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지구와 행성을 동시에 사고하기

진달래
2026-08-3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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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논쟁

올여름 서유럽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暴炎)으로 ‘에어컨 논쟁’이 벌어졌다. 에어컨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2024년 파리 올림픽 당시에 에어컨이 없는 선수촌이 문제가 되었었다. 그때 프랑스는 파리의 평균 기온이 26.5도라는 것, 선수촌 아파트가 지열 에너지를 이용해 실내 기온을 떨어뜨리는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며 에어컨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안을 식히기 위해 밖을 덥히는’ 에어컨의 사악함을 문제 삼았다. 에어컨 사용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최고 40도가 넘는 폭염이 6월 말부터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선풍기와 에어컨의 판매가 급증했는데, 그러자 에어컨 설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 프랑스는 1971년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설립한 나라로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에어컨 설치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다. 여기에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 실제로 에어컨의 설치가 어렵다. 하지만 폭염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에어컨 도입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학교나 병원 등의 에어컨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 이념 공방으로 발전했으며 내년에 치러지는 대선에 ‘에어컨 규제 해제’가 주요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에어컨이 필수 가전제품인 듯하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도 에어컨은 좀 사는 집에서나 사용하는 가전제품이었다. 내 기억에 15년 전만 해도 아주 더운 날이 일주일 정도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 굳이 에어컨이 필요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남편이 여름이면 우리 집에도 에어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나는 일 년에 열흘 정도 쓰자고 좁은 집에 에어컨을 지고 있을 거냐며 에어컨 구입을 반대했다. 물론 비싼 전기 요금도 걱정이 되었고, 실제로 더운 공기를 뿜어내는 실외기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덥고, 습한 날이 계속 이어지면서 결국 우리 집에도 에어컨이 들어왔다.

 

차크라바르티의 《행성시대, 역사의 기후》를 읽다 보면 에어컨에 대해 좀 더 복잡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인도 델리의 에어컨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다른 노동자 계급 가족이 집으로 첫 에어컨을 가져올 때마다 어떤 전율이 델리 카말푸르 C 블록 12번지로 내려 갑니다. 보통 온 가족이 자는 방을 식히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전원을 켜면 5월에 열이 117도(섭씨 약 47도)에 달하는 이 숨 막히는 콘크리트 미로의 삶이 바뀌죠”  《행성시대 역사의 기후》, 162쪽

 

인도의 에어컨은 입시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고, 병을 옮기는 모기에 덜 물리고, 열탈진과 같은 건강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경제학자 마이클 그린스톤의 보고에 의하면 1960년에서 2004년 사이에 미국에서 에어컨은 더위로 인한 사망자수를 80%로 감소시켰는데, 같은 기간 인도에서 에어컨 사용으로 줄어든 사망자 수는 미국보다 25배가 많다.

 

기후 위기를 생각하면 에어컨을 덜 사용하는 게 맞긴 하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폭염에 맞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

 

 

차크라바르티와 인류세

이번 문*맥에서는 9월 19일에 있을 ‘기후정의 행진’을 주제로, 차크라바르티의 《인류세에 대하여 인문학이 답하다》를 함께 읽었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1948~)는 인도 출신의 역사학자로 서벌턴 연구와 인류세 연구로 주목 받는 인문학자다. 그는 2000년 서구 유럽의 근대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에 문제를 제기한 《유럽을 지방화하기》로 유명해졌다. 이후 2003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대규모 산불을 계기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2009년 〈역사의 기후: 네 가지 테제〉로 인류세 인문학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인류세에 대해 인문학이 답하다》는 2024년 출간된 책이지만, 2015년 미국의 예일대학에서 행한 강연 “인류세의 인간의 조건”의 원고를 번역한 것이다.

