고 싶어졌다. 소원을 이루고 있는 지금, 그림을 넘어 점점 술잔과 식기, 조리도구에 눈길이 간다.
      <월산대군 태항아리>, 높이 36.3 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도자기다. 15세기 중엽 세종과 세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 대표작으로 위의 <월산대군 태항아리>를 꼽는 데 이론異論이 없을 정도라고. 표면을 촘촘히 도장 찍듯 메운 국화 무늬와 연꽃무늬, 풍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곡선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아기의 장수와 안녕을 빌며, 정성껏 씻은 태를 항아리에 담아 길지吉地에 묻었던 일이 있다. 위 사진은 조선 월산대군의 태를 담은 항아리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맏손자다. 세조는 자손의 안녕과 왕조의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을 당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분청사기 속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달리 월산대군의 운명은 불우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한명회의 사위였던 동생(성종)이 왕위를 이었고,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야심 가득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정치를 등져야 했고, 예술적 재능과 풍류로 삶을 달래야 했던 월산대군. 1937년 그의 태실은 도굴되어 태항아리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끝내 일본 땅 어느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갇혔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태항아리에는 기구하고 애틋한 월산대군의 삶이 담겨 있다.         누룽지 :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풍경화와 산수화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언젠가 중국의 미술사를 공부 해보고 싶어졌다. 소원을 이루고 있는 지금, 그림을 넘어 점점 술잔과 식기, 조리도구에 눈길이 간다.
누룽지
2026.09.30 | 조회 80
일과 나날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현진
2026.09.30 | 조회 190
유물;멍때리기
자작나무
2026.08.31 | 조회 99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현민
2026.08.31 | 조회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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