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23일차> 수고했어~ 올해도~ _콩땅

관리쟈
2022-12-2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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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자 행성의 감사글 제안이 있은 후 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저도 자연이라든지, 친구,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제 자신에 대한 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2가지 사건을 대하면서 가지게 된 생각입니다.

 

감사패 해프닝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둘째가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초등 6학년입니다. 12월 중순에 A클럽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졸업식을 준비하면서 감독님께 감사패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감사패는 순금판에 감사의 글이 새겨지고, 황금열쇠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는 글이 문제였습니다. 많은 문장이 비문이었고 형식적 내용이었습니다. 글재주 없는 제 눈에도 문장이 심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저는 아들이 부상으로 재활을 하고 있는 상태라 팀훈련을 받으러 가지 않았기에 비문을 보고도 모른척했습니다. 누군가가 고치겠거니 방관했습니다. 이대로 글이 새겨질 수 있겠다는 걱정이 없었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감사패 발주가 나갔고, 금판에 글이 새겨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정신이 들어서 제작을 멈추게 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담은 감사글을 쓰고, 다시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욕 많이 먹었습니다. 진작에 참여를 하지 왜 가만히 있다가.......라는 시선이었습니다. 거듭 사과하면서 해프닝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순간에 문탁이 생각났습니다. 에세이 발표하면서 웃고, 싸우고, 울고, 절망하고, 파지사유에서 포스터 하나 만들려고 회의를 하고 또 하던 시간들이요.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저는 화려한 형식에 빈약한 글이 들어간 감사패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방관자였음을 반성하고, 욕먹어도 공손한 태도로 기쁘게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남편의 사표

얼마 전 회사 갔던 남편이 사표를 던졌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많이 놀라진 않았고, 조금 놀랐습니다. 3년 전 부터 회사 그만 둔다고 징징거렸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멋지게 사표를 던질 것이지 찌질하게, 곱게, 살포시 사표를 두 손 공손히 바쳤냐고 큰소리 쳤습니다. 남편을 두둔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냥 해고 시켜 달라고 빌어. 실업급여 타야하니깐. 알았지?”

 

이상하게도 담담합니다. 아직 현타가 오지 않아서일까요? 3년 동안 지겹도록 사표얘기를 들어서일까요? 둘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경험한 문탁언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담담하게 잘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두려움 보다는 용기가 나면서 차분하게 이 시기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문탁에서도 ‘늙음에 대하여’라든지 ‘가족 돌봄’ 주제가 많아져서 그런지 퇴직 후의 삶에 대해 조금씩 고민을 해오던 찰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앞으로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흥분되기까지 합니다. 미쳤나봅니다. 울고, 불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만 하며, 남편 멱살 잡지 않은 저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열심히 출근하며 일해 온 남편에게도 찐한 애정을 담아 감사를 전합니다.

 

 

문탁은 우영우의 팽나무 같습니다. 편안한 쉼터입니다. 예전에는 쉼터 같진 않았는데, 한 발짝 떨어지니깐 그렇게 느껴집니다. 치유 받을 수 있는 약국이 있고, 따뜻한 밥상이 있고,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서 환영해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문탁언니들이 있어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문탁에 발을 들여 놓은 저에게 감사합니다.

 

댓글 10
  • 2022-12-23 09:11

    콩땅!!
    남편의 실직을 담담하게, 오히려 기대를 갖고 대하는 담대함
    리스펙!!
    아들 뒷바라지에 남편과 눈 맞추기까지 해야해서 더 얼굴보기 어려워지는 건 아니길 바래봅니다~
    콩땅에게 어떤 2023년이 펼쳐질지 궁금해지네요 ㅋㅋ

  • 2022-12-23 10:14

    콩땅....글이 많이 늘었는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하고도 자주 봅시다^^

  • 2022-12-23 11:59

    콩땅^^ 콩땅과 함께 부대낄 2023년을 기대함^^

  • 2022-12-23 15:08

    감사패 해프닝은 세미나 시간에 공유하면서 함께 많이 웃었는데 남편의 사표는 금시초문이네요.
    며칠 못 보는 사이에 이런 새소식이 있었군요.
    소식을 듣는 사람보다 말해주는 사람이 더 담담하여 놀랍습니다.ㅎㅎㅎ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했군요. 아무튼 지금 이 순간 콩땅의 담담함에 응원과 박수를 보냅니다.
    늙음에 대하여든, 돌봄에 대하여든, 서로 의존하며 함께 잘 살아가는 기술을 연마하는 공부, 더 매진해 보아요.^^
    아! 복잔치에 콩땅이 직접 가져온 망개떡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 2022-12-23 15:26

    콩땅님, 저도 망개떡 잘 먹었습니다. 처음 먹어본건데, 아주 맛있었어요.
    그리고 망개떡이라는 별명을 가진 누군가가 생각나서 더 좋았어요.

  • 2022-12-24 08:25

    남편이 손흥민 아버지 되는거아녀?

    • 2022-12-24 10:53

      나도 그생각했음 ㅋㅋ

      콩땅님 봉러시 선물 감사해유

  • 2022-12-24 11:46

    콩땅님~
    내년 한 해가 이 감사에서 시작하여
    좋은 기운을 불러올 것 같습니다.
    저도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 2022-12-25 00:12

    비문을 앞두고 노심초사하는 콩땅이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ㅋㅋ
    모쪼록 무탈하게 자주 볼 수 있기를요~(자누리)

  • 2022-12-25 11:27

    콩땅에게 이런 일들이 있구나…
    남편의 사표…그럼에도 애정을 길어내는 마음
    진짜 리스펙이구먼요
    콩땅의 애쓰는 마음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