 

 

 

위의 세 책은 모두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으로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된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과 지질학적인 기록에 흔적을 남기게 되어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었음을 의미하는 명칭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나,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훼손, 플라스틱과 같은 인공 물질의 퇴적,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다루기에 적합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차크라바르티가 인류세에 주목하는 데는 기후변화에는 ‘인위적’이라는 것 이외에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 아닌(nonhuman), 살아 있지 않은(nonliving) 벡터들에 주도되는 사건”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세 논의는 비록 인간 활동을 주로 문제 삼고 있지만 그 피해나 영향은 기후, 지형과 지질, 그리고 다양한 생물종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크라바르티는 이러한 인류세 시대에는 그가 공부했던 역사 연구 방법, 즉 ‘인간사’와 ‘자연사’를 구분하는 방식으로는 현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인간사와 자연사를 통합하여 새로운 ‘지구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인간의 역사 이전의 시대, 즉 지질시대까지를 거슬러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차크라바르티는 ‘지구(globe)’와 ‘행성(planet)’이라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그는 지구온난화라고 할 때의 지구는 인문학적으로 사용하는 지구와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때 지구는 ‘대지 시스템’으로 “행성에서 지질학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이 결합한 복잡한 다세포 생명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으로서의 행성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지구와 행성을 구분하는 데는 ‘지구적인 것(global)’과 ‘행성적인 것(planetary)’의 구분을 통해 현재 기후변화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구적인 것’은 인간중심적인 것을 말하는데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지구는 인간이 살기 위한 곳이 된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도 인간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인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책을 세우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각기 살고 있는 곳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차이를 바탕으로 논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행성적인 것' 즉 탈인간중심적으로 보자면 지구/행성는 인간을 위해 이러한 지질학적 조건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조건에 우연히 ‘거주 적합성’을 획득한 인간이 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거주 적합성은 인간만 얻은 것이 아니고, 지구/행성에는 이러한 적합성을 얻은 다양한 생물종이 함께 살고 있다. 게다가 이 거주 적합성은 각각 독립된 개체에 적용되기보다 그들이 엮어내는 그물망과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행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 그 관점을 옮기는 것이다.

 

 

공통적이지만 차별화된 책임

그렇다고 차크라바르티가 ‘지구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고 ‘행성적인 것’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러한 지구적인 것,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는 정치적인 논의는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반면에 정말 우리는 기후변화를 공통의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통적이지만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은 리우지구정상회의(1992)와 쿄토의정서(1997)에서 채택된 이후 기후변화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 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은 모두 공통으로 져야 하지만 이미 산업화를 끝낸 선진국과 이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 간에는 그 책임이 똑같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의 문제는 점점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의 피해 규모가 커지고,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저소득층이나 원주민과 같은 계층에 그 피해가 집중되면서 ‘기후정의’로 대두되고 있다. 얼마 전 일어난 네팔의 대규모 홍수 피해도 기후변화로 인하여 빙하가 붕괴되면서 일어난 참변이다. 네팔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0.1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유엔이 지정한 최빈개발국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 일에 대한 책임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현재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중국, 미국, 인도가 책임져야 하는 일일까? 그러나 인도의 에어컨 사용은 위생적이고 건강한 환경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정의’는 한편으로는 그 에너지의 사용 역시 불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공통’의 기반에서 기후변화를 사유할 수 있을까?

 

 

“저의 사고 실험 배후에 있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위험한 기후변화로 인한 불평등하고 불균등한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 경쟁적이고 충돌하는 행동에 영향은 주지만 결정하지 않는, 그러한 공통의 시점을 구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인류세에 대해 인문학이 답하다》, 13쪽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식을 야스퍼스의 ‘시대 의식(epocal consciousness)’으로 보고자 한 차크라바르티는 여기에 ‘전(前)-정치적’이라는 상상의 공간에 주목한다. 즉 정치적 사고 이전에 가져야 하는 공통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행성’은 차크라바르티의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치적인 논쟁은 분화될 수밖에 없다. 차크라바르티는 하나의 인류, 하나의 세계는 허상에 가깝다고 본다. 각각 다른 자연환경, 역사적 배경과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동시에 하나의 ‘대기 시스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구/행성 안에는 인간/비인간과 더불어 다양한 지질학적 요소가 함께 ‘거주 적합성’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덥다고 에어컨을 켜면 기후변화에 영향을 줄 것이고 이는 어디에 어떤 재난을 일으키게 될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행성적인 것’으로 우리는 기후변화를 사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네팔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홍수로 인한 피해를 소년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천천히, 시끄럽게 벌이는 논쟁

차크라바르티가 다른 환경론자들과 다른 점은 이 두 가지의 곤경, 기후변화와 관련한 불평등의 문제와 행성으로서 대기 시스템 안에 살아가는 우리를 함께 논하는 점이다. 더욱이 이 두 곤경은 하나를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개의 곤경이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조건이라고 본다.

