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강학원 사전세미나] 5회차 메모 모음

우현
2026-02-02 11:35
56

 

댓글로 올려주세요~

댓글 7
  • 2026-02-02 14:41

    1
    민중 봉기에 대한 억압은 그때까지는 군인의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그후에는 사법-경찰-감옥이라는 복합적인 제도에 의해 그 임무가 수행되었습니다. 사법장치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혁명을 성공할 수 없습니다. (407)
    /
    국가적 사법정치-민중적 사법정치, 재판-인민재판, 국가감시(?)-자유통신 등으로 나뉘어 국가와 민중이 권력 겨루기? 힘 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푸코는 사법정치를 근본적으로 제거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혁명을 위해서..
    푸코가 말한 사법정치는 본 뜻대로 국가적 사법정치를 뜻하는 걸까요? 아니면 민중적 사법정치까지 통틀어 말하는 걸까요? 만약 후자라면 푸코가 생각하는 권력은 국가에서 민중으로 이행되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지길 바랐던 건지가 궁금했습니다. 푸코가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아마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 같긴하지만요~..

    2
    특히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기분을 느꼈다. ... 들뢰즈는 그냥 혼자서 보기 위해 열다섯 장 정도의 독서 후기를 썼고, 그것을 푸코에게 전달했다. 이 책이 기여한 모든 것, 이 책을 풍요롭고 힘 있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 그리고 이 새로운 연구와 관련해 자신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둘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푸코에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지지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의기소침해 보였다. 격렬한 공격이 공개적으로 나왔다면 그는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반항하며, 50여 페이지로 “푸코를 잊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반대자를 촌철살인의 한 문장으로 박살을 낼 수도 있었으리라. (467~468)
    /
    앞에서 비슷한 일화가 나왔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푸코가 타인이 보인 반응에 의해 감정이 흔들리는 이 일화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의 이해를 특별히 바라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탓에 그런듯 합니다. 물론 이해받고자 하는 건 당연하지만, 푸코의 방식은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반항”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하길래 좀 놀랐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푸코를 약하게 만들었는가?(469)” 가 궁금했습니다. 푸코가 .. 나이가 든 걸까요?

  • 2026-02-02 17:07

    저의 개인 메모입니다~

  • 2026-02-02 19:26

    1. '그러나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푸코도 언제나 변함없이 친이스라엘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 그랬다. 이것이야말로 적극적으로 친팔레스타인 계열이고 가끔 이 위원회의 의미를 '조작'하기 일쑤인 마오이즘 운동과 그를 근본적으로 갈라놓는 차이점이기도 했다' (139쪽)/'1979년 3월 푸코는 '현대'지가 피에르 빅토르의 제안으로 주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심포지엄을 위해 자기 아파트를 빌려주었다. (중략) 그러나 푸코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1970년대 푸코는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친이스라엘이라는 점에서 약간 의문이 생긴다. 저자가 푸코를 '친이스라엘' 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2. 푸코는 '앎의 의지'를 통해 자신이 발전시킨 정신분석을 근본적으로 다시 문제 삼고 있다(463쪽) 고 합니다. '앎의 의지' 에서 푸코는 앎과 권력의 '장치' 보다는 주체의 예속화 과정(고백이 과학으로 발전된 과정)을 문제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의 금지, 방해, 거부, 은폐 등을 좀더 복합적이고 좀더 전면적인 전략에 삽입시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실을 잘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현상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주요한 목표가 단순한 억압에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470쪽): 푸코의 이런 이론의 변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 2026-02-02 20:34

    1. 지난 번에는 감옥정보그룹의 창설과 해산 과정에서 드러난 지식인과 수감 당사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장에서는 1970년대에 푸코가 감옥정보그룹 활동 이외에도 여러 사건에 개입하며 사법, 형벌 제도에 의한 폭력에 저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저항의 주체가 ‘민중’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참여’(앙가주망)의 새로운 의미와 지식인과 민중에 대한 푸코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인민 재판과 민중적 실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마오이스트, 촘스키, 사르트르와 결을 달리 한다. “사법장치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혁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법장치나 이데올로기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가 민중적 실천에 은근히 스며 들어가게 허용하는 모든 것을 몰아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407) 특히 토론 상대였던 피에르 빅토르가 "첫 단계인 이데올로기 혁명의 단계에서는 나는 약탈에도 찬성이고, '과격행위'에도 찬성입니다. 몽둥이를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야 합니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 이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죠"라고 말하자, 푸코는 "몽둥이를 꺾어 버리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두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몽둥이를 꺾어 버리는 행위와 흔히 말하는 '비폭력 저항'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푸코가 주장하는 민중적 실천의 성격과 의의, 또는 한계를 논의해보고 싶다.

