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공적 감정으로 정치화하려는 츠베트코비치는 자신의 우울 일기 회고록을 통해 우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어서 중세 초기 기독교 아카이브와 좌파 멜랑콜리, 유색인종 트라우마, 아케라카 원주민 및 흑인의 영적 전통과 흑인 디아스포라 페미니스트 아카이브에 주목합니다. 우울을 단순한 개인적 정서 상태를 넘어 역사적 트라우마의 정동적 결과로 확장해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츠베트코비치의 작업에 대해 르꾸샘은 벌랜트와 비교해서 정리해주셨는데요. 벌랜트는 신자유주의적 좋은 삶에 대한 애착이 오히려 좋은 삶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잔인한 낙관’이라 명명하고, 이를 장르 분석을 통해 보여준 반면, 츠베트코비치는 우울이 공적 감정임을 증명하기 위해 지난하고 방대한 문헌 연구를 진행합니다.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이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정동적 전환)을 보편화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인지라 좀 더 많은 이론적 백업이 필요했지요. 그민큼 의료적 우울 모델의 힘이 세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츠베트코비치는 근대 진보 서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중세로 갑니다. 중세 초기 수도사들이 경험하는 영적 위기인 아케디아와 우울의 유사성을 밝히고 영적 답보상태에서 중세 수도사들이 보여준 영적 실천, 수행으로서의 육체 노동례를 보여줌으로써 한때 대중적 인기를 끈 우울증 회고록이 주는 달콤한 면책과 항우울제, 심리상담으로부터 우울을 구출할 자원으로 삼습니다.
멜랑콜리를 다루는 다양한 역사적 담론에 더해 퍼블릭 필링스 프로젝트가 개발한 정치적 우울과 관련하여 소개한 작업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읽어보고 싶은 레퍼런스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유일하게 국내에 번역 출판된 더글러스 크림프의 <애도와 투쟁> 논의는 에이즈 운동의 맥락에서 멜랑콜리를 정치적 삶의 일부로 인정하자고 요구합니다. 인종 멜랑콜리를 이론화하기 위해 프로이트를 재해석하는 데이비드 엥의 논의, 비활동이나 “활력의 결핍”을 포괄하도록 정치적 개념들을 다시 정립하려는 헤더 러브의 논의, 마이클 스네디커는 모든 형태의 슬픔에 맬랑콜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정신분석학의 어휘에 구속당하지 않는 퀴어 낙관론 논의를, 조너선 플래틀리는 미적 측면을 행위의 장소로 만들어 우울의 무행위성이나 수동성에 대적하는 항우울 멜랑콜리를 논합니다.
츠베트코비치는 우리가 겪는 우울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사회구조, 오래된 식민주의, 노예제도, 집단학살 같은 역사적 결과 때문임을 네 권의 저작을 분석하며 보여 줍니다. 특히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연구자 세이디야 하트먼의 <어머니를 잃다>, 재키 앨리그잰더의 <가로지르기 교육학>에 주목하며 저자들이 겪는 답보상태를 식민주의와 노예제도, 집단학살의 역사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 정치적 우울의 결과로 명명합니다.
하트먼의 논의와 관련해서 초빈은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흑인인 저자가 고향으로 귀환함으로써 얻는 회복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느낌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회복적 양식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극복의 형식이 되는 것이었음을 드러낸다고 읽었습니다. 초빈 자신이 오랫동안 고통을 그 자체로 응시해오며 갖고 있는 화두와 겹쳐진 감응을 나눠주기도 했고요. 초빈은 자신의 ‘답보상태’에서 향해가고자 하는 측면적 행위주체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2부 3장(참고로 츠베트코비치는 이 장을 실천적으로 가장 유익한 장이자 마음 깊이 울리는 감동이 가득 담긴 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르꾸샘은 초빈의 해석에 더해 하트먼이 글쓰기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비판적 우화화(critical fabulation)” 는 역사적·아카이브적 자료 조사와 비판이론, 그리고 허구적 서사를 결합하는 글쓰기 방법론으로, 노예화된 여성들의 목소리가 부재한 대서양 노예제 아카이브의 공백과 침묵을 생산적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아카이브와 함께, 아카이브에 맞서는 역사서술’, ’말해지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하려는 불가능한 글쓰기’라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이라며 페미니스트 문화사에 대한 애정을 물씬 드러냈습니다.

제주 붉은오름에 사는 노루(나도 홀리?)
앨리그잰더가 제시하는 영적 실천과 급진적 자기소유 논의와 관련해서는 각자가 생각하는 ‘영성’과 그에 대한 고민을 나눴습니다. 기복신앙이 아닌 영성이란 무엇일까?(참), 얼마전 환기미술관에서 고사한 은행나무의 넋을 위무하는 굿과 같은 것일까(르꾸). 마음 돌봄 수업을 하는 낮달샘과 대화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영성적 느낌? 혹은 애니미즘 같은 것?(참), 무념무상 걷기와 텃밭 가꾸기는 어떨까?(르꾸) 기독교 단체의 가족주의, 왜곡된 사랑과 신앙 관념 속에서 사라져버린 영성의 의미를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을까?(노을), 자연과 연결되는 기분좋은 느낌일 것도 같지만, 그러나 아무리 영성적 작업이라도 의사의 입을 통해 치료모델의 해결책으로 제시될 때는 느낌이 반감되는 것 같다는 경험(장중장비)까지
마지막에 장중장비샘이 구두 메모로 나눠준 할머니의 ‘우울’도 깊은 공감을 주었는데요. 할머니께서는 일제강점기, 전쟁같은 근현대사를 겪으셨으면서도 너무 역사를 모르고 살았던 것이 한스럽다고 하셨답니다. 학생들이 운동을 하다 막 죽었다는데 그 일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신다고요. 개인의 인생사를 역사화하고 싶어하시는 할머니께 단순히 역사를 알려드리기 보다 역사 속의 개인으로서 할머니께서 겪으신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하는 것에 의견이 모였습니다. 여운이 많이 남는 고민을 나눠준 장중장비샘 감사합니다.
이상은,
제주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캠핑장에서 캠핑하다가 후기작성 기한이 도래했음에 화들짝 놀라 부랴부랴 올린 후기였습니다. 세미나 때 나눈 이야기 중 미처 후기에 녹여내지 못한 내용이 많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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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세미나 에세이데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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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읽는데, ‘역사적 현재’ 부분에서 중장비 할머니 생각이 또 나더라구요. 나의 역사적 현재를 알고자하는 할머님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무사는 쓰기 어렵다지만
무사의 후기는 글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참~ 큰 도움이 되네요~ ㅎㅎ
흐흐흐 '일상적 습관의 유토피아'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무사샘!
제주붉은오름자연휴양림 캠핑장이라니?! 느무 부럽네요ㅎ
자연과 함께하는 후기라니?! 영적 실천이신가요??ㅎㅎ
네, 저도 하트만과 앨리그젠더 일단 킵하고 갑니다:)
제주의 바람결에 간결하지만 풍부한 후기 보내줘서 고마워요.
ㅎㅎ 사진에서 느껴지는 홀리함 🙂
벌랜트와 츠베트코비치의 정동이론을 비교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었던 세미나였어요.
자연휴양림에서 요점 팍팍 새겨진 후기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충만한 시간 보내고 오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