 

유럽의 폭염으로 에어컨 논쟁이 일었을 때 내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건 이러한 ‘논쟁’이 일었다는 그 자체였다. 폭염으로 사람이 많이 죽었으니 에어컨을 당장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과,  절대 설치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편이 정치적으로 공방이 일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환경부 장관이 에어컨 설치는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환경문제는 많은 부분 기술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에어컨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냉매(HFC/수소불화탄소)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훨씬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때문에 수소불화탄소를 에어컨 냉매로 사용하는 것을 2030년에 금지한다는 목표로 각국에서 친환경 냉매 연구와 개발에 힘쓰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은 기술적으로 언젠가는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차크라바르티도 기술에 관한 문제를 언급했다. 기술이 인간의 생존과 이미 결부되어 뗄 수 없는 것으로 ‘기술권(technosphere)’을 형성한다고 했다. 기술은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비인간을 매개하며 생태, 사회, 경제를 규정한다. 에어컨을 설치하자고 주장하는 한편에는 이러한 기술에 대한 기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바로 기술로 해결한 환경문제는 바로 다른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한때 “원전 대신 태양광 발전”이라는 구호에서 보이듯이 태양광 발전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태양광 집전판을 만들 때 심각한 중금속 오염이 일어나며, 대단위로 설치할 때는 생태계 교란 문제가 발생하는 간과한 것이다. 물론 중금속 오염에 관한 문제는 현재 기술적으로 많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별다른 해답이 있지 않고 그저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는 언제나 우리가 알게 혹은 모르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 앞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선 속 시원하거나 명쾌한 답이 있을 수 없다. “답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차크라바르티는 이에 대해 오히려 이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지구적인 것’과 ‘행성적인 것’은 어느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이 두 개의 긴장 속에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팔의 참사를 보고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우리가 기후변화에 공통의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멈추어서 생각해 보자. 네팔 참사에 우리는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고 있을까?

 

‘지구적인 것’에서 ‘행성적인 것’으로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천천히,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하길 요구한다. 에어컨 설치의 문제도, 데이터센터 건립에 관한 문제도 네팔 참사를 복구하는 문제에서도 빠른 해결이 아니라 행성의 ‘거주 적합성’에 맞는 해결인지를 천천히, 그리고 시끄럽게 논쟁해야 하는 것이 인류세 인문학의 역할이다.

 

 

 

 

진달래

어쩌다 보니 나름 동양고전이라는 한 우물을 파게 되었다. 고전에 대한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올해는 고전과 지금의 언어를 엮는 데 힘을 써 보려고 한다.

 

댓글 6
  • 2026-09-01 16:48

    프랑스의 경우 에어컨을 보급하는 정책과 함께 제동을 거는 보수주의자들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이 중산층인.. 그리고 프랑스도 북유럽도 청정지역인 건 제조업을 제 3국가로 넘겼다는 제국주의 성향도 드러나는 듯 해요. 따지고 보면 행성적인 것 같은 나라들도 사실은 지구적이지도 행성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이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도 살고 있으니
    지구적인 사유와 행성적인 사유가 동시에 가능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 2026-09-03 07:13

    "살려주세요!" 이번 여름 베를린이 40도였을 때 제게 보내온 딸의 문자였어요. 딸은 하루종일 달궈진 콘크리트 기숙사 건물에서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잘 먹지도 못해 결국 병원까지 다녀왔어요. 일주일 폭염에 딸의 일상과 건강이 무너졌습니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제 인류가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는데, 행성적인 관점에서 논의가 되고 해결책이 나오기를 바래봅니다.

  • 2026-09-03 11:02

    책을 읽으면서 행성적 관점을 가지는 것에 대해 내내 '답답했던 것'은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느끼는데, 여전히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입니다.
    아직도 인류중심의 과학적 해결책을 구하는 사고 때문인가요?
    제가 이해한 행성적 관점으로 보면, 인류세에 이렇게 자원을 낭비하는 인류와 그 유탄을 맞은 생물체는 소멸하고 새로운 생물/무생물이 이 행성에서 살아 가는 것도 타당한(?) 듯 합니다. ㅎㅎ