    2. 민중적 실천에 대한 푸코의 미묘한 입장은 특정 시점에 들뢰즈와 갈라서게 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하지만 1972년에 '참여'(앙가주망)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의견은 일치했다. "이제는 더 이상 투쟁을 '전체화'하고 그 이론을 수립하며 그것의 의미를 말하는 단계가 아니었다. 사르트르식의 '전체적 지식인'에 맞서 그들은 '특정한 지식인'을 대립시켰다."(435) 여기서 특정한 지식인의 참여는 국지적 장소에서 이루어지면서도 "도처에서 똑같은 권력을 유지시키고 있는 모든 강제와 통제를 분쇄해야 한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운동과 연결되고"(푸코), 동시에 "가장 작은 요구에서부터 출발하여 결국 전체를 폭파시키려는 것"(들뢰즈)이라는 측면에서 국지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면 사르트르식으로 투쟁을 '전체화'하여 그 이론과 의미를 먼저 수립하는 방식과, 국지적인 실천으로부터 전체와의 대결로 나아가는 투쟁은 어떻게 다를까?

  • 2026-02-02 21:30

    1. 우리시대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어떤것의 한가운데에 클라벨은 있었다 다시말하면 서구사회가 시간에 대해 조금씩 형성하기 시작ㄷ하는 의식의 매우 깊고도 넓은 변화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 의식을 형성했던 모든 것 이의식에 지속성을 주고 그 완성을 허용했던 모든 것 이 의식에 지속성을 주고 그 완성을 허용했던 모든 것들이 찢겨나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기울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오늘날에도 시간을 다른식으로 살아야한다고 아니 특히 오늘날에 우리는 다른식으로 살아야한다고(425p)

    권력이 우리의 시간과 일상자체를 규격화 하는 사회에서 푸코는 다른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튀는 사람을 눈치 주고 차별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때 독일의 수업방식을 가져와서 수업하던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저에겐 너무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 선생님은 학부모의 많은 민원으로 결국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또한 현재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 저는 개인이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힘들게 노력할 바에 그냥 순응하고 편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권력이 규정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제시할 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또 그것이 주변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나는 욕망이라는 말을 참을 수가 없어. 당신이 그 말을 다르게 사용한다 해도 나는 욕망=결핍 혹은 욕망은 곧 억압이라는 생각과 느낌을 피할 수가 없어 내가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은 욕망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여하튼 나는 욕망이 아닌 다른 말이 필요해(468P)

    단어 하나 때문에 서로 논쟁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면서 단어가 가진 역사적 무게를 지우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정말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비유를 많이 들면서 설명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어의 역사적 무게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쓰는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로 우리는 결국 무언 가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 2026-02-02 22:01

    3부의 4장과 5장이었습니다. 4장에서는 현장 활동가로서의 푸코의 면모와 그 속에서 엮인 인연들에 대하여, 5장에서는 <성의 역사> 출간 전후의 여파 및 후기 푸코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네요.

    4부 404p에서는 재판 제도에 대한 푸코의 비판적 견해가 드러나면서 ‘1792년 9월의 학살’이 언급되는데, 프랑스 혁명기에 혁명군과 시민들에 의해 파리 감옥에 갇혀있던 사제, 귀족, 범죄자들 약 1,100명 ~ 1,600명이 즉결처형 당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조금 헷갈리는 지점이 있는데, 푸코는 ‘복수를 외치는 민중’과 ‘피고인’ 사이에 제 3의 중립적인 심급(평가체제)가 들어갈 경우 또 하나의 국가장치가 출현하므로 ‘민중적인’ 사법 활동에 재판은 방해될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푸코는 재판 없이 행해진 9월 학살이야말로 ‘자연스러운 민중적 사법 활동’이라고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9월 무렵 도입되기 시작한 재판 시스템이 이러한 학살을 부추겼다고 해석하면서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비롯해 이후 마오이스트들, 촘스키, 사르트르 등과 얽히며 드러나는 ‘민중’에 대한 푸코의 관점을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410~416P, 바더-마인호프 사건, 쿠슈네르의 활동 등)

    한편 5부 458P에서는 <성의 역사> 1권을 다루며 성 문제에 대해 억압과 해방의 차원에서 접근하던 기존 방식에 대한 푸코의 견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 또한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왜 우리가 억압을 당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는 방금 전의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면서까지 우리가 억압당했다는 것을 그토록 원망 섞인 어조로 열렬하게 말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459p)
    "그러므로 담론의 생산과 권력의 효과가 성에 대한 진실을 형성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그것을 은폐하는 거짓말ㅇ르 만들어냈는지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담론들의 내용이며 동시에 도구 역할을 했던 ‘앎의 의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460p)

  • 2026-02-0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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