  • 2026-09-04 06:50

    기후변화와 관련한 불평등의 문제와 행성으로서 대기 시스템 안에 살아가는 우리
    삶의 조건이 된 이 두 곤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지...
    생각은 넓어지는지 모르지만 작은 불편도 참지 못하는 일상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 2026-09-08 09:16

    네팔이 이번 대홍수의 피해에 대해 중국, 인도, 미국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고 합니다.
    이번 피해에 대해 '원조'의 형식이 아니라 '정의와 보상'으로 외교를 전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기후정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 2026-09-13 21:51

    지구적 사고와 행성적 사고가 어떤 때는 잘 알 것 같다가도 금방 알쏭달쏭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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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컨 논쟁 올여름 서유럽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暴炎)으로 ‘에어컨 논쟁’이 벌어졌다. 에어컨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2024년 파리 올림픽 당시에 에어컨이 없는 선수촌이 문제가 되었었다. 그때 프랑스는 파리의 평균 기온이 26.5도라는 것, 선수촌 아파트가 지열 에너지를 이용해 실내 기온을 떨어뜨리는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며 에어컨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안을 식히기 위해 밖을 덥히는’ 에어컨의 사악함을 문제 삼았다. 에어컨 사용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최고 40도가 넘는 폭염이 6월 말부터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선풍기와 에어컨의 판매가 급증했는데, 그러자 에어컨 설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 프랑스는 1971년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설립한 나라로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에어컨 설치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다. 여기에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 실제로 에어컨의 설치가 어렵다. 하지만 폭염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에어컨 도입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학교나 병원 등의 에어컨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 이념 공방으로 발전했으며 내년에 치러지는 대선에 ‘에어컨 규제 해제’가 주요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에어컨이 필수 가전제품인 듯하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도 에어컨은 좀 사는 집에서나 사용하는 가전제품이었다. 내 기억에 15년 전만 해도 아주 더운 날이 일주일 정도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 굳이 에어컨이 필요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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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26.08.31 | 조회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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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지구를 실감하는 8월이 되면 곧바로 9월의 ‘기후대행진’을 떠올린다. 지구의 기후위기를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외치며 행진하는 아스팔트 위를 문탁의 친구들은 매년 함께 걸었다. 그리고 그 한 달여 전부터 참여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파지사유 친구들이 잘한다. 2026년 올해에는 무얼 할까? 정부에서는 야심차게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이미 AI가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는지 의아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공부를 같이 해보자. AI에 대해, 파운데이션 모델이 어떻다는 기술적 측면, 반도체와 주가, 인간 정서나 지능에 미치는 영향, 일자리 대체의 두려움 등,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생태적인 측면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았다. 따라서 한 권의 책 『AI와 기후의 미래』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었다. 디지털전환과 생태전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4회차에 걸친 세미나를 스케치해 본다.     OTT와의 이별은 어려워       “디지털 과소비에서 디지털 절제로… 전용기도 없고 채식을 지향하면서도 ott 중독은 끊기가 어렵다. 화질을 낮추고 봐야 할까?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라는데(111), 도대체 ‘개인’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으면서, 숨겨두었던 내 안의 ‘기후냉소주의’가 꿈틀하는 게 느껴진다. ㅠㅠ”   이 메모는 세미나에 참여한 참이 쓴 것으로, 『AI와 기후의 미래』 111쪽에서 디지털 과소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한 데 대한 짧은 소회이다. ‘기후냉소주의’ 운운하지만, 사실 참은 누구보다 생태적 실천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참뿐만 아니라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기후위기를 살피며 동물권, 플라스틱, 에너지 문제에 큰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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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1 | 조회 253
방과후 고전중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가마솥
2026.09.30 | 조회 90
짧은생각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소이
2026.09.30 | 조회 138
할 말 있어요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인디언
2026.09.30 | 조회 149
요요와 불교산책
      나의 명상 입문 30대 후반이었다. 직장일과 육아에 쫓기며 마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기계의 부속품 같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자기 착취로 인한 번아웃이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계속 약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 혼자 108배를 시작했다. 처음 엎드려 절을 하던 날, 왈칵 눈물이 났다. 구원을 간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그 무엇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근대적 자아관에 균열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뒤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고 인연이 닿아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게 되었다. 지도법사는 태국에서 출가하여 남방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스님이었다. 위빠사나는 단전에 집중하는 단전호흡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들숨 날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법이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몸에서 문제가 생겼다. 몸 여기저기에서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 가려움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한 번 긁고 잊어버리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반응하지 말고 일어나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고 하니 가려움은 더 참기 힘들었다. 가려움이 지나가면 다리가 저려왔다. 몸을 지켜보면서 알았다. 잠깐 사이에도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몸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마음은 또 어떤가?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하고, 땀이 나면 닦고 싶어하고, 저려오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간...
      나의 명상 입문 30대 후반이었다. 직장일과 육아에 쫓기며 마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기계의 부속품 같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자기 착취로 인한 번아웃이라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계속 약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 혼자 108배를 시작했다. 처음 엎드려 절을 하던 날, 왈칵 눈물이 났다. 구원을 간구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그 무엇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근대적 자아관에 균열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뒤 불교를 공부하게 되었고 인연이 닿아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게 되었다. 지도법사는 태국에서 출가하여 남방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스님이었다. 위빠사나는 단전에 집중하는 단전호흡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들숨 날숨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법이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몸에서 문제가 생겼다. 몸 여기저기에서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스멀 가려움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한 번 긁고 잊어버리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반응하지 말고 일어나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고 하니 가려움은 더 참기 힘들었다. 가려움이 지나가면 다리가 저려왔다. 몸을 지켜보면서 알았다. 잠깐 사이에도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몸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마음은 또 어떤가?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하고, 땀이 나면 닦고 싶어하고, 저려오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간...
요요
2026.09.30 | 조회 64
유물;멍때리기
      <월산대군 태항아리>, 높이 36.3 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도자기다. 15세기 중엽 세종과 세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 대표작으로 위의 <월산대군 태항아리>를 꼽는 데 이론異論이 없을 정도라고. 표면을 촘촘히 도장 찍듯 메운 국화 무늬와 연꽃무늬, 풍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곡선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아기의 장수와 안녕을 빌며, 정성껏 씻은 태를 항아리에 담아 길지吉地에 묻었던 일이 있다. 위 사진은 조선 월산대군의 태를 담은 항아리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맏손자다. 세조는 자손의 안녕과 왕조의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을 당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분청사기 속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달리 월산대군의 운명은 불우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한명회의 사위였던 동생(성종)이 왕위를 이었고,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야심 가득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정치를 등져야 했고, 예술적 재능과 풍류로 삶을 달래야 했던 월산대군. 1937년 그의 태실은 도굴되어 태항아리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끝내 일본 땅 어느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갇혔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태항아리에는 기구하고 애틋한 월산대군의 삶이 담겨 있다.         누룽지 :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풍경화와 산수화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언젠가 중국의 미술사를 공부 해보고 싶어졌다. 소원을 이루고 있는 지금, 그림을 넘어 점점 술잔과 식기, 조리도구에 눈길이 간다.
      <월산대군 태항아리>, 높이 36.3 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도자기다. 15세기 중엽 세종과 세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 대표작으로 위의 <월산대군 태항아리>를 꼽는 데 이론異論이 없을 정도라고. 표면을 촘촘히 도장 찍듯 메운 국화 무늬와 연꽃무늬, 풍만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곡선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아기의 장수와 안녕을 빌며, 정성껏 씻은 태를 항아리에 담아 길지吉地에 묻었던 일이 있다. 위 사진은 조선 월산대군의 태를 담은 항아리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맏손자다. 세조는 자손의 안녕과 왕조의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을 당시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분청사기 속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달리 월산대군의 운명은 불우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한명회의 사위였던 동생(성종)이 왕위를 이었고,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야심 가득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정치를 등져야 했고, 예술적 재능과 풍류로 삶을 달래야 했던 월산대군. 1937년 그의 태실은 도굴되어 태항아리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끝내 일본 땅 어느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갇혔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태항아리에는 기구하고 애틋한 월산대군의 삶이 담겨 있다.         누룽지 :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풍경화와 산수화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언젠가 중국의 미술사를 공부 해보고 싶어졌다. 소원을 이루고 있는 지금, 그림을 넘어 점점 술잔과 식기, 조리도구에 눈길이 간다.
누룽지
2026.09.30 | 조회 80
일과 나날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현진
2026.09.30 | 조회 190
유물;멍때리기
자작나무
2026.08.31 | 조회 99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현민
2026.08.31 | 조회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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